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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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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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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177. 이 별 (完)

DUMMY

177.


다섯 번째 종소리 이후, ‘겹쳐 있는 세계’는 순식간에 늘어나 수천억 개, 어쩌면 그 이상의 수로 늘어났다.


- 삐이이이이이이이이...


모든 소리들이 전부 뒤섞인 것은 단조로운 소음으로밖에 들리지 않았고, 사람이나 건물도 희석되어 아예 보이지 않았다.


무한히 많은 평행세계들이 겹쳐,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곳.


‘다중 세계’에 돌입하게 된 것이다.


“... 여길 다시 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링링 누나가 나를 ‘저쪽 세계’에서 ‘이쪽 세계’로 보내기 위해, 평행세계 이동기를 사용한 이후로 처음 오는 ‘다중 세계’다.


띠링-!


[ 드림 캐처 ( 분류 : 물건 ) ]

[ 닥터 슈마허가 만들어낸 오르골 형태의 뇌파 조정기, 혹은 그의 아류를 통칭하는 말. 소리에 마나를 담아, 특정한 테마대로 인간의 감정과 무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 ex) 편안함. 우월감. 외로움 등 ]


[ 분석 결과 ]

- 현재 ‘드림 캐처’의 테마는 ‘그리움’입니다.


“...”


한편 다중세계 뒷북을 치는 [빅 데이터].


젠장. 이제야 어떻게 된 건지 알겠다. 아까의 종소리는 티가 나는 의식 영역이 아니라.


“... 무의식의 영역에서 링크를 발생시켰던 거군.”


무의식 영역의 링크는 의식 영역의 링크에 비해 연결 대상들 사이의 공유가 활발하지 않아, 얕고 넓은 연결이 가능하다. 물론 공유가 적다는 건 발생하는 마나량은 적다는 걸 의미하지만.


“... 어차피 부족한 마나량은 사람 수로 커버하면 되니까.”


“정확하네. 훌륭해.”


짝- 짝- 짝-


순간 등 뒤에서 박수 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사람 목소리. 나는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계산상 1억 명 당 약 1년의 시간을 회귀하고, 연합 회원이 총 396억 명이니 우린 396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지. 자네와 내가 말이야.”


그곳에 있는 것은 10년 전의 나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아마 ‘이쪽 세계’의 나...가 아니라 마윤재가 찾던 원로운이라는 남자겠지. 우주의 이치에 어긋나는 시간 역행을 위해선 ‘모순의 마나’가 필요하니까, 몸은... 아마 ‘이쪽 세계’의 나의 것을 빼앗았을 것이고.


꾸욱-


나는 주머니 속 마나 사브르를 쥐었다. 아무리 몸을 뺏긴 게 내가 아닌 다른 세계의 나라지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으니까. 허나 당장은 정보를 얻어내는 게 더 급한 만큼, 일단은 참고 입을 열었다.


“... 우리는 벌서 과거로 이동하고 있는 건가?”


“그래. 지금 우리를 감싸고 있는 수많은 세계들이 보이지 않나? 이것들 전부가 ‘타임 패러독스’ 그 자체네. 자네와 내가 과거로 감에 따라 역사가 바뀔 거고, 그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모든 평행세계들이 비치고 있는 거지.”


“...”


“재미있지 않나? 이 자리에 있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세상들의 운명이, 사실 자네와 나 두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니 말이야. 하하하하!”


어린 나의 모습으로 크게 웃는 원로운. 나는 그런 녀석에게 조용히 물었다.


“... 넌 왜 과거로 돌아가려 하는 거지?”


“이해가 안 되는 질문이로군. 반대로 내가 묻고 싶어. 대체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이유는 무엇이지?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과거에 아무런 실수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지. 실수를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다면, 무조건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


“과거로 간다는 건... 잘못된 선택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위대한 기회야. 선택받은 자만이 가능한 일이지. 기쁘지 않나?”


몸을 부르르 떨며 역설하는 원로운.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 앞으로만 가. 뒤돌아보지 말고.


분명 푸가토리움에선 미래를 향해 걸으라 했던 10년 전의 내가, 이곳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는 걸 예찬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 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미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을 극복했고, 이제는 함께 미래를 걷고 싶은 사람들도 생겼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 400년 전은 너한테나 잘못된 걸 바로잡을 기회지, 나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시간대라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너는 그저 모순의 마나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의 시간 역행에 휘말린 것이니까.”


“...”


“그리고 이리로 오는 게 싫었다면, 애초에 한가을 이사와 몸을 바꿨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원로운. 내 어린 시절 얼굴로 저렇게 말 하니까, 왠지 모르게 한 대 쥐어박고 싶어졌다.


스스스...


한편 ‘다중 세계’에 중첩돼 있던 수많은 평행세계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소리가 겹쳐 ‘삐이-’ 거리던 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주변 풍경도 점점 선명해졌다.


스스스스스스...


수억, 수조 개가 넘던 세계가 빠르게 줄어 이내 백, 스물, 열, 다섯, 셋, 둘, 하나.


그렇게 비로소 하나의 세계만이 남았을 땐, 더 이상 매지시아의 연구소나 무인택시가 다니는 포장도로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문명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장소.


정말 과거로 돌아온 것인지, 원로운은 먼지 가득한 공기를 크게 들이쉬며, 황홀경 넘치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후우... 하아... 드디어 돌아왔군... 나의 고향. 테라포밍조차도 제대로 돼 있지 않던, 내 어린 시절의 에덴으로...”


“...”


“꿈에서조차 그리워했던 광경이건만... 시간이 조금 빠듯하군. 한시라도 빨리 움직여야겠어. 하다못해 398년, 아니 397년 전으로 돌아올 수만 있었어도-”


“잠깐.”


어딘가로 이동하려던 원로운, 녀석은 나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 무슨 일이지, 권민성 교수? 난 바쁘다. 만나야 할 사람도 있고, 준비할 것도 많아. 자네가 굳이 날 따라오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만...”


“헛소리 말고, 내가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나 이야기해. 너와 달리 나는 여기 있을 이유가 없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이라...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아. 불가능하거든.”


“... 뭐?”


“직접 보지 않았나? ‘다중 세계’를 구성하던 수많은 평행세계들을. 너와 내가 하는 행동이 아주 작은 ‘타임 패러독스’라도 일으키면, 그 순간 이 세계는 우리가 원래 살던 세계와 다른 평행세계로 변하게 된다.”


“...”


“그리고 나는 기존의 역사 자체를 바꿀 생각이지. 네가 원래 세계로 돌아갈 방법은 없다.”


- 아니. 방법은 있다.


원로운의 말에 제깍 반박하듯, 주머니 속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미스트]였다.


“... 너도 넘어왔구나. [미스트].”


- 그렇다. 네 마나를 많이 흡수해서인지, 큰 피해 없이 시간 역행에 동승할 수 있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계산 결과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지 않고 원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이론상 존재한다는 것이다.


“... 이론상?”


- 그렇다. 물론 이론상인 만큼 확률은 낮다. 올림해서 0.031106%. 그리고 그 전제로, 저 원로운이라는 남자가 이 세계의 운명을 건드리기 전에 죽여야만 한다.


“...”


띠링-!


[ ??? ]

[ 마나량 : 27331 ]


마나량 자체는 나보다 낮다.


문제는.


“하하하. 날 죽인다라. 그게 가능할까? 지금 권민성 교수는 제 몸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말이지.”


내 몸상태다.


이틀 전에 [위버멘쉬], 오늘 [올 포 원], [아수라]. 비록 한겨울과 협동전이었지만 한가을까지.


4연전을 겪어오며 내 몸은 제 컨디션이 아닌 수준을 넘어, 그냥 맛탱이가 가 있는 상태다. 평소 힘의 10%는 낼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한다.


하지만.


“... 해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스으으으으...


나는 주머니 속에서 마나 사브르를 꺼낸다. 확률이고 뭐고, 그냥 해야 하는 일이니까.


“응? 하하하하! 해 보지도 않고 포기할 순 없다라. 권민성 교수 의외로 아직 아이 같은 면모가 남아 있었군. 재미있어.”


“...”


“그래. 나도 굳이 자넬 죽일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나온다면 놔둘 이유는 없지. 내게 악감정을 품은 변수를 방치하는 것도 바보짓이니까.”


파지지지지지직-!


마나를 끌어올리는 원로운. 애석하게도 원로운의 능력은 박준 사부와 같은 능력, 나와는 최악의 상성인 공간술사다.


나는 마나 사브르를 꽉 쥐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 [미스트].”


- 뭐지?

“... 고맙다. 도와줘서.”


- ... 고마울 것까지야. 친구끼리인데.


내가 로봇이랑. 그것도 [F.E.E.]였던 놈과 이런 얘기를 하게 될 줄이야. 그래. 내 인생은 참 신기했다. 모든 게 최선은 아니었지만, 항상 차선 정도는 됐다. 그러니까 더더욱, 나는 ‘나의 세계’로 돌아가야만 했다.


“... 친구끼리라니. 로봇이면서 낯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하네.”


- 인간이 솔직하지 못한 생물인 것뿐이다. 너는 특히 더 그런 편이었지.


[미스트]의 말에, 이제 와서 조금 후회가 됐다. 나는 마나 사브르를 꽉 쥐며 중얼거렸다.


“... 그도 그렇네. 평소에 조금만 더 솔직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아...”


이렇게... 너무 늦어버리기 전에.


------


“응? 얘들아. 저거 봐. 눈이다.”


“저... 정말요...”


“그러네... 겨울아. 저것 좀 봐. 눈 와.”


“...”


어느덧 11월, 눈앞에서 권민성을 보낸 지 벌써 석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의외로... 그동안 별 일 없었다.


기껏해야 그레이트 오프닝 축제와 휴교했던 이니시움 아카데미가 방학 동안 대대적으로 교수진을 개편하고 다시 개교한 것 정도가 전부.


그 이후로는 쭉 별다른 사건도 굴곡도 없는,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 겨울아?”


“...”


당연한 이야기지만, 권민성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오기는커녕, 원로운인지 이원인지 알 거 없는 개새끼의 시간 역행에 휩쓸린 이후, 녀석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어디로 갔는지. 어느 시점으로 갔는지. 하물며 우리와 같은 세계선에 있기는 한 건지까지... 아무것도.


- 허허. 미안하지만. 그 친구가 어떻게 됐는지는 나로서도 알 수 없네. 그저 기도할 뿐이지.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권민성이 라인하르트 교수님 왜 싫어했는지 알 것 같다.


- ... 미안하네. 제군. 내 불찰이네.


... 마윤재 이 인간도, 일이 다 터지고 뒤늦게 사과해서 뭐해...


“겨울아!”


“... 응? 응! 왜왜왜?”


딴생각을 하다가 아라가 내는 큰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맞다. 오늘 오랜만에 예원이 언니가 이니시움에 들러서, ‘책이 있는 정원’에서 같이 차 마시러 모였지.


“눈 온다고... 아니. 그보다 겨울아. 괜찮아?”


“어. 응. 늘 괜찮지. 응.”


“...”


“그나저나 시간이... 아! 나 영화 시간 다 됐다. 미안. 나 가봐야겠어. 죄송해요. 언니. 저 좀 가 볼게요.”


“...”


“... 그래, 겨울아... 힘내고.”


“아하하. 물론이죠. 힘은 늘 내죠. 언니.”


“... 그래.”


권민성이 떠나고 난 이후, 조금 늘었다.


가짜 웃음을 짓는 날이.


---


[ 현재상영작 ]

- 너와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 뭐야 내 her 돌려줘요


“... 유치한 제목이네. 내일은 저거 봐야지.”


녀석이 떠난 이후, 나의 하루는 거의 비슷하게 굴러간다.


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종례를 받고 나면 외출해서 영화를 꼭 한 편 본다.


- 허허. 기사나 논문 같은 학술적인 분야에서 민성 군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네. 혹시 모르지. 책이나 영화 같은 컨텐츠에선 그 아이의 자취가 남아 있을지도.


순간 라인하르트 교수님이 했었던 이야기가 떠올랐지만,


“... 그냥 기분 전환이야. 기분 전환. 내가 무슨 하루 종일 권민성 생각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예매확인 해드리겠습니다. 너와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 I-3,4. 커플석인데 같이 오신 분은-”


“혼자에요.”


“... 아~ 네. 확인 됐습니다.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


털썩-


“그냥 넓게 앉는 게 좋은 건데...”


영화관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좌석 왼쪽에 딱 달라붙어, 조금 불편하지만 손바닥이 위로 가도록 오른손을 옆에다 놓고 영화를 본다.


- 나는 살고 싶어. 너와 함께!


영화는 평범한 양산형이었다.


처음에는 성격 나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으르렁대다가, 점차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고난을 겪으며 서로 멀리 떨어졌다가, 재회하면서 키스하고 끝.


정말 하나도 생각 안 하고 쓴 스토리라 실소가 나오지만.


“... 훌쩍.”


이상하게 요즘은 이런 게 재밌다. 왠지 모르게.


[ The End ]


“영화 되게 뻔하다. 그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작은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허나 당연하게도, 돌아오는 맞장구는 없다.


“...”


그러면 나는 왠지 쓸쓸해져, 스스로 손등에다가 동그라미를 천천히 두 번 그린다.


---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서점에 들러서 혹시나 새로운 책이 나왔나 확인하고 나면 사실상 하루의 마지막 일과나 다름없는 시간이 찾아온다.


[ 405호 ]


“...”


바로 권민성이 살던 오피스텔 문 찾아가기.


“후우- 하아...”


나는 일단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도록, 기다린 시간을 심장마비 한 번으로 날려버리지 않도록 크게 한 번 심호흡을 하고.


쿵쿵쿵-!


“야! 권민성! 나 왔어!”


굳이 인터폰이 있는데도, 요란하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러면 이제 조용히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3.


2.


1.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한 번.


3.


2.


1.


“...”


3.


2.


1.


조용하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상한 결과에, 나는 애써 웃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오늘도 똑같네. 아하하...”


당연한 결과다. 명훈이는 타행성 아카데미 연구실 면접 합격한 이후로 이니시움을 떠났고, 권민성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으니까.


예상과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결과. 나는 이니시움 아카데미 쪽으로 발걸음을 향하려다가.


“... 눈이네...”


포근하게 세상을 덮는 첫눈을 보고 그만, 추억에 젖어 마나블렛 케이스 뒷면에서 코팅된 한 장의 사진을 꺼낸다.


이전에 오락실에서 찍었던 스티커 사진. 딱 붙으라고 팔짱 끼니까, 또 그새를 못 참고 고개 돌리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하하... 진짜 바보 같아... 왜 이리 못생기게 나왔어...”


뚝. 뚝.


허나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그리움이 흘러 넘쳐, 사진을 적셨다.


“돌아온다며...”


큰일이었다. 감정이 절제가 안 됐다.


잘 참았는데. 한 번 울면 영원히 울 것 같아서 안 울려 했는데. 볼을 꼬집어 봐도 눈에서 흐르는 추억이 멈추질 않는다.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범란한다.


이렇게 될 거면 진짜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질 말걸. 아냐. 같이 있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어. 그 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잠깐.


“시간을... 되돌린다고...?”

“... 되돌리긴 뭘 되돌려.”


“... 어?”


방 안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


띠리릿-! 덜컥-!


이내 방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 너 왜 우냐.”


한 손에는 레몬 아이스티 캔을 들고, 입에는 과자 부스러기가 묻은 권민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있을 수 없는 일에, 몸이 덜덜 떨린다.


“너... 너 뭐야... 크... 클론이야?”


“... 누가 클론이라는 거야. 내가 얼마나 개고생해서 돌아왔는데...”


“... 아니... 너는 400년 전으로 갔었잖아... 어떻게...”


- 시간 지연을 이용했지.


나의 질문에 대답한 건, 권민성이 데리고 다니는 깡통로봇, [미스트]였다.


- 우주 개척 시대 초기의 비행선들은 광속 비행을 지원하는 모델이 다수 존재했다. 연합이 우주를 통일한 이후 ‘우주표준시’를 제정하면서 해당 모델들을 전부 폐기했지만, 400년 전만 해도 패러독스의 쓰레기장만 가도 광속 비행 우주선은 널려 있었다. 덕분에 ‘타임 패러독스’를 일으키지 않고 현대로 거슬러올 수 있었지.


“... 아니. 잠깐... 그러면... 너 진짜... 권민성이야...?”


“... 그렇다니까.”


“아... 아하하... 아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바보 같은 웃음이 새어나오는 가운데, 나는 녀석에게 천천히 다가가, 녀석의 볼을 쓰다듬었다. 안 그래도 말랐던 권민성은, 전보다 더 살이 빠져 있었다.


“야... 왜 이리 야위었어...”


“... 이 멍청이가 계산을 틀려서 비행이 조금 길어졌는데, 식량이 떨어져서 쭉 굶었어.”


- 인류 데이터베이스의 오류 때문이다. 행성 질량을 잘못 적어놓다니.


“... 아하하하... 얼마나...?”


“3달 정도 비행했는데... 두 달 정도 굶었지.”


- 정확하게 56일 동안 식량난을 겪었지.


... 그랬구나. 나도 세 달 기다렸는데.


너가 없다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 세 달이었는데, 너는 나보다 더 힘들었겠구나.


“왔으면 연락부터 하지... 연락은 왜 안했어...”


“... 아니. 그게...”


갑자기 우물쭈물거리는 권민성. 뭐야. 설마 400년 전에서 다른 여자 만든 건-


“... 니가 전에 그랬잖아... 나 죽으면 빨리 잊고 다른 남자 만날 거라고...”


“...”


“그래서 혹시... 니가 나 죽은 줄 알고 다른 사람 만나고 있으면, 연락하면 안 되니까- 웁.”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권민성의 입을, 내 입술로 틀어막았다.


다시 만나서 처음 하는 입맞춤은 레몬 향이 났다.


신기하게도 녀석의 입술의 온기가 내게 전해짐에 따라, 여태껏 잃어버렸던 생명력이 솟구치는 듯했다.


나의 불꽃, 나의 전류, 나의 빛.


세상이 빼앗아갔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을 하나둘 돌려받는 느낌이었다.


“하아...”


“...”


전혀 두근거리지 않는 입맞춤이었다. 오히려 입술끼리 맞닿고 있는 내내 편안했다가, 떨어지는 순간 불안해졌다. 지금 떨어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나 나는 애써 참으며, 해야 할 말을 전했다.


“... 바보야. 만나길 내가 누굴 만나. 나 어디 안 간다니까...”


“...”


“있잖아. 나 쭉 너만 기다렸어. 너가 무조건 돌아올 거라 생각하며, 하루 종일 너만 생각하면서... 계속 기다렸다구- 웁.”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녀석이 우악스럽게 입을 맞춰 왔다.


웬일로 용기 내는 녀석의 행동에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스륵-


나는 천천히 녀석의 목에다가 팔을 감았다.


녀석의 존재가, 나를 채워주고 있었다.


“...”


“...”


두 번이나 입을 맞추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녀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떨렸다. 벅찼다.


뭐라 하고 싶은 말은 참 많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그 때.


스윽-


권민성이 날 세게 끌어안으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제... 계속 니 곁에 있을게. 쭉.”


“... 응...”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이 순간이 영원하길.


시간과 공간과 세계의 벽을 넘어, 우린 지금 이 별에 있다.


(完)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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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 174. 이별 (9) +2 22.11.07 385 1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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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171. 이별 (6) +2 22.10.31 406 16 12쪽
175 170. 이별 (5) +3 22.10.28 412 14 10쪽
174 169. 이별 (4) +2 22.10.26 408 15 10쪽
173 168. 이별 (3) +3 22.10.24 417 15 10쪽
172 167. 이별 (2) +2 22.10.18 428 18 12쪽
171 166. 이별 (1) +3 22.10.16 442 19 10쪽
170 165. 멸종 (14) +6 22.10.12 435 19 10쪽
169 164. 멸종 (13) +4 22.10.10 419 19 11쪽
168 163. 멸종 (12) +2 22.10.09 415 17 9쪽
167 162. 멸종 (11) +3 22.10.06 421 19 10쪽
166 161. 멸종 (10) +3 22.10.04 432 17 9쪽
165 160. 멸종 (9) +1 22.10.02 447 16 12쪽
164 159. 멸종 (8) +3 22.09.28 481 19 12쪽
163 158. 멸종 (7) +3 22.09.24 462 1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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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156. 멸종 (5) +3 22.09.21 450 17 13쪽
160 155. 멸종 (4) +4 22.09.15 486 20 12쪽
159 154. 멸종 (3) +6 22.09.14 471 19 9쪽
158 153. 멸종 (2) +3 22.09.12 473 1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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