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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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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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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38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5.16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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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16화. 파괴된 우리 - 6

DUMMY

“Kraaaaaa!!!!”


천지를 울리는 그 괴성에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늘어진 살점이 뜯어지며 붉은 송곳니에 걸려있던 검은 갈기 마수의 몸이 떨어져 내렸다.

물씬 올라온 흙먼지에 눈앞이 아찔.

너무나 막연히 생각했었던 것 같다.

흐릿한 시야에 보인 포효하고 있는 아카드민의 모습은 이미 내 인식범위를 벗어난 지 오래.

저걸....... 저걸 잡겠다고 한 건가 나는?


“무, 무슨.......”


루즈에스테는 아카드민이 거대한 늑대와도 같이 생겼다 했었다.

하지만....... 거대한 늑대?

웃기지도 않는 소리.

눈앞의 이 거대한 마수를 보고 드는 생각은 말 그대로의 재앙.

그래, 재앙이다.


“로제에스테님!”


순간 눈앞이 어두워졌다 싶더니, 눈앞의 아카드민이 작아져 있었다.

아니, 작아져 있다니? 그럴 리가. 단순히 아카드민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갑자기 왜?

뒤늦게 찾아온 일련의 어지러움은 마치 공간이동 후의 후유증과도 같다.

그러고 보니 눈앞이 어두워지기 전 루즈에스테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


“루즈에스테?”


뒤를 돌아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루즈에스테와 테르에스테가 서있다.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을 못 차리고.......”


고개 숙여 사과해오는 루즈에스테의 눈은 평소와 같이 돌아와 있었다. 다행이다.


“아, 아냐. 그보다....... 응?”


아카드민이 있는 방향에서 무언가 큰 소리가 난 것 같아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뭐, 뭐야 대체.......”


저 멀리 보이는 허공을 가르는 아카드민의 앞발.

갈기갈기 찢겨 튀어 오르는 마수들의 살점.


“같은 마수잖아. 대체 왜.......”


“뭐, 둘 사이에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던 것 아닐까요?

아니면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공격하는 거라거나.......

저 마수들이 계속 저희에게 나가라고 한 이유를 알겠군요.”


아카드민의 앞발이 마수의 무리를 훑고 지나갈 때 마다 피어오르는 피의 꽃.

그 광기담긴 광경에 틀어박힌 시선은 좀처럼 떨어져 나오지를 못한다.


“뭐 이유가 어찌됐든 저희에겐 행운입니다. 덕분에 준비할 시간이 생겼으니까요.”


준.......비?


“자, 잠깐 루즈에스테. 도망가는 게 아니었어? 설마 작전을 계속 하려고?”


“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이곳에 온 것 아니었나요?”


너무나도 태연스레 말해오는 루즈에스테의 목소리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조용하다 싶었던 테르에스테는 이미 바닥에 보자기를 펼쳐놓고 있고.......


“자, 잠깐만. 다들 봤잖아. 아카드민이 그 검은 갈기의 마수를 단숨에 끝장내버리는 걸 말이야.”


“네, 봤지요.”


“그, 그런데도 계속 하겠다고?”


도저히 이 분위기가 받아들여지지를 않는다.

나만 이렇게 겁을 집어먹고 있는 건가? 내가 이상한건가?


“마신님의 성을 지키는 마수였습니다. 상급 마수정도도 간단하게 해치우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마신님의 성을 지키는? 난 그런 말은 들은 적이.......”


“뭐야, 로제에스테. 그럼 설마 전대마신님께서 마수를 애완용으로 데리고 다니셨겠어?”


하고 테르에스테가 비웃으며 뱉어낸 한 마디에 눈앞이 깜깜해지고 말았다.

다들 알고 있었다는 것 아닌가.


“로제에스테?”


내가 잘못 생각했었다.

다들 긴장감이 부족하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건만....... 각오가 부족했던 건 오히려 내가 아닌가.


“로제에스테님? 어디 다치기라도 하신건가요?”


“.......”


“괜찮으신 거죠?”


나를 바라보는 루즈에스테의 걱정 가득한 눈빛에 이곳에 와서 계속 루즈에스테를 속으로 질책했던 데에 대한 죄책감이 일어.......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그보다 테르에스테. 에네스님의 향취는?”


마침 시선이 향한 곳이 바닥에 늘어선 도구들이었기에 억지로 테르에스테를 향해 화제를 돌렸다.


“자, 여기.”


에네스님의 향취가 담긴 병을 받아들었다.


“처음의 계획 그대로 가는 거 맞지?”


설마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되물었다.

여기서 또 내가 바보짓을 해서 일을 망쳐버렸다간....... 둘을 볼 낯이 없다. 정말.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안 그래도 한 가지 변경해야할게 있어서요.”


“어떤 식으로?”


“아까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 결계는 상급마수의 공격도 버터내질 못합니다.

마법에는 꽤나 자신이 있었기에 조금 충격이었습니다만.......”


그 말에. 루즈에스테가 그 때 넋을 놓고 있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래서야 당연히 아카드민의 공격은 단 한 번도 버티질 못할게 뻔하지요.

그래서....... 결계를 한 면으로 응축하려 합니다.”


“결계를 한 면으로?”


그럼 이전의 결계는 한 면이 아니었다는 건가?


“면적을 좁히고 내구력을 올린다는 말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계속 물어보고 있을 수도 없기에 일단은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게 하면 물론 공격을 막을 때마다 결계를 새로 펼쳐야 할 테지만,

다르게 말하면 한 번의 결계 당 한 번씩의 공격은 계속 막아낼 수 있다는 거죠.

물론 제 정신력이 허용하는 내에서.......”


“그렇다는 건.......”


“네, 테르에스테와 로제에스테님은 원래 계획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다만 결계로 가두는 건 포기하고 전 수비에만.......”


“Kraaaa!!!!!”


루즈에스테의 말을 찢으며 덮쳐 든 포효소리에 나를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했다.

보이는 것은 움직임을 멈춘 채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는 아카드민 뿐.


“저 쪽의 정리는 다 된 것 같네요.”


루즈에스테의 말 그대로다.

아카드민의 밑으로 수북이 쌓인 마수들의 몸에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는다.


“이쪽도.......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그래. 이렇게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지.

약병의 뚜껑을 열고 안에 든 액체를 단숨에 들이켰다.


“난 준비 다 됐어.”


라는 내 말에 테르에스테는 붉은 액이 가득 찬 그 바늘달린 유리용기를 손에 들고 몸을 일으켰다.


“나도.”


그리고 루즈에스테는 나와 테르에스테를 한 번씩 번갈아 보더니.......


“그럼 아카드민과 좀 더 가까운 위치로 이동하겠습니다.”


“아, 그러고보니까 로제에스테.”


“응? 왜?”


“설마해서 물어보는 건데....... 또 저번처럼 향취를 마시거나 한 건 아니지?”


“에이, 설마. 내가 또 그런 바보짓을.......”


아.


했구나.


바보짓을.


.

.

.



아아,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고 아카드민의 눈을 구하는 건 다음에 하자 라고 하면 되는 거다.


“제가 연속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결계는 많아봐야 열 번 정도. 최대한 빠르게 승부를 봐야합니다.”


“아, 으응.......”


.......말 할 수가 있겠냐!!!

그, 그래. 이건 물론 내가 바보였던 탓이 제일 크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마음의 준비도 덜 된 상태에서 준비를 시킨 루즈에스테와 테르에스테의 잘못도 없다고는 못 할테니까.

.......라고 속으로만 백날 외쳐봤자 스스로만 더 비참해질 뿐이다.


“그럼 이동하겠.......”


“자, 잠깐만!”


“로제에스테님? 무슨 문제라도?”


마주친 루즈에스테의 눈에 꿀꺽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 가버리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단 붙들어 잡기는 했으나.......

솔직히 말할 용기가 나지를 않는다.


“로제에스테님?”


그래, 꼭 안 좋은 방향으로만 생각하라는 법은 없지.

어쩌면. 아니 분명 별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거다.

그래, 그때도 그랬다.

데모테르님의 실험 용기를 훔치러 잠입했을 때도 들키지 않았었으니까.


“아, 아냐. 아무것도.......”


그래, 오히려 입에 머금었던 것을 뿜어낼 뿐이었던 그 때보다는 비록 조금뿐이지만 병 끝에 남아있던 약을 직접 묻혀낸 지금이 상황 상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럼 이동하겠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도달하고 나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 괜찮을 거다. 분명 아무 문제없이.......


“Kraaaaa!!!!!”


그렇게 겨우 만들어낸 긍정적인 생각은 어질하며 찾아온 공간이동 후의 후유증과 눈앞에 들이 닥쳐온 아카드민의 모습에 바로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조금 더 진정돼서 그런 걸까?

이번엔 아카드민의 모습이 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하얀 털이 유려하게 뒤덮고 있는 내 키의 수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몸.

내 머리만한 크기의 매서운 눈과 그 밑, 입 안으로 날카롭게 늘어선 말 그대로의 붉은 송곳니.

저런 걸 상대로 괜찮을 리가 없잖아.


“로제에스테님! 뛰세요!”


나를 부르는 루즈에스테의 목소리에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 때가....... 아니 잠깐. 뭐라고?


“루즈에스테?”


설마 하는 마음에 돌아본 루즈에스테는 다급한 손짓으로 아카드민을 가리키고 있을 뿐이다.

바, 바로 시작하는 거였어?


“.......제기라아아알!!!!!”


이를 악물고 아카드민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흥건한 마수들의 피와 살점이 발에 밟혀 철퍽이며 기분 나쁜 소리를 자아낸다.

눈이 핑핑 돌아 제대로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핏 확인한 나와 아카드민 사이의 거리는 이십에서 삼십 걸음 정도.

과연 내 몸에 에네스님의 향취가 제대로 남아있을련지, 남아있다 치더라도 저 거대한 아카드민에게까지 그 향취가 닿을 수나 있을련지.

거의 확신에 가까워진 불안감에 이미 머릿속은 될 대로 되라 라는 말만이 가득 차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하늘을 향해 포효하고 있는 아카드민이 아직 나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건데.......


“Kraaaaa!!!!!!”


그 작은 다행도 내게는 과분했다는 걸까.

제발, 제발을 되 뇌이는 중 마주친 아카드민의 눈에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춰 버리고 말았다.


“Ter! da!! sar!!”


아닐 거다. 아닐 거다. 라고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뒤집어쓴 긍정적 망상은 나를 향한 것이 분명한 아카드민의 포효에 기타 잡생각들과 함께 묶여 송두리째 뜯겨 날아가 버렸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채 다리에 힘이 풀려 이제 도망가려해도 무리.

눈을 감아 버렸다.

그래, 죽더라도....... 베스파로제님께서 다시 살려주시겠지.


“Daku.......nes.......”


아카드민이 이쪽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는 것이 흔들리는 땅을 통해 전해져 온다.


“Karu....... tes.......”


한걸음, 또 한걸음.

될 대로 돼버리란 마음과는 다르게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다.


“Nerda.......”


그리고....... 울려오던 땅이 멈췄다.


“.......”


생각지도 못했던 정적에 비어있던 머릿속이 터져버릴 것 같이 부풀어 오른다.

그 속을 가득채운 생각은 잠시 후면 찾아올지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다.

검은 갈기의 마수와 같이.

그 거대한 붉은 송곳니에 머리가 뚫린 채 늘어져 있는 나의.......


“Ker.......”


얼굴에 와 닿는 아카드민의 뜨거운 숨결에 입안이 마르고 애간장이 타 현기증이 날 것만 같다.

들리는 건 그 거친 숨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리는 듯한 울음소리 뿐.

왜, 왜 덮쳐 오질 않는 거지? 달려들지 않는 거지?

날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지 재보고 있기라도 한 건가?

아니다. 마수의 무리들을 도륙하던 그 모습에선 광기는 보였을 지언즉 식욕 따윈 보이지 않았다.

그럼 인간인 내가 신기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오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면 대체....... 아, 설마.


“.......”


용기를 내어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와 닿아있는 아카드민의 얼굴에 기절할 듯 놀랐지만 겨우 참아낼 수 있었다.

그래, 안될 거란 생각과 내 바보짓에 대한 걱정에 가려 가장 중요한 원래 목적을 잊고 있었다.

아카드민은 내 주위에서 계속 코끝을 킁킁 거리며 무언가의 냄새를 맡고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통한 거다.

에네스님의 향취가!


“테르에.......”


걱정, 불안이 한꺼번에 해소되었다는 해방감에 나도 모르게 테르에스테를 부르려 한 것을 겨우 참아내었다.

다행이도 아카드민은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테르에스테가 이쪽을 향해 조심조심 걸어오고 있다.

어때, 해냈다고! 라며 의기양양한 얼굴을 해 보였으나 테르에스테의 눈은 아카드민을 향해 고정돼 있어 보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부담을 벗어내고 한껏 가벼워진 마음에 미소가 지어진다.


“Nera.......”


발을 멈추고 아카드민의 몸 전체를 두리번두리번 훑어보던 테르에스테는 그대로 오른쪽으로 두 걸음 옮겨 간 뒤 그 앞, 아카드민의 허벅지 부근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찾은 모양이다. 독을 주입해 놓을 위치를.

이제 독만 주입해 놓으면 끝이다 라는 생각에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만 테르에스테가 아카드민의 몸에 손을 댈 때만큼은 나도 긴장이 돼 슬쩍 눈을 돌려 아카드민의 눈치를 살폈는데.......

다행이도 아카드민의 눈은 마치 흥미로운 것에라도 빠져있는 듯 허공의 무언가를 계속 응시하며 코 끗으로 냄새를 맡고 있을 뿐이다.

이제까지 들였던 수고에 비하면 너무 허망하게 끝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


“.......Karte?”


아니, 잠깐만. 흥미라니.

뭔가....... 뭔가 이상하다.

루디치님은 아카드민이 에네스님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저 눈은....... 아무리 봐도 두려워하는 눈이 아니다.


“제, 제기랄.......”


눈치 채는 게 너무 늦었다.

아카드민의 꼬리는 이미 테르에스테에게 닿기 직전.“


“테, 테르에스테! 도망.......”


늦었다. 라는 절박한 외침과 함께

아카드민의 꼬리에 테르에스테가 찢겨 날아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질 때 쯤.

퉁, 하는 소리와 함께 아카드민의 꼬리는 테르에스테에게 닿기 직전 무언가에 막혀 튕겨져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가하는 의문은 흙먼지가 가라앉으며 테르에스테의 앞을 막아서고 있는 네모난 모양의 노란 막이 눈에 들어오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루즈.......”


“로제에스테님! 테르에스테를!”


루즈에스테의 다급한 목소리에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며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테르에스테는 방금 전 꼬리를 맞기 직전의 충격이 아직 지나가질 못했는지 주저앉은 그대로 일어서질 못하고 있다.


“테르에스테!”


달렸다.

다급한 마음에 발이 꺾이며 비틀.

옆으로 쓰러질 뻔 했으나 이를 악물고 발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Kraaaa!!!!”


천지를 울리는 포효소리에 눈앞이 아찔하며 또 넘어질 뻔 했으나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앞으로 세걸음. 두걸음. 한걸음.


“루즈에스테! 지금!!”


테르에스테를 붙들어 잡는 동시에 루즈에스테의 이름을 부르며 루즈에스테가 있던 곳을 바라봤으나 루즈에스테는 그 자리에 없었다.


“Kes ter karr!!!!”


오싹한 기분이 들어 시선을 오른편으로 돌리자 이쪽을 향해 맹습해오는 아카드민의 거대한 발톱이 눈에 들어왔다.

제, 제기랄. 하며 몸을 수그리는 순간.

어깨위로 무언가가 올라온 느낌이 들더니 눈앞의 모든 것이 역변했다.


“아, 아아.......”


한순간 막혔던 숨이 트이며 그대로 무너지고 말았다.

시야에서 사라진 아카드민은 내 어깨에 올라와있는 루즈에스테의 손이 설명해 주었다.


“놓칠 순 없기에 그리 멀지않은 곳으로 이동했습니다만....... 당분간은 괜찮을 겁니다.”


다행이도 테르에스테 역시 정신이 드는지 내 팔을 밀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보다....... 어떻게 된 일이죠?”


라는 루즈에스테의 물음에 내가 대답하려 하는 사이 테르에스테가 먼저 입을 열었다.


“로제에스테, 너....... 또 향취를 먹은 거지?”


그 말에 잠깐 심장이 멎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뭘 숨기겠는가.


“.......응.”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테르에스테에게는 특히 더 볼 낯이 없다.


“내가 그럴 줄 알았....... 휴우, 대체 무슨 생각으로 모른 척 했던 거야.”


“그....... 예전에 데모테르님 때도 잘 넘어갔었으니까 이번에도.......”


점점 잦아들던 목소리는 결국 목이매여 더 이어지지 못했다.


“바보야, 일단 말을 했었어야지.”


싸늘한 목소리로 비난해 올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돌아온 테르에스테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그대로였다.


“나도 저번에 네가 다녀간 뒤 여쭤보고 알게 된 거지만.......

그 때 데모테르님은 네가 에네스님이 아니었단 걸 알고 계셨다고 하셨어.”


.......알고 계셨다고?


“그, 그러면 그 때 하신 말씀은.......”


“그래, 다 내 오해였던 거지.

네 정체를 눈치 챈 수계주들 사이에서 그런 말들이 나온 걸 들으시고 네게 경고를 해주려 하셨던 거라고.”


그 말에.

아니길 바랬던 의심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눈 녹듯이 사라져 없어졌다.

항상 가슴 속 한켠에서 날 불편하게 하던 사실이 오해였음이 들어났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됐으니 처음부터 다시 작전을 짜야겠.......?”


뜨거운 액체가 얼굴에 튀어 오른 눈을 덮쳤다.


당황한 나머지 팔을 들어 눈을 닦아내는 도중 왼쪽 눈으로 본 것은


테르에스테의 배를 뚫고 나와 있는


하얗고 날카로운.



“테, 테르에스테?”



거대한 아카드민의 발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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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9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3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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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8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2 0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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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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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2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2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7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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