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298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07 23:43
조회
266
추천
5
글자
20쪽

샌드백 필요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81화



악마들에게 폭탄 목걸이를 채우기 시작한지 3개월이 흘렀다.


2004년 3월. 나는 5학년이 되었고 하늘에서는 불과 칼, 바위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이번에는 못 피할 거다!”

“바싸고 노야! 변하는 건 없죠?”


한발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던 바싸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을 가득 메운 병장기가 수 초 후 목표물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드는 미래를 보았기에.


그러나 나는 그저 미소를 흘릴 따름이다. 미래를 관측하는 저 악마가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오늘도 틀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찢으며 빗발치는 병장기들의 속에서 나는 여유롭게 초월의 영역에 이른 두뇌의 출력을 서서히 올렸다.


그러자 주변의 속도가 점차 줄어들었고 이내 멈추었다.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이다. 빛의 속도를 넘어 지구를 역행하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말처럼.


사고의 가속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시간의 흐름을 앞서나간다. 두뇌는 정지한 세계 속에서 최적의 행동을 연산해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생존률이 0%에 수렴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수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


적들의 병장기를 쳐내는 것도, 되돌려주는 것도. 그게 아니라면 상대의 공격을 뛰어 넘어 직접 타격하는 것도.


심지어 그 세 가지를 모두 동시에 하는 것마저도 내게는 가능하다.


그리고 사방의 병장기 중 유독 날이 넓적한 무기를 톡 떼어 크게 원을 그렸다.


한 번, 두 번. 허공에 피어오른 나선의 힘은 더 이상 팔을 놀리지 않아도 더욱 더 몸집을 불려만 갔다.


이윽고 원이 하늘을 집어 삼켰을 때. 나는 그 중 일부를 떼어 악마들을 향해 힘껏 후렸다.


툭. 투툭.


이제는 주인을 배반한 무기들이 멈춰버린 시간을 뚫고 조금씩 가속한다. 노리는 것은 원래 주인의 심장.


다시금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악마들의 창백한 표정들이었다.


“이런 씹...”


저들 중 가장 위계가 높은 아몬과 발레포르가 다급히 지시를 내렸다.


“재 사격! 가만히 뭐해! 뒤지고 싶어?”

“손이 멈추면 거리가 줄어든다! 근접전으로는 못 이겨!”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녀석들을 보며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2할의 출력을 유지하며 발을 뗐다.


다음 순간 연거푸 마법을 쏟아내는 악마들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단 한 걸음으로 그들의 뒤를 잡은 것이다.


막고, 반격하고, 거리를 줄이기까지. 세 가지 행동을 1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해냈다.


바로 이렇게.


“참 쉽죠?”


갑자기 사라진 나를 찾던 악마들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는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나를 확인한다.


“자비를...”

“싫어.”


단호하게 말한 뒤 보이는 족족 때려 눕혔다. 주먹 한 방이 휘둘러질 때마다 바닥에는 작은 크레이터가 형성되고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은 상대는 개들 중에선 나름 튼튼한 편인 아몬.


나는 그에게 약간의 기대를 담아 물었다.


“버텨 줄 거지?”


질문이되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어차피 상대에게는 거부권이 없으니까.


2할로 고정 중이던 제한을 풀자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몸속을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다.


언제 느껴도 좋은 이 전능감.


주먹을 쥐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일며 주위에 진동이 울린다.


가볍게 디딤 발을 밟고, 아몬을 향해 주먹을 날...


“이러다 진짜 뒈진다고오오오!!!”


리지 못하고 코끝에서 멈추었다. 지금이건 스파링이지 죽고 죽이는 전투가 아니었으니까.


“크아앍으퓨렉!”


아몬은 괴상한 소리를 내지르며 저 멀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갔다. 주먹은 멈췄는데 주먹에서 비롯한 바람은 멈추지가 않더라고. 아마 그 탓이 아닌가 싶다.


뭐. 튼튼한 녀석이니까 알아서 돌아오겠지.


“자. 오늘도 고생이 많으셨습... 다 기절했네?”


칼을 주고받는 지금의 활동은 일종의 대련에 해당한다. 초월자의 힘에 익숙해지는데 아무래도 실전만한 것이 없었기에.


계약서에 싸인을 한 악마들 중 지상에 남기로 한 악마들에게 자발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다.


“누구 깨어 있는 악마 없어요?”

“...”

“깨어 있다고 다시 안 때릴 테니까 일어나지 그래요?”

“크흠. 고생하셨습니다.”


그제야 몸을 일으키는 상위 위계의 악마들. 괜히 일어나면 더 맞을까봐 누워있던 모양이다.


그들 중 모발이 부족한 악마 하나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저... 팔을 너무 세게 맞은 것 같아서 내일 대련은 빠지고 싶습니다만.”

“얼레? 내가 팔을 때렸던가? 분명 왼쪽 다리를 걷어찼던 거 같은데.”

“그렇긴 한데. 너무 강하셔서 그런지 팔도 아픕니다요. 헤헤.”


악마도 거짓말을 하면 동공이 흔들리는 모양이다. 어색한 웃음은 덤.


대련이 매일같이 이어지다 보니 이렇게 탈주를 희망하는 사람, 아니 악마가 꽤나 속출한다. 하루하루 맞기 위해 지상에 남은 게 아니라면서.


나는 신과 달리 나쁜 초월자가 아니기 때문에 악마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편이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좋아요.”

“정말이십니까?”

“그래요. 비네씨는 지옥에 내려가는 걸로.”

“아...”


쉴 거면 지옥에서 쉬기를 바란다. 애초에 지상에 남는 조건이 나와의 대련이었으니까.


흔쾌히 수락했음에도 비네는 우물쭈물할 뿐,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왜요? 팔 아픈 거 아니었어요?”

“... 괜찮아 진 것 같습니다.”

“그래요? 음.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은 더 힘차게 연습해봅시다.”

“X발 새끼. 악마보다 더한 새끼.”


뒤에서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너그럽게 넘어가주기로 했다. 매일 같이 맞기만 하는데 저런 즐거움이라도 있어야지. 참으면 병 생긴다.


악마의 건강 상태까지 배려를 해주는 사람이라니. 흠. 내가 생각해도 너무 호인이 아닌가 싶다. 하하하.


“착하긴 개뿔! 이 호로잡놈 새끼야!!!”


멀리 날아갔던 아몬이 다시금 날아왔다. 녀석의 권능 중에 독심술이 있던가?


“거 참. 말 예쁘게 안 합니까?”

“예쁘게 하고 싶어야 하지! 방금 이 몸을 없애려 했던 거 아뇨? 예비 목숨도 없는데 진짜 소멸될 뻔 했다니까?”


아몬의 말에 따르면 가 본적도 없는 요단강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고 한다.


그래. 목숨이 걸린 문제니 화가 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런데... 내가 저 꼴을 용납하고 있을 이유는 없다.


“하아...”


한숨을 내뱉었을 뿐인데 주변의 공기가 5도 정도는 내려간 것 같다.


씨익씨익 거리던 아몬의 호흡은 점점 정갈하게 가다듬어졌고, 이내 눈치를 살피다가 알아서 대가리를 박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머리에 피가 뻗쳐서 그만.”

“그래요. 악마들이 고생하는 건 아는데. 조금 실망스러운 건 어쩔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싸울 상대는 다름 아닌 신이다. 지구에 강림했던 구름쪼가리 아바타 말고 본체.


초월자가 된 지금도 상당한 격차가 존재하는 신 말이다.


지금도 전력을 다해 연습을 해도 모자랄 판에 10%로 깔짝. 20%로 깔짝 하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한 번도 휘두른 적 없는 전력을 무기랍시고 준비해 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래서 지상에 남은 악마들을 죄다 모아놓고 1대 다수 훈련을 하고 있는데도 별로 신통치 않고.


“면목이 없습니다.”


어째서 헬창들이 자극 올 때 다른 일 시키는 걸 극도로 혐오하는지 조금은 알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나마 해방군이 무능해서 신과의 최후결전까지 시간이 넉넉하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네.”

“뭐 이 새끼야? 무능?”


품속에서 시끄럽게 구는 운석을 꺼내다 바다로 던져버리고, 사색을 이어갔다.


아주 튼튼한 샌드백이 필요하다. 이를 마련할 계획도 세워둔 상태다.


72명의 악마 중 머리가 터진 녀석이 32새끼. 지옥에 남겠다고 한 놈들이 9놈. 지상에 남는 악마가 30명이다.


단 한 녀석만이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계약에 묶이지 않은 채 지상을 표류하고 있는데.


그 정체는 1위계 악마의 왕 바엘. 가장 강한 악마이자, 신과 가장 근접한 존재라 평가받는 자.


그리고 내 튼튼한 샌드백이 되어줄 악마였다.


그런데 이놈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가 않는다 이 말이지. 유성아가 밤을 세워가며 우리 은하를 관측해도 블랙홀의 블도 보이지 않았으며.


비밀 조직들을 굴려서 전 세계의 사건사고를 조회해 보았음에도 악마라 특정할만한 단서는 찾을 수 없었다.


걸리는 게 있다는 이야기에 가보면 폭력 조직끼리의 패싸움이나, 중2병 걸린 소년들의 뻘 짓거리인 경우가 많았다.


다른 악마들의 말을 들어보면 지상으로 나온 건 분명한데. 어째서 몸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악마의 일은 악마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다. 지상에 남은 악마 중 가장 식견이 높은 존재는...


“바싸고?”

“부르셨습니까? 상혁님.”

“바엘이 안 나타나는 이유가 뭘까요.”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바싸고는 잠깐의 텀을 둔 뒤 생각을 정리해 대답했다.


“아마 상혁님을 이길 수 없다 판단한 것 같습니다.”

“나를 언제 봤다고요?”

“다른 악마들이 계약에 묶이는 걸 보며 상혁님을 탐색한 게 아니겠습니까?”


예상외의 답변이다. 지옥의 왕이자 세계의 2인자 정도 되는 악마라면 질 때 지더라도 당당하게 부딪치러 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정리하자면. 악마들의 왕이라는 사람이 부하들을 갈아 넣어서 상대의 역량을 확인하고, 안 되겠다 싶으니 부하고 뭐고 버리고 꽁지를 말고 도망쳤다 이거죠?”

“그으...렇습니다.”


바싸고는 떨떠름하게 전 상관의 추태를 인정했다.


하기야. 어쩌면 도망을 쳤기 때문에 악마들의 왕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악마들은 내가 초월자고 자시고 눈깔이 뒤집혀 덤벼들었는데. 그러지 않은 것만 해도 수완을 알 수 있지 않나.


누울 자리를 보고 눕는 것도 엄연한 왕의 자질 중 하나다.


“흠. 곤란하네요. 정면에서 싸우지는 않는 주제에 힘을 회복해서 지가 유리할 때 덤비겠다. 이거잖아요. 귀찮기가 그지없어.”


나는 바싸고를 보았다. 딱히 별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방도가 없어서 멍을 때렸을 뿐.


그러나 그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되었는지 얼굴이 파스텔 톤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멀쩡하게 눈이 달렸으니 바싸고의 얼굴색이 시시각각 변하는 걸 목격할 수 있었다. 명석한 두뇌는 이내 상황을 파악했지만 시선을 거두지는 않았다.


뭔가 일이 알아서 잘 풀릴 것 같은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에.


바싸고는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저으며 고민하더니. 이내 다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과거의 일이라고는 하나 바엘은 제 상관이었습니다. 그의 정보를 밝히는 건 부하된 도리로써 어긋난다 생각해 입을 다물고 있었습니다만... 악마의 일은 악마가 해결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냥 멍을 때리고만 있었을 뿐인데 일이 잘 풀리고 있다. 이것이 카리스마, 품격이라는 것일까?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바싸고의 배신을 환영했다.


“찾을 방법이 있을까요?”

“송구스럽게도 대책에 대한 정보는 아닙니다. 원인에 대한 정보죠.”


숨은 바엘을 찾을 방법은 없지만 바엘이 숨은 방법은 알려줄 수 있다는 소리.


모든 훌륭한 해결법은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엘은 몸을 낮추며,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속삭였다.


“바엘의 권능은 불균형의 화신입니다.”

“불균형의 화신.”


악마는 불균형에 환장한다. 바엘은 악마들의 왕답게 이에 특화된 권능을 가진 모양.


“상대가 얼마나 강하던, 얼마나 지혜롭던, 무슨 수를 쓰던. 불합리하게도 언제나 이기는 쪽은 바엘이었지요. 불균형의 화신이란 그런 존재입니다.”


고장난 시소를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아무리 용을 써도 반대편이 내려가지 않는 시소를 바엘은 혼자서 즐기고 있다는 소리.


바엘의 능력에 대한 정보는 나에게 있어서 의미가 작지 않았다.


“그런 존재가 저한테 쫄았다는 이야기군요.”

“음...”

“부하를 갈아치우면서까지 도망갔고요.”


음. 그렇게나 대단한 존재가 나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흡족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승리를 차지하는 녀석이 나를 피해 도망간 것이니까. 초월자가 된 것이 새삼 실감난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바싸고가 경고했다.


“네. 그렇습니다만 상혁님께서도 경시하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바엘은 강하니까요.”

“바싸고는 누구 편이에요? 아직 바엘의 편인가?”

“아. 상혁님이 더 강하니 걱정할 필요가 없겠군요. 하하하. 역시 존귀하신...”


당황한 바싸고를 뒤로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하튼. 바알의 권능은 세상의 법칙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적용시키는 능력이다 이 말이잖아요. 예를 들면 가위를 이기는 보자기라거나.”

“정확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탐색을 피해갔는지도 나왔네요. 관측의 결과를 비틀어버린 거에요.”


관측의 불균형을 통해 ‘보인다’는 결과를 비틀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숨을 수 있었던 거고.


“그래도 실마리는 잡은 거 같네요.”

“정말이십니까?”


정말이다. 결국 녀석은 결과를 조작하는 것뿐이지, 어디 이차원의 틈을 열어 숨는 게 아니니까.


전 세계를 대상으로 현상과 결과의 괴리가 발생하는 곳을 찾으면 그만이다.


어떻게? 잘 발달한 과학은 마법이나 다름이 없다는 말이 있다. 질량 측정, 초음파, 열 감지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때려 붓는다.


기껏해야 중세 시대에나 활약하던 바엘은 발달한 현대 기술에 하와와 놀라서 있는 곳을 들키고 말겠지.


효율이야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나의 충실한 부하들이 나에게 성공을 가져올 테고.


“흐흠. 새로 올 샌드백이 얼마나 단단할지 기대가 되는데?”


콧노래를 부르며 허공에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자 공간이 일그러지며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아무리 내가 착한 고용주라고 하더라도 오늘, 내일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이겠지.


나는 골치 아픈 걸 모두 잊고 삼길초 애들이랑 현장학습이나 다녀오면 될 것 같다.


“그럼 가 볼 게요. 바싸고.”

“아. 자연 환경 속에서 수련을 하러 가신다고 하셨던가요?”

“비슷해요.”


한라산도 등반하고, 제주 바다를 헤엄치며 갈치를 잡을 예정이니 수련이라면 수련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번 제주도 현장학습은 크게 기대를 걸고 있는데, 행운의 DNA가 적극적으로 추천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행운의 말을 들어 손해를 본 적이 없으니. 이번에도 큰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그럼. 갑니다?”

“네. 들어가십시오.”


바싸고는 공손히 인사를 마친 뒤, 모처럼 찾아온 행복한 시간을 만끽하러 숙소로 향했다.


잠시 후, 아직까지 머리를 밖고 있던 아몬이 툴툴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X발 새끼. 끝까지 일어나라는 말은 안 하고 가네. X발.”


사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머리를 박았으니 일어날 타이밍도 아몬이 정하는 게 맞다.


바싸고와의 대화에 집중하느라 아몬의 존재를 잊었더니, 미련하게도 끝까지 머리를 박고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은 머리에 묻은 흙을 털며 복수를 다짐했다.


“내가 억울해서라도 힘을 기르고 만다. 그래서 저 새끼 대가리도 땅바닥에 박아줘야지.”


분노의 팔굽혀펴기를 하는 모습이 장하여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 열심히 해라.”


나의 목소리에 아몬이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나의 모습을 찾지 못했다.


“환청인가?”

“아닐 걸?”

“... 아니구나.”


혼란스러워 하는 아몬의 앞에 다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녀석은 심히 두려워하며 물었다.


“분명 아무도 안 계셨는데.”

“그 뭐야. 바엘이 이렇게 몸을 숨겼다고 그래서 나도 해보고 있었어. 행동을 따라하다 보면 녀석의 심리를 알 수 있을까 해서.”


녀석의 몸이 한층 더 쭈그러졌다. 바엘의 권능을 훔쳤다는 소리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 연습하셨습니까?”

“그냥 되던데? 비슷한 능력이 있거든.”


아몬은 바보같이 입을 벌린 채 말도 안 된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면서.


모든 결과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힘. 나의 행운의 DNA는 바엘의 권능과 꽤나 닮았다.


그래서 시험 삼아 따라해 봤더니 놀라울 정도로 쉽게 능력을 카피할 수 있었다.


덕분에 아몬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수 있지 않았나.


뭐. 그게 의도한 서프라이즈는 아니더라도. 부하의 어리광에는 어울려 주는 것이 도리일 터.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고 있는 아몬의 어깨를 붙잡으며 물었다.


“그래서 뭘 박는다고?”

“어... 그... 아. 숙소로 돌아가 못을 박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래? 내가 들은 거랑은 좀 다른데. 어쩔 수 없지. 같이하자. 도와줄게.”


초조하게 눈치를 살피는 아몬을 뒤로하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잠시 후 크리스티나가 못을 한 움큼 들고 찾아왔다.


“전하. 명하신 물건을 가지고 왔습니다.”

“고마워요. 크리스티나.”

“혹시 망치도 필요하실까 싶어. 이렇게 챙겨왔습니다.”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센스까지 좋은 크리스티나였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망치가 필요하지 않다.


“괜찮아요. 망치는 있거든요. 못은 잘 쓸게요.”


크리스티나는 빠르게 주변을 살피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살펴도 망치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이내 고민의 흔적을 지우고 돌아가는 걸 보면 내가 알아서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손을 흔들어 크리스티나를 배웅해주고 아몬에게 말을 건넸다.


“자. 가자.”


그리고는 아몬의 두 발을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상혁님? 지금 뭘 하시는 겁니까?”

“못 박는다며. 망치는 없고. 너는 튼튼하잖아?”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에 대해서는 세 어절로 충분했다.


나는 못을 근처 바위에다가 흩뿌린 뒤 아몬을 망치삼아 박아 넣었다.


쾅! 쾅! 쾅!


단단한 바위에 못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고함이 울리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자고로 벌이란 고통스러운 거니까.


도와달라는 간청에도 다른 악마들은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혹여나 내밀었다가 불똥이 튀길까봐 걱정을 하고 있는 듯하다.


덕분에 나는 유유히 못질을 끝낼 수 있었다.


준비한 못은 전부 바위에 박혔으며. 그 옆에 아몬 또한 바위 속 깊은 곳에 박혀 파르르 떨고 있다.


이쯤이면 충분하다. 이제 현장학습을 즐기러 갈 시간이다.


* * *


푸르른 녹원 속 한 농부가 땀을 흘리며 과일을 수확하고 있다. 그는 목에 걸린 수건으로 땀을 닦고는 들고 있는 과실을 입에 던져 넣었다.


“밭을 일구는 건 이렇게나 고되지만 언제나 그 열매는 달콤하지.”


선뜻 위화감을 찾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광경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 아니 악마라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그의 정체는 악마왕 바엘. 도피 중이라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나무를 숨기려거든 숲에 숨기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는 한국에 숨어 농사를 지으며 한 때를 보내고 있다.


그래. 이것은 농사다. 신을 넘어서지 못했던 바엘을 보다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해 줄 과실을 만들기 위한 농사.


그는 현재 면적이 1849km²에 다다르는 거대한 섬 하나를 집어 삼킬 계획을 준비 중이었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과실은 달콤할 것이다


계획이 성공하고 힘을 키우는 순간. 바엘은 곧바로 몸을 틀어 새로운 초월자의 조국을 집어 삼키리라.


그야말로 잔악무도하며 동시에 덧없이 완벽한 계획! 그는 현재 제주도에 있었다.


작가의말

공지도 없이 지각하여 죄송합니다.


일이 많고, 또 밀려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언제나 찾아봐 주시는 분들께 면목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더 신경 쓰고, 주의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후기. +2 23.01.02 140 0 -
공지 12월 17일 연재 관련 공지입니다. 22.12.17 76 0 -
공지 11월 11일 연재 관련 공지입니다. 22.11.11 83 0 -
공지 연재주기는 화, 수, 목, 금, 토 오후 10시입니다. 22.08.07 95 0 -
공지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1 22.06.06 180 0 -
공지 5월 31일 연재 공지입니다. 22.05.31 137 0 -
공지 5월 21일 연재 관련 공지입니다. 22.05.22 716 0 -
203 재미없고 지루한 해피엔딩 +2 23.01.01 348 6 27쪽
202 22.12.31 271 6 29쪽
201 리셋 22.12.31 239 6 22쪽
200 신의 선택 22.12.30 240 5 18쪽
199 구원자 22.12.30 227 5 23쪽
198 북쪽 전선 22.12.29 219 4 21쪽
197 검정 상혁과의 만남2 22.12.29 224 5 22쪽
196 검정 상혁과의 만남 22.12.28 231 5 18쪽
195 고3의 숙명 22.12.27 232 5 17쪽
194 사랑의 형태 22.12.24 244 4 19쪽
193 사랑과 전쟁 2 22.12.23 232 5 22쪽
192 사랑과 전쟁 22.12.22 237 5 19쪽
191 흑역사 박람회 22.12.21 246 5 18쪽
190 차원의 틈 22.12.20 221 5 18쪽
189 참교육 22.12.17 235 5 17쪽
188 주제파악 22.12.16 228 5 19쪽
187 힘을 숨긴 찐따?가 되다 22.12.15 247 5 22쪽
186 졸업, 입학 22.12.14 251 5 15쪽
185 관측 22.12.13 265 5 18쪽
184 악마와 함께하는 제주도 투어 22.12.10 257 5 18쪽
183 바엘 22.12.09 230 5 20쪽
182 제주도 현장학습 22.12.08 252 5 25쪽
» 샌드백 필요 22.12.07 267 5 2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