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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pressor 님의 서재입니다.

악마 만들기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expressor
작품등록일 :
2018.04.09 19:06
최근연재일 :
2018.05.17 21:07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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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40
추천수 :
65
글자수 :
471,948

작성
18.05.05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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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화. 영웅의 피 - 1

DUMMY

12화. 영웅의 피.




인간계 체험 후 3일 째.

잔느의 부축을 받아 자리에 누운 이후로 단 한 번도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니 일어날 수 없었다.


“주인님, 차라도 한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3일 내내 차를 마시기는커녕 심상도 흡입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끊이지 않는 구역질에 차라리 속이 비어있는 게 편하다.


몸을 돌아 뉘었다.

말라붙을 대로 말라버린 동공 위로 눈꺼풀이 내려갔다 올라간다.

단지 눈을 깜빡인다는 그 행위 자체로도 너무 괴로워.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뜨고 말았다.


눈을 감으면. 그 어둠위로 어머니와 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곧 성기사들에게 끌려가 린크로스에 못 박히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 연유로 난 이 3일 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하지만 눈을 떠도 뇌리에 박힌, 그 린크로스에 새겨진 ‘인간의 반역자’ 라는 글씨는 사라지지를 않는다.


그 성기사는 나를 영웅의 피라 했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테르에스테도 나를 영웅의 피라 불렀던 것이 기억났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아무 상관없는 어머니와 동생이 그리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어야 한 이유는 내가 쓸 데 없는 짓을 해 지옥으로 왔기 때문이라는 것.


왜 이제야 알 수 있던 건지 스스로가 한심스러울 정도로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영웅의 피라느니 뭐니 알지도 못하겠는 것들은 다 치워 두더라도 말이다.

지옥과 관련된 책만 읽더라도 즉결처형을 해온다 하던 성기사들이었다.

악마를 소환한 자가 있다. 그러니 그 자의 가족들은 모두 처형한다.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결과물이다.


이런 자신의 미련함과 쓸데없는 집착이 낳은 그 결과에 끊임없는 자책의 연속.

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던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책장수에게 마법서를 사게 된 건 말 그대로 우연이었을 뿐이니까.

괴롭다. 이 이유만으로도 이토록 괴롭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하게 나를 옥죄여 오는 기억은 따로 있다.


“로제에스테, 나 왔어.”


창문이 열리면서 들어온 건 나스미스테다.

고맙게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찾아와 주고 있다.

평소대로였다면 순수하게 고마워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이런 친절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과분하다.


“리아세스테........는?”


갈라질 대로 갈라진 목에서는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게다가 피라도 얹힌 건지 목 뒤로 씁쓸한 피맛이 진하게 남는다.


“리, 리아세스테는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어! 펄펄 날아다닌다고!”


알고 있다.


“그보다 너 말이야. 대체 리아세스테에게 무슨 일을 한 거야? 리아세스테에게 같이 로제니악에 가자고 했는데 부끄러워서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


저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알고 있다.

어제 혼자 찾아온 세르에스테에게 물어 리아세스테는 아직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그대로라는 말을 들었으니까.


“.......”


하지만 그 모든 게 나를 걱정해서 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에 마음만 더 무거워져 호흡이 느려질 뿐이다.

그리고 설사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고....... 내가 리아세스테를 찾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리아세스테는. 자신과 지옥을 내버리고 인간계를 선택했던 나를 다시 받아 주었다.

그랬기에 억지로라도 망막에 새겨진 어머니와 동생의 모습을 잊을 수 있었다.

성기사와 싸울 때도 그랬다.

리아세스테는 나를 걱정시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비명을 참고........


하지만. 하지만 나는 리아세스테를 구하기 위해 싸운다는 그 목적도 내버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싸웠다.

어쩌면. 어쩌면 녀석이 팔을 잘려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 리아세스테를 안아들고 도망갔다면.

아니 하다못해 녀석의 목을 붙들고 아버지의 일을 물을 때 그냥 리아세스테를 안아들고 도망갔다면.......


물론 그 시기는 아무 상관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리아세스테는 내가 처음 돌아 봤을 때부터 아무 움직임 없는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용서가 되질 않는다.

물론 리아세스테는 내가 미안하다 사과하면 흔쾌히 미소 지으며 날 용서해 줄 것이다. 알고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더욱 더 스스로가 용서되질 않는다


이건........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해 어머니와 동생을 죽게 만든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어머니와 동생의 일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그때의 난. 악마를 소환하기 이전의 나는 정말 뭐라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돼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하지만........ 리아세스테의 일은 다르다.

난. 날 받아들여주고 용서해준 리아세스테를 두 번이나 배신했다.

내 선택이었던 것이다.


“나스미스테님. 여기 차 한 잔.......”


“아, 고마워 잔느.”


다시 또 그렇게까지 생각이 도달하고 나니 나는 스스로를 벌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게 됐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이........ 지금의 내 모습이고 말이다.


“로제에스테. 이상하지?”


잘 못 봤을 리가 분명하다만.

갑자기 가라앉은 목소리에 돌아 본 나를 내려 보는 나스미스테의 눈가에.


“내가 힘들 때 넌 항상 옆에 있어 줬는데.......”


눈물이 조금 고였다가.


“네가 힘들 땐 난 한 번도 너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것 같아.”


미소를 짓자 그대로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부탁이니까. 빨리 예전처럼 돌아와 줬으면 좋겠어.”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나스미스테는 창문을 넘어 돌아가 버렸다.


“나, 나스........”


그런 나스미스테를 붙잡기 위해 그 뒤에 대고 이름을 불러 외쳤으나.

목에서 올라온 피만 튀겨나갈 뿐이었다.


“........”


아아, 나는. 나란 놈은........



“크크큭.......”



그렇게 허공에 대고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한번 비웃어 보이고선.


닫아 내린 눈꺼풀은 심장과 함께 움직임을 멈췄다.


.

.

.



“이상하군.”


“비켜봐. 그게 아니라니까.”


몸이 하늘에라도 뜬 마냥 가볍다.

조금만 움직여도 비명을 질러대던 상처들도 아무렇지도 않은 기분이다. 아니, 도리어 상쾌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어둠사이로 얼굴에 와 닿는 푹신하고 보드라운 살결의 느낌. 그리고 후각을 자극하는 달콤한 향기.

죽어서 천국이라도 온 걸까?


그럴 리가. 난 천국에 갈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그럼....... 꿈인가? 하지만 이 모든 게 너무나 생생해 눈을 떠보았지만 보이는 건 눈을 감았을 때와 다르지 않은 어둠 그대로.

역시 꿈이 맞았던 듯하다. 꿈도 참 이상한 꿈을.......

게다가 뭔가 이 부드러운 느낌도 점점 날 압박해 오는 듯한 것이....... 악몽?

자, 잠깐만. 숨이....... 숨이!


“푸, 푸하앗!”


하고 고개 들어 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눈 앞, 그 바로 앞에 있는 얼굴을 보고는 기절할 듯 놀라 뒤로 기어 물러나고 말았다.


“세, 세르피리아님?”


“봐, 베스. 내가 남자들한테는 이게 직빵이라고 했지?”


한참을 멍하니 내가 빠져있던 꿈을 바라보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난 내 계단, 아니 내 자리 위 그대로다.

난 대체....... 그리고 세르피리아님은 왜.......


“정신이 들었으면 가만히 앉아있지 말고 일어나라. 이렇게 시덥잖은 얘기나 하려고 널 다시 살려낸 게 아니니까.”


베스파로제님? 아직도 어리둥절해 눈앞의 상황이 전혀 이해되지를 않는다.

그나마 알아들을 수 있었던 건 다시 살려냈다는 베스파로제님의 말 뿐.

내가 죽었던 건 꿈이 아니었던 듯하다.

그리고 지금 몸이 이렇게 회복된 것도 꿈이 아니고 말이다.


덴에 있을 때 몇 번이고 죽었다 다시 살아났을 때의 그 느낌 그대로다.

그럼 남은 의문은 베스파로제님과 세르피리아님이 왜 날 찾아왔냐는 건데....... 그 의문은 의외로 바로 해결되었다.


“마신님께서 널 찾으신다.”


마신.......님?


“하아, 언제까지 그렇게 앉아있을 생각이지?”


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벌떡 몸을 일으키고 말았다.


“베스! 그렇게 화만 내면 안 된다니까! 자, 가자 로제에스테.”


세르피리아님은 그렇게 베스파로제님을 향해 한마디를 쏘아 날리고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 어깨를 붙들어 밀었다.


“아니, 가는 건 나와 에스티. 둘이다.”


“.......뭐?”


꽤나 당황했는지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며 되묻는 세르피리아님.


“당연한 것 아닌가? 마신님께서는 ‘나’에게 ‘에스티’를 데려 오라 명하셨다고 분명히 얘기 했을텐데?”


“뭐, 뭐야! 그럼 난 왜 부른 거....... 흐흥~ 알았다. 베스, 너.”


“비켜라. 마신님께서 기다리신다.”


라며 내 어깨 위 세르피리아님의 손을 쳐내는 베스파로제님.


“베스는요~ 자기 에스테한테 멋대로 화를 내놓고서는 어색해서 혼자서는 말도 못 거는 겁쟁이래요~”


“.......이동한다.”


“아! 베, 베스!”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전.

마지막으로 스쳐지나간 세르피리아님의 울상 가득한 얼굴에 이래도 괜찮나요? 하는 생각으로 베스파로제님을 돌아봤지만, 베스파로제님의 시선은 내게도, 세르피리아님에게도 향해있지 않았다.


“시간의 악마, 베스파로제. 분부하신 대로 제 에스테를 데려왔습니다.”


아까까지와는 다른 무게실린 베스파로제님의 목소리에 당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와 베스파로제님이 서있는 곳은 아찔한 정도로 높이 솟은 돌기둥 의 위다. 밑으로 보이는 바닥을 가득 채운 붉은 용암에 눈앞이 아찔하다.

베스파로제님의 시선이 향해있는 앞에는 또 다른 돌기둥과 나와 베스파로제님이 서있는 돌기둥을 이어주는 얇고 긴 돌다리가 있다.

그리고 그 다리의 끝에는

인간의 두개골을 쌓아 만든 듯한 기괴한 의자와

그 위에 앉아있는.......


“수고했다. 베스파로제.”


내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베스파로제님의 말에 대답했다는 건 저 의자 위의 악마가 마신님이라는 건 틀림없는 것 같다만....... 너무 달랐다.

책에서 자주 묘사되는 마신의 모습은 좀 더 뭐랄까 커다란 덩치에 몸 여기저기에 뿔 같은 게 솟아있는 괴물의 모습이건만.

후줄근한 옷하며 저 모습은....... 마치 성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아저씨의 모습 아닌가.


“이렇게 지옥에서 다시 만나니 반갑지 않은가? 인간.”


갑자기 나를 향해 튄 대화의 불씨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당황해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그 말. ‘다시 만나니’라니


“흠, 한 번에 알아봐 줄 거라 예측했건만 또 빗나갔군.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 건가? 하긴, 이래선 대화도 되지 않을 테니 내가 거기로 가도록 하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시야에서 사라진 마신님은. 눈 한번 감았다 떴을 뿐인데 어느새 내 앞에 와 서 있었다.


“어때, 이제 알아보겠나? 윈체르트 군?”


잠깐. 거, 거짓말.......




“.......책장수 아저씨?”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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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6화. 파괴된 우리 - 6 18.05.16 527 0 18쪽
74 16화. 파괴된 우리 - 5 18.05.16 602 0 14쪽
73 16화. 파괴된 우리 - 4 18.05.15 342 0 15쪽
72 16화. 파괴된 우리 - 3 18.05.15 328 0 14쪽
71 16화. 파괴된 우리 - 2 18.05.14 473 0 12쪽
70 16화. 파괴된 우리 - 1 18.05.14 337 0 8쪽
69 15화. 시작의 언덕 - 7, After 18.05.13 340 0 28쪽
68 15화. 시작의 언덕 - 6 18.05.12 325 0 10쪽
67 15화. 시작의 언덕 - 5 18.05.12 668 0 10쪽
66 15화. 시작의 언덕 - 4 18.05.11 398 0 15쪽
65 15화. 시작의 언덕 - 3 18.05.11 339 0 12쪽
64 15화. 시작의 언덕 - 2 18.05.10 343 0 8쪽
63 15화. 시작의 언덕 - 1 18.05.10 344 0 10쪽
62 14화. 반각성 - 4, After 18.05.09 387 0 20쪽
61 14화. 반각성 - 3 18.05.09 362 0 15쪽
60 14화. 반각성 - 2 18.05.08 358 0 11쪽
59 14화. 반각성 - 1 18.05.08 372 0 8쪽
58 용어 및 등장인물 설정 18.05.07 343 0 23쪽
57 외전. 켈론스의 기록 18.05.07 374 0 12쪽
56 13화. 영웅의 피 - 3, After 18.05.06 346 0 13쪽
55 13화. 영웅의 피 - 2 18.05.06 361 0 15쪽
» 13화. 영웅의 피 - 1 18.05.05 363 0 11쪽
53 12화. 인간계 체험 下 - 5, After 18.05.05 358 0 11쪽
52 12화. 인간계 체험 下 - 4 18.05.04 362 0 9쪽
51 12화. 인간계 체험 下 - 3 18.05.04 352 0 8쪽
50 12화. 인간계 체험 下 - 2 18.05.03 37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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