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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311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30 22:00
조회
227
추천
5
글자
23쪽

구원자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99화



동쪽 전선이 붕괴되었다는 말을 듣고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X발. 내가 그럴 줄 알았지.”


며칠 전 신의 공격이 심상치 않더라니 돌파할 방향을 탐색하고 있던 모양이다.


아마 내가 완벽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면 붕괴된 것은 동쪽이 아니라 우리 북쪽이 되었으리라.


상황실에 연락을 넣으려다가 멈췄다. 그 대신 운석을 꺼내 사엘을 호출했다. 그편이 더 편할 것 같다.


“박상혁. 정말 네 말대로...”

“됐고. 동부 전선의 상황은 어때요? 피해 규모는? 신의 상태는?”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시간이 없다. 사태를 파악하고 수습에 나서야 한다. 사엘도 그 의지를 느꼈는지 아는 정보를 토해냈다.


“충돌 시점은 대략 100초 전으로 추정. 한 번의 충돌만으로 전선이 붕괴되었다고 판단. 그 이후로 도착한 연락은 없다.”

“한 번...”


지고의 3인 중 1명이 있을 텐데 단 한 번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히다니. 해방군의 계산과는 다른 결과였다.


신이 폭주했다.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었다. 인과율이고 행성이고 다 때려 부순 것 같으니.


인과율을 어기면 제약이 생기고, 제약이 중첩되면 소멸한다고 그랬다. 그렇다면 현재 신은 어떤 상태일까.


“동쪽과 연락이 끊기자마자 정찰부대를 투입했고, 유의미한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아직은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지만. 우리는 신이 그 무한함을 잃었다고 추측한다.”


주먹을 쥐었다. 동쪽 전선이 희생된 것은 뼈아프지만, 해방군의 말마따나 성과는 확실하다.


지금까지 해방군이 신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신의 무한한 힘 때문이다.


초월자들은 누구나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고, 이를 무한하다 표현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도 힘을 쥐어짜면 오링이 난다.


그러나 신은 다르다. 무한히 돌아가는 터번과 같이 아무리 힘을 사용해도 결코 마르지 않는다.


필멸자가 신을 죽일 수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힘 싸움이 안 되거든.


그런데 그 무한함이 소실되었단다. 그릇에 구멍이 뚫린 것과 같다. 더 이상 그의 힘은 순환되지 않고 밖으로 줄줄 새어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필멸자와 같이, 아니 필멸자보다 못한 존재가 되리라.


힘이 언제 바닥을 드러낼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신이 소멸하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이 없다.


크게 보자면 해방군의 승리였다. 나는 별다른 전투 없이 빚을 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동부 전선에 생각이 미쳤다.


전투가 벌어진지 고작 100여초가 지났다고 한다. 대화하느라 시간이 지났다지만 그래봤자 2분 남짓.


그렇다면 아직 생존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빠른 후속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동부 전선에 대한 사령부의 지침은?”

“일단은 대기. 아직 논의 중에 있다.”

“그러다 다 죽으면? 거기 지고한 3인 중 한 명도 있지 않나요?”

“나머지 모두가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군.”


지독하리만큼 현실적이다. 지들 수뇌부 중 한 명이 죽게 생겼는데도 머뭇거리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존속하여 신이랑 싸우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해방군이 지들 수뇌부까지 희생시키면서 얻어가려는 게 뭘까? 나는 그 답을 알고 있다.


“신이 움직인 이유. 그걸 정확하게 파악해야 행동에 나설 수 있다 이건가요.”

“그래.”


신은 병신이 아니다. 행성을 부수고, 인과를 비틀면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섰다면 무언가 노리는 게 있을 것이다.


도망은 물 건너갔으니. 죽을 때 죽더라도 해방군들을 족치고 가겠다고 복수를 다짐했다거나.


아니면 스스로 묫자리를 찾아 이동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패닉 상태에 빠져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걸지도 모르고.


무작정 해방군을 갈아 넣는 건 비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해방군들이 몸을 사리는 것도 이상한 선택은 아니다. 인정한다.


그러나 내 스타일은 아니다. 아예 모르는 일이면 모를까. 동쪽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데 가만히 앉아 있고 싶지는 않다.


비록 이번 작전에 한한다고 하지만 저기 죽어나가는 해방군도 나와 한 팀이 아닌가.


19년 전. 영문 모를 죽음을 맞이해 영혼이 소각될 위기에 처했을 때를 아직 나는 기억한다.


억울했고, 두려웠다. 살고 싶었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오직 다른 우주의 박상혁만이 나를 구원했고 그 덕에 지금의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여전히 신은 두렵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의식적으로 한 발자국 나아가려 한다.


‘합리적’이라는 폭력에 휘둘려 죽는 게 얼마나 좆같은 일인지 잘 알고 있거든.


“사엘. 저는 동쪽으로 갑니다.”

“아직 사령부의 명령이 안 떨어졌...”

“저요. 저. 북쪽 해방군 말고. 제가 간다고요.”


사엘은 내뱉으려던 말을 삼켰다. 그들의 입장에서 나는 든든한 전력이지만, 동시에 외부인이기도 하다.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해방군에게는 아무런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의 동태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터.


“가서 구할 수 있는 사람만 구할게요. 거기에 정보 같은 것도 모으면 드리도록 하죠. 어때. 좀 만족스러워요?”

“북쪽 전선은 누가 지키지?”

“에이. 여기 초월자만 4명이에요. 신이 동쪽에 있는 게 뻔한데 여기에 병력이 많아서 어따 써요. 축구나 야구 할 것도 아니고.”


구구절절 맞는 말에 사엘이 감화되었다. 그는 지휘관에게 나의 제안을 보고하겠다고 말했지만, 나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다.


“세프니아?”

“넵. 사령관님.”


첫 날과 다르게 군기가 바짝 들린 모습이다. 이 정도면 굳이 여러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잠깐 자리 좀 비우겠습니다. 그동안 부대를 지휘하고 있으세요.”

“Yes sir!”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 맞다. 상황실에서 데려온 놈들도 같이 갈 거니까 준비시켜 놔요.”

“Yes sir!”


어제 같았으면 뭐라 말이 많았을 것이다.


왜 명령도 없이 이곳을 떠나느냐. 이곳이 안전하다 우리랑 있자. 겁나게 귀찮게 굴었겠지.


그러나 지금은 10초 정도면 충분하다. 아주 훌륭한 발전이다.


세프니아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건넨 뒤 동쪽 전선으로 이동했다.


길도 모르고, 동쪽의 지휘관이 누군지도 모르며, 어떤 진형을 갖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는 놈을 데려왔으니 상관없다.


“안내해.”

“아직 명령을 하달 받지 않아서...”


차원의 틈에서 칼을 꺼내들자 녀석들의 태도가 일변했다.


“저쪽입니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참으로 편리한 녀석들이다. 데리고 오길 잘한 것 같다.


절반이나 지났을까? 여전히 빠르게 우주를 건너고 있는데 사엘에게서 답변이 돌아왔다.


만약 거절이었으면 그대로 운석을 부숴버리려 했는데. 다행히도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사령부에도 동쪽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다. 상황이 개선되면 이쪽에서도 곧바로 후속조치를 취할 것 같다.”

“결국 내가 활약하면 쫄래쫄래 나와서 생색만 내겠다는 뜻 아닌가요?”

“... 그렇지.”


어차피 기대도 안 했다. 우주 중소기업 해방군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훼방을 안 놓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이제 곧 동쪽 전선이다.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강해지는 힘의 파장이 몸을 짓누른다.


“그래도 아직 지고한 분은 살아 계신 거 같은데?”


죽었다면 저렇게 힘이 충돌할 이유는 없다. 신이 일방적으로 학살을 하고 있었겠지.


그러나 저항도 이제 끝날 기미가 보인다. 한 쪽의 기운이 강대한 바에 비해, 다른 한 쪽의 기운은 다 죽어간다.


속도를 조금 높이기로 했다.


“야. 니들은 휘말려서 죽지 말고. 먼저 돌아가.”


상황실 직원들을 떨구고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그들이 내 팔을 붙들었다.


“잠깐만요. 이거, 이걸 가져가십시오.”


그가 내민 것은 투명한 렌즈였다. 어디다가 써먹냐는 눈치로 바라보니 녀석이 성능을 들려주었다.


“정보부대 관측 장비랑 연동이 되어 있습니다. 현장의 상황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렌즈를 받아 끼고 조작해보니 생각보다 쓸 만했다.


단순히 정보를 전송받는 게 아니라 내 의사에 따라 관측 장비를 조종하는 것도 가능하다.


뇌에 걸리는 부하가 크긴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이점이 크다.


새삼스러운 눈으로 직원들을 보았다. 제대로 된 예측도 못하고, 겁도 많지만 쓸모가 아예 없지는 않다.


“저희들도 해방군입니다. 저희의 전우를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곧바로 이동했다.


생각지도 못한 기물을 얻은 덕에 계획의 성공률을 더 높일 수 있을 것 같다.


원래 내 계획은 신의 어그로를 끌고 전력을 담은 일격을 꽂아 넣는 것이었다.


신을 상대로 손대중을 하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없다. 초장부터 필살기를 시전하면 아무리 신이라고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빈틈이 만들어진 동안 생존자를 이끌고 도주한다. 이것이 큰 골자였다.


내 머리에서 나왔지만 썩 만족스러운 계획은 아니었다. 잘 풀리면 성공하겠지만 운적인 요소에 많이 기대야 했다.


혹여나 어그로가 과하게 끌린다면, 혹은 신이 방비를 두텁게 했다면 내가 당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렌즈가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선 신과 마주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멀리서도 상황을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는데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원거리 저격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이 정도 거리면 신이 아직 내 존재를 감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지 밖에서 파고드는 공격만큼 곤란한 것이 없다. 빈틈을 조금 정도는 늘릴 수 있겠지.


“후우.”


숨을 정돈하고 정점의 DNA를 활성화시킨다. 심장에서 대해와 같은 힘이 전신으로 고루 퍼졌다.


나는 이 힘을 갈무리하여 다시금 심장으로 되돌렸다. 그러자 심장 부근에 박힌 씨앗이 흔들거리며 툭 떨어졌다.


새로운 씨앗. 3년 전 정점의 DNA를 강화하며 맺은 결실이다.


지금부터 하려는 건 그 씨앗을 가지고 놀던 중 발견한 재미있는 활용법 중 하나였다.


목적을 달성한 힘의 흐름은 씨앗을 품고 오른팔, 그 중에서도 검지손가락으로 이동했다.


손가락 끄트머리에 고정된 씨앗은 자신을 이동시킨 막대한 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했고,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피를 키웠다.


나는 렌즈를 통해 전선을 바라보며 손가락 끝을 조준했다. 꼭 권총을 겨누는 것처럼.


“정점의 DNA 탄환 일발 장전.”


호흡이 점차 가늘어진다. 이윽고 숨이 멈추었을 때 나의 손가락은 신의 머리통을 향해 있었다.


그대로 멈춰 바라는 타이밍이 오기까지 기다렸다. 신이 지고의 3인을 끝장내기 위해 다시 한 번 큰 기술을 준비하는 순간 쏘아야 한다. 바로... 지금.


타앙!


씨앗이 손가락을 뚫고 폭발적으로 우주를 나아간다. 소닉붐과 같이 파장을 남기며 쏘아진 탄환은 빠르게 신과의 거리를 좁혔다.


신이 대응에 나선 것은 탄환이 그의 관자놀이를 꿰뚫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신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그는 시선이 닿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으니. 탄환 또한 그 힘을 잃고 소멸하리라...


그렇게 생각하겠지. 그것이 신의 첫 번째 실수다.


여분의 씨앗이 생겼다. 어디다가 써먹었겠는가. 당연히 쓸 만한 능력을 강화시켰지. 그 중 하나가 원래 활성화시켰던 ‘저항력’이고.


씨앗 속에 응축된 저항력이 신의 권능에 저항했다. 신의 살갗까지는 이제 고작 1mm.


막기엔 늦었고 회피는 어렵다. 허리를 젖히며 밸런스를 무너트려야 겨우 피할 수 있을 정도.


잠시 인상을 찌푸리던 신은 콧방귀를 뀌며 관심을 꺼트렸다. 총알이 관자놀이에 박힌다고 죽었으면 신은 이미 몇 번을 죽었겠지.


총알은 그의 피부를 뚫지 못할 것이다. 그게 신이 내린 판단이고, 실제로 맞는 추측이기도 했다.


그게 신의 두 번째 실수였다.


씨앗은 소유자의 유전자를 변형시킨다. 종족의 한계를 넘어 정점에 이르도록. 당연하게도 진화의 과정이 평범할 리는 없다.


나는 정점의 DNA를 활성화시킬 때마다 몸이 타오르는 걸 느껴야만 했다. 유전자 변형은 열량을 발생시키고 그 부피를 늘린다.


그래서 궁금증이 생겼다. 씨앗이 터지기 전에, 그 안에다가 유전정보를 다량으로 때려 박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동시에 여러 부위가 강화되지 않을까?


그 날의 어리석은 선택은 아직까지도 꿈에 나올 처참한 결과를 자아냈다.


이제 그 처참함을 신이 누릴 시간이었다.


씨앗이 신의 관자놀이와 충돌하며 뭉개졌다. 동시에 씨앗 안에 담긴 유전정보가 뻥! 터졌다.


세탁기에 세제를 한 통 다 때려 박은 것처럼. 흔든 탄산에 멘투스를 빠트린 것처럼 유전정보가 증식하기 시작했다.


십억, 백억, 천억을 돌파한 유전자는 빛무리를 이루어 앞으로 터져 나갔다.


신은 버티려 했지만 걷잡을 수 없는 물량에 잠식되어 그대로 우주 반대편, 아득히 먼 곳으로 밀려났다.


“후우~ 됐다.”


렌즈를 통해 전선을 확인한 나는 참았던 숨을 내뱉었다.


신이 탄환을 피한다고 바닥이라도 굴렀다면 시도가 무위로 돌아갈 뻔 했지만 다행히도 성공했다.


그러나 녀석이 이 정도로 뒈질 리 없다. 이제부터는 정말 빠르게 움직여야만 한다.


“... 지원군이다!”

“역시 우리를 버리지 않은 거야!”

“우와아아!”


동쪽 전선의 생존자들이 고함을 내질렀다. 초월자들이 분전한 덕에 아직 머릿수가 조금 남아 있다.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또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 지원군이 왔는데. 신을 밀어낼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데 정작 인파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들에게 실망을 줄 생각은 없었는데. 어떻게 분신술이라도 써서 머릿수를 늘릴까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낭비할 여력이 어디 있나.


나는 주저 없이 지고의 3인 중 하나. 태초의 별 리온에게 다가갔다.


“구출하러 왔습니다. 박상혁입니다.”


한껏 부푼 리오의 눈두덩이에 희망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 모양이다.


“북쪽의 사령관. 나머지 군대는 어디 있나?”

“저 혼자입니다.”


당당한 선언에 그는 당황했고,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그것은 잠깐이었다.


자신이 아쉬워할 처지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단신으로 적을 몰아내기도 했고.


“일단 도망가면서 이야기할까요?”

“방금 공격으로 신이 타격을 입었을 가능성은?”

“0%일걸요. 저건 때린다는 개념이 아니라 밀어낸다는 개념이라서.”

“알았네. 전군! 퇴각한다! 여력이 있는 자는 전우의 퇴각을 돕는다!”


이미 ‘전군’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초라한 인원수였지만 후퇴에는 사람이 적은 편이 더 유리했다.


리온과 다른 초월자는 동쪽 병사들을 이끌고 독려했다.


나 또한 전장을 정리하던 차, 문득 허전함을 느껴 리온에게 물었다.


“당신까지 초월자가 셋이라 들었는데. 한 명은요?”


그는 말없이 한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코피를 흘리며 눈을 까뒤집은 남성의 상반신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그랬다. 이건 패주였다. 초월자가 희생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쾌한 감정을 억눌렀다.


죽은 사람들보다는 살릴 수 있는 사람에 집중해야 할 때였으니. 주변으로 기운을 흩뿌려 비척거리는 이들의 운신을 도왔다.


그 때였다. 생명체의 혼을 앗아갈 정도로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온 것은.


“박상혁! 네 놈!!!”


신이 유전정보의 바다에서 벗어났다. 그의 고함은 병사들의 발에 두려움이라는 추를 달았다. 시시각각 거대한 기세가 이쪽을 향해 가까워졌다.


신이 추격을 시작했다.


“걱정하지 마라! 살 수 있다! 그렇게 만들겠다!”


리온이 빠르게 기운을 내뿜어 차갑게 질린 병사들을 녹여 보았지만 역부족이다.


태초의 존재라는 위용을 뽐낼 때라면 모를까 지금과 같이 눈두덩이가 밤탱이가 된 상황에서는 믿음을 줄 수 없다.


자연스럽게 병사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그들을 구원한 사람이었으니.


살 거라는 믿음이 있다면 힘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믿음도 장작이 없다면 타오르지 않는 법.


단신의 구원자는 그들에게 믿음을 주기에는 너무 미약한 존재였다. 병사들의 눈동자에 좌절이 깃들었다.


나는 품 안의 운석을 꺼내 사엘을 호출했다.


“사엘. 보고 있죠? 리온 씨와 병사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래. 북쪽은 최대 전력이 부재중이고, 서쪽은 너무 머니 남쪽으로 이동하는 게 최선이겠지.”


이 양반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


“누가 평가 내려 달래요? 추가 지원! 언제 보내 줄 건데요!”

“아직 신의 의도가...”

“신 저 자식 눈 뒤집혀서 우리 따라오고 있는 거 보면 몰라요? 깽판 치겠다는 거잖아요!”


만약 신이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면 저 멀리까지 밀쳐졌을 때 그대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으면 되었다.


그러나 녀석은 우리를 뒤쫓았다. 목숨이 남아 있는 동안 해방군을 족치겠다는 목적이 분명하다.


“그러니 더더욱 시간을 끄는 게 정석이지 않겠나.”

“그래서 우리가 다 뒈지게 내버려 두겠다? 잘만 하면 도망갈 수 있을 거 같은데!”

“... 특기전력을 보내는 쪽으로 사령관님께 요청을 드리겠다.”


상대를 요격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대군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 구출이 목적이라면 별동대를 투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의 활약으로 탈출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해방군은 그제야 움직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좋아. 언질은 얻었으니 시간을 벌기만 하면 된다.


나는 운석을 리온에게 던지며 말했다.


“지원이 올 거래요. 저는 시간을 벌도록 하겠습니다.”

“가능하겠는가?”

“해야죠. 안 되어도.”


확신은 없다. 그러나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에게는 나밖에 없다. 그러니 보여주는 수밖에.


솔직히 말하면 저들의 실망이 거슬리던 참이다. 어디 저게 구원자에게 보낼 눈깔인가.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기에 왔는데.


감사하고, 찬양하라. 내가 너희의 구원자니. 홀로 온 것은 굳이 다른 무력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단하기 때문이니라.


이왕 나선 거 환호를 받으며 돌아가고 싶다. 그러니 이곳에서 신을 막을 생각이다.


다시 한 번 신을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렌즈는 정상적으로 작동 중이다. 관측 장비에 비친 신을 향해 연거푸 탄환을 발포했다.


찬란한 빛 무더기가 우주를 가르며 나아간다. 후퇴하는 병사들이 고개를 돌리지 않고도 빛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수준의 광채였다.


빛이란 안심을 준다. 믿음을 준다. 덕분에 병사들은 발걸음에 힘을 실을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한 병사의 흐느낌이었다. 그런데 신은 그와는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같은 수에 당할 것 같나. 박상혁!”


녀석이 꽤나 아픈 부분을 찔러왔다. 초장의 비장의 수단을 써버렸기 때문에 두 번째 공격 역시 똑같을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다니.


안 그래도 멋지게 나선 것 치고는 뭔가 아쉽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신은 머저리가 아니다. 내 공격이 저항력을 듬뿍 머금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회피를 선택했다.


그러나 나는 공세를 늦추지 않았다. 초월에 초월을 거듭한 두뇌는 신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조준점을 설정해주었다.


탄환은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나갔다. 신의 회피가 점점 아슬아슬해졌다.


동시에 쏘아진 탄환이 세 방향에서 신을 몰아세웠다. 이제는 피할 구석이 없겠다 생각했으나 신은 기괴한 동작으로 꿋꿋이 피해냈다.


“네 공격은 나에게 닿지 않는다! 그것이 절대자와 버러지의 격차이니라!”


0.999는 1이 아니다. 내 공격이 신을 몰아붙일 수는 있어도 적중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


그러나 나의 입가에는 짙은 미소가 걸려 떨어질 생각을 안했다.


신의 회피가 점차 묘기에 가까워질 때 쯤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신에게 소리쳤다.


“그거 폭탄 아닌데~”


그 말에 바쁘게 움직이던 신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는 날아오는 알갱이를 잡아 그 정체를 확인했다.


지금까지 열심히 피하던 게 평범한 돌멩이라는 걸 깨닫자 그의 표정이 흉신악살과 같이 일그러졌다.


나는 거기에 기름을 붇기로 했다.


“돌멩이! 참 열심히도 피하더라! 덕분에 거리 좀 벌렸어?”


지금까지 신이 피격당한 적은 없지만 회피를 위해 이상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속도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신의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보며 스트레스가 싹 가신 것은 덤이고.


“크아아악! 박상혁! 내 반드시 너를 죽이고 말겠다!”


신이 폭발했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가 몸을 저릿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그는 더 이상 회피하지 않았다. 날아오는 탄환을 모조리 쳐내며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날아온 유전정보 폭탄을 맞고 또다시 아득히 먼 곳으로 날아가고 말았다.


“사실 진짜 탄환도 섞여 있었어! 그걸 또 맞냐!”


너무 멀어져 이제는 들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말했다. 그 편이 기분이 째졌으니까.


나는 곧바로 리온의 무리에 합류해 선언했다.


“신을 또 한 번 밀어냈습니다! 속도를 높이죠!”

“알았다! 전군! 속도를 높인다! 적을 뿌리친다!”

“와아아아아!”


불가능한 일을 두 번 해냈다. 병사들의 시선에 존경이 더해졌다. 매우 흡족했다.


저 멀리서 신이 울부짖는 게 들렸다. 우리는 정말 꽁지가 빠지게 후퇴했지만 추격이 매서웠다.


“박상혁! 한 번 더 가능하겠나?”

“탄창이 오링났어요!”


씨앗이 꽤 맺히긴 했지만 사용한 것도 적지 않았다.


필요한 능력투자에 들어간 게 많았으며, 남은 걸로 연구 좀 하다 날려 먹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몇 줌의 씨앗도 방금 소비했다.


남은 씨앗은 단 하나. 이걸 적중시킬 수도 있겠지만 아껴두기로 했다. 이는 초월하기 전부터 지켜오던 습관이다.


“그럼 내가 나서도록 하겠다! 이대로라면 따라잡힌다!”

“괜찮겠어요?”

“괜찮지 않아도... 해야지.”


리온이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나섰다. 부하들을 살릴 수 있는 것만 해도 고맙면서 그들의 안전을 내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가 희생되는 일은 없었다.


신과 마주하기 직전. 깊고 광활한 어둠이 우리를 삼켰으니.


뒤늦게 도달한 신이 크게 주먹을 휘둘러보았지만 그곳에는 실체가 없는 어둠, 어둠, 어둠뿐이었다.


다시 눈을 뜬 곳은 검정 상혁이 주둔하는 남쪽 전선이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한 편 더 올라갑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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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22.12.31 271 6 29쪽
201 리셋 22.12.31 240 6 22쪽
200 신의 선택 22.12.30 240 5 18쪽
» 구원자 22.12.30 228 5 23쪽
198 북쪽 전선 22.12.29 220 4 21쪽
197 검정 상혁과의 만남2 22.12.29 225 5 22쪽
196 검정 상혁과의 만남 22.12.28 232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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