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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조회수 :
33,430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5.1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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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5화. 시작의 언덕 - 3

DUMMY

로제니악으로 넘어가니 둘은 기대가 가득 찬 눈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나만 믿는다는 눈을 보고 있자니 다시 돌아가 눕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로제에스테님, 그럼 어디부터 가실건가요?”


“어디부터 가실건가요?”


다시 내 방. 이라고 대답해 버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만.


“아까도 말했지만 나도 잘 아는 게 없으니까.”


그렇다. 애초에 내가 가본 곳을 전부 합쳐 봤자 론니악의 반도 안 되니까.

론니악에 처음 왔을 때 받던 소개도 베스파로제님과 스레나스님 사이에 말썽이 생기는 바람에 중간에 끊겨 버렸고 말이다.

그래,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나스니악부터 가자.”


“나스니악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 해오는 리아세스테를 뒤로하고 먼저 발을 옮겼다.


“아무래도 잘 아는 다른 악마에게 부탁하는 게 좋지 않겠어?”


문제는 누구한테 부탁할거냐는 건데, 부탁할만한 친한 악마라고 해도 몇 되지 않는데다가 그 대부분이 이런 걸 부탁하기엔 부담스러운 악마들 뿐.

그렇게 따지면 역시 그 중에서 가장 믿음직한 건 나스미스테 뿐이다.

내게 론니악을 소개해 줬던 것도 나스미스테 였으니까.

물론 날 골탕 맥이겠다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 것 뿐이였긴 하다만.......


“여기가 나스니악이야.”


라고 문을 짚으며 설명을 해 보였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


그렇게 빤히들 쳐다보고 있으니 애써 태연한 척 설명을 계속하려 해도 이미 빨개져 버린 얼굴은 어쩔 수가 없다.


“크, 크흠. 일단 들어.......”


문을 열려 힘을 준 손이 허공을 저어 당황.

무슨 일인가 확인하려 돌아본 문 앞에는.......


“로제에스테?”


나스에스테가 서 있었다.


“오, 오랜만이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당황해버려 내뱉은 말을 바로 후회.

나스에스테를 마지막으로 본 건 인간계 체험 때다.

겨우 일주일 좀 넘게 만나지 않았을 뿐인데 오랜만이라니.

또 뭐라고 공격해오는 건 아닐지 나스에스테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주춤 뒤로 물러섰다.


“으음.”


어, 얼레? ‘하아? 오랜만이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하는 말이야?’ 라며 따져 들 줄 알았건만 저 힘 빠진 대답은 상정외다.

그러고 보니 나스에스테, 뭔가 얼굴에 그늘이 진 것 같기도 하고.......


“나스에스테,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응? 아냐 아냐. 그보다 저 꼬마 아가씨는.......?”


그 말에서 왠지 나스에스테가 억지로 화제를 돌리려고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남았다.


“아, 인사드려야지 유스티. 이 분이 스레나스님의 첫 번째 수계자이신 나스에스테 님이셔.”


리아세스테가 먼저 말을 꺼내는 바람에 그 느낌이 정말 느낌뿐인 건지 아닌 건지 묻지 못했다.


“리아유스테, 나스에스테님께 인사드립니다.”


“어머, 귀엽네.”


양손으로 치마 끝을 살짝 들어 올리고 방긋 웃어 보이며 한 방금 전의 인사는 분명 귀여웠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나스에스테. 그러니까 무슨 일이.......”


“미스티를 만나러 온 거지?”


“응? 아, 으응.”


“미스티는 2층 자기 방에 있어. 지금 올라가면 만날 수 있을 거야.”


“그, 그래? 고, 고마워.”


“그럼 난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그렇게....... 뭔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레 나스에스테를 보내주고 말았다.


“나, 나스에스테!”


하고 뒤늦게 불러보았지만 이미 저 멀리까지 가 버린 나스에스테는 돌아봐주지 않았다.

그 뒤를 멍하니 바라보며 드는 생각은 단 하나 뿐.

당했다.


“로제에스테님?”


나스에스테와 얘기할 때는 항상 밀리지 않도록 경계를 철저히 했어야 했건 만.


“.......들었지? 나스미스테는 위에 있다니까. 들어가자.”


아무래도 그 나스에스테 답지 않게 의기소침해져 있던 모습이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그래, 나스미스테에게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


.

.

.



계단을 올라 도달한 나스니악의 2층.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을 테니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먹었건만 결국 나스미스테의 방 문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줄곧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남아 부유하고 있을 뿐이다.


“나스미스테, 나 로제에스테야. 들어갈게.”


라고 부르며 문을 두어 번 두드리고 기다렸지만.......


“.......”


돌아오는 건 침묵 뿐.


“나스미스테?”


하고 한 번 더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묵묵부답.

그리고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한 가지 기억.

그러고 보니 이제까지 나스에스테가 나를 보고 거짓말을 안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또 속은 건가?

제, 젠장. 기껏 걱정해 주었더니.......


“열려 있어.”


문 안쪽에서 들려온 것이 분명한 나스미스테의 목소리에 화가 나려던 것이 돌연 당황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고?


“리아유스테, 나스미스테님께 인사드립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문을 밀어 열기가 무섭게 리아유스테가 먼저 그 사이를 쪼르르 달려 나가 나스에스테에게 했던 것과 같이 인사했다.


“유스테? 그럼 세르피리아님의 여덟 번째?”


딱 봐도 알 수 있는 ‘어멋, 귀여워!’ 하는 감정과 ‘얘 누구야?’ 하는 감정이 반반 섞인 얼굴로 리아세스테를 향해 묻는 나스미스테는....... 다행이도 평소 그대로의 모습이다.


“네, 며칠 전 세르피리아님께서 론니악 밖에서 주워오셨습니다.”


“주워오셨습니다!”


그 주워왔다는 말은 네가 웃으면서 따라할 말은 아닌 것 같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나스미.......”


나스미스테와 눈이 마주친 순간 뇌리에 파고든 목소리에 멈칫하고 말았다.


[내가 힘들 때 넌 항상 옆에 있어 줬는데.......]


[네가 힘들 땐 난 한 번도 너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 같아.]


[부탁이니까. 빨리 예전처럼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스미스테는 한 번도 로제니악에 찾아와 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도 로제니악 밖으로 나온 적은 테르에스테를 만나러 갔을 때 말고는 없었으니까.

당연히 그 후로는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게 된다는 사실을 이제야 자각하고 말았다.

나스미스테의 성격 상 그런 일로 시무룩해 있지는 않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내심 걱정이 됐던 것도 사실.


“좋겠다~ 우리 스레나스님은 수계자 새로 안 받으시려나~”


나스미스테는 말을 잇지 못하는 나를 잠시 더 응시하다 리아세스테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대로.


“후후, 금방 받으시지 않을까요?”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는데. 아, 그보다 무슨 일이야?”


역시 생각이 과했던 거다.

좋아, 그럼 나도 평소와 같이.......


“응, 부탁을 하나 할 게 있.......”


어, 어라? 분명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주위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가라 앉아 버렸다.


“나, 나스미스테?”


리아세스테와 얘기할 때와는 달리 나를 바라보는 그 눈이 너무나도 차갑게 느껴져 말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역시 아무렇지도 않았던 게 아니었던 건가?


“.......들었어.”


들었다니.......? 무엇을? 누구에게?

깊은 혼란에 빠져 소용돌이치는 머릿속은 판단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크게 흔들릴 뿐이다.


“로제에스테 네가.......”


역시 나스에스테가 또 이상한 일이라도 했던 걸까? 아니면.......


“인간이라고.”



나스미스테의 입에서 나온 그 ‘인간’이라는 단어에.


사고를 포함한 내 모든 것이 얼어붙고 말았다.


“그, 그런 말을 어디에서.......”


억지로 입을 움직여 말을 뱉어내었지만 머릿속은 이미 혼돈에 휩싸여 내가 뭘 물어 본 건지도 인식하질 못한다.


“스레나스님께 들었어. 마신님께서 네 정체를 론니악 전체에 공표하셨다고 하시더라고.”


그 대답은 이 머릿속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생각의 소용돌이만 더 휘저어 놓을 뿐이다.

그 말대로라면....... 이곳의 악마들은 이제 전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게.......


<이곳에 있는 상위서열 악마 중에는 인간에게 당한 기억이 있는 녀석들도 있고, 자기 제어가 안 되는 녀석들도 있다.

네가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이 모든 악마가 네게 눈에 불을 키고 달려들 건 당연한 일이지.>


라는 론니악에 처음 왔었을 때의 베스파로제님의 말이 떠올라 등 뒤로 소름이 돋고 말았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생활이 험난해 질 것 같다는 그 걱정은....... 나스미스테의 눈을 보자마자 다시 사그라들었다.

그래, 그것보다 지금 중요한건.......


“미안.”


나스미스테의 저 얼굴.

나스미스테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는 말을 들어설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저 눈을 통해 전해져 오는 감정은....... 배신감이다.


“미안이라니, 뭘?”


“내가 인간이라는 걸 속여서.”


리아세스테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나스미스테는 계속 내가 악마라고 알고 있었으니까.

악마들 대부분이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걸 생각해보면 그 배신감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게 화를 내는 이유까지도.......


“로제에스테, 너 뭐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라는 목소리가 방금 전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또 누그러져 있어.......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나스미스테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화가 난 건 네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야.”


그럼 무엇 때문이냐고 되물으려다 괜히 화만 더 지피는 게 아닐 까 싶어 말을 삼켰다.


“내가 화가 난 건 로제에스테, 네가 날 속여서가 아니라 그 사실을 내게 비밀로 했기 때문이라고.”


속여서가 아니라 비밀로 해서라니.

그 말의 뜻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말, 뭐야. 날 못 믿었던 거야? 나한테 말하면 내가 여기저기 퍼트리고라도 다닐 줄 알았어?”


“아, 아니 그게.......”


“그게 아니면. 네가 인간이라는 걸 알면 내가 널 피하기라도 할 거라 생각한 거야?”


그 말에. 부정해야 한다고 머리는 외치고 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스미스테의 말 대로다.

그 때, 나스미스테와 개방을 연습할 때, 내 오른팔에 대해 설명할 때 등.

나는 충분히 내가 악마가 아니라 인간이란 것을 밝힐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 말하지 못했던 건....... 베스파로제님과의 약속 때문이 아니다.

나스미스테와의 관계가 이전 같지 않게 변할까 하는 두려움이 그 이유.

그렇게까지 생각이 닿자 속여서가 아닌 비밀로 해서라는 말의 뜻이 이해가 갔다.

결국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네가 했던 말 기억 나?”


“.......내가 했던 말?”


“그, 그때 말이야! 내가 2차 각성을 했을 때.”


나스미스테가 2차 각성을 했을 때?

폭풍우 치는 사고 속 얼마 남지 않은 잠잠한 부분을 총 동원해 기억을 훑어보았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짚이는 부분이 없다.


“바, 바보야! 그때 내게 말해 줬었잖아! 그,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해도 된다라고!”


아, 기억났다.

얼떨결에 했던 말이라 잊고 있었다.


“어, 어쨌든! 마찬가지라고! 나도....... 나도 네가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고 피, 피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니까. 그러니까.......”


.......


“.......미안.”


하고 고개 숙인 사과 한마디에 돌아온


“이, 이번 한번 만 용서해 줄 테니까.......”


그 어설픈 용서 한마디가 너무나도 따스해


“다음에 또 그런 비밀 만들고 그러면 그땐 정말 다신 안볼 거니까!”


“.......응.”


애써 미소 짓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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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16화. 파괴된 우리 - 7 18.05.17 346 0 18쪽
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6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1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3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69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40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8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8 0 15쪽
»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9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3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7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1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8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2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2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3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6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0 0 15쪽
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7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1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1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7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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