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이별 (8)
173.
후두두두둑...
콘크리트 가루 부스러기가 우수수 떨어지는 천장. [아수라]의 마나 브레스는 지하 5층에서 지상까지 연결하는 최단거리 통로를 하나 만들어냈다.
“... 내 몸 필요한 거 맞아?”
물론 난 아슬아슬하게 피해냈지만, 만일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치유]를 쓰고 자시고 할 거 없이 그냥 그대로 즉사했을 일격. 물론 그런 일격에, 아무런 반동이 없을 리가 없었다.
[ 대상에 대한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
[ 아수라 ]
[ 마나량 : 4276 ]
[ 마나량 : -15 ]
[빅 데이터]가 띄운 창대로, [아수라]의 마나는 음과 양, 두 쪽 다 확연하게 줄어 있었다.
- 끼에에에에!
“... 시끄럽네. 진짜.”
마나량 보존법칙에 의해 음의 마나와 양의 마나의 합은 항상 일정하다. 즉, [아수라]가 충분한 양의 ‘음의 마나’를 짜낼 때까지는 바로, 놈을 일방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
물론.
“어딜 한눈을 팔아? 돌았냐?”
카앙-!
[올 포 원], 이 자식만 없다면 말이다.
“그래. 나는 그때 너한테 굴욕당했을 때에 비해 엄청 강해졌거든? 너는 얼마나 세졌는지 한 번 볼까?”
카앙-! 카앙-!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속도로 몰아치는 [올 포 원]. 젠장. 솔직히 이 녀석의 존재는 예상했는데, [아수라]까지 있을 줄은 몰랐다. 왜냐면 한봄과 한여름이 죽는 건 저쪽 세계에서 기업대전 이후-
“어딜 딴 생각을 해?”
스극-!
젠장. 잡생각 하자마자, 사마귀 같은 팔에 볼을 베인다. 그래. 잡생각 할 때가 아니지.
지금이 2대 1, 아니. 어쩌면 어딘가에 숨어 나를 노리고 있을 한가을까지 상정하면 사실상 3대 1의 전투라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싸움에 집중하자.
모든 뇌세포를 총동원해, 지금 이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찾자.
“... 이 새끼는 싸우다 말고 명상을 하고 있- 어? 도망쳐?”
타다다닥-!
사실 확실한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허나 해야 할 것은 명확했다.
바로 [아수라]가 천장에다 시원하게 뚫어 놓은 구멍을 통해, 계속 위로 올라가는 것. 일단 뭘 해야 할 지 모른다면, 전투구도를 유리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박준 사부가 알려준 수많은 싸움법 중 하나가 바로.
- 일단 불리한 전장에선 싸우지 마라.
목숨을 걸고 싸울 땐 더더욱 그래야 한다.
타다다다닥-!
“야! 거기 안 서?”
예상대로 따라오는 것은 셋 중 가장 기동성이 좋은 [올 포 원]뿐이다.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른 한가을은 일단 잠시 제쳐 두고, 기본적으로 [아수라]가 힘을 되찾기 전까진 최대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1대 1이 되고, 무엇보다.
“아니. 이건 또 어디로 숨었-”
푸욱-! 뚝... 뚜둑...
“... 비... 비겁한 새끼...”
“... 전투에 비겁한 게 어딨어.”
[올 포 원]은 아직도 미숙하다. 고작 ‘유인 후 사각에서 찌르기’라는 기본적인 전술에 당하는 걸 보면.
전투 경험이 늘어났다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만만한 놈들을 사냥한 경험들일 뿐이니까. ‘일방적인 사냥’과 ‘생사를 건 싸움’은 아예 다른 것이다.
“내... 내가 고작 이 정도로 포기...”
털썩-
마나 사브르에 배를 찔려 피를 줄줄 흘리던 [올 포 원]이 축 늘어진다.
물론 이 정도로 끝날 녀석이 아니다. 지금 쓰러진 건 그저, 4만개의 뇌가 만들어낸 [링크]가 조종하는 일종의 꼭두각시일 뿐이니까. 놈의 입장에선 그저 새로운 아바타로 몸을 바꿔 다시 등장하면 그만이다.
쿵-! 쿵-! 쿵-! 쿵-!
실제로 몇 초 지나지 않아 연구소가 다시 울려오고.
“내가 고작 그 정도로 포기할 것 같냐? 너 죽이려고 몇 달을 벼르고 있었는데!”
[올 포 원]은 별 일 없다는 듯, 아까와 비슷하게 생긴 소년 형태의 아바타로 돌아온다.
“딱 대라. 오늘은 진짜 백 번 죽는 한이 있더라도, 깰 때 까지 할 거니까!”
“...”
나의 현실이 녀석에게는 오락이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녀석은 소리치며 뒤 없이 달려든다.
카앙-! 카앙-!
심지어 [올 포 원]은 방금 전의 죽음을 통해, 또 한 번 성장했다.
“뼈를 주고!”
푸욱-!
녀석은 내게 대놓고 목이 꿰뚫리는 대신.
“살을 깎는다...”
피슈욱-
낫 같은 팔을 이용해, 가슴팍에 핏빛 자취를 남긴다. 말 그대로 뼈를 주고 살을 깎는 공격. 물론 [치유]를 쓰면 이 정도는 다친 것도 아니지만, 중요한 건 이제는 이 녀석이 자기의 목숨이 무한하다는 점을 이용해 싸워오고 있는 것이다.
쿵-! 쿵-! 쿵-!
“100번, 안 되면 1000번 한다!”
조금의 쉴 틈도 주지 않고, 다시금 [올 포 원]이 새로운 아바타로 내게 달려오고.
쿠웅-!
- 끼에에에엑!
[ 아수라 ]
[ 마나량 : 12638 ]
[ 마나량 : -8377 ]
벌써 마나량을 10000단위로 회복한 [아수라] 또한 방아깨비처럼 생긴 몸으로 연구소 벽과 천장을 부수며 나를 찾고 있으며.
- 권민성 교수님. 언제든 생각이 바뀌시면 이야기하시죠. 제 귀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어디 있는 건지도 모를 한가을의 목소리가 연구소 전체에 방송으로 울려 퍼지는 상황. 계속해서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떠올려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이다.
하지만...
- 잘 다녀와. 쓸데없이 다치지 말고. 알겠지?
“... 미안. 약속 지키는 건 좀 힘들겠다...”
“이게 자꾸 혼자 뭐라 씨부렁대는 거야?”
스극-! 푸욱- 털썩.
이번에는 내 어깻죽지를 한 번 긁고 쓰러지는 [올 포 원]의 아바타. 독이 묻어 있던 발톱이었는지 심하게 부풀어 오르지만, 그래도 [치유]와 [정화]를 쓰면 큰 상처는 아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올 포 원]의 본체, 즉 40000개의 뇌가 배양돼 있는 공간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
쿵-! 쿵-! 쿵-!
다행히도 아바타가 다가오는 장소와 방향은 항상 일정하다. 아바타 저장소가 본체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계속해서 [올 포 원]을 쓰러뜨리며 전진하면 놈의 본체에 다다를 수 있다는 것.
“좋아. 효과가 있어. 다시 한 번!”
“...”
녀석이 뼈를 주고 살을 깎는 전략을 쓰고 있다면, 나는 반대로 살을 주고 뇌를 부수러 전진해야 한다.
- 끼에에에에엑!
... 뒤에 이것을 달고 말이다.
---
한편 매지시아 생체마법공학연구소의 통제실.
불도 켜지지 않은 어두운 공간에서, 홀로그램을 통해 민성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새로운 몸’을 가진 원로운과 한가을이었다.
- 진짜! 이젠 좀 죽어! 죽으라고!
- 키에에에엑!
스극-! 푸슉- 털썩.
뇌를 취하기 위해 살을 너무 많이 준 탓인지, 아니면 [올 포 원]의 본체와 가까워질수록 아바타와 마주치는 주기가 점점 짧아져서인지 민성의 몸에선 더 이상 멀쩡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상의는 거의 다 찢어졌고, 몸은 피투성이. 독을 채 해독하지 못했는지 왼손 소지는 썩은 양갱처럼 새까매져 있었으니까.
게다가 점점 성장하는 [올 포 원]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운데, 뒤에서 견제하는 [아수라]까지. 이미 민성의 등은 화상투성이었다.
쿵-!
- ... 드디어 찾았다.
허나 모든 역경을 뚫고 기어코 연구소 깊은 곳에 숨겨진 배양실, 즉 [올 포 원]의 본체를 찾아내는 민성. 그 모습에, 새로운 몸을 가진 원로운이 혀를 내둘렀다.
“저 권민성이라는 친구. 전투능력과 의지만큼은 정말 대단하군. 내가 살던 시기에도 저 정도의 강자는 흔치 않았는데 말이지.”
“그래 봐야 야망이 없어. 아무리 유능해 봐야 야망 없는 인간은 그저 잘 만들어진 로봇에 불과하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 후후후.”
‘새로운 몸’에 맞지 않게 올드한 웃음을 비치는 원로운. 그가 다시 한가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나저나 저 친구 몸을 빼앗아서 나와 과거로 가겠다고 말은 했는데... 생체병기 둘 가지고 힘을 좀 빼놓는다 해서 한가을 이사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 것 같은데? 이건 내가 너무 무시하는 건가?”
“... 단지 치고받고 싸우는 것에 능한 것이 강함의 척도라면 그럴 지도 모르지.”
“자신만만한 걸 보니 믿는 구석이 있나 보군?”
“저 녀석은 결의가 모자라. 자신을 구속하는 모든 것들을 단호하게 잘라낼 수 있는, 오로지 자신만을 믿는 그런 결의가.”
“... 그건 무슨 소리지?”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감정이라는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에 목맨다는 것이지.”
“...”
“나에게는 유의미한 카드가 한 장 있다. 저 어린애가 절대로,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하게 할 ‘인질’. 지금의 소모전은 그저 녀석의 체력과 인지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에 불과해.”
원로운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한가을을 잠시 쳐다보다가.
“글쎄... 계획대로 잘 됐으면 좋겠군.”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 작가의말
빨리빨리 쓰겠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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