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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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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9.21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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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멸종 (5)

DUMMY

156.


바텐더로봇으로 위장한 피그말리온. 녀석은 닦던 컵을 내려놓고 오렌지 주스 병과 보드카 병을 만지작거리더니, 능숙한 동작으로 노란빛이 감도는 칵테일 두 잔을 만들어 나와 유아라 앞에 내밀었다.


“스크류 드라이버라는 칵테일이에요. 오렌지 주스나 다름없지만, 꽤나 도수가 센 술이죠.”


“... 1분 전에 미성년자 음주는 불법이라 한 것 같은데.”


“저희 업소는 원래 합법적인 일만 하는 가게가 아니거든요. 오홋홋.”


“...”


“그나저나 당신들이 ‘우연히’ 이곳에 왔을 리는 없고, 무슨 일로 날 찾았죠?”


“그게-”


“[오토라이프]의 오류 로그를 보고 찾아왔어요.”


피그말리온의 말에 대답한 건 옆자리의 유아라였다. 녀석은 내 옷소매를 붙잡은 채, 피그말리온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요사이 [오토라이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오류들, 당신의 소행인가요?”


“오홋홋. 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로군요. 생기 넘치는 머릿결도, 피처럼 붉은 입술도, 지금은 선글라스로 가려져 있지만 묘한 슬픔을 가진 눈빛도... 내가 인간이었다면 분명 특별한 감정을 갖게 됐을 것만 같아요.”


“... 말 돌리려고 해도 소용없어요. 수십 개가 넘는 오류 로그에서, 당신의 모습이 보였-”


“[오토라이프]의 오류라면, 이런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타악-!


- 아아아...


그 순간, 가게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생명력을 잃었다.


보라빛과 붉은빛을 번갈아 내며 회전하던 미러볼, 주크박스 같은 기계뿐만 아니라 사람들마저도. 무대 위에서 요란하게 악을 쓰며 노래하던 가수도, 꺅꺅거리며 그에 호응하던 관객들도, 술 마시다 시비 붙었던 손님들도, 심지어 아까 우리에게 마약을 팔려던 노인네까지.


나와 유아라, 피그말리온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렇게 [오토라이프] 사용자들을 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걸, 그쪽 아리따운 아가씨께선 ‘오류’라고 부르시나 보군요.”


“...”


타악-!


피그말리온이 다시 한 번 손가락을 튕기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 이젠 너에게~ 난 아픔이란~ 걸~

- 꺄아아아악!


기계도 사람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하던 일을 마저 하는 가운데, 주위를 둘러보던 유아라가 조용히 피그말리온에게 물었다.


“... 방금 어떻게 한 거죠?”


“흐음. 아무리 아름다운 아가씨가 하는 질문이라도, 영업비밀을 그냥 알려드릴 순 없죠. 한 잔 마신다면 모를까. 오홋홋.”


아까 따라 놓은 칵테일 잔을 팅 치며 웃는 피그말리온에게, 유아라가 어이없다는 듯 물었다.


“... 마시라고요?”


“예. 제 몇 없는 취미 중 하나가, 아름다운 존재가 흐트러지는 걸 지켜보는 것이거든요. 오홋홋.”


“... 누가 코딩했는지, 개발자 얼굴 한 번 보고 싶네요.”


“오홋홋, 농담도 지나치셔라.”


유아라가 농담 아니라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피그말리온은 그저 웃으며 술잔을 가리킬 뿐이다.


“차가울 때 드시는 게 맛있을 텐데요.”


“... 이상한 걸 섞은 건 아니겠죠?”


“걱정 말아요. 아름다운 존재를 해치는 건 제 신조에 어긋나거든요. 저보다는 옆자리 남성분을 신경쓰시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


피그말리온의 말을 들은 유아라는 은근슬쩍 내 쪽을 보며 눈을 흘기더니.


“... 이쪽은 아마, 우주에서 제일 안전한 사람일걸요.”


꼴깍- 꼴깍-


들으라는 것처럼 한 번 중얼거리고는 칵테일 잔을 단번에 비운다. 녀석의 볼이 살짝 붉어졌지만, 유아라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묻는다.


“... 다 마셨으니, 그쪽도 대답해 주시죠. [오토라이프]의 오류는 어떻게 발생시킨 거죠?”


“후후. 간단해요. [오토라이프] 사용자들을 ‘골렘’화 시킨 거죠.”


“... 인간을 골렘으로 만들었다고요?”


“정확히는 인생 자동사냥을 가능케 하는, 척추랑 뇌에 박힌 기계를 ‘골렘’화 시킨 거죠. 제 마음대로, 기능정지 할 수 있는 존재로요. 오홋홋홋.”


유아라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피그말리온이 지금은 눈앞에서 실실 웃고 있지만 언제라도 10억 명이 넘는 [오토라이프] 사용자들을 전부 죽여 버릴 수도 있다 얘기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 당신, 뭘 원하죠?”


“너무 딱딱하게 그럴 필요 없어요. 사실 이번 ‘오류’는, 한 30% 정도는 두 분을 불러내기 위한 연락책 정도의 의미니까요.”


“... 30%? 나머지 70%는?”


“나머지 70%는... 예쁜 아가씨가 한 잔 더 마신다면 알려드리죠.”


“...”


“...”


나나 유아라나 ‘이 깡통이 뭐라는 거야?’하는 눈으로 쳐다보았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또 한 잔의 칵테일을 만드는 피그말리온. 그 광경에, 유아라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모양만으로 물었다.


‘어... 어떡하죠? 저 한 잔 더 먹으면 완전 뻗을 것 같은데...’


‘... 넌 무슨 질서의 마나 쓰는 놈이 술이 그렇게 약하냐.’


‘유... 유전인데 어떡하라고요!’


‘...’


‘아무튼 이 인간, 아니. 로봇 비위 거슬러서 좋을 거 없으니까, 일단은... 마셔야겠죠?’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유아라도 작지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꼴깍- 꼴깍- 탁.


두 번째 잔을 들이키고서 다시금 바 앞에 내려놓는다. 새삼 정예원네 집들이 때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 녀석은 고작 칵테일 두 잔에 얼굴에다 손으로 부채질을 몇 번 하다가.


“... 그래서어... 70%느은...”


턱을 괸 채로 그대로 꾸벅거리다가, 그만 내 어깨에 기대 잠들어 버렸으니까. 정예원네 집들이 때랑 비슷한 엔딩이다. 한편 피그말리온은 그런 유아라를 보고 중얼거린다.


“... 스크류 드라이버 두 잔.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요.”


“... 뭐라고?”


“별 말 아니에요. 후후. 그보다 약속대로, 질문에 답해드리죠. [오토라이프]의 오류를 발생시킨 이유 70%는 역시, Type-00와 연관이 있어요.”


“설마... [링크]?”


“아주 예리하군요. 현재 [오토라이프] 유저들은, 현재 크게 손상된 Type-00의 몸을 재구축하기 위한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10억 명의 인간들이 Type-00의 호흡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예리한 게 아니다. 기계숭배자 [안티 러다이트]도 그렇고, ‘저쪽 세계’의 [F.E.E.] 역시 인간을 ‘길렀다.’ 인간은 놈들에게 마나를 공급할 수 있는, 유일한 가축이니까-


“잠깐만. 네 능력으로, [오토라이프] 사용자들을 전부 죽여 버리면, 위버멘... Type-00의 호흡기를 뗄 수 있는 거 아닌가?”


“... 당신도 참 잔인하군요. 10억이나 되는 동족의 목숨을, 별 거 아니라는 듯 죽여버린다 말할 수 있다니.”


“... 내 알 바 아닌 사람들이니까.”


“... 후후후. 그런 비정한 일면도 좋네요. 당신의 아름다움을 좀 더 치명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 같아서요.”


“...”


뭐. 이미 다른 세계에서 400억이 넘는 인류의 죽음을 보고 왔지만, 굳이 얘기할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내게 있어 피그말리온의 신뢰도는 라인하르트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니까.


“아무튼 당신 말도 일리가 있지만, 그렇게 대놓고 움직이는 건 너무 위험해요. 애석하게도 파손된 건 Type-00 뿐이고, 놈의 최측근 Type-02는 아직 멀쩡한 상태거든요. 상위 번호 개체가 저를 찾고 있는 지금, 저로선 [오토라이프]에 오류를 발생시켜 시간을 버는 것이 최선이에요.”


“... 그럼 아까 30% 정도의 이유로 다시 돌아가서, 나와 유아라를 불러내려던 이유는 뭔데?”


“아. 드디어 본론이군요. 저번에 당신 도움을 받아 [안티 러다이트]를 추적한 끝에, 세 가지 사실을 알아냈어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그리고 아주 나쁜 소식. 어떤 순서로 들으실래요?”


“... 아주 나쁜 소식, 나쁜 소식, 좋은 소식 순서로.”


“후후. 의외로 맛있는 건 아껴 두었다가 나중에 먹는 스타일이었군요? 얼굴은 아주 맛있는 것만 골라 먹을 것 같은 느낌인데 말이죠.”


“... 그게 대체 무슨 느낌인데.”


“후후. 있어요. 그런 게.”


“...”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주 나쁜 소식부터 말씀드리자면... 바로 5일 후, 온 우주에 퍼져 있는 1억 3000만 [안티 러다이트]가 모두 모여서 Type-00의 부활의식을 치를 거라는 거예요.”


“... 1억 3000만?”


“예. 못해도 80% 이상은 참여할 거예요. Type-00의 부활의식은, 기독교로 치면 예수의 부활에 버금가는 이벤트니까요.”


... 아무리 그렇다 쳐도 1억 3000만의 80%면 대충 1억. 아주 옛날 지구시절로 치면 큰 국가 하나, 지금으로 치면 거의 행성 2~3개 거주민 수와 맞먹는 숫자다.


“... 나쁜 소식은?”


“나쁜 소식은 바로 이번 부활의식에서 발생할 엄청난 마나로 인해, Type-00는 [진화의 리미터]가 해제된 상태로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수치적으로... 99.83%죠.”


“... 가능성이 있다 수준이 아니라, 거의 확정이잖아.”


“좋은 소식이 바로 0.17%의 예외상황이 있다는 거라면 믿으시겠어요?”


“... 사실이야?”


“아뇨. 농담이에요. 오홋홋홋!”


... 이 녀석은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로봇이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F.E.E.]가 아무 의식도 없는 포식기계였던 걸 생각면, 그 괴리감이 묘하다.


“좋은 소식은 바로, ‘우리 종족’이 개발된 극비 연구소의 위치를 찾아냈다는 거예요. 어쩌면 그곳에, Type-00를 해치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연구소 내부는 확인 안 해 봤나 보네.”


나의 질문에 녀석은 잠시 뜸을 들이다, 유아라 앞에 놓인 빈 유리잔을 치우며 말했다.


“예. 저로선, 그곳에 못 가거든요.”


“... 왜지?”


“그 연구소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가씨의 본가 안에 위치해 있거든요.”


... 유아라네 집 안에 있는 게, 못 갈 이유가 되나.


---


띠링-!


[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


무인택시를 타고 유아라네 집 본가로 돌아왔을 땐, 거의 자정이 다 될 무렵이었다.


새액- 새액-


그리고 내 옆자리에서 들려 오는 작은 숨소리. 고작 칵테일 두 잔 마시고 뻗어버린 이후로, 쭉 잠들어있는 유아라다. 이미 자기 집에 도착했는데도 일어날 생각이 없는 유아라의 모습에, 나는 녀석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 야. 일어나.”


“어마! 누구... 아. 당신이었군요...”


“...”


“난 또...”


새액- 새액-


내 손이 몸에 닿자마자 눈을 확 떴다가, 내 얼굴을 확인하고 다시 잠들어버리는 유아라.


“... 일어나라니까.”


“... 으음...”


“...”


그 이후로는 아무리 흔들어도 깨어날 생각을 안 하는 유아라. 나는 결국 한숨을 크게 한 번 쉬고 택시에서 내려.


“... 이 빚은 언젠가 무조건 받아낸다.”


“으으음... 흐음...”


유아라를 들쳐 업고, 별채 쪽으로 걸어간다.


터벅- 터벅-


녀석을 업고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가운데, [피그말리온]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비밀 연구소의 위치는... 뒷마당 정원의 풀숲 미로, 중앙 분수대 옆의 코스모스 덤불. 이 아가씨에게 똑같이 말해 주면, 잘 찾아줄 거예요.

- ... 너가 직접 찾아보면 되잖아.

- ... 저는 그곳엔 갈 수 없어요.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요.


원래도 수상한 녀석이지만, 오늘의 녀석은 한층 더 수상했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 아빠...?”


갑자기 업힌 채로, 내 목을 팔로 감는 유아라. 업어서 집까지 데려다 주니까 내가 지 아빠인 줄 안다.


“아빠... 일찍 온다며 왜 이제 왔어...”


“... 나 니 아빠 아니다.”


“아빠아...”


“...”


술 마셨으면 그냥 조용히 잘 것이지, 어울리지도 않는 주사를 부리는 유아라. 나는 더 이상 대꾸해주지 않고 묵묵히 걸었다.


누가 보기 전에 이 술주정뱅이를 빨리 자기 방에다 던져주고, 내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나리오였으니까.


허나 현실은 그런 나의 ‘최선’을 매몰차게 배신했다.


“... 선배?”


“...”


별채 안에 들어서자마자, 난 우연히 잠옷 차림으로 복도를 걷고 있던 링링과 마주쳐 버렸고.


“나 진짜... 너무 힘들었다구우...”


그 순간에도 유아라의 술주정은, 아직도 실시간이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ㅠ

빨리빨리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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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 169. 이별 (4) +2 22.10.26 506 18 10쪽
173 168. 이별 (3) +3 22.10.24 516 18 10쪽
172 167. 이별 (2) +2 22.10.18 525 21 12쪽
171 166. 이별 (1) +3 22.10.16 535 22 10쪽
170 165. 멸종 (14) +6 22.10.12 527 22 10쪽
169 164. 멸종 (13) +4 22.10.10 507 22 11쪽
168 163. 멸종 (12) +2 22.10.09 498 20 9쪽
167 162. 멸종 (11) +3 22.10.06 505 22 10쪽
166 161. 멸종 (10) +3 22.10.04 520 20 9쪽
165 160. 멸종 (9) +1 22.10.02 538 19 12쪽
164 159. 멸종 (8) +3 22.09.28 570 2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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