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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459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06 22:00
조회
244
추천
4
글자
21쪽

악마들의 처리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80화



“크읏. 나보고 지금 동료들을 팔라는 거냐?”


발레포르와 아몬, 바싸고는 감옥에 들어가 아는 정보들을 토해내야만 했다.


그 중 가장 반발이 심했던 게 바로 동료를 호출하라는 명령.


고분고분한 바싸고와는 달리 발레포르와 아몬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저항했다.


“죽었으면 죽었지 그런 치욕을 감내할 것 같으냐!”

“그럼 죽이는 걸로...”

“잠시만요. 선생님. 너무 결정이 빠르십니다.”


주먹을 들어 올리자 발레포르가 빠른 태세전환을 보였다. 그 모습이 웃겨 피식 웃고 말았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고. 당신들이 당했던 걸 똑같이 다른 악마들한테 돌려준다고 생각하면 되잖아? 안 그래? 그 쪽도 도움 요청을 받고 여기로 와서 잡힌 거잖아.”


그 말에 세 악마의 시선이 한 쪽으로 쏠렸다. 다른 감옥에 수감되어 눈도 못 마주치고 있는 시트리.


자신 때문에 자기보다 높은 위계의 악마들이 잡혔으니 볼 면목이 없을 것이다. 아마 여기서 탈출을 한다고 하더라도 몸이 성하지는 못하지 않을까?


아몬과 발레포르는 느끼는 바가 있는지 입을 다물었다. 좋아. 슬슬 미끼를 던질 시간이 된 것 같다.


“잘 생각해봐. 나는 누구를 데려오라고 특정한 적은 없다? 너희라고 하더라도 사이가 안 좋은 악마는 있을 거 아냐. 이 기회에 해치우면 손을 더럽히지도 않고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아몬은 미처 그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고. 발레포르는 바싸고를 향해 속삭였다.


“노야. 저 사람. 정말 사람이 맞습니까? 하는 말만 들으면 저희 종족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

“이 새끼가.”


속닥거리는 녀석의 머리에 딱밤을 때려 박았다. 나처럼 선하고 의로운 사람을 매도하다니.


“마을 하나씩 골라잡고 사람들 영혼 뽑으면서 낄낄거리던 녀석들이 누구보고 악마래? 험하게 굴려도 되는 놈들이니까 굴리는 거지. 너희가 얌전히 지옥에 쳐박혀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까지 했겠어? 어?”


세 사람 중 가장 말이 많은 발레포르가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그것이 저희 악마의 본능인데 어떡합니까. 균형을 어지럽히고, 악을 퍼트리고. 본능을 억누르며 지옥에 박혀 있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댁은 압니까?”


가슴을 팡팡 두드리는 게 꽤나 억울한 모양. 그러나 아무리 호소하더라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모르지. 알 필요도 없고.”

“뭐요?”

“악마가 악마의 본능대로 행동한다면 인간은 인간의 본능대로 행동하면 그만이야. 위험한 존재들을 배격하고 억누르는 것. 서로 본능대로 행동했으니까 죽어도 불만 없는 거 맞지?”

“아니. 말이 왜 그렇게 됩니까?”


녀석과의 대화를 통해 악마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본능적으로 혼돈을 불러일으키는 녀석들이다. 지옥으로 돌려보낸다고 해서 잠잠할 거라는 보장이 없다.


훗날 귀찮게 되느니 지금 없애버리는 게 나을 것이다. 아. 물론 바로 없애면 악마들이 협조를 안 할 테니, 정보를 다 뽑은 다음 없애는 걸로 하자.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의 방침을 정리하고 있는데 바싸고가 나와 눈을 마주쳤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제가 노파심에 한 말씀 올려도 되겠나이까?”

“아... 맞다. 당신이 있었구나.”


바싸고의 권능은 미래예지. 내가 결단을 내린 순간 미래가 고정된 걸 느낄 수 있었으리라.


괜히 서열 3위가 아니랄까. 생각보다 까다로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극적으로 뒤집어는 건 아니다.


어차피 저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시트리를 다시 들들 볶아서 새로운 악마들을 부르면 그만이니. 내가 꿀릴 일은 없으리라.


그래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바싸고의 제안을 승낙할 수 있었다.


“말해 봐요.”

“당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요. 그러나 최선의 방법은 아닙니다.”


내 선택을 바꾸게 할 요량인 것 같은데. 저 악마가 아가리를 털기 전에 몇 대 때려 놓는 것이 좋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러나 연륜이 있는 바싸고는 내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핵심적인 정보를 내뱉었고, 그 결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악마는 온전한 소멸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제약을 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음? 그럴 리가?”


자랑은 아니지만 시트리를 붙잡기 전까지 내가 터트린 악마만 열 손가락이 넘는다.


여벌 목숨까지 다 잃고는 허무하게 소멸하는 걸 똑똑히 봤는데 그게 죽은 게 아니라고?


그러한 의문에 바싸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개체는 소멸하겠지만, 악마라는 개념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시 태어나는구나. 어딘가에서 새로운 악마가 나타나 72의 위계를 맞춘다. 하여 서열은 바뀌지만 악마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맞습니까?”

“정확합니다.”


하... 이거 골 때리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추측이 되긴 했는데 막상 그렇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별로다.


생각해보면 악마가 없앤다고 사라지는 거였으면 신이 다 짓밟아 죽이지 않았을까 싶다.


새로운 악마가 탄생하는 한, 악마의 소탕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더 귀찮아진다고 보는 게 옳다. 언제, 어디서 나타나 속을 썩일지 모르며, 그 악마가 어떤 권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막말로 10마리 없애서 10마리 다 바싸고 같은 놈들이 태어날지도 모르는 거고.


만에 하나라도 나를 뛰어넘는 개채가 탄생이라도 하면 재미없게 되는 거다.


“그러니 죽이는 게 아니라 제약을 건다. 그게 최선이다.”

“그렇습니다. 존귀한 분이시여.”


만약 저 말이 진실이라면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훗날 팔다리를 쭉 뻗고 달기 위해서는 악마를 통제할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제약에는 어떤 수단이 있을까나...”


머릿속으로 다양한 가능성들을 계산해보았다. 그러던 중 하나의 방법에 다다랐을 때, 바싸고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붙잡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심하지 않으십니까?”

“노야. 도대체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길래 그렇게 기겁하는 건데요?”


주변에서 궁금하다는 시선을 보냈지만 바싸고는 입을 꼭 다물고 땀을 흘릴 뿐이다.


말했다간 정보고 뭐고 머리가 터져나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팔, 다리의 근육을 끊어서 보안이 철저한 연구소에 집어넣고, 밥만 잘 먹여서 목숨은 부지시킨다는 계획이 뭐가 어때서.


“자꾸 나를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데. 가만히 내버려두면 사람을 떼로 죽이는 악마들을 상대하느라 이런 과격한 방법이 나온다는 점. 명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래. 나는 나쁘지 않다.


바싸고는 고개를 주억이고는 다시 한 번 발언권을 요청했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제가 악마의 밑천을 털겠습니다. 그러니 듣고 괜찮으시다면 이 방법을 택해주시옵소서.”

“그러죠.”


겁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악마가 인간과 거래할 때 사용하는 수단을 알고 계십니까?”

“계약?”

“맞습니다.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저희 같이 초월적인 존재가 굳이 계약이라는 수단에 집착하는 것이.”


그건 그렇다. 인간은 힘이 없으니 등 좀 쳐먹는다 하더라도 아무도 뭐라 못 할 텐데 굳이 번거롭게 계약을 맺는 거니까.


“그 편이 힘을 얻기가 더 좋기 때문입니다. 안 그러면 신이 개입해서 영혼을 쏙 데려가 재활용할 테니까요.”


죽으면 천계에 가서 영혼의 심판을 받게 된다. 악마가 계약을 맺으면 그 영혼을 빼돌릴 수 있다나 보다.


“신이 이 행성에서 사라진 지금은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방식이긴 하지만. 그러한 수단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보통 그 계약은 일방적인 불공정 거래도 가능합니다.”

“불공정이요?”

“행동을 제약한다던지. 위반할 시 모든 힘을 잃는다던지.”


그 말을 들은 발레포르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노야! 지금 무얼하는 겁니까! 자기 급소를 적에게 알리는 미친 짓을 왜 하는 거냐고요!”


이번에는 바싸고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래야 저 분이 안심할 테니까. 우리를 경계하지 않고 방목할 테니까. 그것만이 우리가 살 길이니까.”


다른 악마들이 발작하는 걸 보면 아주 효과적인 방법인 듯하다.


“계속해 봐요.”

“많이 거슬리신다면 아예 지옥에서 나오지 못하도록 계약을 맺으면 되십니다. 그럼 평생 지구에 얼씬도 못하겠지요.”

“악마들이 그걸 받아들이겠어요?”


아몬을 가리키며 물었다. 놈은 지옥에 돌아가라는 소리에 발광하며 철창을 두드리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바싸고는 두 눈을 감으며 담담히 대답했다.


“그것마저 봐달라고 하는 것은 욕심이겠지요. 죽이든, 살리든 당신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거... 마음에 드네요.”


제약에 동조하는 악마들에게는 원격으로 조종 가능한 폭탄 목걸이를 채운다. 계약을 위반할 시 자연스럽게 힘을 잃도록.


반발하는 악마들은 죽인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악마에게 제약을 권유한다. 그 뒤로는 반복이다.


그렇게 폭력적인 악마들을 계속 죽이다 보면 언젠가는 72악마가 모두 제약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찾아 올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지구가 악마에게 고통받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으리라.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다.


“괜찮네요. 설마 악마들 중에도 당신 같은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도움이 되네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악마가 아무런 꿍꿍이도 없이 남을 돕는 일은 없다고 들었는데... 원하는 게 있나요?”

“아. 아닙니다.”


바싸고는 곧바로 시선을 내리깔며 부정했다. 그러나 나는 자비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를 주었다.


“진심이에요. 바싸고는 솔선수범 나를 도왔으니. 들어보고 적당한 부탁이다 싶으면 들어드리도록 하죠.”


그 사이 악마에게 현혹되었다던가 그런 건 아니다. 그들을 제약하기로 한 이상 보다 효율인 방법을 찾으려는 것이다.


포로들을 죄다 지옥에다가 쳐박으면 당연히 반응이 안 좋을 수밖에 없다. 지들끼리 툴툴거리며 뭉치기나 하겠지.


그러나 말 잘 듣는 악마들 몇에게 제한적인 자유를 부여하면 어떨 것 같나?


거절하는 악마도 있겠지, 욕을 하는 악마도 있겠고. 그러나 그 일말의 자유라도 허겁지겁 챙기는 녀석들도 존재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끝이다. 내가 따로 무엇을 안 해도 악마들이 스스로 분열할 테니.


배신자라며, 배알도 없는 개새끼들이라며 시기와 질타가 자유를 택한 평화주의자에게 향할 것이다. 일종의 욕받이라고 봐도 좋다.


나의 입장에서는 욕을 덜 먹으면서도, 제약이라는 체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저들에게 선심을 베푸는 척 기회를 주었지만 가장 큰 이득은 나에게 돌아오는 셈이지.


“실로 악... 현명한 선택이시군요.”

“하하. 칭찬 고마워요. 그래서 바라는 건?”

“할 수만 있다면 인간세계에 남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라면 절대 복종 조항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단호한 의지에 지옥이라는 곳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할 짓거리가 없기에 저렇게 매달리는지.


아니면 인간 세계가 유독 재미있는 걸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재밌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 많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안 입히고, 지구의 균형을 어그러트리지만 않는다면 그 정도는 허용해 줄 생각이 있다.


“고려해볼게요.”

“바다와도 같은 은혜를 잊지 않겠나이다.”


이제 대충 견적이 잡힌 것 같으니 세부사항만 조절하면 될 듯하다.


“자. 이제 추가적으로 몇 가지만 묻고 끝냅시다. 악마들이 지옥에서 한꺼번에 올라온 건가요?”

“아닙니다.”


답변을 들으며 미리 준비한 질문 리스트를 채워나간다.


“흠. 그럼 보통 올라올 때 어디에 가야겠다고 지역을 특정해서 올라오는 건가요?”

“그것도 아닙니다. 지옥에서는 기본적으로 지상과의 연결이 수월하지 않으니까요. 그저 어떤 분위기의 장소가 좋겠다고 대략적으로 생각하면 전이가 되는 형식입니다.”

“그렇구나. 그럼 악마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분위기 좀 말해주시겠어요?”


문답이 지속될수록 악마들의 고개가 기울어진다. 그들을 대표하여 바싸고가 물었다.


“안개가 끼는 어두운 장소,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원활하지 않아 마을 째로 집어먹기 좋은 장소를 대체적으로 선호합니다만... 그건 왜 물으시는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나는 바싸고의 대답을 받아 적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니. 악마를 죽이면 다시 살아난다면서요. 그럼 또 무작위로 지구에 쳐들어 올 거고. 그걸 언제 다 찾고 있겠어요? 그냥 한 곳에서 자동으로 리스폰 되도록 설정해두면 잡아 족치기 편하...”


시선이 느껴졌다. 악마도 그건 좀 아니지 않냐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고 있다.


“하... 하하하. 하하. 하하하.”


악마에게는 인권이 없다. 왜냐면 인간이 아니니까.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살짝 심한 발언이었던 것 같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전환했다.


그러자 분위기가 한층 더 삭막해졌다. 악마를 가축처럼 다룬다는 이야기를 한 다음에 웃어서 그런가.


아마 저들이 생각하는 이 몸의 이미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 말종 싸이코패스가 아닐까.


후우. 별로 즐거운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조성하기 나름인 법. 회사 부장님이 그러하듯 모든 유머는 권력에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곳의 최고 권력자는 다른 아닌 이 몸.


나는 웃음을 터트리며 초월자의 힘을 슬금슬금 끌어 올렸다.


“하하하하. 하하. 하하하.”


입은 웃되 눈은 웃지 않는다. 감옥에 갇힌 악마들에게 시선을 던지며 무언의 압박을 부여한다.


이윽고 감옥 내부에서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호호호호. 호호. 호호호!”


그들 중 가장 전력이 약한 시트리의 웃음이다. 그 다음은 바싸고. 노련한 악마답게 진심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흐하하하하하.”


이러면 나머지 두 악마도 버틸 방법이 없다. 눈치껏 따라 웃을 수밖에.


“흐하. 하하. 하. 하.”

“재미있군. 정말이야. 하. 하.”


그렇게 모두가 즐거운 가운데, 악마의 목에 폭탄 목걸이를 건다는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 * *


4명의 악마들에게 노예계약서... 아니 평화유지서약서를 받은 후, 오늘은 일단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숙소에 돌아가서 이곳 특산물이나 먹을까 하고 있는데 어떤 목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저기요.”


날 저기요라고 부른 시점에서 상대의 정체는 한정될 수밖에 없다.


내 부하들은 모두 나를 ‘상혁님’이라고 부르니 협회 사람들은 아닐 테고. 남은 건 원주민과 악마들.


그런데 이곳의 원주민들의 언어는 아닌 것 같으니. 악마겠지. 그것도 여자 목소리니까 시트리일 테고.


별로 구미가 당기는 대화상대는 아니다. 볼 일도 끝났는데 굳이 마주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대답 없이 숙소로 향하는데 목소리 또한 종종거리며 따라왔다.


“존귀하신 분이시여. 제가 동행을 해도 되겠나이까?”

“아니.”

“아잇 참. 차가운 것마저 멋있으신 분이라니까.”


팔에 물컹거리는 감촉이 느껴졌다. 녀석이 멋대로 다가와 달라붙은 까닭이다.


아까까지는 벌벌 떨던 녀석이 어째서 이렇게 과감하게 나오는가. 그 이유는 단순하다. 계약을 작성했기 때문에.


계약을 이행하는 한 저들을 벌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현재 시트리는 날 위해하는 것도 아니고, 권능을 남용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남자라면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고 있으니 저렇게 떳떳한 것이다.


잠시 반응을 살피던 시트리는 자신감을 얻었는지 보다 부드러운 신체 부위를 향해 내 손을 이끌었다.


“상혁님? 맞으시죠? 헤헤. 그렇게 부르는 걸 들었거든요.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상혁님께 바치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뭔데?”

“저요.”


내가 미친년을 보는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자 시트리가 너무하다며 앙탈을 부렸다.


“이래 뵈어도. 예쁘다는 소리만 듣고 산 존재랍니다. 태어나서 저보다 잘난 암컷은 본 적이 없다구요. 제가 성심성의껏 상혁님을 모실게요. 거칠게 굴려도 OK랍니다!”


확실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예쁘기는 하다. 지금껏 봐온 미인들과는 다른 유형의 아름다움이랄까. 끈적하고, 매혹적인 그런 느낌의 악마라 사람들이 홀리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나 의문을 지울 수는 없었다.


“... 왜? 뭐하러?”

“그야. 당신이 굉장히 강하니까요! 다른 누구에게 붙더라도 상혁님과 함께하는 것보다는 못할 것 같아요. 기존의 초월자랑 달리 악마를 혐오하는 것 같지도 않고. 히히.”


누가 악마 아니랄까봐 굉장히 직설적이다. 그렇다고 딱히 거절할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흠...”

“제가 진짜 잘할 게요. 네?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요!”


진지하게 고민이 되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통제할 수 있을뿐더러 장점이 명확하니까.


그 때 갑자기 들린 총성이 고민의 종지부를 찍었다.


탕!


“아코!”


시트리가 이마를 붙잡고 문질렀다. 그녀를 노리고 쏘아진 탄환이었던 모양.


악마다보니 미간에 총알이 꽂힌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조금은 타격이 있는 것 같다. 기분도 나빠 보이고.


그래서인지 고개를 획획 돌려 총을 쏜 범인을 찾았다. 범인은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썅년이 어디서 새치기를 하고 있어!”


놀랍게도 범인은 총알을 쏘고 나서도 분이 안 풀리는지 씨익씨익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총알을 한 발 더 장전했다.


탕!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탕!


“적당히 무르익을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는데!”


탕탕탕탕탕!


“그걸 니가 홀랑 빼먹을 생각을 해애애!”


그렇다. 격렬한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크리스티나였다.


그녀는 초월자와 신, 악마에 대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측근이다. 그래서 종종 소탕에 데리고 다녔는데 방금의 대화를 우연치 않게 들었던 모양이다.


시트리도 명색이 상위위계의 악마이니만큼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게?!”


그러나 돌아오는 건 더욱 거센 총탄 뿐이었다.


탕탕탕!


“이게 뭐! 뭐! 어차피 계약인가 뭔가 해서 힘도 못 쓴다며! 뭐!”


역시 지혜에 재능이 있는 여자답다고나 할까. 아마 누울 자리가 아니었다면 발도 뻗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화를 낸다는 건 이길 자신이 충만하다는 증거.


악질 계약에 묶여버린 시트리는 결국 맞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야! 선택은 상혁님이 하시는 거거든? 못생긴 게. 딱 봐도 미숙해 보이는데. 그래서 상혁님이 선택을 하시겠니?”

“모... 못생긴? 못생긴?”


못생겼다는 말을 태어나서 처음 들은 크리스티나는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나는 잠시 멈춰 이빨을 세우는 두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 쪽은 모든 남자를 매혹시킬 수 있다는 악마요. 다른 한 쪽은 인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재능을 타고났으니.


어느 쪽이 더 예쁘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래도 굳이 취향을 따지자면...


“상혁님?”


크리스티나의 차가운 음성이 상념을 깨트린다.


기본적으로 내가 그녀에게 잡혀 산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아무런 관계도 아닌데 내가 왜 눈치를 본단 말인가.


그런데 지금 상황만은 예외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분야도 아닌 외모가 걸린 문제였으니까. 안 그래도 여성에게 미모는 중대한 사항인데, 하물며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여성에게는 어떻겠는가.


남자가 그러하듯, 여자에게는 때로는 물러설 수 없는 전장이 있는 법이다.


평소였으면 장난이라도 쳤겠지만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니다.


내 진의가 어떠하든 지금은 그녀의 체면을 세워줘야 할 것 같다. 누가 뭐래도 고생하는 내 수하였으니까.


“시트리. 당신의 제안은 거절할게요.”

“상혁님? 어째서!”

“왜긴요. 우리 크리스티나가 더 예쁘니까 그렇죠. 굳이 당신까지 필요할까 싶네요.”


반응은 엇갈렸다. 시트리는 털썩 주저앉았고, 크리스티나는 상기된 얼굴로 내게 온갖 감정을 쏟아내는 중이다.


반쯤은 강제로 얻어낸 답변이면서 예쁘다는 말이 그렇게 좋을까.


뭐. 그래도 실제로 크리스티나가 어디 가서 꿀리는 얼굴은 아니긴 하다.


“크리스티나. 가면서 확인 안 된 악마들의 현황을 보고받고 싶은데요.”

“물론 숙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상세하게 보고 드리도록 하겠습니당. 오호홍.”


그녀는 은근슬쩍 내게 팔짱을 끼우며 몸을 붙였다.


사전에 논의가 안 된 사항이지만 이왕 면을 세워주는 김에 끝까지 어울려주기로 했다.


크리스티나는 헤벌쭉 미소를 짓더니 시트리에게 차갑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바빠서 가보겠습니다. 추녀 악마님.”

“...”

“대답이 없으시네요. 인간한테 우호적이셔야 한다면서.”


빠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드르그십쇼.”

“호호호. 알았어요. 그쪽도 들어가요. 추녀 악마님.”


그 뒤 크리스티나는 상쾌한 표정으로 나를 붙들고 숙소로 향했다.


잠시 후 저 멀리에서 벼락이 치는 듯한 절규가 들려왔다.


“추녀! 추녀어어어! 두 번이나아악! X발 계약 개 좆같네!”


아무래도 시즌 1호 계약 위반자는 아무래도 시트리가 될 것 같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날이 갑자기 추워졌습니다! 독자님들 모두 따뜻하게 입고 다니셔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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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구원자 22.12.30 228 5 23쪽
198 북쪽 전선 22.12.29 220 4 21쪽
197 검정 상혁과의 만남2 22.12.29 226 5 22쪽
196 검정 상혁과의 만남 22.12.28 232 5 18쪽
195 고3의 숙명 22.12.27 234 5 17쪽
194 사랑의 형태 22.12.24 245 4 19쪽
193 사랑과 전쟁 2 22.12.23 233 5 22쪽
192 사랑과 전쟁 22.12.22 238 5 19쪽
191 흑역사 박람회 22.12.21 246 5 18쪽
190 차원의 틈 22.12.20 222 5 18쪽
189 참교육 22.12.17 236 5 17쪽
188 주제파악 22.12.16 229 5 19쪽
187 힘을 숨긴 찐따?가 되다 22.12.15 248 5 22쪽
186 졸업, 입학 22.12.14 252 5 15쪽
185 관측 22.12.13 267 5 18쪽
184 악마와 함께하는 제주도 투어 22.12.10 258 5 18쪽
183 바엘 22.12.09 231 5 20쪽
182 제주도 현장학습 22.12.08 253 5 25쪽
181 샌드백 필요 22.12.07 26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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