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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309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20 22:00
조회
221
추천
5
글자
18쪽

차원의 틈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90화



“맞아. 나 너 비웃고 있어.”


갑작스러운 폭로였지만 현규는 곧바로 반응했다. 주먹을 불끈 쥐고 울분을 담아 상혁을 향해 내지른 것이다.


그러나 주먹은 제대로 나아가기도 전에 상혁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아무리 용을 써도 꼼짝도 안했다.


그 상태에서 상혁은 서서히 가까워지며 입을 열었다.


“솔직히 그렇잖아. 상대의 기량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따라가겠다고 빨빨거리다가 망신만 당하고 개같이 퇴장하는 거. 너라면 안 웃기겠어?”

“이 개새끼가!”

“개새끼? 내가 왜 개새끼야. 내가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다가 모욕을 준 거야? 아니잖아. 나 싫다고 개수작이나 부리는 애들 벌주는 게 잘못인가?”


현규는 할 말을 잃었다. 따지고 보면 상혁을 업신여긴 것도 그였고, 먼저 꿍꿍이를 꾸민 것도 현규였으니.


“그러니까 겸손하게 좀 살지 그랬어. 아니면 공부에나 치중하면서 살던가. 왜 잘나간다고 콧대가 높아져서는 이렇게 사고를 치고 다녀?”

“... X발.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현규는 손을 뿌리쳤으나 상혁에게 잡힌 손은 꼼작도 안 했다.


“뭘 알았다는 건데? 확실히 말해봐.”

“니가 나보다 잘났다는 사실 잘 알겠다고 개X끼야. 이제 속이 시원해? 그러니까 그만 좀 해!”


이 정도로 험한 꼴을 겪으면 인정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현규는 상혁이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천재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여전히 손은 붙잡힌 상태였다.으득. 잡힌 손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현규는 신음을 흘리며 애원했다.


“인정했잖아! 이제 그만하자고!”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또 뭔데!”

“어차피 이대로 풀어주면 또 못되먹은 짓거리를 계획할 텐데, 우리 멀리 돌아가지 말자고.”


남우리 중학교에 쏟아지는 혜택이 박상혁 때문임을 알았을 때 현규와 아이들은 반발했다.


자신들의 실력도 박상혁 못지않다면서. 부당한 대우라면서.


그런데 그런 놈들이 실력으로 꺾였다고 해서 얌전히 발을 닦고 잠이나 잘까?


실력이야 인정하겠지. 그런데 이제는 실력과 상관없이 흉계를 꾸밀 것이다.


뭐 깡패들을 고용해서 상혁을 밟으려 한다거나.


상혁을 불러내 놓고 그동안 승윤이를 납치해 음험한 욕구를 채우려 한다거나.


참고로 상혁의 측근 중에는 미래를 보는 악마 바싸고가 존재한다. 그러니 상혁의 예측이 빗나갈 일은 없다.


“아서라. 봐줄 때 그만해.”

“봐 주기는 개뿔.”

“니가 누구를 데려와도 내게 아무런 해코지를 하지 못할 테니까.”


탕!


시끄러운 소음과 함께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주변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모래사막으로 변해 있었다.


현규가 어버버거리며 중얼거렸다.


“방금까지는 차 안이었는데.”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상혁은 현규의 멱살을 붙잡고 사막을 거닐었다.


탕! 타당!


모래사장에 숨은 저격수들이 그들을 향해 발포했다.


“야! 뭐해! 뛰어!”


현규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상혁은 여유로웠다. 여유롭게 걸으면서도 총에는 단 한 발도 맞지 않았다.


“너는 모르겠지만 내가 유명해진 뒤부터 나를 견제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 주로 테러리스트, 신생 비밀단체 뭐 그런 거지.”

“으아아아! 사람 살려! 살려줘!”


상혁은 시끄러웠는지 현규를 멀리 내던졌다. 그는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총을 든 전사들 앞에 쏙 착지했다.


“흐어엉엉엉. 살려줘.”


눈앞이 깜깜해졌다. 전사들이 손가락을 까딱하기만 하면 현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그는 오줌을 싸는 것도 모르고 뒷걸음질을 쳤다.


툭.


등에 무언가가 닿았다. 상혁이다. 상혁은 까무잡잡한 사람들이 총을 겨누는 데도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봐. 이런 사람들이 나를 노리는데도 난 멀쩡해. 그런데 고작 일진이나 깡패 조금 고용한다고 무슨 일이 있겠어?”

“알겠어! 알겠다고. 안 할게! 그러니까 도망을!”


복수를 계획하던 생각 따위는 이미 내던진지 오래였다. 만약 상혁의 근처가 이렇게 위험한 줄 알았다면 현규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다당!


전사들의 총구가 다시 한 번 불을 뿜었다.


“끼야아아악!”


상혁은 천천히 발을 들었고 그대로 모래사장으로 찍어 눌렀다.


쿠우웅!


아무리 기다려도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현규는 조심스레 눈을 떴다. 그곳에는 모래사장뿐이었다.


“초초총을 든 사람들은?”

“없앴어.”

“누가.”

“여기 너랑 나 말고 누가 있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황량한 모래, 선인장이 전부였다.


“너... 뭐야?”

“네 생각보다 더 똑똑하고 강한 사람.”

“아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강하고 자시고 발 한 번 굴렀다고 총 든 사람들이 사라지고 그런다고?”

“응.”


교환비가 안 좋았다. 현규는 기이한 광경에 긴 말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고, 상혁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처럼 간단히 대답했다.


“너 뭐 전투민족 그런 거야? 아니면 사이보그? 외계인?”

“아니. 인간이야.”

“지랄.”

“하긴 몇 명이 달려들어도 아무도 나를 못 이길 텐데. 그런 존재를 인간이라고 칭하기는 힘들 수도 있겠네.”


현규의 입이 벌어졌다. 고작 14살 꼬맹이가 지구 제일을 주장하고 있으니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상혁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불길한 미소를 지었다.


“못 믿나보네?”

“...”

“그럼 믿게 해 줄게. 어차피 9박 10일 일정이었잖아?”


상혁은 손뼉을 쳤고 주변 환경이 다시금 변화했다. 이번에는 어두운 도심이었다.


“뭐, 뭐야! 여긴 또 어디지?”

“음. 상하이 부근이었던 거 같은데. 이곳에도 나를 노리는 녀석들이 도사리고 있거든.”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총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해!”

“총은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현규의 머리를 잡아 바닥에 쳐박았다.


“악! 드디어 나를 죽이려는 거구나!”

“그럴 거였으면 아까 죽였지.”


날카로운 칼 하나가 현규의 머리가 있던 곳을 베고 지나갔다. 가만히 있었다면 틀림없이 잘렸을 것이다.


“말했잖아. 총은 없다고.”

“흐으익! 총이나 칼이나! 사람 살려!”


이번에도 현규는 킬러들의 타겟이 되었다. 사방에서 피와 칼부림이 난무했고 현규 또한 난도질을 당하려는 찰나 상혁이 손을 뻗었다.


쿵.


이번에도 손짓 한 번에 무기를 든 킬러들이 나가 떨어졌다. 현규는 더 이상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집에... 보내 줘. 내가 잘못 했어.”

“한곳만 더.”


상혁은 싫다는 현규를 질질 끌고 걸었다. 몇 걸음을 걷자 주위의 환경이 또다시 달라졌다.


기이한 곳이었다. 세상의 여러 장소를 조각내어 한 곳에 이어붙인 것만 같은. 뒤틀린 장소였다.


보는 것만으로 정신이 아득해지며, 오금이 저려왔다. 현규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


“여기는... 어디야?”

“차원의 틈. 요즘 수련하는데 사용하는 곳이야.”

“나는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네가 왜 이런 곳에 나를 데려온 건지도 모르고.”


평범한 중학생은 이해를 못하는 게 당연하다. 애초에 이 장소에 들어올 수 있는 개체 자체가 손에 꼽으니까.


그럼에도 상혁이 현규를 이곳까지 데려온 이유는 간단하다.


“보여주고 싶었어. 왜 내가 학교에 안 나오는지. 남우리 중학교에 코빼기를 안 비치는지. 오래 기다린 너라면 알 권리가 있을 것 같아서.”


상혁은 현규의 이해 여부와 상관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다른 초월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초월에 대한 개념을 연구했어. 정말 방대한 개념이었지. 마음 같아서는 몇 년이고 연구에만 몰두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내가 당장 필요한 정보는 단 하나. 초월한 상태에서 또 한 번 초월하는 법이었어.”


상혁이 손짓하자 허공에 별무리와 같이 반짝이는 연구 자료가 떠올랐다.


“초월을 초월한 존재는 보통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뉘어. 성장에 한계가 없는 자. 능력을 각성할 때부터 무지막지하게 강한 자.”


그의 표정은 지성집단 속에서 회의를 이어갈 때보다 즐거워보였다.


“나는 아직 성인이 아니니까 전자에 해당될 수도 있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오래 기다릴 시간은 없어서 말이지. 그래서 현재 가진 능력의 강화를 시도해보기로 했어. 다행히도 축으로 삼을만한 게 있더라고. 단 하나 남은 씨앗.”


상혁은 심장을 콕 찌르며 킬킬거렸다. 그 속에 박힌 이물질은 매 번 상혁에게 뛰어난 힘을 안겨주곤 했다.


“이 능력의 골자는 강화란 말이야. 그렇다면 ‘정점의 DNA’라는 능력 자체도 강화를 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거지.”


현규는 멍을 때리기 시작했다. 어차피 알아들을 수 없으니 멘탈을 챙기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리라. 다행히 자비로운 상혁은 딴 짓을 용납해주었다. 아니 애초에 기대조차 안 한 건가.


“쉽지는 않았어. 모체로부터 파생된 능력이 모체를 강화시킨다는 거니까. 격이 안 맞을 수밖에 없지. 그러나 두뇌는 쉬지 않고 가능성을 탐구했어. 다른 초월자들의 사례를 참고하여 뭐라도 활용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 그리고 결국 성공했어.”


상혁의 손짓에 허공에 불그스름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커다란 보석과도 같은 심장이었다.


증기를 내뿜는 용암이 심장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심장을 달구고 녹여내며 용암이 깃들 환경을 조성하는 중이다.


“운이 좋았지. 다른 초월자들에 대한 정보, 무한을 측량할 수 있는 연산능력, 불가능을 가능케 만드는 행운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야.”


상혁은 잠시 눈을 감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몇 번을 회상해도 기적적인 순간이었다.


“따지고 보면 신이 도와준 셈이나 다름이 없지. 마지막 하나 남은 DNA를 다시 미개봉 상태로 돌려준 거니까. 덕분에 이제 신이랑 같은 경치를 볼 수 있게 되었어.”


신이라는 단어는 직관적이다. 멍을 때리고 있는 현규조차도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였다.


“... 신?”


현규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짚어봤다. 차에 탔는데 사막에 도착한 건이며, 총이나 칼을 손짓 하나로 물리친 일을 생각해보면 상혁을 신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 같았다.


이 차원의 틈이라는 공간 또한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공간이었으니.


상혁은 그 눈빛을 느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신이 되었다는 건 아니고. 이제 될 거라고. 나도 바로 진화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하다고 그러더라. 몸이 감내할 수 있게 조정을 하는 중이라나.”


초월에 이른 육체를 찢어발길 수 있는 힘이라고 한다. 상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아 글쎄 여파가 얼마나 강한지 막 차원의 틈이 부서지고 찢어지더라니까? 자 봐봐.”


상혁이 한 공간을 가리켰다. 그러자 눈이 여럿 달린 괴생물체가 차원을 찢고 튀어나왔다.


“우와아아아악!”

“저건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생물체야. 대화도 안 통하고 파괴를 일삼는 게 꼭 악마 같은 거 있지? 걔들 막느라 지금까지 등교를 미룬 거야. 이제야 좀 수습이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아직 남았잖아! 이건 뭔데!!!”


현규는 차원의 틈을 뛰어다녔다. 타 차원의 생물체가 당장이라도 현규의 엉덩이를 뜯어먹을 것만 같았다.


“걔는 잔챙이야. 별로 유해하지 않아.”

“유해해! 잔챙이한테 죽게 생겼으니까 제발 좀 도와줘어어어어!”

“그러지 뭐.”


상혁이 손가락을 퉁기자 타 차원의 생명체가 모습을 감추었다.


현규의 바지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이미 수차례 지렸기 때문에 축축함에 익숙하다는 것.


현규는 더 이상 상혁을 탓하지 않았다. 욕하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런 현규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 좀 이야기 할 준비가 된 것 같네. 자 그동안 나를 따라다니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았지?”


현규는 생각을 통제했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박상혁은 초월적인 힘으로 남을 괴롭히는 양아치’라는 생각이 들 것만 같았으니까.


만약 상혁이 정말 신이라면 불경한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목숨이 위험할 수 있었다.


현규는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벼락이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 내가 뛰어난 건 사실이야. 그런데 하루아침에 힘을 가지게 된 건 아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몇 번이고 죽을 뻔 했으니까. 그렇다고 힘을 얻은 다음이 편했냐 하면 또 그건 아니야. 하기 싫어도 여러 일에 자꾸 휘말리고 바쁘다고. 물론 너는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너무 고까운 눈으로 보지는 말라는 소리지. 각자 나름의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


현규가 아무리 자신의 재능의 총량을 높이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상혁은 아무리 자신의 책임을 덜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적어도 아무런 고생 없이 재능충으로 태어나 잘 먹고 잘 살지는 않았다는 것. 상혁은 그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쪽 일도 거의 다 정리 되어서 한동안은 학교에 나갈 거야. 그런데 너희와 얼굴을 붉히고 싶지는 않아. 세상을 뒤엎을 힘을 가졌는데 중학생 상대로 힘자랑을 하는 것도 조금 그렇잖아?”


이미 충분히 힘자랑을 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중요한 자리에서 쪽팔림을 겪었으며, 수많은 사선을 넘어야 했지만 직접적인 피해는 전혀 없었으니까.


상혁이 마음만 먹었으면 이미 현규의 머리에 바람구멍을 몇 개 추가적으로 개통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히 배려를 해 준 셈.


현규는 사실 간접적인 피해가 직접적인 피해보다 더 아픈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리고 일찍 상혁의 뜻을 깨닫지 못한 자신을 탓했다.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 편했다.


“반성했어. 앞으로 그러는 일은 없을 거야.”

“그래. 이왕이면 겸손하게 다른 사람도 좀 인정하고. 착하게 자기를 가꾸면서 살자.”

“노력할게.”


이것으로 상혁의 계획은 모두 끝이 났다. 그는 어른스럽게 문제를 해결했다며 자신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규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집에는 언제 보내주는 거야?”

“아. 집. 금방 도착할 거야.”

“도착이라니? 난 가만히 있는데?”

“걱정하지 말어.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테니까. 영 불안하면 눈이라도 감고 있던가.”


현규는 곧바로 눈을 감았다. 한 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도대체 언제 상혁이 말한 때가 되는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앞으로 쏠렸다.


“으허어어억!”


다시 눈을 뜨니 눈에 익은 등받이가 보였다.


“여긴...”

“도착했습니다. 현규 군.”

“어딘데요?”

“잠이 깊게 드셨던 모양입니다. 회의장에서 나오신다고 해서 제가 모셔다 드리지 않았습니까.”

“아...”


기억이 떠올랐다. 그는 회의장에서 수모를 겪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데려다준다는 소리에 차를 탔고, 상혁을 만났는데.


혁규는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꿈인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아니 꿈이 맞긴 한 걸까? 그렇게 생생했는데?


그러나 곰곰이 따져보면 꿈이 아니고서야 벌어질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14살 중학생이 신이라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안 내리십니까?”

“아. 내릴게요. 감사합니다.”


현규는 엉거주춤하게 차에서 내렸다. 찬바람을 마시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듯하다.


그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그러다 회의장에서 적은 메모를 발견했다.


‘박상혁을 박살낼 서른 가지 방법.’


아직 마음을 고쳐먹기 전에 적었던 메모다. 그러나 선뜻 버리지 못했다.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수치를 당했는데 감정의 여파가 남아 있는 게 당연하다. 상혁을 무릎 꿇릴 수 있다면 통쾌한 기분도 들리라.


그러나 현규는 메모를 찢어 휴지통에 털어 넣었다.


방금 꾼 꿈 때문일까. 더 이상 복수를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중요한 심지가 부러졌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불길이 속에서 솟구쳐도 불이 크게 번지지는 않았다.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상혁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제 복수도, 찌질했던 사랑도, 엘리트 놀이도 때려치우고 아주 오랜만에 본연의 자신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렇게 기지개를 피며 새로운 삶을 맞이하려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상혁 – 좋은 선택이야.’


몸이 움츠러들었다.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뛰었고 등줄기에는 소름이 돋았다.


쪼르륵.


정신을 차려보니 현규의 바지가 오줌으로 물들고 있었다.


꿈이 아니었다는 놀라움보다, 좆될뻔 했다는 식겁함이 크게 남았다. 만약 잘못된 선택을 했더라면 다시금 그 이상한 공간으로 끌려갔으리라.


그리고 두 번의 기회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꼴을 겪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현규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바른 선택을 했기에 떳떳할 수 있었다.


바지를 적시기는 했지만 충분히 감내할만 하다. 그는 어기적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차 경적 소리가 그의 발을 붙들었다.


빵! 빵빵!


현규가 타고 온 차량이다. 뭔가 두고 온 게 있나 싶어 돌아가니 운전기사가 바지와 수건을 내밀었다.


“상혁님께서 보내시는 선물입니다. 필요할 거라고 하시더군요.”

“... 감사합니다.”


현규는 감사히 선물을 붙들고 공원 화장실로 향했다. 축축했던 바지를 벗고 뽀송한 바지를 입으니 정말 새로 태어난 것만 같았다.


마음도 후련했다. 친하게 지내면 이렇게 좋은데 왜 싸울 생각을 했는지.


현규는 다시는 까불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며 집으로 돌아갔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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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원의 틈 22.12.20 222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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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주제파악 22.12.16 228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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