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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318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22 22:00
조회
237
추천
5
글자
19쪽

사랑과 전쟁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92화



“상혁아! 우리 밥 먹으러 갈래?”

“그래. 그러자.”


승윤이를 만난 김에 같이 식사를 하기로 했다. 중학교에 들어온 뒤 살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먹는 걸 좋아하는 승윤이다.


보나마나 그녀의 소울푸드인 떡볶이를 학살하러 갈 것이다.


“... 어라? 승윤아 분식집 지나쳤는데?”

“응? 오늘은 다른 거 먹을래! 친구들이 좋은 가게를 추천해줬어!”


예측이 틀렸다. 하긴. 한국인이라고 해서 매일 밥만 먹는 건 아니니까. 가끔은 다른 음식이 끌리는 날도 있는 법이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

“응. 친구들이 맛있는 곳이래. 상혁이는 싫어?”

“아냐. 나도 좋아.”


내 긍정에 승윤이의 얼굴도 환해졌다. 내심 걱정을 하고 있던 모양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실내의 시선이 우리에게 꽂혔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궁금할 수는 있지만, 보통 몇 초 머무르지 않고 다시 흩어지고는 한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밥을 먹던 것도 잊고 계속해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대박.”

“쟤가 걔 맞지? 박상혁? 쟤가 왜 이곳에 와?”

“옆에는 장승윤이네. 둘이 초등학교 동창이라더니.”


다른 손님들의 정체는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었다. 정확히는 중학생 커플들이다.


가격대가 그렇게 높지 않은 것에 비해 분위기가 좋다 보니 데이트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듯하다.


그런데 승윤이랑 내가 단 둘이 도착하니 웅성거림이 일어날 수밖에.


옆을 쳐다 보니 어느새 새빨개진 승윤이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친구들에게 맛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다른 이야기는 듣지 못한 걸까?


승윤이의 친구들은 그녀를 골탕먹일 정도로 나쁜 애들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른 곳 갈까?”


눈치껏 물었으나 승윤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럼 먹고 가자.”


이제 한창 파스타에 끌릴 나이다. 여기까지 왔는데 못 먹고 가는 것도 아쉽지.


우리는 자리를 안내 받고 승윤이가 추천하는 메뉴를 시켰다.


맛은 나쁘지 않았다. 아무래도 비싼 가게와 비교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겠지만 가격대 대비 괜찮은 편이다.


학생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소문날 만하다.


“맛있다. 승윤아.”

“그으래? 히히. 히.”


승윤이는 어째서인지 가게에 들어온 이후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삐걱거리며 파스타를 흡입할 뿐이다.


포크로 면을 돌돌 마는 게 어색해 보인다. 맨날 포크로 떡볶이를 찍기만 했기에 다른 사용법은 익히지 못한 모양.


그러다보니 입에 가기 전에 면이 후두둑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고.


“승윤아. 여기 묻었다.”

“핫. 고마워...”


볼에 묻은 소스를 닦아주니 승윤이가 더욱 굳었다. 이런 접촉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어색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주변에서 꽁냥거리는 커플 영향을 받는 듯하다.


괜히 나까지 민망해질 것 같아 정신을 다잡았다. 승윤이는 순수한 친구고, 아직 중학생이다. 이상한 생각을 가지는 게 이상하다.


덕분에 맛을 음미하며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다 먹었어? 더 안 먹어도 돼? 배 안 고프겠어?”

“상혁아. 나 돼지 아니야...”

“평소 먹던 거의 절반도 못 먹으니까 그렇지.”


계산을 하려는데 승윤이가 한 발자국 나섰다.


“오늘은 내가 계산할게.”

“응? 아니야. 얼마나 나왔다고.”

“나 용돈 모아둔 거 있어. 맨날 얻어먹기만 했잖아.”


코끝이 찡했다. 원래도 착한 아이었지만 이렇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다.


착한 아이는 보답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가게를 나오며 승윤이에게 제안했다.


“뭐 좀 마실래? 밥 얻어먹었으니까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진짜? 내가 괜찮은 카페 알고 있어. 케이크도 판대!”


승윤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앞서 걸었다. 밥을 남기더니, 케이크를 먹을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승윤이가 추천하는 카페에 도착했고, 또 한 번 커플들의 시선과 마주하게 되었다.


“... 승윤아 여기도 친구가 추천해준 곳이야?”

“응. 다른 곳 갈까?”

“아냐. 여기 먹고 싶은 케이크가 있다며.”


당황스럽긴 하지만 두 번 당할 내가 아니다. 나는 몰래 행운의 DNA를 활성화시켰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케이크 맛있다.”

“그러게. 커피랑 잘 어울린다.”


부담을 덜었기 때문일까. 식당에서보다는 편하게 시간을 보냈다.


다음번에는 친구들이랑 오자는 둥, 초등학교 때 친구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둥.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물꼬가 텄고 즐겁게 대화를 이어가던 차,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띠리리리리.


화면에는 크리스티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녀는 초인류 협회의 수뇌부 중 한 명이자 나의 최측근이다.


무슨 일이 생기지 않고서야 이렇게 갑자기 연락하는 일이 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초월의 영역에 발을 들인 이후로 감각이 예민해졌다. 막연한 예감이지만 대체로 맞는 경우가 많다.


흐름이 끊기는 건 아쉽지만 전화를 받아야 할 것 같다.


“미안. 승윤아. 회사 전화야.”

“아니야! 상혁이는 높은 사람이니까 바쁜 게 당연하지!”


흔쾌히 허락해주는 그녀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네. 크리스티나 무슨 일 있어요?”

“아뇨. 그렇게 급한 일은 없어요.”

“네? 그럼 갑자기 전화는 왜?”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보고할 것도 없는데 전화는 왜 걸었으며, 나는 왜 불안함을 느낀 걸까.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아니. 보고만 있을 수 있어야죠. 상혁님 지금 데이트하세요?”

“... 네?”

“맞잖아요. 데이트! 제가 신청했을 때는 아직 연애할 생각 없다고 거절했으면서 이렇게 바로 데이트하기 있기에요?”


갑자기 전화를 하나 싶었더니 무슨 소리일까. 해명에 앞서 확인할 것이 있었다.


“크리스티나. 나 스토킹해요?”

“앗... 아뇨. 스토킹은 아니옵고.”

“아니긴 무슨. 내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으면 스토킹이 맞지. 직접 움직이는 건 아닌 거 같고, X의 도움을 받고 있군요?”


답이 없다. 정곡을 찌른 것 같다. X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사랑을 신성시한다. 그래서 크리스티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으리라.


“에효...”


어쩌면 내가 느꼈던 불길함은 전화를 받지 말라는 의미의 불길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일이 귀찮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가 부덕한 탓이지.


승윤이가 기다리고 있으니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뒤로 미루고 일단 오해부터 해결해야겠다.


“데이트 아니에요.”

“밥 먹고 카페. 전형적인 데이트 코스잖아요?”

“친구끼리 밥 먹고 커피 좀 마실 수 있지.”

“과연 저 여자 애도 그렇게 생각할까요? 두고 봐요. 식사를 마치고는 어디 분위기 좋은 곳에 가자고 권유할 테니까.”

“끊습니다.”


권유를? 승윤이가? 크리스티나의 오해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녀의 나이도 이제 스물 초반이다. 한창 연애를 즐길 꽃다운 나이인 만큼 사랑에 대한 관심을 감추지 않았다.


나도 연애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몸이 14살이라 참고 있는 거지.


순수하게 연애를 하려고 해도 정신이 성인인데 순수하게 연애가 되겠는가. 금욕생활에 더욱 고통을 받거나, 사고를 저지르거나 둘 중 하나겠지.


그래서 크리스티나의 호감표현을 미루고, 또 미뤘더니 상당히 초조해진 모양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승윤이를 견제하냐.”


낄낄거리며 카페로 돌아갔다. 꼬물거리던 승윤이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아니야. 기다리는 동안 케이크 먹느라 하나도 안 심심했어.”


그녀의 말대로 커피와 케이크는 깔끔히 비워져 있었다. 이대로 앉아 있기는 눈치가 보일 것 같아 물었다.


“뭐라도 더 시킬까?”

“응? 아니야. 상혁아. 아까 밥도 먹었잖아. 더 이상 안 들어가. 히히. 일어나자.”


그녀의 말대로 가게를 나왔다.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고. 차를 불러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승윤이에 의해 저지당했다.


“으응. 나 배불러서 차타면 안 될 것 같아. 우리 조금 걸을까? 마침 이 근처에 예쁜 거리가 있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말을 건네는 승윤이의 얼굴이 붉다. 땀을 흘리며 시선은 흔들린다.


평소였다면 컨디션이 안 좋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크리스티나의 말을 듣고 보니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승윤이는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나를 참 좋아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지금 연애를 향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녀에게 사춘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생각은 내 착각에 불과했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한 번도 생각을 못했냐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 때마다 매번 답을 미뤄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직 연애는 먼 미래의 일이라 생각했기에.


그러다가 처음으로 미루지 못할 상황과 마주했다.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걸까?


하얗게 물들려는 이성을 간신히 붙들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멘탈이 흔들린다고 함부로 말을 내뱉어서는 안 된다.


회피를 하더라도 상처를 주거나 기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어... 별로야? 차 탈까?”


승윤이가 내 눈치를 살폈다. 초조한 눈동자 속에 ‘들켰으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깃들었다.


그 덕에 정신을 차렸다.


“아니. 걸어가는 것도 좋지.”

“그래? 히히. 다행이다.”


승윤이는 내 옷자락을 잡고 나를 이끌었고 나는 여전히 생각에 잠겨 그녀를 뒤따랐다.


그 순간 익숙한 알람이 울렸다.


띠리리리.


확인할 필요도 없다. 크리스티나다. 화면을 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상혁아 바빠?”

“아냐. 괜찮아. 쓸모없는 전화야.”


띠리리리. 띠리리.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금 전화가 울렸다. 무서운 집착이다.


예언에 성공하여 ‘의기양양 + 분노’ 상태가 되어 있을 것이다. 굳이 전화를 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아예 전화기를 꺼버렸다.


“이제 더 전화 안 올 거야.”

“응!”


그녀의 뒤를 쫓다 보니 조명이 아름다운 가로수 길이 나왔다.


승윤이는 조심스레 내 손을 잡았고... 그 순간 크리스티나의 목소리가 길거리를 울렸다.


“상혁님!!!”


얼마나 달렸으면 몸에서 김이 다 날까.


그럼에도 크리스티나는 숨을 갈무리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내게 다가왔다.


“상혁님. 전화를 안 받아서 직접 왔습니다. 결례를 용서하시길.”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서류더미를 내밀었다. 분명 나에게까지 올라올 필요가 없는 서류일 것이다.


다분히 보여주기식이지만 중학생인 승윤이에게는 효과적이었다. 승윤이는 잡았던 손을 놓고 내 눈치만을 살피고 있다.


“하아. 크리스티나. 이러기에요?”


미간을 찌푸리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네. 이러기입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로 만난 거라면 크리스티나가 고개를 조아리고 물러났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화를 내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러나 이번 문제는 왕과 신하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 대 개인, 남자 대 여자다. 그렇기에 크리스티나는 당당할 수 있었다.


“제가 그럴 거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렇네요. 제가 틀렸어요. 그래도 이렇게 찾아오는 건...”

“이해 좀 해 주세요. 상혁님께서 선택을 명확하게 하셨더라면 저도 여기까지 안 나왔을 테니까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크리스티나의 고백을 차일피일 미뤘으면서 다른 여자랑 데이트를 한 셈이니까.


설령 그게 내가 의도한 상황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크리스티나는 꽤나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러니 최소한 이렇다 할 답변을 들려줄 의무가 있다.


두 여자의 시선이 나의 입술을 강렬하게 탐했다.


“일단... 교통정리부터 합시다. 상황이 너무 꼬였어요.”


나는 두 사람을 붙잡고 근처 카페로 향했다.


“미친. 개 예쁘다. 촬영이라도 하는 거 아냐?”

“그런 듯?”


주변에서 술렁거림이 일었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외모인데 크리스티나가 합류해 파장이 더욱 커졌다.


나는 손가락을 퉁겨 다시금 인식 저해를 사용했다.


그 뒤, 카페에 들어가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제안했다.


“지금부터 마감할 때까지 가게 전세 좀 낼게요.”

“... 네?”

“이거면 충분할 거라 생각합니다.”


돈은 언제나 마법을 부린다. 설명할 필요성을 줄이고 깔끔한 결과 값을 출력한다.


거의 한 달 매출에 가까운 돈을 받은 사장님은 싱글벙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데 이미 계신 손님들은...”

“괜찮아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손님들에게도 양해를 구했다. 커피가 아닌 카카오나무를 살 수 있을 금액을 안겨주었다. 내 제안에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드디어 조용한 공간에서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두 사람을 앉힌 후 차례대로 설명했다.


우선은 크리스티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상황이 이렇게 된 거 미안해요. 내가 부주의했네요. 그런데 조금만 시간을 주세요. 대답을 드리기엔 아직 저도 제 마음을 모르겠으니까요.”


크리스티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그녀를 배려한 셈이다.


그 다음은 승윤이.


“승윤아. 갑자기 이렇게 카페에 데리고 와서 미안해. 저 사람은 회사 부하이긴 한데 오늘은 회사 일로 온 게 아니야.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찾아온 거지. 그래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이곳에 왔어.”


이야기를 들은 승윤이의 눈이 커지더니 차차 날카로워졌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야생의 너구리 모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어째 더 강해져서 나타난 것 같다.


승윤은 그르렁거리며 인사를 건넸고, 크리스티나 또한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까닥했다.


“안녕하세요. 상혁이의 절친 장승윤입니다!”

“상혁님과 깊은 관계인 부하 크리스티나란다.”


깊은 관계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시선을 던지는 승윤. 나는 그런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에 승윤은 자신감을 얻었는지 콧김을 내뿜으며 선언했다.


“상혁이는 오늘 저랑 놀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돌아가 주세요.”


그녀치고는 강한 어조의 발언이다. 논리적 타당성이 그녀에게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녀는 태생이 고귀한 사람답게 당당하게 반격에 나섰다.


“그래? 나는 충분히 놀았다고 들었는데.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셨으면 이제 보내줄 때도 되지 않았나?”

“아직이에요!”

“아직인지 아닌지는 상혁님이 결정하실 일이지.”


어느새 화두가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승윤이 바짝 다가와 내 팔에 달라붙었다.


“상혁아 나랑 있어줄 거지? 아니. 나랑 안 있어도 돼. 저 사람이랑 있지 말자. 응? 분명 이상한 짓을 하려 할 거야.”


크리스티나는 피식 웃더니 끈적한 색기를 끌어올리며 내게 붙었다.


“얘가 이상한 말을 하네. 이상한 짓이라니. 이런 거? 아니면 이런 거?”


그녀의 손가락이 내 몸을 훑는다. 승윤이가 기겁하며 떼어내려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한 수 위다.


“오늘 밤은 저랑 보내요. 기절이나 하던 그 때랑은 다를 테니까요. 분명 상혁님도 기쁜 밤을 맞이하실 수 있을 거에요.”


원래는 정숙하고 고귀한 분위기의 여성이었는데 지속적인 야근 때문에 성희롱을 하는 아저씨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야근이 이렇게 무섭다.


승윤이는 어찌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지 마세요! 변태에요?”

“응. 조금은. 너는 상혁님 보면서 만지고 싶다는 생각 한 번도 해본 적 없니?”

“...”


승윤이는 답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후우.”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 같길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거리를 벌렸다.


“결국 제가 결정해야 하는 문제네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까지 찾아온 크리스티나에게는 미안하지만 결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늘 약속은 승윤이랑 잡았어요. 그러니 크리스티나는 다음에 보는 걸로 하죠.”

“상혁아!”


승윤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걱정이 심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크리스티나는 내가 결정을 내렸음에도 자리를 비키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더니 굳은 얼굴로 나와 마주했다.


“이게 상혁님의 대답인가요?”

“대답일 리가 없잖아요. 약속의 문제지.”

“아뇨?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설령 상혁님 뜻이 그러더라도 저는 그렇게 받아들일래요. 그러니까! ... 다시 생각해주세요.”


절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이러면 생각을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안절부절하는 승윤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크리스티나도 오랜 인연이고 좋은 사람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두 여자가 내게 호감을 표시했다.


승윤이는 언제나 내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친구다.


인생 1회차 때부터 언제나 예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참 손이 많이 갔던 만큼 정도 많이 가는 아이이기도 하다.


내 인생 2회차는 승윤이와 함께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DNA를 각성한 것부터 신을 이기기까지. 그 모든 여정에는 승윤이가 함께했다.


이제는 단순히 친구라고 말하기 어려운 사이다. 곁에 승윤이가 없으면 허전함을 느끼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는 첫인상은 최악이었지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웃음이 실실 나올 만큼 마음에 드는 여성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본 여자 중에 가장 이쁜 외모를 소유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발전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그녀가 내 마음에 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의 마음을 쉽게 거부할 수 없다.


나는 누구를 골라야 하는 걸까. 우유부단한 걸 정말 싫어하는 나지만 막상 내 일이 되니 쉽게 선택을 할 수 없다. 어떤 선택을 내리더라도 후회가 남을 것이다.


“후우... 조금만 더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을까요? 그렇게 오래 안 걸릴 거에요. 1시간 정도면 충분해요.”


두 사람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는 쪽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일 터.


당장 내일이면 지금까지의 관계가 단절될 테니 두 사람도 준비할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 같다.


잠깐 혼자서 생각하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가려던 차 승윤이와 눈이 맞았다.


승윤이는 눈치가 없는 아이는 아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갈망하는 눈빛을 보내었다. 직접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것을 내게 맡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옥상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길고 긴 한 시간이 될 것 같다.


“아?!”


승윤이의 새된 비명이 나를 붙잡았다.


“무슨 일 있어?”

“한별이 언니! 언니도 불러야 해!”

“아...”


유한별. 아역 배우 시절에 맺은 인연으로 지금까지도 좋은 누나 동생 사이로 남은 사람이다.


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여성이기도 하고.


안 그래도 버거운 고민이 아주 잠깐 사이에 그 덩치를 불렸다.


“여기서 한 명 더...?”


나는 머리를 붙잡고 혼절을 하고 말았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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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사랑의 형태 22.12.24 245 4 19쪽
193 사랑과 전쟁 2 22.12.23 233 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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