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ㅠㅠ

뭐야 내 힘 돌려줘요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가시멧돼지
작품등록일 :
2021.09.03 13:06
최근연재일 :
2022.11.1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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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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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67. 이별 (2)

DUMMY

167.


톡-


[ 동영상 파일을 재생합니다. ]


지이이잉-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것은 머리를 박박 깎은 여자가, 작은 방 안에서 마치 셀프 카메라라도 찍는 것처럼 정면으로 카메라를 바라보는 구도의 영상이었다. 그녀는 바스락거리며 카메라를 몇 번 만져보다가, 방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 여운휘. 이번이 마지막 뇌 이식인가?


-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치유]의 비밀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뇌 이식을 해야 할 테니까요. 홀홀홀...


- ... 너희 휴머니티 놈들과는 거진 400년을 함께 했지만, 도무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군.


- 이제는 휴머니티가 아니라, H.N.H. 코퍼레이션입니다. 홀홀. 그리고 이미 연합과 저희 H.N.H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 아니겠습니까? 인류가 한 계단 더 올라가기 직전인 지금이라면 더더욱요.


- ... 나는 인류의 진화니 뭐니 하는 거엔 관심 없다. 오로지 ‘그것’을 위해, 너희와 손을 잡은 것뿐이다.


- 홀홀홀... 어련하시겠습니까? 그보다 이제 슬슬 기록을 남기시지요. 녹화에 너무 쓸데없는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회장님.


- ... 그래야겠군.


“... 회장? 연합 회장은 분명 할아버지... 미... 미안. 조용히 할게. 얘들아.”


웬일로 눈치 없이 한마디 한 박준 형이, 모두의 눈초리를 받았다가 수그러드는 가운데, ‘회장’이라 불린 젊은 여성은 다시금 시선을 카메라로 향했다. 그녀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정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 이번이... 39번째 기록. 뇌 이식 이후 발생하는 기억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렇게 기록으로 남긴다... 여운휘. 이거 녹화 제대로 되고 있는 건가?


- 예. 회장님. 계속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 그래. 그럼... 우선 내가 누구인지부터 기록해야겠지. 내 이름은... 이원. 우주 개척 시대 초기, 도미니티카를 비롯한 수백 개가 넘는 국가형 기업들을 모두 정리한... 우주연합의 초대 회장이다.


“... 이원? 저 사람이 초대 회장 이원이라고?”


“... 그것도 여자?”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 이원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연합의 어느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더라도 가장 먼저 배우는 인물이 그였으니까.


허나 오래 전에 죽었다고 전해진 인물이 살아있다는 것,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 많은 섭리와 순리를 어겨가며,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과거 내가 저질렀던 수많은 과오들 중 하나를 바로잡는 것.


- 어우. 좋습니다. 잘 찍히고 있네요. 홀홀...


- ... 시끄럽다. 여운휘. 아무튼 그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서 나는... 휴머니티라는 바이오 기업과 손을 잡고 400년의 시간 동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준비해 왔지. 쉬운 여정은 아니었지만, 400년이란 시간이 짧지 않았던 만큼 준비는 거의 끝나간다.


- 홀홀. 이제는 휴머니티가 아니라 H.N.H. 코퍼레이션입니다. 회장님.


- 허나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일반적인 인간의 몸으로는, 시간을 거슬러 갈 수 없다는 것. 우주의 섭리에 반(反)할 수 없다는 것이지.


- 시간을 돌리기 위한 에너지는 396억 연합 회원들이 ‘인류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며 만들어 줄 테지만, 육체가 있는 이상 물리적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말이죠. 홀홀...


- ... 저 방 너머에 있는 여운휘 박사의 말대로다. 결국 시간을 거슬러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우주의 섭리를 거스르는 유일한 존재. 시간과 공간뿐만 아니라 평행세계의 벽마저도 넘을 수 있는... 바로 모순의 마나다.


“모순의 마나...”


“평행세계...”


순간 들려오는 이원의 말에 유아라는 곁눈질로 날 살폈고, 한겨울은 대놓고 내 쪽을 보았다. 아주 내가 이쪽 세계의 사람 아니라고 광고를 하는 두 사람이다.


- 이제 슬슬 마무리하시죠. 수술 준비가 끝났습니다. 회장님.


-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여 전 인류를 다 ‘소모하는’ 한이 있더라도 과거로 돌아간다. 아직 어렸었던 그 시절의, 어리석었던 판단을 바로잡기 위해...


동영상 속 여자가 다짐하듯 비장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으로, 홀로그램 창이 닫혔다. 모두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혼란스런 표정으로 멍하니 허공만을 바라보던 가운데,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역시나 한겨울이었다.


“... 뭐야. 이게 끝이야?”


“그... 그런 것 같은데...?”


“그러니까 지금 요약하자면... 400년 전의 연합 회장 이원이 사실 살아있었고, 그 사람은 연합 회원들을 다 희생시켜서라도 자기는 과거로 돌아가겠다는 것 같은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거 맞니?”


“저... 저도 그렇게 알아들었어요...”


한편 이 일련의 소란 속에서, 마윤재는 천천히 데이터 소켓 리더기로 걸어가더니.


띠링-!


[ 파일을 복사했습니다. ]


방금 보았던 동영상 파일을 자기 마나블렛으로 옮겼다.


“원로운을 처리할 결정적 증거군. 좋아. 여태껏 협조해준 제군들에겐 감사와 경의를 표하지. 허나 여기부터는 이제 그만 손을 빼는 게 좋을 걸세.”


“... 빠지라고요? 어째서인가요?”


“여기부턴 어른의 영역이니까. 제군들이 아무리 이니시움 아카데미 생도들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애들이네. 이런 일들은 어른에게 맡길 필요가 있어.”


“어머. 하지만 마윤재 부장님께선 파면되면서, 사실상 아무 힘도 없으신 거 아닌가요?”


“아니. 아직 안보부 안에 내 라인이 살아 있네. 그들과 힘을 합치면, 오래 전에 죽었어야 할 망령을 때려잡는 건 일도 아니지. 게다가, 더 이상 제군들을 위험에 빠트릴 순 없네. 안보부 부장이 아니라, 제군들의 이니시움 아카데미 선배로서 말이야.”


“... 아니. 그래도-”


“부하직원들과 접선하기로 한 시간이 거의 다 돼서, 이만 가 봐야겠군. 다들 그동안 고마웠네.”


슈우우우-


그리 말하고서는 곧바로 행성간 순간이동 키트를 써서 사라지는 마윤재. 녀석이 사라지자 묘하게 조용해진 연구실에서, 한겨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꼭 저런 말 하고 떠나는 사람은, 항상 돌아와서 아쉬운 소리 하더라. 그치?”


“... 보통 그렇지.”


---


연구동에서 나온 우리는, 다 같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베이컨, 계란 프라이, 콩, 감자튀김, 그리고 샐러드. 생각보다 평범한 메뉴의 접시를 앞에 두고 다들 조용히 달그락거리는 와중에, 유아라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아. 그나저나 이제 다들, 뭐 일정이라도 있으신가요?”


“... 난 별 일 없어.”


“그럼 나도.”


“나랑 준이도 딱히 일정이라 할 건 없는데, 왜 그러니?”


“아. 어제 그 로봇과의 일전에서 [GZNS]에 광고를 던져줬던 게... 의외로 효과가 있었거든요?”


“... 진짜? 그게 효과가 있었어?”


“으... 응. AI 돌려 보니까 유의미하더라고. 여... 여튼 그래서, [GZNS] 방송을 하나 스폰해 볼까 생각하던 차에 마침 그쪽에서도 대형 광고주라고 초대해 와가지고... 근데 이제 [GZNS]가 혼자 가긴 좀 뭐한 곳이니까...”


[GZNS]에 혼자 가기 껄끄러우니까 같이 가달라는 말을 열심히 늘려 하는 유아라. 그리고 내 옆에는.


“당연히 가야지! 방송국 나들이... 기대된다. 그치, 그치?”


“... 별로...”


이런 일이 생기면, 항상 텐션 높은 여자가 있다.


---


“하아... 진짜 왔네...”


결국 어제에 이어, 오늘도 [GZNS]의 사옥에 와 버렸다. 그래도 어제는 침입자 신분이었지만, 오늘은 정식으로 초대받은 손님이긴 하다.


나머지 일행들이 방송국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동안, 나는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채 3층 커피 자판기 앞에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물론 이곳 기자들도 내가 수배자인 건 다 알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위장하는 척이라도 하는 편이 서로서로 편했다. 괜히 행성관리본부에서 왜 신고 안 했냐 하면 기자들도 곤란하니까.


한편 창밖은 그냥... 가관이었다.


- 기계신이여. 부활하여 인도하소서!

- 기계신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


반파된 도시에 꽉꽉 들어차, 위버멘쉬의 부활을 노래하는 [안티 러다이트]들. 못해도 수만 명이 되는 물결이 성지순례라도 하듯 한 명 한 명 위버멘쉬가 죽은 자리에다 절을 올리고 있었다.


물론 저런다고 해서, 죽은 위버멘쉬가 부활할 리는 없었다. 죽으면 끝이니까.


- 기계신이시여~!


“... 아주 지랄들을 하고 있네.”


“저러다가, 그 로봇 진짜 부활하는 거 아냐?”


창밖을 한참 보다가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 한겨울이다.


“... 방송국 구경 한다며.”


“그럴라 했는데... 너랑 같이 안 보니까 재미없더라. 이히히.”


“...”


“야. 근데 너 그 썬글라스는 어디서 났어? 처음 보는데.”


“... 유아라가 줬는데.”


“... 으흐음... 아라가 줬다라...”


순간 한겨울은 눈을 한 번 흘기더니, 양 손으로 내 선글라스를 슬쩍 들어내고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나저나 너... 썬글라스 자주 쓰고 다녀라. 마스크도.”


“... 왜. 갑자기.”


“응? 진짜 안 어울려서. 푸하하하!”


“...”


오랜만에 빵터지는 한겨울. 녀석은 도로 내게 선글라스를 채워 주며 말을 이었다.


“예쁜 모습은 나만 보고 싶은 건, 너무 욕심인가? 이히히.”


“... 뭐래냐.”


“아. 맞다. 근데 있잖아. 일로 와봐. 그쪽 말고, 저쪽 창가로 가자. 저기 풍경은 좀 달라.”


타다닥-


그리 말하며 내 손목을 붙잡고, 반대쪽 창가로 끌고 가는 한겨울.


나는 고작 한 블록 차이인데 뭐가 다를까 하는 마음으로 창밖을 확인했다. 허나 녀석 말대로, 바깥엔 피폐하기 짝이 없는 안티 러다이트 따위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상인들이 노점이나 천막을 하나둘 설치하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 진짜네. 축제라도 준비하나.”


“응. 아까 어떤 기자분이 말해주셨는데, 이제 곧 그레이트 오프닝이잖아?”


그레이트 오프닝. 연합 창사(創社)일이자, 최고의 명절.


작년에 행성 에브게니아의 파티장에서 [임포스터]와 마주쳤던 날도, 그레이트 오프닝이었다.


“... 근데 그레이트 오프닝마다 축제하고 그러진 않잖아.”


“그렇기 한데... 올해가 연합 400주년인가 봐. 그래서 거주구역마다, 다 대규모 축제 준비한대. 이곳 행성 사인 말고도, 이니시움에서도 축제 준비하고 있을 걸?”


“...”


나는 녀석의 말에 잠시 [빅 데이터]를 뒤졌다. 올해가 연합 400주년 되는 해는 맞았지만, 이런 대규모 축제 같은 것은 ‘저쪽 세계’에는 없던 일.


뭔가 수상한 것을 직감한 바로 그 순간.


스윽-


은근슬쩍 팔짱을 끼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한겨울.


“... 왜 그런 눈으로 봐.”


“왜긴. 저기서 데이트 해보고 싶으니까 그렇지.”


“...”


"넌 어때? 별로야?"


"... 아니."


... 뭐. 겸사겸사다.


작가의말

다음화 빨리 쓰겠습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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