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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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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305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15 22:00
조회
247
추천
5
글자
22쪽

힘을 숨긴 찐따?가 되다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87화



2006년. 3월. 새학기가 시작한 이래로 남우리 학교의 창고는 먼지가 앉을 틈이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이곳, 저곳에서 선물을 보내주었기 때문에.


운동 도구, 서적, 난초, 선풍기 등. 종류도 다양하고 보내는 이유도 다양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박상혁과 친분을 다지는 것. 자기 사람을 잘 챙기기로 소문난 상혁의 눈에 들어, 자신도 언젠가 은총을 받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이미 기존에 쓰던 창고는 꽉 찬 지 오래였고, 다급하게 설치한 천막도 이미 자리가 없어 선물들이 시멘트 바닥 위를 뒹굴었다.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허탈한 웃음을 자아내는 장관이었다.


단순히 선물만 많이 온 것이 아니다. 선물을 들고 오는 건 사람이었으니까.


수많은 교육계, 정치계 인사들이 방문해 남우리 학교의 안녕을 기원했다.


그들은 학교를 한 바퀴 돌고는 은근히 화제의 신입생과 만나기를 바랐지만 이사장은 매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정치, 상권의 구도를 뒤엎을 전략 병기를 소유했다고 벌써부터 뻣뻣하게 구는 것인가 말이 많았지만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없는 사람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입학식 이래 상혁이 학교를 안 나온지 벌써 몇 주가 흘렀다.


물론 바쁜 소년이라는 건 알고 있다. 중학교 따위는 형식상 다니는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유라도 알면 이사장도 설명을 할 수 있을 텐데. 그 간단한 이유조차도 들을 수 없었다.


보통 학생이 무단결석을 한다면 이사장은 학년부장에게 명령하여 그 학생을 유급시키거나, 학부모에게 으름장을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혁에게는 그럴 수 없었다. 설령 이사장이 직접 나선다 하더라도 그는 을일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매번 찾는 손님에게는 그럴듯한 변명을 둘러대고는 아하하 웃으며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렇게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것도 몇 주. 이사장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교류회 회장 이송혁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송혁이 누구던가. 제 1회 전국 박상혁 스카우트 대회에서 남우리 학교가 우승하도록 이끌어준 우승청부사가 아닌가.


상혁과의 친분을 자랑하던 그라면 뭐라도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답변은 시원치 않았다.


“바쁘다는 군.”


그렇겠지. 바쁘지도 않았는데 학교를 안 나올 리는 없으니까.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냐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꾹 참았다.


그래도 교류회 회장이니까. 남우리 학교에 부흥을 가져온 사람이었으니까. 뭐라도 남은 수가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실제로 송혁은 또 다른 수를 내보였다.


“입학생 중에 장승윤이라는 학생이 있을 걸세. 기억하나?”

“네. 물론입니다. 입학은 물론, 반 배정까지 신경 쓰라는 윗선의 지시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친구는 왜...”

“상혁 군과 아주 친하다네. 아마 그 아이에게 물어보면 대충은 알 수 있을 게야.”


이사장은 생각했다. 이송혁이 할 말이 없으니 아무 말 대잔치를 하고 있다고.


결국 자신은 잘 모르겠으니 알 만한 사람에게 물어보라는 뜻 아닌가. 그 알 만하다는 친구가 정말 정보를 가지고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하지만 그 간단한 방법 말고는 딱히 마땅한 방법이 없었기에 이사장은 교장실로 장승윤을 불렀다. 그리고 상혁의 행방에 대해 물었다.


의외로 답변은 시원하게 돌아왔다.


“상혁이는 수습? 하러 갔다고 그랬어요.”

“수습? 무슨 수습.”

“어... 최근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일이 있는데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났다나 봐요. 그런데 수습할 사람이 자기 말고는 없어서 한동안 바쁠 거래요.”


꽤나 자세한 정보다. 이사장은 승윤에 대한 평가를 다시 내렸다. 정말 친한 친구가 맞다고.


그나저나 수습이라. 어떤 수습인지 자세히 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충은 짐작이 간다.


세계적인 회사의 CEO가 공을 들이는 게 뭐가 있겠나. 보나마나 새로운 사업 관련한 것이겠지.


어쩌면 SNS의 새로운 모듈을 준비하고 있다가 상혁이 실수를 저지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중학교를 못 나오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귀가 맞아 떨어진다. 그 정도면 이사장도 너른 마음가짐으로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학생의 발전하도록 지탱하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니까.


거기에 그가 편의를 봐주면 ‘새로운 SNS 개발’이라는 역사적인 사업에 간접적으로나마 공을 세운 게 되지 않겠는가. 그런 음습한 생각도 조금은, 아니 사실 적지 않게 들어갔다.


하여 그는 웃는 낯으로 승윤을 돌려보냈다.


다음에 손님이 찾아오거든 은근히 비밀을 흘리며 정보적인 우위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사장은 헛다리를 짚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헛된 추측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날은 오지 않을 것 같다.


박상혁이 수련을 하다가 차원에 빵꾸를 뚫었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괴물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을 소요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알겠는가.


저것도 수습이라면 수습이지만 아마 말해줘도 못 믿겠지.


어쨌든. 남우리 학교는 상혁이 없음에도 날이 갈수록 번영하고 있다.


비록 왕이 자리를 비웠다고 하더라도 왕국은 지속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 나라가 부유하다면 더더욱 활발한 활동이 일어날 터.


이사장과 교장은 아쉬운 대로 현재 있는 아이들을 중심으로 엘리트 교육을 실시했다.


공부, 운동, 예술을 가리지 않고 재능이 충만한 아이들을 데려다가 전국적으로 교류를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남우리 중학교 출신의 엘리트들은 이내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자체든, 기업이든 가리지 않고 남우리 학교를 밀어주는데 뜨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남우리 엘리트들보다 잘난 영재들 또한 박상혁의 후광을 생각하여 척을 지려고 하지 않았고.


덕분에 남우리 중학교는 자타공인 명문학교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으며, 일류 영재들의 흐름에 깊게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사장과 교장의 입장에서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잠을 자다가도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제 상혁이 수습을 마치고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


왕좌는 눈이 부시게 닦아 놓았고, 왕을 돋보이게 만들 가신들 또한 육성을 마쳐 놓았다.


남우리에 뿌리를 둔 엘리트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분명 세상을 놀라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어른들의 시각과 학생들의 시각은 현저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똑똑하다는 영재의 시선이라도 어른의 그것과 완전히 같을 수는 없지.


기껏 키운 엘리트들이 빈 왕좌를 탐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들도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에 대해 감사하고, 상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중학교 소년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곧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주변 환경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그들이 이뤄낸 성과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는 했다.


이건 자신들이 해낸 것이라며. 상혁의 도움이 없이 이미 잘난 녀석들이라며. 아니, 어쩌면 상혁이 온다고 하더라도 자신들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면서.


박상혁은 난 놈이다. 수많은 신문과 방송사가 이를 칭송했다. 엘리트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어렸다. 초등학생 때는 밀렸을지라도, 중학생이 된 자신들은 더 뛰어난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생각해보아라. 초등학교 때 난다 긴다 하는 녀석들이 하나, 둘인가?


그런데 그들 중 끝까지 두각을 드러내는 게 몇이나 되던가.


어린 영재는 자신의 천재성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초등학교의 우상이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는 것도 드물지는 않다.


그런 이야기들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남우리 엘리트들은 자신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두고 다녔다.


그들은 왕처럼 행동했고, 왕과 같은 대우를 요구했다.


남우리의 모든 학생들이 그들을 우러러 보아야 했으며, 남우리에 속한 모든 것은 그들의 편의에 맞춰 움직인다.


그렇게 잘난 맛에 살게 된 아이들이 다음으로 눈독을 들인 건 다름 아닌 여자였다.


다시 말하지만 중학교 무리에게 중요한 것은 ‘실존’하는 것이다. 멀리 있는 소녀시대보다 학교에 있는 미소녀가 신경 쓰일 나이다.


그리고 남우리 중학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미인은 바로 장승윤이었다.


한 소년이 보고 왔던 미래와 같이 승윤은 중학생이 되며 그 외모의 잠재력이 만개했다.


빵을 먹던 학생들의 입에서 빵이 툭 떨어지고,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멍하니 있다가 공에 부딪쳐 양호실로 실려가기일수였다.


그만큼이나 승윤의 미모는 화사했다. 어쩌면 승윤이 다다를 수 있는 모든 다중우주의 승윤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다른 우주와는 달리 잘 보이고 싶은 친구가 있었기에 어려서부터 체중 관리에 들어갔고.


꾸미는 법을 유명 아역 배우에게 전문적으로 배웠으며.


무엇보다 모든 근심과 위협에서 벗어나 해맑았기에 승윤의 미소는 더 없이 따뜻했다.


오죽했으면 남자 애들의 고백을 받는 게 그녀의 일과 중 하나겠는가.


근처에 사는 남학생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그녀에게 고백을 하고, 또 차였을 것이다.


이는 남우리 중학교의 엘리트들이라고 해도 다르지는 않았다. 한창 이성에 호기심이 많을 녀석들은 적극적으로 애정공세를 펼쳤다.


그러나 누가, 어떤 말로 고백을 하더라도 돌아오는 답변은 똑같았다.


“미안. 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해맑고 순한 아이지만 거절 하나만큼은 똑 부러졌다. 설령 고백 상대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전혀 빈틈을 드러내지 않았다. 의사가 확고했다.


그게 남우리 엘리트든. 남우리 엘리트 할애비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소문이 돌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느니, 그 사람이 고등학교의 유명한 선배라느니.


모난 돌은 정을 맞는 법이다. 시기와 질투가 섞인 모함도 적지는 않았으나 다행히도 그런 소문은 쉽게 사그라졌다.


누군가 소문을 통제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덕분에 승윤은 가장 친한 친구가 없음에도 나름대로 무탈하게 중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남우리의 남학생이란 남학생의 고백을 전부 거절하고 이제 고백 러쉬가 끝이 나는가 싶을 즈음. 평온한 일상을 뒤흔들만한 사건이 발생했다.


남우리 엘리트 중에서도 리더 역할을 맡고 있는 오현규가 승윤에게 고백을 한 것이다.


현규는 영재로 유명한 소년이다. 똑똑한 머리에 수려한 외모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는 학생이며. 여학생들의 선망을 받고 있다.


그런 현규의 고백은 다른 이들의 주목을 이끌 수밖에 없었다.


“선남선녀네.”

“현규라면... 인정이지. 행복해라.”

“어쩌면 승윤이가 좋아하는 사람은 현규였을지도 몰라.”


그는 주변의 수군거림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승윤에게 어울리는 남자는 자신뿐이라는 자신감이 솟구쳤기에.


그래서 자신의 차례가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게 아닌가.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미안. 나는 널 좋아하지 않아.”


녹음된 음성 파일을 틀어 놓은 것 같이 단조로운 거절이었다. 학교 최고 인기인을 걷어차면서도 그 어떤 미사여구도 없었다.


승윤에게는 현규고 규현이고 별로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동안 쌓아올린 이미지 대로였다면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갔을 현규였다.


그러나 너무도 큰 충격과 수치심에 휩싸여 연기를 할 겨를이 없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질척거렸다.


“별로...”


승윤은 질문의 답을 내뱉다가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니다. 거절한 이유가 ‘별로여서’라면 많은 원성이 쏟아진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뭐 어떡한담. 별로니까 별로라고 말하는 거지. 그녀는 고민을 떨쳐버리고 대답을 완성시켰다.


“여서. 별로야.”

“...”


정적이 흘렀다. 한 여학생의 ‘대박’이라는 중얼거림이 메아리가 되어 울릴 정도의 정적이었다.


모두가 말없이 현규의 안색을 살폈다. 그의 얼굴이 빨갛게, 파랗게, 시커멓게 물들었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시 부들부들 떨던 현규는 짐짓 쾌활한 척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별로일 수 있지. 그럼 오늘 방과 후에 나랑 같이 놀러 가는 건 어때? 분명 재밌을 거야.”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이 뒤섞여 나온 결론이었다.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는 아집, 절벽에 핀 꽃을 한 번은 꺾어보고 싶다는 정복욕, 일단 한 번 데려가면 푹 빠지게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뭐. 일이 안 풀리면 현규가 먼저 차버렸다는 소문을 흘리면 그만이니까. 그런 비열한 생각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보다 더 잔인했다.


“음... 싫어. 재미없을 것 같아.”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 승윤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사귀자는 것도 아니고 같이 놀자는 권유를 거절한다는 건 정말 싫다는 소리였으니까.


하다못해 길가의 똥강아지가 권유해도 한 번 쯤은 귀엽다며 권유를 받지 않겠는가.


현규의 다리가 떨렸다. 무슨 말을 내뱉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이를 보다 못한 다른 엘리트 학생이 나서 소리쳤다.


“그냥 받아! 재미있을 거야. 너는 맨날 혼자 다녀서 우리랑 노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나 본데...”


하지만 단호박 장승윤은 상대가 발언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응? 나 혼자 아닌데?”

“거짓말! 네가 친구랑 다니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방과 후에 만나. 친구랑은. 히히.”


차마 거짓말이라고 몰아붙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승윤의 미소는 그만큼 진실되고 애틋했으니까.


가능한 거라고는 그녀의 발언에 흠집을 내는 것 뿐.


“누구랑 만나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래봤자 별 거 아닌 놈이겠지. 우리는 달라.”

“아니! 별 거 아니지 않아!”


승윤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 선을 넘는다면 전투마저 불사할 기세다. 과연 그 선 안에 무엇이 있기에 승윤이 저렇게 감정적이게 변한 걸까? 모두가 궁금해 했다.


“누군데?”


현규가 도전적으로 물었고, 승윤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상혁이.”

“... 상혁이? 같은 반 박상혁?”

“응!”

“그 SNS 만들었다는 박상혁 맞지? 걔를 만난다고?”

“응! 헤헤.”


소란이 일었다. 누구나 웅성일 정도로 파격적인 선언이었고, 그렇기에 소란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았다.


만약 승윤의 고백이 거짓이 아니라면 현재의 상황도 타당성을 갖추게 된다.


아무리 현규가 잘났다고 하더라도 상혁은 전 세계적인 유명인사였으니까.


남우리 엘리트의 입김을 많이 받는 남우리 학생들이지만, 그럼에도 상혁은 커다란 존재였다.


마음의 저울추를 달아 본다면 현규와 상혁이 비슷하거나, 상혁이 조금 더 우위에 있을 것이다.


현규는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싫다고 거짓말을 하는 건 조금 실망인데.”

“거짓말 아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상혁이 걔는 바쁘다고 학교도 안 나오는데 뭐? 너랑 논다고?

“친구니까! 친구는 필요할 때 옆자리에 있어 주거든!”


논리적 타당성은 현규에게 있었다. 학교를 빠지고 승윤이를 만난다는 건 얼핏 듣기에도 모순적이었으니까.


현규는 그대로 자신의 흑역사를 묻어버리기 위해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아이들은 쉽게 선동이 되지 않았다. 의견이 분분히 갈리더니 그들 중 누군가가 핵심을 찔렀다.


“상혁이가 학교에 오면 알 수 있는 거 아냐?”

“맞네. 친구라며. 그럼 학교에 나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거 아냐?”


현규가 원하던 흐름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도 나쁘지는 않다. 그는 과장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에게 들리도록 말을 꺼냈다.


“그래. 좋은 의견이야. 장승윤. 만일 네가 정말 박상혁의 친구라면 녀석을 내일 학교에 불러 봐. 그렇다면 네 말을 믿어주지. 아니라면 사과를 해주셔야겠어.”


고백을 거절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기어코 받으려는 현규는 참으로 찌질한 소년이었다.


그러나 그의 권세가 그 찌질함을 가리우고 당위성을 부여했다.


승윤은 잠시 입술을 짓씹었다. 상혁이는 최고의 친구지만, 어리광을 자주 부릴 수는 없다.


그러다가 상혁이 그녀에게 정나미라도 떨어졌다간 그녀는 충격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다른 도리가 없는 상황이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사과하던가.”

“... 상혁이는 내일 학교에 올 거야.”

“아무렴. 어련하시겠어. 내일 보자고?”


어느새 여유를 되찾은 현규는 여느 때처럼 쿨하게 자리를 벗어났다.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다음날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과를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또 자신이 어떻게 선의를 베풀어줄지. 상상만 해도 히죽 웃음이 나오곤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박상혁이 등교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살피던 승윤이 누군가를 발견하고는 만세를 부르며 달려갔다.


“상혁아!!!”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아이 같은 모습에 많은 이들이 깜짝 놀랐지만, 승윤은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상혁에게 다가가 팔짱을 꼈다.


“바쁜데 불러서 미안해... 화난 거 아니야?”

“화는 무슨. 평소에 내가 조금 더 신경을 써줬어야 했는데. 못 써줘서 미안하지.”

“진짜? 진짜 그렇게 생각해? 우히히. 기쁘다.”


입학식에도 안 나오던 상혁이 승윤의 부탁에 처음으로 학교에 발을 들였다. 그 사실은 꽤나 커다란 이슈이자 충격이었다.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승윤은 증명했고, 현규는 체면을 구겼다.


그러나 막상 승윤은 그런 내기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상혁이 학교에 왔는데. 꿈에 그리던 중학교 생활을 이제야 제대로 보낼 수 있는데 그딴 게 안중에 들어올까.


승윤은 상혁의 팔을 이끌며 학교를 돌았다.


“상혁아! 내가 학교 안내해줄게!”

“그래. 부탁할게.”

“히히. 나만 믿어!”


학교 구경이 쉽지만은 않았다.


전설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박상혁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러나 상혁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처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학우 여러분. 여러 분들을 위해서 준비한 선물이 있어요.”


그의 손에는 태블릿 pc가 들려 있었다. 휴대폰과 컴퓨터를 둘 다 사용할 수 있는 최신 전자기기에 학생들의 눈이 돌아갔다.


“이번에 샘숭에서 개발하고 있는 제품인데 제가 시제품을 받아왔어요.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선물로 드리고자 하는데. 괜찮을까요?”


‘그렇다’는 단어가 여러 가지 형태로 겹겹이 튀어 나왔다. 상혁은 그 광경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는 교무실을 가리켰다.


“아마 학급 담임 선생님들이 나눠 줄 준비를 하고 계실 겁니다. 가셔서 받으시면 돼요.”

“와아아아!”


그 많던 인파가 거의 다 빠져나갔다. 덕분에 승윤과 상혁은 느긋하게 학교를 구경할 수 있었다.


상혁이 등교한 날의 점심시간. 학생들의 화두는 모조리 상혁으로 고정이 되어 있었다.


“야! 태블릿 pc 써 봤냐? 크으. 크흐흐.”

“개쩔어. 진짜 너무 좋아. 박상혁은 신이다 신!”


학생들은 제 손에 쥐어지는 이득에 민감하다. 태블릿 pc를 뿌린 것만으로 상혁의 입지는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갔다.


지금까지의 인식이 ‘그런 애가 있구나’ 정도였다면 이제는 ‘역시 남우리의 자랑’, ‘잘난 녀석’, ‘최고의 동창’ 등 보다 현실적인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물론 지지를 얻은 이유가 태블릿 pc 때문만은 아니다.


“상혁이 얼굴 봤어?”

“야. 말도 마. 사진이 더 못나왔어. 개잘생김. 최고 존엄이야.”


어렸을 때 보던 드라마 속 아역배우를 다시금 떠올렸으며.


“사람이 부드럽고 어른스러웠지.”

“여유가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어.”


또 어떤 이는 그의 인성과 품격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사기적인 존재의 친구 승윤이에게도 자연스레 관심이 쏠렸다.


“이쪽이 진짜 선남선녀였네.”

“무슨 소리야. 상혁이가 아깝지.”

“그건 그래. 살면서 승윤이가 모자라다는 생각은 처음 들었던 것 같아. 그보다 현규는 안 되었네.”

“뭐. 깔끔하게 마음 접어야지. 상대도 안 될 텐데.”


이미 학생들은 상혁의 판정승을 선언했다. 고작 하루 만에 남우리 엘리트들이 쌓아올린 평판을 역전한 것이다.


현규는 양쪽 귀가 잘 달려 있다. 그렇기에 그런 소문을 들을 수밖에 없다.


“제기랄!”


그가 던진 유리컵이 바닥에 부딪쳐 산산조각났다. 그럼에도 분이 안 풀려 씨익씨익 거리던 그는, 잠시 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오른팔을 불렀다.


“애들 다 소집시켜.”


그의 머릿속에는 여젆; 자신이 상혁보다 잘난 녀석이라는 생각이 남아 있다.


그에게는 그를 따르는 수하들과 권세가 있으니 언제든지 상혁을 짓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모습을 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똑똑히 알리는 것이다. 오현규가 제일이라고. 박상혁은 별 것 아닌 녀석이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자신의 손으로 사냥하고 싶다는 추악한 마음가짐이 머리를 내밀었다.


“박상혁. 너는 내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엎드려서 꼬리나 살랑살랑 흔들도록 만들어주지.”


현규는 포효했다. 열의를 불태우며 전설을 끌어내릴 방법을 그의 친구들과 도모했다.


그 순간 상혁 역시 미소를 지었다.


상혁에게는 눈과 귀가 많다. 그의 전속 수행원 다빈이 그동안 꾸준히 정보를 올렸기에 현규의 행동 따위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과연 사냥을 당하는 쪽은 누구일까. 상혁은 잔혹하게 웃으며 왕의 흉내를 내는 광대를 친히 혼내 주기로 마음먹었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도 선호작도 댓글도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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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리셋 22.12.31 240 6 22쪽
200 신의 선택 22.12.30 240 5 18쪽
199 구원자 22.12.30 227 5 23쪽
198 북쪽 전선 22.12.29 219 4 21쪽
197 검정 상혁과의 만남2 22.12.29 225 5 22쪽
196 검정 상혁과의 만남 22.12.28 232 5 18쪽
195 고3의 숙명 22.12.27 232 5 17쪽
194 사랑의 형태 22.12.24 245 4 19쪽
193 사랑과 전쟁 2 22.12.23 232 5 22쪽
192 사랑과 전쟁 22.12.22 237 5 19쪽
191 흑역사 박람회 22.12.21 246 5 18쪽
190 차원의 틈 22.12.20 221 5 18쪽
189 참교육 22.12.17 235 5 17쪽
188 주제파악 22.12.16 228 5 19쪽
» 힘을 숨긴 찐따?가 되다 22.12.15 248 5 22쪽
186 졸업, 입학 22.12.14 251 5 15쪽
185 관측 22.12.13 266 5 18쪽
184 악마와 함께하는 제주도 투어 22.12.10 257 5 18쪽
183 바엘 22.12.09 230 5 20쪽
182 제주도 현장학습 22.12.08 253 5 25쪽
181 샌드백 필요 22.12.07 267 5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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