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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314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10 22:00
조회
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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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글자
18쪽

악마와 함께하는 제주도 투어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84화



나도 모르는 사이 제주도를 구하고 말았다.


그저 해물라면을 먹기 위해 바다를 휘젓고, 애들에게 볼거리를 주기 위해 별똥별을 떨궜을 뿐인데. 악마의 왕이 다 망했다며 엉엉 울고 있다.


하긴. 레이더에도 안 걸리는 녀석이다. 만일 현장학습으로 제주도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적지 않은 피해가 발생했겠지.


이번에도 행운의 DNA가 크게 한 건을 올린 셈.


나는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는 바엘을 걷어찼다.


“야. 궁상 그만 떨고 계약이나 하자.”

“시간 날 때 네 놈의 출생 성분을 분석해 봐라. 분명 악마의 피가 흐르고 있을 테니.”

“이게 자연스럽게 패드립을 치네?”


남의 조상 욕을 하는 바엘을 지근지근 밟았다.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조금 회복시키고, 계속 딸피를 유지하며 줄타기를 하자 바엘이 빼액 소리를 지른다.


“이거 봐라! 폭력은 악마의 산물이다. 이렇게 주먹이 쉽게 나가는 녀석이 악마가 아니라고?”

“지랄. 방금까지 제주도를 통째로 집어 삼키려 했던 주제에 말은 잘하지. 너는 대량학살 미수범이고, 나는 이를 막은 정의의 사도야. 나만큼 착한 놈이 어디 있다고.”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결과가 나를 증명한다. 수많은 생명을 구원했으니까. 물론 그 과정이 피로 얼룩덜룩하긴 하지만... 범죄자들의 피니까 괜찮지 않을까?


튼튼한 샌드백을 다시 한 번 두드리며 계약을 종용했다.


“빨리 적어. 나 갈 곳 있어.”

“... 어디냐?”

“그건 네가 알 거 없고.”


이제 슬슬 초딩들이 눈을 뜰 시간이다. 제주도의 산뜻한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바엘이 휘적거린 계약서에 피를 몇 방울 떨궈 활성화 시킨 뒤, 아이들이 자고 있는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다.


“야! 난 뭐하고 있으라고!”

“알아서 짜져 있어. 필요하면 다시 부를 테니까.”


아이들은 아직 잠에 취해 있었다. 아린 쌤을 조심히 깨워 둘이서 아침을 준비하기로 했다.


아침은 산뜻한 제주도 나물과 막 잡아 올린 고등어구이. 애들은 풀떼기가 싫다며 툴툴거렸지만 한 입 먹고는 손을 멈추지 못했다.


“마시따!”

“왜 맛있지?”


뭐든지 산지직송이 맛있는 법이다. 막 딴 나물과, 신선한 고등어니 평소보다 1.5배는 맛있는 게 당연하지.


아침 식사의 화룡점정은 바로 새벽에 따온 한라봉. 한라봉을 한 입 베어 문 아이들은 어렸을 때 본 요리 영화의 심사위원들처럼 미미美味를 외쳤다.


“이거 얼마야? 집에 가져갈 수 있을까?”

“맞아! 엄마랑 아빠랑 같이 먹고 싶어!”


흠.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이번 여행 기념으로 각 가정에 제주도 특산물 하나씩 돌리는 것도 괜찮으리라.


돈은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건 품질인데.


단순히 비싼 물품을 사는 게 아니라 현지의 생생한 감동을 안겨드릴 수 있는 물품들을 구하고 싶다.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려야 하나 고민을 하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부하를 귀찮게 할 필요는 없지. 방금 따끈따끈한 노예가 생겼으니까. 게다가 제주산 노예라 제주도의 생태에 대해 잘 알 것이다.


“바엘?”

“왜.”


바엘이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나타났다. 지시를 내리자 진절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어이 초월자.”

“말 예쁘게 해라. 공손히.”

“... 초월자님.”


이제 대화할 준비가 끝난 모양.


“제가 그쪽 시다바리입니까?”

“응.”

“그렇죠. 그런데. 다른 애들 많지 않습니까. 이래 뵈어도 전직 왕인데. 제가 이런 궂은일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나... 뭐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보일만도 하다. 신입 길들이기랑 비슷한 느낌이 들 테니까.


“흠. 내가 너무 심했나?”


계약으로 묶인 악마들에게는 인격적인 대우를 제공할 생각이다. 안 그래도 본능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녀석들에게 싫다는 걸 강요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긴. 원래 용도 대로 사용하는 게 맞긴 하지. 미안. 내가 생각이 짧았네.”


바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시 숨을 멈추었던 그는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게 맞는지 귀를 후비며 확인했다.


그리고 내 발언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는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놀랐습니다. 방금까지 협박하던 사람과 동일인물입니까?”

“나쁜 놈들에게는 나쁘게. 착한 사람들에게는 착하게. 그게 내 모토거든. 그러니까 저기 백록담에 올라가서 몸 풀고 있어.”


바엘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심부름은 취소시켰으면서 백록담은 왜 올라가라고 하는지 의문을 표하는 것 같다.


“왜긴. 원래 용도로 사용해달라면서. 넌 샌드백용으로 구한 거잖아. 샌드백은? 두드려야지. 가서 몸 풀고 있어.”

“...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걸 눈치챈 바엘은 뒤늦게 변명거리를 찾았다.


“식사 하셔야죠?”

“몇 분이면 충분하니까 괜찮아. 왜. 버틸 자신은 있고?”

“아뇨. 혹시 지금이라도 심부름 준비하러 가도 괜찮습니까?”

“일단 한 판 뜨고. 심부름은 그 다음에.”


빼도박도 못하게 된 바엘은 주먹으로 이마를 치며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심부름만 했으면 최소한 맞는 일은 없었을 텐데.


오늘 큰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자발적인 협력을 기대할 수 있으리라.


“X발. 그럼 그렇지. 저 녀석이 착하게 변했을 리가 없어.”


툴툴거리는 바엘을 잡아채 백록담으로 향했다. 바엘은 채 3분을 버티지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 * *


“야. 귀찮다고 아무거나 담으면 안 된다? 이따가 확인할 거야?”


간신히 눈만 뜨고 있는 바엘에게 일을 시키고 숙소로 돌아갔다.


아이들은 이빨을 닦고 나갈 채비를 마친 상황이었다. 오늘은 또 무엇을 하고 놀지 발을 동동 구르며 기대를 드러내고 있다.


나 역시 샌드백을 구한다는, 아니 바엘을 사로잡는다는 큰 걸림돌을 해결한지라 가벼운 마음으로 둘째 날을 준비할 수 있었다.


“상혁아! 이제 우리 어디 갈 거야?”

“어제는 바다에서 놀았으니까. 오늘은 내륙 쪽 돌려고.”

“내륙?”

“응. 여기 꽃밭이 참 예쁘더라.”


반응은 반으로 나뉘었다. 여자 애들은 꽃이라는 말에 두 손을 모으며 반색한 반면, 남자 애들은 조금 아쉬워하고 있다.


정적이고, 감성적인 것보다 동적이고 화려한 걸 좋아할 나이었으니까.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하면 남자 애들도 두 팔을 벌리며 기뻐할 것이다. 설마 내가 그 정도 안배를 안 해두었을까 봐.


현장학습은 1박 2일로 예정되어 있다.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이동해야 하는 걸 고려하면 사실상 오전 활동이 현장학습의 마지막.


그 대미를 장식하기 위한 활동인 만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활동을 계획했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서 내린 남자 애들은 두 팔을 벌리며 흥분을 드러냈다.


“와! 말이다!”

“짱 커! 저거 탈 수 있는 거야?”


아직까지는 로봇과 공룡을 좋아할 아이들에게 있어서 말은 낭만을 자극하는 동물이었다.


직접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말은 생각보다 덩치가 커다랗다. 빠르기는 또 얼마나 빠른지. 오죽했으면 아직까지도 마력馬力이라는 단어를 사용할까.


다들 눈을 빛내며 말의 등판에 올라타기를 바라고 있다.


“상혁아! 탈 수 있는 거 맞지?”

“응. 그런데 혼자 타는 건 위험해서 목장 직원 분이랑 같이 타야 돼. 가이드 분이 곧 오실 거야.”


머지않아 목장의 주인 분께서 친히 나와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3반 아이들은 꽃구경 팀, 말 여물주기 팀, 승마 팀.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당연하게도 승마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말을 타고 목장을 거닐고 온 한 아이는 흥분한 기색으로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와! 진짜 장난 아냐! 와! 바람이! 우와.”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말이지만 그 흥분만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해졌고. 남은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빨리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애들이 너무 오래 기다리는 것 같은데.”


말들은 많았지만 승마를 도와줄 인원이 부족한 탓이다. 어떤 애들은 시간이 모자라 말을 제대로 타보지도 못하게 생겼다.


“그럴 수는 없지. 바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창 작업 중이었는지 녀석의 손에는 한라봉과 전복, 감귤 초콜릿이 들려 있었다.


“불렀슈?”

“그래. 불렀다. 너 말 탈 줄 알아?”

“그렇소이다. 지옥의 이동수단은 주로 말이거든.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덩치가 커다란 해골 말을 타고...”


지옥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지 말이 많아지는 바엘. 그러나 그를 부른 건 저런 이야기나 듣기 위함이 아니다.


“됐고. 그럼 애들 말이나 태워줘. 딱 즐길 수 있을 정도로만.”


그의 눈썹이 八자를 그렸다. 바엘은 양 손에 든 물건을 내밀며 항의했다.


“지금 하고 있는 게 있는뎁쇼? 누가 시킨 일이 있어서?”


그래. 내가 시킨 일이 있었지. 내가 그걸 몰라서 불렀을까 봐.


“너 분신술 쓸 수 있잖아.”

“... 예?”

“분신술 써서 도망갔었잖아. 그거 써서 애들 태워주면 되겠다. 그치?”


바엘은 나의 세심한 기억력에 감동을 받은 듯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어떤 기술인 줄 알고. 그게 어떤 기술인 줄 알고! 권능의 극에 달한 악마만이 사용할 수 있는 비기를! 고작 애새끼들 비위 맞춰주는데 사용을 하라고?”

“또 샌드백 할래?”

“해야죠. 하겠습니다. 하게 해 주세요. 끄으윽. 흐헝헝헝헝.”


악마는 기쁠 때 눈물을 흘리는 모양. 역시 인간과는 다른 생명체답다.


“1위계의 악마한테 애들 따까리를 시키는 존재는 당신 밖에 없을 거요.”

“네가 도움이 되니까 그런 거지. 이참에 여행사 가이드로 취직하던가.”

“나. 악마의 왕 바엘이요!”

“쟤들은 내 친구고.”


삼길초등학교 3반 아이들은 아무런 특수 능력도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내 친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능히 악마를 시종으로 부릴 만하다.


왜냐. 이 몸이 이 행성을 지배하는 초월자니까.


잘난 사람을 곁에 두면 자연스럽게 반사이익을 보기 마련이다. 3반 애들 같은 경우는 내가 너무 잘난 사람이라 바엘을 시종으로 부리는 것이고.


악마의 왕과 함께하는 화기애애한 제주도 투어. 얼마나 즐거워 보이는가.


단념한 바엘은 순순히 분신을 생성해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말 탈 사람?”

“저요오옷!”


아이들의 힘찬 함성에 그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폭력과 절규를 양식으로 삼는 녀석들에게 있어 아이들의 환한 미소는 독이나 다름이 없을 테니까.


나는 발에 걸리는 돌멩이를 주워다가 바엘을 향해 던졌다.


‘아. 왜요!’


바엘은 시키는 대로 하는데 왜 지랄이냐고 소리 없는 아우성을 터트렸다.


나는 양 손가락으로 웃는 입모양을 만들어 보였다. 뒤지기 싫으면 웃으면서 일하라는 소리였다.


그러자 마법처럼 바엘의 입가에도 활짝 웃음꽃이 피어났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 바엘은 웃는 낯으로 아이들을 말에 태웠다.


목장 주인이 화들짝 놀라 제지하려 했지만 바엘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이내 동공이 풀리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뭐 최면이라도 건 게 아닐까. 바엘은 이게 당연한 거라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은 약하지 않다고, 원래는 인간을 벌레처럼 짓밟아야 할 존재라고. 마음을 다잡는 것 같다.


웃긴 건 그러면서도 감히 나를 향해 시선을 던지지 못했다. 몇 번의 싸움으로 뼛속까지 두려움이 새겨진 탓이다.


“우와! 빠르다!”


아이들을 태운 말은 종종걸음으로 목장을 거닐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바엘은 아이의 기준에 맞춰 완급조절을 잘 해냈다.


가끔은 묘기를 보이며 아이들의 환호성을 유도하기까지.


어떻게 행동해야 나의 환심을 살 수 있는지,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깨달은 모양이다.


3반 애들이 full 소유 현장학습을 즐기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삼길초 전원이 제주도를 방문하겠지만 가장 알찬 시간을 보내는 건 우리 3반이 되리라.


‘이왕 하는 거 조금 더 스케일을 키울까?’


굳이 해외를 찾을 필요가 없게, 제주도를 지상 최고의 낙원으로 만드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안될 건 또 뭔가?


손가락을 퉁겨 주변 환경을 재구축했다.


목장 부지가 늘어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말이 달릴 수 있는 길이 생겨났다.


좌측으로는 파도가 치는 바닷가요 우측으로는 야자수가 잎사귀를 흔드니. 바람을 맞으며 그 길을 달릴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청량한 해방감이 솟구칠 것이다.


아직 운전대를 잡으려면 10년은 걸릴 아이들이 드라이브의 참맛을 느끼고 있다.


“얏호오!!!”


꽃구경을 하는 아이들에게도 선물을 준비했다. 목줄을 채운 악마 중 급속성장을 권능으로 사용하는 녀석들이 있다. 이번에는 그 권능을 따라할 생각이다.


꽃밭을 향해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꽃들을 향해 생생한 기운이 흘러들어갔다.


꽃들은 더 진한 향기를 내뿜었고, 못다 핀 꽃봉오리들이 화사하게 피어났다. 매화와 진달래가 색색으로 들판을 물들이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라 부를 만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넘치는 생명력은 대지를 파고 들어가 잠자고 있는 씨앗을 건드렸다.


본디 땅 속에서 잠들고 있어야할 씨앗에 싹이 텄고. 유채꽃, 해바라기, 동백꽃 등 계절을 초월한 꽃들이 목장을 가득 물들였다.


이제는 목장이 아니라 정식 식물원을 운영해도 될 만한 경치였다.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은 감탄을 내뱉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득 만끽했다.


“예쁘다...”


마지막으로 휘파람을 부르자 제주도 각지의 동물들이 모여들어 목장에 자리 잡았다.


말과 소, 청설모와 박새 등 크고 작은 동물들은 오와 열을 맞춰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야생동물이다. 아이들 역시 갑자기 찾아온 동물들을 보며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동물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다가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당황하던 아이들은 이내 신이 나서 동물들을 쓰다듬고, 먹이를 주며 교감하는 시간을 보냈다.


세상 어떤 동물원도 이곳 목장보다는 자연친화적이지 못하리라.


이런 게 바로 현장학습의 묘미가 아니겠나. 자연체험을 하겠다고 무작정 시골로 내려갔다가 멧돼지를 만나거나 하는 엉성한 게 아니라.


내가 준비한 선물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몇 배는 더 커진 것 같다. 테마파크 저리가라다.


나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승윤이의 부름에 애들에게 합류했다.


악마를 곁들인 현장학습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을 낼 수 있었다.


* * *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애들은 비행기를 타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코를 고롱고롱 골았다.


한명 당 하나씩 돌아가도록 선물 보따리를 안겨준 뒤, 초인류 협회 부하들을 시켜 애들을 집으로 보냄으로 모든 일정을 끝마쳤다.


시끌시끌하던 현장학습도 이제 끝이 났으니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샌드백의 성능을 확인할 시간이다.


나는 집을 한 번 찍고, 곧바로 제주도로 복귀했다. 굳이 공항을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한 번 크게 도약하는 것으로 충분했으니까.


바엘은 그런 내 모습을 의아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한 걸음에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면 비행기는 왜 탔습니까?”

“초월했다고 해서 과거의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다른 아이들한테 맞추는 거지 뭐.”

“흥. 호랑이가 토끼 무리에 숨는다고 잘도 적응하겠습니다.”


절대자에게는 절대자에게 어울리는 삶이 있다고 궁시렁거리는 바엘. 오늘 일을 많이 시켜서 그런지 불만이 적지 않아 보인다.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초월자의 삶에 적응할 필요는 있어.”

“... 예. 그렇죠. 저는 틀린 말 안 한다니까요. 이제야 뭘 좀 아시는구만. 그런데 왜 갑자기 이렇게 한기가 느껴지지...”


바엘의 팔에 닭살이 오돌토돌 돋았다. 살기를 느끼기라도 한 걸까? 감이 좋은 녀석이다.


“네 말대로 이제부터는 초월자의 삶에 적응하는데 최선을 다할 거야.”

“네.”

“그 과정에는 네 협력이 필요하고.”

“...네?”

“때리다 보면 이 힘에도 익숙해지겠지.”


무려 전력의 70%나 감당할 수 있는 샌드백이다. 성능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바엘 정도면 어디서 쉽게 구하지 못할 매물이다.


“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힘 조절을 할 필요는 없겠네. 고맙다.”

“아니. 잠깐. 나는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아. 지상에서 싸우면 피해가 크니까 장소를 옮기고 싶은데. 지옥 어때. 거기는 깽판을 쳐도 상관없는 곳이잖아.”


벌벌 떨던 바엘은 지옥이라는 말에 발끈했다.


녀석에게 지옥은 자신의 영역이요, 승리의 역사가 담긴 공간이니. 그곳에 대한 자부심과 애틋함이 그의 투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리라.


“하. 그러다 다칩니다. 지옥에서의 나는 완전 다른 존재가 될 테니까.”

“그건 가보면 알 일이고.”

“난 경고했어요.”


큰 소리를 치는 바엘을 앞세워 지옥으로 향했다.


천국을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었지만, 지옥은 또 다른 느낌의 장소였다.


바엘의 기운이 지상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그의 말도 영 허세는 아닌 것 같다.


“뭐. 그래봤자 바엘이지. 더 세게 때릴 수 있으니까 오히려 좋아.”


바엘과 나는 전력을 다해 부딪쳤고, 아니나 다를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깽판치기 좋은 장소를 새롭게 깨달았을 뿐.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슬리퍼 차림으로 지옥으로 향했고, 그렇게 반 년 이상을 바엘을 두드리며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초월자의 힘을 완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으나. 아직도 해방군에게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 선호작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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