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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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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3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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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탈출 (4)

DUMMY

149.


[ 행성 패러독스의 지정된 좌표에, 수색용 드론 파견을 완료했습니다. ]


“하아. 제발 ‘완성품’이 살아만 있길... 인류의 진화가 눈앞에 있는데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다니...”


새하얀 실험복장을 입은 채, 두 손을 모으고 부르르 떠는 여운휘. 한편 그런 모습을 지켜보단 AI 베아트리체가, 아무 감정 없는 기계음으로 전했다.


[ 소장님. 왜 가까운 곳에 있는 실험체를 놔두고, 먼 곳에 있는 것을 찾고 계십니까? ]


“베아트리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 지금 쓰러져 있는 권민성 강사를 실험체로 사용한다면, 손쉽게 ‘치유’의 비밀을 밝힐 수 있을 텐데요. ]


베아트리체의 말에 여운휘는 양 미간을 찌푸리더니, 민성과 마윤재가 쓰러져 있는 장소를 가리키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베아트리체. 네놈은 지능 설정이 최하위로 돼 있는 게냐? 이곳은 [푸가토리움]이다. 주제도 모르고 성역에 침범한 구시대 인간들에게, 마나를 운용할 수 있을 만큼의 자아가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느냐.”


푸가토리움(Purgatorium).


연옥(煉獄).


인간이 천국에 가기 전에 죄를 씻는 과정.


일반인들은 그저 중범죄자가 모인 감옥이라 이런 이름을 붙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여운휘가 생각하는 인간의 죄란 살인이나 강도, 강간 같은 행위가 아니라, 바로 ‘육체’ 그 자체였으니까.


‘인간의 모든 욕망과 범죄와 악행은 결국 ‘육체’의 존재에서 근원하지. 인간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인간을 물리적 존재로 한정하는 굴레, 육체부터 벗어던져야 해.’


이곳 [푸가토리움]의 진짜 목적은 바로 인류를 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것.


즉 육체라는 원죄로부터 탈피한 존재, 신인류(神人類)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비록 ‘치유’의 비밀은 알아내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저들의 훌륭한 몸은 좋은 연구 자료가 되겠지. 원죄에 대한 연구 자료 말이야... 홀홀...”


자부심을 넘어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여운휘의 중얼거림. 허나 그런 여운휘에게, 베아트리체는 다시 한 번 무덤덤하게 사실만을 전할 뿐이었다.


[ 소장님. 죄송하지만 마윤재 부장에게는 아직 의식이 있습니다. ]


“... 뭐라고?”


[ 마윤재 부장의 손을 클로즈업해드리겠습니다. 직접 보시죠. ]


지잉-


아주 조금씩이지만, 베아트리체의 말대로 마윤재의 손가락은 계속 꿈틀거리고 있었다.


“... 말도 안 돼. 정신체들과 의식이 뒤섞이게 되면 숨 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 간혹 의식이 뒤섞이는 걸 사전적으로 차단하는 개체들이 있습니다. 많은 마나량, 강한 의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없는 개체들의 경우가 이에 해당됩니다. ]


“헛소리하지 마라! 그건 의식에 간섭하려는 정신체가 한둘일 때 이야기지! 저기 풀린 정신체는 20만이 넘는다!”


[ 헛소리가 아니라, 저는 그저 실험 데이터에 근거한 경향성을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


“...”


분명 아무런 높낮이도 없도록 코딩된 목소리였지만, 여운휘는 베아트리체의 기계음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육체라는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한 열등한 존재가, 불완전하더라도 신에게 한 걸음 다가간 자들보다 강한 의지를 가졌다고?’


왜냐면 그의 눈앞에 펼쳐진 현상은 여운휘의 믿음 전체를 뒤흔드는 현상이었기 때문. 허나 AI인 베아트리체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할 뿐이었다.


[ 그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마윤재 부장이 저 상태라면, 옆의 권민성 강사에게도 의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실험체로 적합합니다. ]


눈을 감고 잠시 고민하다, 무서운 표정으로 눈을 뜨는 여운휘. 그는 이를 빠드득 갈며,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 둘 다, 구속구 채워서 내 앞으로 데려와.”


[ 마윤재 부장을 데려오는 건 위험합니다. 마윤재 부장의 특기인 ‘에테르 창조’는 사지의 구속 여부와 관련없이 소장님의 안위에 해를 끼칠 수 있- ]


“닥치고 내 말대로 해! 손가락만 조금 까딱하고 자기 몸도 못 일으키는 놈이, 어떻게 그런 고급 마나 운용을 하겠어!”


[ ... 알겠습니다. ]


---


“...”


젠장.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눈을 떠 보려 해도 눈이 떠지지 않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행성 얀워의 실질적인 지배자, 나 응우옌 꽁 하이는 고작 연합 안보부 따위에게 잡힐 리가 없... 잠깐. 응우옌 꽁 하이? 내 이름이 원래 이랬었나? 아니. 그 전에... 내가 남자였나...?


위이이이이잉- 철컥!


수갑 차는 소리...? 아. 맞아. 이제야 기억났다.


난 남자가 아니라 여자, 여자 킬러다. 업계에서는 나를 ‘붉은 사마귀’라 불렀었지. 거의 매일같이 뇌가 하반신에 달려 있는 멍청이 부자들을 호텔로 유인해, 수갑을 채워 죽였다.


쳇. 그 날 밤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도중에, 안보부 놈들에게 꼬리를 밟혔지. 실수였다. 아내의 선물을 미리미리 사 뒀더라면 그럴 일도... 아내? 나는 여자인데? 나 설마 레즈비언이었나- 아. 맞아. 그랬었지. 내 애인 메이는... 메이가 누구지? 처음 듣는 이름인데. 아니. 그보다 내 말투가 원래 이랬나?


... 후우.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생각해 보자. 가장 최근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푸가토리움에 끌려왔다. 그 이유는 바로.


죽여서빼앗아서누명을써서진실을폭로해서사람들을이끌어서마윤재와함께여운휘를잡기위해종교를만들어서...


... 머리가 복잡하다.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걸 떠올리려 한 건가. 좀 더 쉬운 것부터... 그래. 이름이 좋겠다. 아마 내 이름은.


손정석이시하라사에키리쉬안하오줄리엣석루이권민성카라예프조제아멜리아루비...


... 큰일났다.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렸다.


---


‘나는 마윤재, 우주연합의 현 안보부 부장이다.’


민성이 여러 [정신체]와 정신이 뒤섞여 자아를 되찾고 있지 못하는 한편, 마윤재는 우주 역사에 남을 천재라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게 ‘빙의’를 견뎌냈다.


‘위험했군. 마인드 컨트롤을 조금만 늦게 시작했다면 망령들에게 몸을 완전히 빼앗길 뻔했어. 이전에 강령술사를 체포했던 경험이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물론 민성 역시 마윤재에게 뒤지지 않는 재능을 가졌지만, 경험이라는 것은 역시 무시 못 할 요소.


‘만일 권민성 교수 없이 나 혼자 [정신체] 전부를 받아내야 했더라면... 정신이 붕괴했을지도.’


우연히도 ‘다른 평행세계’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상상한 마윤재. 이내 그는 정신을 집중해 주먹을 쥐려 했다.


꿈틀-


허나 손가락만 조금 까딱여질 뿐,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현재 마윤재 몸에는 10만이 넘는 [정신체]가 빙의돼 있었기에, 마윤재의 ‘의지’나 ‘감각’은 고작 10만 분의 1로 희석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다면 정말로 여운휘 소장의 실험 대상으로 쓰이게 되겠군. 빨리 몸의 주도권을 되찾아야겠어.’


마나를 끌어올리는 마윤재.


스으으으으-


하지만 원래라면 몸 안에서 물처럼 천천히 순환해야 할 그의 마나는, 지금은 거대한 댐에 막힌 것처럼 흐르지 않았다. 마윤재의 몸에 빙의한 [정신체]들의 방해 때문이었다.


스으으... 스으으...


개미도 모이면 재앙이 되듯, 일 대 일로는 상대도 안 될 [정신체]들이 모여서 마윤재의 마나 운용을 번번이 막아대는 가운데.


[ 소장님. 분부하신 대로 두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


“잘 했다. 베아트리체.”


어느덧 구속당한 그와 민성은, 여운휘가 있는 컨트롤타워까지 도달해 있는 상황. 두 사람의 모습을 보자마자, 여운휘는 마나 컴퓨터에서 일어나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윤재 부장. 기세등등하더니 결국 이렇게 붙잡혀 버렸구먼. 그것도 데려온 젊은 친구까지 같이 말이야. 어떻게 생각하나? 홀홀...”


“...”


대답하는 것은 고사하고, 눈을 뜨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홀홀홀... 말이 없어졌구먼. 아쉽게 됐어. 자네 같은 사람은 어떤 비명을 지르나 궁금했는데 말이지.”


여운휘가 레이저 메스를 꺼냈음에도 발악조차 할 수 없다.


스으으으...


허나 계속해서, 수십만의 영혼이 번번히 막아대고 있는 마나를, 그의 의지를 실천하는 마윤재.


- 허허. 윤재 군. 자네는 자네의 마나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문득 그의 머릿속에, 자기가 유일하게 스승으로 모시는 자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 제 마나... 질서의 마나입니다.

- 허허... 속성 말고 특성 말이네.

- 죄송하지만, 교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 마나는 의지, 의지는 곧 마나. 자네라는 사람은 무슨 의지로 살아가고 있냐는 것일세.


“마윤재 부장. 자네의 몸은 훌륭해. 강하고... 큰 그릇이지. 인류라는 종(種)의 원죄에 가장 근접한 형태야.”


- 그렇게 물으신다면... 제 마나는 정의입니다.

- 정의? 허허. 이번엔 내가 자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군.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나?

- 정의라는 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목숨이 위험해진 상황에서도, 평화로운 일상과 같아야 합니다. 위기에 따라 변하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 때였다.


스으으으.... 퉁!


막혀 있던 그의 마나가, 조금씩 이동하기 시작했다.


- 허허. 그뿐인가?

- 아뇨. 또 있습니다. 정의라는 것은 휘둘리지 않습니다. 다수가 가로막는 길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누군가는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십만이 넘는 [정신체]들이 그의 마나가 순환하는 것을 틀어막으려 했지만, 마윤재의 마나는 멈추지 않았다.


스스스스스...


[ 경고. 실험실 내 마나 밀도 급상승. ]


오히려 그의 몸에 깃든 타인의 의지를 몸 밖으로 밀어내며, 나아가고 있었다.


“... 뭐? 갑자기? 왜?”


[ 원인 분석 중입니다. ]


 베아트리체의 경고에 여운휘의 고개가 잠시 돌아간 바로 그 순간.


스으으으... 우우웅-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은 마윤재가 눈을 떴다. 온통 마나 컴퓨터와 기계장치로 가득한 공간에서, 손발에 구속구가 채워진 채 묶여진 자기 자신의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고.


“...”


똑같이 구속된 채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는 민성이 그 다음이었으며.


[ 분석 결과. 마윤재 부장이 정신체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며 마나가 방출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 말도 안 돼.”


마지막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여운휘와 눈을 마주쳤다.


- 마지막으로, 정의라는 것은 주저하지 않습니다. 행하는 데에 망설임이 있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치지지지직-!


마윤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양 손을 구속하는 플라즈마 수갑을 끊어내고는.


“크윽!”


눈 깜짝할 사이 여운휘의 목을 낚아채 공중으로 들어올렸다.


“소장. 내가 후회할 짓은 하지 말라 하지 않았소.”


“어... 어떻게... 수십만 [정신체]의 간섭 속에서... 자아를... 유지할 수 있는 거지...?”


여운휘의 마지막 질문에, 그가 조용히 대답했다.


“정의란, 원래 그런 것이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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