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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300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08 22:00
조회
252
추천
5
글자
25쪽

제주도 현장학습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81화



“우와아아아! 비행기다!”

“애들아 배웠던 대로 얌전히 앉아있자! 뛰어 다니면 위험해!”


비행기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 신나게 공항을 뛰어다니고. 그 뒤를 공아린 선생님이 허둥지둥 쫓고 있다.


시간이 지나도 영원히 1학년인 것만 같은 학급의 모습에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이제야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제주도로의 현장학습은 New-박상혁의 학급생활에 훌륭한 시작점이 되어주리라.


“성욱 쌤. 2반 일정이 어떻게 되었죠?”

“애월 쪽 박물관에 갔다가 근처 흑돼지 가게에서 어린이 정식을 먹고. 오후 행사는 1반이랑 같이 돌기로 했는데... 어디로 가기로 했더라?”


각 반을 맡은 선생님들은 출발 직전까지 일정을 확인하고 있다.


다들 실력이 뛰어난 교사였지만 제주도로 현장학습을 나간 경험은 없어서 그런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그들 틈에서 근엄하게 서 있던 교장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허허. 상혁 군 덕분에 모두가 즐거워 보이는 군요.”

“에이. 비행 편, 숙박, 음식, 레저까지 모두 제가 결제를 했다고 하지만 그게 어떻게 제 덕분이겠습니까. 교장 선생님 덕분이지요.”

“...”

“아. 그거 아시나요? 학교 전체가 제주도로 현장학습을 가는 건 저희 삼길초가 처음이래요! 시대를 앞서나가는 최고의 초등학교라고 기사도 나왔던데.”


인자한 교장 선생님의 표정이 흔들렸다. 이걸 농담으로 받아들일지, 다른 뜻을 담고 있는 건지 고민이 되는 모양.


나는 어린애다운 미소를 띄우며 농담임을 밝혔다.


“이렇게 말이 많아진 걸 보면 저도 들떴나 봐요. 교장 선생님도 그러시죠?”

“그럼요. 물론입니다. 허허.”


기대가 안 될 리가 없다. 초월의 영역에 이른 행운의 DNA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여행지다. 분명 즐거운 현장학습이 될 것이다.


선생님들을 위한 골프, 테니스, 피부미용 투어도 준비되었으니. 학생과 선생이 모두 즐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상혁아! 뭐해! 빨리 와!”


승윤이 손을 파닥거리며 나를 부르고 있다. 역천사에 몇 달 간 가만히 있다가 오랜만에 나오니 기분이 좋은 모양.


그 모습이 퍽 보기 좋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옆자리로 향했다.


* * *


우리들을 실은 비행기는 무사히 제주도에 도착했다.


당연한 결과다. 운명의 억지 개입이 사라졌으니 앞으로는 어이없는 사고가 발생하는 일은 없을 터.


언제 비행기가 떨어질지 가슴을 졸이는 일은 이제 바이 바이다.


3반 애들이 모두 내렸음을 확인한 아린 쌤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 이제 어디부터 갈까?”

“... 저한테 물어보시는 거에요?”

“그럼! 학생이 나보다 뛰어난데 고집을 부리고 싶지는 않거든.”


얼핏 떠넘기는 걸로도 보이지만 아린 쌤은 진심이었다.


내가 계획을 짜는 것이 학생들에게 더 뜻깊은 경험이 되리라고 진정으로 믿는 것이다.


실제로 선생님의 생각은 타당하지만. 아무리 학생이 뛰어나다고 해서 이렇게 전폭적으로 밀어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무시하고 견제하거나, 아니면 주눅이 들기 십상인데 역시 내가 인정하는 참 교육자답다고나 할까.


반 친구들 쪽을 확인하니, 안 그래도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좋다. 이것도 위에 서는 자의 숙명이겠지.


몇 년간 초등학생으로 지내며 꼬맹이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파악해둔 바 있다.


한라산? 성산일출봉? 애들은 등산의 즐거움을 모른다. 다 올라서 경치를 구경하기도 전에 싫증이 날 게 뻔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나쁘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소모시키기엔 터무니없이 정적인 장소다.


처음으로 향하는 곳은 단순하면서도 임팩트가 있고, 동시에 아이들이 지칠 때까지 뛰어 놀 수 있는 장소여야 한다.


그러니 첫 행선지는.


“첫 행선지는 해수욕장! 바다에서 놀자!”

“이예에에에!”


힘찬 환호성과 함께 우리들은 백사장으로 이동했다.


“우와아아아! 물이 너무 예쁘다!”

“앗! 짜! 애들아 이거 먹어봐!”

“흐헤헤. 발이 푹푹 들어간다~ 이거 뭐야!”


예상대로 애들은 방방 뛰며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쓰레기 하나 없는 새하얀 백사장과 하늘의 색을 빼다 박은 푸른 바다. 확실히 부하에게 들은 대로 아름다운 장소였다.


“3반! 물에는 들어가면!”

“돼~ 즐겁게 놀아~”


하려던 말을 인터셉트 당한 아린 쌤의 눈이 커졌다.


“앗싸! 나 헤엄칠래!”

“아니! 애들아 잠깐!”


그녀는 바다에 뛰어 들어가는 애들을 잡아보려 했지만 이미 고삐가 풀린 망아지들이었다.


아린 쌤이 다급히 내 어깨를 두드렸다.


“상혁아! 애들 좀 멈춰봐! 바다는 위험한 곳이야! 파도에 휩쓸리기라도 하면 큰일 난다고!”


나는 느긋하게 뒷짐을 지고 손가락을 퉁겼다. 손끝에서 일어난 파동이 주변의 대기와 공명하며 바람을 소멸시켰다.


우리가 있는 해수욕장만 바람 한 점 없는 날씨가 형성되었다. 파도는 바람에 따라 자연스럽게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이 정도면 5학년들이 즐기기에 아무런 무리가 없으리라.


나는 천연덕스러운 미소로 아린 쌤에게 반문했다.


“파도요? 괜찮은 거 같은데?”


그러나 그녀는 아직 마음을 놓지 못한 듯하다.


“상혁아. 바다 밑 모래는 평평하지가 않아서 갑자기 발이 확 빠지기도 하거든? 저러다가 애들이 사라지기라도 하면...”


나는 발을 살짝 들어 올렸다가 해변을 향해 내리찍었다.


지상에서는 측정할 수 없는 힘의 흐름이 땅을 타고 이동하며 해변의 구조를 바꿔놓았다.


걱정이 많은 아린 쌤의 손을 잡고 해변으로 이끌었다.


“여기 해변이 진짜 낮대요. 어딜 가더라도 애들 다리보다 수면이 높은 곳은 없을 거에요.”

“그럴 리가... 있네? 어라? 이런 해변이 발생할 수 있던가?”


아린 쌤은 직접 바다에 들어가 주변 땅들을 모두 밟아본 다음에야 이곳이 안전한 곳임을 인정했다.


자연산이다 뿐이지 어린이 풀장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정말이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기는 해. 그래도 혹시 모르니 라이프 가드 한 명 정도는...”

“어? 저기 있는 사람 아니에요? 빨간색 옷을 입었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녀가 계속 불안해 할 것 같아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부하를 호출했다.


이걸로 아린 쌤도 안심하고 현장학습을 즐길 수 있으리라.


“이제 괜찮은 것 맞죠?”

“그래. 평상시라면 반대했겠지만 이곳에서는 놀아도 괜찮을 것 같아. 애들에게는 좋은 일인데... 이상하리만큼 경우가 좋은 것 같지 않아?”


물론. 실제로 딱 놀기 좋게끔 환경을 구성해 놓은 것이니.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다.


아린 쌤도 빨리 적응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앞으로 있을 제주도 탐방도 지금과 같이 상식을 뛰어넘는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 애들의 상식이 크게 엇나가지 않도록 놀이를 끝마치고 따로 교육할 필요는 있겠지.


수영을 못하면 튜브를 착용해야한다거나,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운동을 해야 한다거나.


그러나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 된다. 초월자와 함께하는 제주도 투어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 * *


“으으으. 상혀가... 추어.”


물놀이를 신나게 즐긴 승윤이는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몸을 떨었다. 아닌 척 하고 있지만 지훈이나 광언이도 마찬가지.


3월은 물놀이를 즐기기엔 살짝 추운 날씨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애들을 인솔하여 샤워장으로 향했다.


“여기 샤워장 있으니까. 씻고 오자.”

“엥. 방금까지 물에 있었잖아!”

“저건 소금물이라서. 안 씻으면 따가워.”

“옷은?”

“내가 준비해뒀어. 현장학습 기념 단체 티.”


단체 티라는 말에 애들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다.


“와! 우리 단체 티 오랜만이다. 그치! 운동회 때 입었는데.”

“맞아! 맞아!”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준비한 보람이 있다.


가진 것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이 들었지만, 애들이 기뻐하는 모습은 명품이라도 받은 것만 같은 기색이다.


나의 기쁨 또한 명품을 샀을 때보다 더 충만하고.


돈은 얼마나 쓰느냐 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다시금 실감한다.


“상혁아! 금방 갔다 올게!”

“천천히 꼼꼼히 씻고 와.”


애들이 몸을 씻는 사이. 나는 식사를 준비하기로 했다.


메뉴는 해물라면. 제주도에 오면 꼭 한 번은 먹어야 한다는 명물을 아이들에게 대접할 생각이다.


신나게 놀다가 샤워를 하고 노곤해졌을 때 먹는 뜨끈한 라면이다. 거기에 게, 전복, 문어 등 초호화 토핑이 들어간다면?


크으. 상상만으로도 뻑 예아가 절로 나오는 추억거리 완성이다.


조리는 근처 가게 주방을 빌리기로 했다. 하루 치 매상을 미리 챙겨드린 결과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아린 쌤이 아이들이 앉을 자리를 세팅하는 동안. 나는 재료들을 구해오기로 했다.


행선지는 수산시장이 아닌 바닷가. 이왕이면 생생한 재료들이 더 맛있지 않겠는가. 잡을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고.


행운의 DNA를 활성화시킨다. 미간에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나를 감싼다.


이제 이곳에서 내가 벌이는 일을 그 누구도 목격하지 못할 것이다.


주위를 한 번 확인하고, 파도가 밀려오는 바다를 향해 발걸음을 떼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이미 모래사장은 수면 아래에 가라앉았지만 내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다섯 걸음, 열 걸음, 서른 걸음. 이미 내 키보다 깊은 위치에 도달했지만 나는 거리낌이 없다.


어차피 나는 바다 위를 걷고 있으니까.


유명한 기적 중 하나지만 의외로 어렵지는 않더라. 내 무게를 견뎌낼 에너지를 발밑으로 방출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속도를 높여서 내륙이 안 보일 정도까지 멀어진 뒤, 무형의 기운을 바다 아래로 끌어내렸다.


파동의 형태를 한 기운들이 해저 생태계에 대한 정보를 내게 보고한다.


직접 들여다보지 않아도 어떤 생물이 어디에 사는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래서 손을 뻗었다. 보이는 것과 실제의 위치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멀리 있다면 가까이 끌어오면 되는 것이니.


손의 동작에 바다가 연동되어 움직이기 시작한다. 마치 구역을 재배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때로는 갈라지고, 휘몰아치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주변에 끌어 모았다.


3분 동안의 격렬한 재배치가 끝났을 때. 원래는 한 곳에 있을 리가 없는 해산물들이, 정말로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들을 주섬주섬 주워 담아 다시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놈 참 실하고만.”


행운의 DNA가 센스 있게 살이 꽉 찬 녀석들로만 골라왔다. 개 중 어떤 녀석들은 기품마저 느껴지는 것이, 바닷속을 거느리던 영물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지금은 훌륭한 영양소에 불과하죠.”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 준다니. 아마 녀석들도 행복하게 몸을 바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산더미 같은 해산물을 들고 오자 아린 쌤이 화들짝 놀라 나눠 들어주었다.


“상혁아! 이렇게 많이 사올 거면 같이 가자고 그러지 그랬어!”

“괜찮아요. 저 힘세요! 그리고 근처까지는 시장 아저씨가 태워다 주셨어요!”


알통을 만들어 보이자 그녀가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내가 힘이 세다는 말 보다는 시장 아저씨가 데려다주었다는 말을 믿은 거겠지.


아린 쌤의 관심은 곧바로 해산물로 이동했다.


“이야.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네? 어디서 이런 신선한 애들을 구해온 거야?”

“바닷속...”

“바닷속? 어디 어선에서라도 사온 거야?”

“‘바닷속’이라는 가게가 있더라고요. 그 집 물건이 실하고 좋아요.”


농담 반 진담 반을 건네자 아린 쌤은 그게 뭐냐며 내 어깨를 두드리셨다.


반응이 재미있는 선생님이다. 직접 잡는 모습을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선생님! 저 다 씻었어요!”


슬슬 애들이 나오기 시간인 듯하다. 거품을 제대로 닦지 않은 녀석들이 태반이었기에 아린 선생님이 달려가서 수건으로 머리를 닦아주었다.


“쌤. 그럼 저는 라면 만드는 거 도와드릴게요?”

“아. 아는 주방장님들이 오신다고 그랬지? 선생님이 도울 건 없을까?”

“괜찮아요. 애들이랑 있어주세요.”


지금부터 주방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편이 좋을 테니까.


“읏차. 그럼 시작해 볼까?”


팔을 걷어붙이고 재료 손질에 들어갔다.


구색을 맞추기 위해 부하 몇을 부르긴 했지만 그들은 그릇을 세팅할 뿐. 감히 주방에 발을 들이지 못했다.


이곳의 셰프는 바로 이 몸. 지금부터 해물 라면은 내가 집도한다.


커다란 냄비 다섯을 가스레인지에 올린 뒤 물을 끓인다.


서른 개를 동시에 끓이기엔 장소가 협소하고, 하나씩 주기에는 친구들의 불만이 걱정된다.


설마 꼬맹이들처럼 왜 나는 안 주냐고 드러눕지는 않겠지만, 이왕이면 이번 현장학습은 모두가 웃으며 즐기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일말의 불만도 남기지 않을 예정.


큰 냄비에 6개씩 끓이면 동시에 내주는 것이 가능하다.


면이 불지 않겠냐고? 맛을 내기가 어렵다고? 공정하게 분배는 또 어떻게 해?


불가능해 보이겠지.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나. 초월 셰프 박상혁.


물이 끓는 동안 파와 마늘을 잘게 썰어 국물을 낸다. 동시에 물을 받아 해산물들의 소금기를 제거한다.


바다의 맛? 좋지. 그런데 이는 재료 본연의 맛으로도 충분하다. 괜히 게 국물! 문어 국물! 이러면서 라면 국물에 넣었다가 짜고 비리기만 하다.


기다렸다 물이 끓으면 스프와 면을 빠르게 투하한다.


서른 개나 넣다 보니 처음 넣은 면은 불고, 마지막 넣은 면은 설익기 십상이다. 천수관음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


나는 허공에 라면 봉지를 던지고 손을 한 바퀴 휘저었다.


얼핏 보기에는 느린 움직임으로 보이겠지만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 반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봉지를 뜯고, 면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스프를 투하한다. 아주 빠른 움직임이 허공에서 누적되며 잔상을 남기는 것이다.


극에 이른 빠름은 오히려 느림과 다름이 없다. 이는 내가 초월의 영역에 이르며 새롭게 얻은 깨달음이자 미학이었다.


이를 라면을 끓이는데 쓰다니 다른 초월자들이 본다면 깜짝 놀랄 일이지만. 내 친구들에게 완벽한 요리를 선보일 수 있다면 한 점의 망설임 없이 꺼내들 수 있다.


풍덩!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면과 스프가 냄비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적당히 소금기가 제거된 해산물을 손질할 시간이다.


비주얼을 생각하면 통으로 데치는 것이 최고겠지만, 애들이 먹는 과정까지 생각하면 그럴 수 없다.


문어와 게는 어른도 낑낑대면서 먹는데 애들이 먹는다면 얼마나 먹겠는가. 목에 걸리거나 다 버리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여 먹기 좋은 형태로 손질해서 라면 과 같이 끓이는 것이 최선이다.


다만 문어와 전복이 질겨질 수 있으니 최선의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 바로... 지금.


해산물들을 담고 있는 대야를 발로 차 올려 내용물을 허공에 수놓았다.


그 사이 나는 두뇌가 계산한 경로를 따라 칼을 뽑는다. 한 차례 칼춤이 끝나자 재료들이 각자의 냄비를 찾아 사뿐사뿐 떨어진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 그릇에 나눠 담기만 하면 완성이다.


손뼉을 치자 기다리고 있던 부하들이 그릇을 세팅했다. 나는 국자를 부여잡고 라면을 허공에 퍼올렸다.


날아간 면과 국물, 해산물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릇 위로 깔끔하게 떨어졌고. 이를 확인한 부하들이 바깥으로 음식을 내어 갔다.


“와! 라면이다!”

“저건 뭐지? 문어랑 게?”


입을 벌린 아기새처럼 먹이를 기다리는 애들의 대화소리가 들린다.


나는 서둘러 마지막 그릇을 퍼낸 뒤 식당으로 나가 애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뭐야! 이거 뭐야? 뭐지?”


국물을 마신 한 아이는 언어 기능을 상실한 채 뭐냐는 말만을 반복했다.


“마시써. 흐어어어엉.”


면을 들이킨 아이는 감격에 벅차 눈물을 터트렸고.


“후르르릅 후릅 후르릅?”


또 어떤 아이는 모든 활동을 중지한 채 면을 흡입하는 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대망의 승윤이는.


“상혀가... 빨리 와~ 꿀꺽.”


입에서 폭포를 형성한 채 나만을 기다리고 있다. 맛있는 건 같이 먹고 싶다는 듯하다.


계속 기다렸다가는 흘린 침 때문에 탈수 증상이 나타날 것 같았기에 승윤이 옆에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내가 앉자마자 그릇과 하나가 되었다.


“승윤아 맛있어?”

“응!”

“우리 집 빵보다?”

“음... 빵 만큼이나 맛있어!”


해물 라면을 우겨 넣느라 우리 너구리의 볼이 다시금 빵빵해졌다. 그녀가 우리 집 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는 입장으로써 그녀의 답변은 최고의 찬사나 다름이 없었다.


애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열심히 만든 보람을 느꼈다.


나 역시 라면이 불기 전에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음~”


역시나. 맛있었다.


* * *


라면 파티를 즐긴 아이들은 하나 둘 꾸벅꾸벅 머리를 꺼트리기 시작했다.


즐겁게 놀았고, 개운하게 샤워를 마쳤다. 그런데 배까지 뜨듯하니 슬슬 졸린 것이다.


이 모든 수순을 예측하고 있었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애들을 숙소로 데려갈 수 있었다.


우리의 숙박 장소를 보며 아름 쌤이 조금 놀란 모습을 보였다.


“언덕위에도 숙소가 있구나?”

“정확히는 반 토막난 오름이에요.”


언덕 위의 집이라면 어감이 이상했기에 쌤의 말을 정정했다. 오름은 작은 화산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런데 그런 오름이 반 토막이 났으니 주변 절경이 잘 보이는 언덕이나 다름이 없었다.


설비도 충분하고, 주변이 허브 밭이라 공기도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이유는...


“거기 별이 잘 보인대요.”

“어머! 너무 낭만적이다!”


아이들에게 제주도의 밤하늘을 보여주고 싶었다. 매연에 휩싸인 서울 하늘만 보고 살았으니, 가장 크게 체감이 되지 않을까 싶었기에.


지금까지 100% 들어맞던 예측과는 달리, 이번 계획은 절반의 성공만을 거두었다.


별을 보고 감탄을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폭신한 침대에 함락되고만 아이들도 꽤나 있었기 때문에.


애들을 깨울까 싶기도 했지만, 너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고 있었기에 건드리기도 애매했다.


“그래. 오늘은 잘 자고 내일 또 보면 되지.”


이번 현장학습은 1박 2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못지않게 내일 역시 즐거울 예정이니. 지금 힘을 비축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리라.


자고 있는 애들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별이 가장 잘 보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유리로 된 천장 아래 누우면 당장이라도 별이 떨어질 것만 같은 멋진 장소였다.


몇 아이들이 그렇게 누워 밤하늘을 감상하고 있었다.


평소 생각이 깊은 아이들은 홀로 사색에 잠겼고, 외로움이 많은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감탄을 쏟아냈다.


나의 자칭 라이벌 지훈이는 전자에 속했는데 우수에 찬 녀석의 눈망울에서 끝내 물이 한 방울 떨어지는 걸 놓치지 않았다.


사람은 압도적인 자연현상을 마주하면 누구나 놀라고, 경외하며, 빠져들곤 한다. 그리고 이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성장을 이룩할 때가 있다.


어쩌면 지훈이에게는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일지도 모른다.


꼬맹이가 소년이 되는 과정을 보며 마음이 근질근질했다. 제주도로 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고. 나중에 지훈이를 울보라고 놀릴 생각에 즐겁기도 했다.


2층의 인원들을 살피고 있자니 승윤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승윤이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함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홀로 있었다.


정확히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다.


“뭐해?”

“웅? 상혁아? 소원 비는 중이야.”


슬쩍 가서 물으니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소원은 별똥별에 빌어야지.”

“어? 그런 거야? 그래도 저렇게 반짝이는데...”


직접 별똥별을 본 적 없는 승윤이에게는 저 반짝이는 별들이 별똥별로 보였던 것 같다.


그녀가 눈에 띄게 상심했기에 소원을 대신 이뤄줄 생각으로 물었다.


“소원이 뭐였는데?”

“비밀!”

“비밀?”

“응! 별똥별에게만 빌 거야!”


아무래도 나에게 말하기 민망한 소원인 듯하다.


저 밤하늘에 별똥별은 없다는 게 내심 아쉬운지 승윤이는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보다가 몸을 돌려 건물 밖으로 나갔다.


저렇게 원하는데 못 보고 넘어가면 서운하지 않은가. 어떤 일기예보도 별똥별을 예고하지는 않았지만, 오늘 밤 제주도에서는 별들이 꼬리를 그리며 하늘을 수놓을 예정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주변을 탐색하여 쓸 만한 돌덩이들을 찾아 하늘로 던져 올렸다.


돌은 성층권을 넘어 중간권으로, 그조차 초월하여 열권에 진입했다. 로켓과 같은 속도로 치고 올라가던 돌덩이들은 일정한 높이에서 움직임을 멈췄다.


두뇌가 판단했을 때, 지상에 아무런 피해 없는 수준에서 가장 예쁜 유성을 만들 수 있는 위치라고 한다.


이제 톡 밀어 넘어트리면 이 돌들은 반짝이는 유성으로 변할 것이다.


“킥.”


이러고 있자니 인공 유성을 만들었을 때가 떠오른다. 그 때는 나사의 로켓 기술을 이용해서 어설프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이토록 쉽게, 보다 더 온전한 유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잠시 그 경치를 음미하다가 손을 까딱여 돌들을 떨어트렸다.


더 지체했다간 승윤이가 잠이 들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나의 제어를 떠난 돌들이 불타오르며 점차 유성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나는 유성이 우리 하늘에 포착될 타이밍을 맞춰 다시 숙소 2층으로 올라갔다.


슈욱.


유성이 하늘을 가르며 나아가 아이들의 눈동자에 빛을 남긴다.


“애... 애들아 봐써?”


밤하늘을 관측하던 아이 하나가 다른 애들을 불러 모은다. 자신이 본 광경을 다른 아이들을 통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를 목격한 친구들은 거의 없었지만 다행히 그 아이가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일은 없었다.


첫 유성을 시작으로 수많은 별무리가 뒤를 따랐으니.


“우와아아아아!”


그 찬란한 광경에 아이들의 입이 다물어질 생각을 안했다. 심장이 벅차오르는 듯 가슴을 붙잡는 아이들이 몇 보였다.


몇 아이들은 자고 있는 친구들을 깨워 이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 했으며.


처음부터 별똥별을 기다리던 승윤이는 흥분한 기색으로 발을 몇 번 구르더니 이내 두 눈을 질끈 감고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나는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슬금슬금 그녀의 뒤로 향했다.


소원을 빌 때 입 밖으로 중얼거리는 버릇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한 것 같다.


“별님. 저는 상혁이랑 오래오래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이번에 절에 있으면서 많이 느꼈어요. 저는 상혁이가 정말정말 좋아요! 그러니까 나중에 엄마, 아빠 같은 나이가 되어도 함께하게 해주세요. 꼭이에요!”


무슨 소원이길래 숨기나 했더니 깜찍한 소원을 빌고 있다. 역천사에 있을 때 많이 외로웠던 걸까.


나에게 있어서도 승윤이는 소중한 존재다. 오죽했으면 운명이랑 싸울 생각을 했을까.


그러니 그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제는 그럴 수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되었으니.


그녀가 나를 바라는 한, 나 역시 그녀를 잊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위험하다면 또 한 번 마땅히 세상과 싸울 것이고, 만약 그녀가 바라거든 몇 번이고 저 밤하늘에 유성을 수놓겠다.


그것이 나 초월자가 소원을 이루어주는 방식이다. 누군가의 소망을 마음에 담으며, 제주도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 * *


“흐흐흠. 맛있는 한라봉을 따 보실까?”


바닷바람이 뒤섞인 촉촉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기지개를 폈다.


이곳은 제주 최고의 귤 농장. 나는 한라봉을 직접 따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이 농장에 방문했다.


나무에서 막 따낸 과실은 시장에서 파는 것보다 더 맛있다지? 3반 애들이 후식으로 나온 한라봉을 먹고 어떤 감탄사를 내뱉을지 기대가 된다.


“그럼 작업을 시작해 보자고!”


이곳에 아무도 없는 건 탐지 능력을 통해 확인했다.


그러니 힘을 팍팍 사용하여 최고의 과실들만 골라 가더라도 문제는 없으리라.


손을 들어 올려 드넓은 농장의 구조를 다시금 개편했다. 새콤하면서도 꿀이 뚝뚝 떨어지는 진한 과실들이 내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무에 열린 것은 비단 과실뿐만이 아닌 것 같다.


창백한 피부의 남자가 당황한 채 나를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으니.


“분명 아무도 없었는데?”


혹시나 싶어 핸드폰 카메라에 남자를 담아 보았지만 이번에도 탐지되는 것은 없었다.


나는 이와 같은 현상을 이전에 들은 바 있다.


“존재의 불균형. 불균형한 존재. 불균형의 화신! 악마의 왕 바엘. 찾았다.”


아무래도 제주도에서의 두 번째 날은 월척으로 시작될 예정인 것 같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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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사랑의 형태 22.12.24 244 4 19쪽
193 사랑과 전쟁 2 22.12.23 232 5 22쪽
192 사랑과 전쟁 22.12.22 237 5 19쪽
191 흑역사 박람회 22.12.21 246 5 18쪽
190 차원의 틈 22.12.20 221 5 18쪽
189 참교육 22.12.17 235 5 17쪽
188 주제파악 22.12.16 228 5 19쪽
187 힘을 숨긴 찐따?가 되다 22.12.15 247 5 22쪽
186 졸업, 입학 22.12.14 251 5 15쪽
185 관측 22.12.13 265 5 18쪽
184 악마와 함께하는 제주도 투어 22.12.10 257 5 18쪽
183 바엘 22.12.09 230 5 20쪽
» 제주도 현장학습 22.12.08 253 5 25쪽
181 샌드백 필요 22.12.07 26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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