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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구. 님의 서재입니다.

정점의 DNA로 뉴 스타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완결

서지구.
작품등록일 :
2022.05.11 21:31
최근연재일 :
2023.01.01 00:00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07,316
추천수 :
3,569
글자수 :
1,721,531

작성
22.12.09 22:00
조회
230
추천
5
글자
20쪽

바엘

DUMMY

정점의 DNA로 New Start


183화



“찾았다. 악마의 왕 바엘.”


아직은 소년의 티를 벗지 못한 한 남자가 바엘을 향해 강렬한 눈빛을 보냈다.


“설마 제주도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행운의 DNA가 추천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설령 보물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저렇게 눈이 빛나지는 않을 터.


갑자기 끌려나와 부담스러운 눈빛을 받고 있는 바엘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아무리 몸을 숨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모든 악마들의 왕. 누군가에게 개처럼 질질 끌려온 적은 없었기에.


게다가 상대는 왜 악마를 보고 저리 좋아한단 말인가.


평범하게 농사를 짓고 있던 바엘에게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빠르게 일어나 상대의 정체와 현재 상황을 파악하려 했지만 다시 한 번 당황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바엘은 불합리하게도 다른 모든 악마들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불합리하게도 세상 모든 진리를 파악할 수 있으며. 불합리하게도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눈앞의 소년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뭐가 나오기는 했다. ‘평범한 소년’이라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그러나 바엘을 패대기친 저 존재가 평범할 리가 없지 않나. 관측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넌 누구냐. 어째서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거지?”


소년은 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너도 마찬가지잖아. 초음파도, 열 탐지도, 사진도 관측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존재야. 네가 모르면 누가 안다고 그래?”

“... 권능?”


바엘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권능을 사용한다는 건 상대가 악마라는 소리. 그런데 소년은 뿔도, 날개도, 창백한 피부도 보이지 않았다. 사생아라도 되는 건가.


그런데 권능이란 것이 중복될 수 있던가. 그런 불합리함이 성립하는 사례는 바엘 자신 말고 본 적이 없다.


상대의 정보를 들을수록 점차 정체가 흐릿해진다.


“그래서 누구냐. 악마인가?”


소년은 그 질문에 킬킬 거리며 웃다가 입을 열었다.


“네 눈에도 내가 악마로 보이나 보지? 이놈의 악마들은 왜 엄한 사람을 악마로 몰고 지랄이야.”

“악마가 아니라고? 그럼...”

“누구겠어. 머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해 봐.”


악마가 아닌데 권능을 쓸 수 있는 자. 다른 이의 능력을 따라할 수 있는 자. 법칙에서 자유로운 그를 강제할 수 있는 자.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저 소년이 바엘보다 월등한 존재여야만 한다.


그리고 지상에 그런 존재라고는 초월자 단 하나...


순간 벼락이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갔다. 동시에 상대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탄생했다는 초월자가 틀림없다.


떨리는 호흡을 강제로 가라앉혔다. 어쩌다 들켰는지는 지금 따질 게 아니다. 지금은 시간을 벌어야만 한다. 성공적으로 도망가기 위해서는 상대를 방심시키는 게 최선.


바엘은 인상을 찌푸리고 고개를 저었다.


“글쎄. 당최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군. 이 몸은 악마왕 바엘. 네 놈의 정체가 무엇이든 무릎을 꿇어야 할 것이다!”


기품 있게 선언하고 속으로 3초를 세었다. 상대가 대답을 고민하는 동안, 찰나의 틈을 노려 거리를 벌릴 생각이다.


그리고 소년의 입이 벌어짐과 동시에 바엘은 있는 힘껏 도약했다.


존재의 불균형을 다시 한 번 사용했고, 이내 8갈래로 갈라진 바엘은 사방을 향해 몸을 던졌다.


8개의 분신 중 진짜는 단 하나. 하지만 바엘의 권능 덕에 그 어떤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분신과 진짜를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시간은 벌어줄 터. 일단은 거리를 벌리고 도주를 하던, 요격을 준비하던 간을 봐야할 것 같다.


그러나 바엘은 10리도 못가서 투명한 장막에 부딪히고 말았다.


“으억?”


이건 또 뭘까. 그에 대한 답변은 곧바로 입에서 튀어나왔다.


“뭐긴 뭐겠어. 초월자가 쳐 놓은 덫이지. 젠장.”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꼴이 우스웠지만 이를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러는 순간에도 분신들이 터져나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에.


도망가기 위해 장막을 두드려보았지만 잔금 하나 생기지 않았다. 원래라면 장막이 유리던, 금이던, 다이아몬드던 불합리하게 부숴버려야 하는데 말이다.


이를 통해 초월자와 자신의 힘의 격차를 엿볼 수 있다.


불완전과 완전. 그 차이는 명백하다. 아무리 바엘이 불합리하게 모든 규칙을 찢어발긴다고 하더라도 초월의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못했으니.


0.999999가 1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


바엘과 저 소년의 사이에는 그만큼의 격의 차이가 존재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도망치려 했던 것이고.


그러나 이제 다 글러 먹었다. 바로 뒤에서 소년의 기척이 느껴졌으니.


“하여간. 악마 자식들 머리 굴리는 거 하나는 알아줘야해. 설마 악마의 왕이라는 작자가 말을 걸고 도망갈 줄은 몰랐어.”

“몰랐다는 것 치고는 방비가 단단한 걸?”


바엘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따졌지만 소년은 여유롭기 짝이 없다.


“아. 그거? 주변에 사람 들어올까 봐 미리 쳐둔 건데. 몰랐구나? 악마를 잡을 줄은 나도 몰랐지 뭐야?”


능글맞은 모습이 역겨웠다. 누가 저 녀석을 초월자라고 하겠는가. 하는 짓거리만 보면 악마가 딱인데.


소년의 이죽거리는 미소는 꼭 바엘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사실 꼴이 웃기긴 하다. 이 장막도, 상대의 힘도 다 존재의 불균형으로 숨겨둔 것일 테니.


자신의 권능에 크게 속은 악마의 왕이라니. 당사자가 본인만 아니었어도 바엘은 크게 웃었을 것이다.


부들부들 떠는 바엘에게로 소년이 다가와 속삭였다.


“야. 니 권능 쩔더라?”


이성의 끈이 뚝 끊겼다.


승리를 위해 굴욕을 감내하고 몸을 숨겼던 바엘이지만, 왕으로써의 프라이드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상처 입은 왕은 짐승과 같이 울부짖으며 발톱을 휘둘렀다.


“크허엉!”


지금까지 수많은 적을 무릎 꿇린 마검이다. 약한 적들은 무자비하게 도륙했으며, 강한 상대는 인과를 비틀어 승리를 도출해냈다.


제 아무리 초월자라 하더라도 감히 경시하지는 못할 터.


그러나 소년은 그 공격을 앞두고 되려 흥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60% 정도는 버티겠지?”


초월자는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간단한 움직임에 자그마한 바람이 일었다.


바엘의 검격 앞에서 너무나도 손쉽게 스러질 미약한 바람이었다.


그러나 두 공격이 맞부딪쳤을 때 소멸한 것은 바엘의 흉악한 기운이었다.


“어?”


압도적인 무력은 흥분을 잠재우고 이성을 일깨우는 법이다. 두 눈이 또렷해진 바엘은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지만 이미 늦었다.


“크헉!”


바엘의 기운을 쳐부순 권풍이 그의 신체에 임박했다.


펑!


신체의 일부분이 터져나감과 동시에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바엘을 밀어냈다.


“끄으읏! 으헉!”


버티려 해도 소용이 없다. 근처 나무를 붙잡으면 나무가 같이 뽑혔으며, 땅에 발을 꽂아 넣어도 발이 부러질 뿐이었으니.


바엘은 그저 흐름에 휩쓸려 아득해지는 정신을 어떻게든 붙잡을 뿐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어느새 그는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살아는 있는 건가?”


몸을 비척이며 뭍으로 향했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 치고 일이 잘 풀린 걸지도 모른다. 뒤지게 아프지만 어쨌든 탈출을 했으니.


초월자의 주먹에 맞고도 이렇게 걸을 수 있다는 건 의미가 있는 성과였다.


“크흐흐. 크흐흐흐흐. 마지막에 이기는 건 나다.”


의식이 당장이라도 끊길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며 버텼다. 언제 괴물이 자신을 찾을지 모르니.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려야 했다.


바엘은 소년의 방심을 바랐다. 아직 일발역전의 희망은 남아 있다.


제주도를 통째로 집어삼키는 함정이 바로 그것이다. 들키지 않고 지상에서 한탕만 성공하면 그도 초월의 영역에 이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반드시 이를 것이다.


“허억. 허억. 그렇게만 되면 저 애새끼도 신도! 도륙을 내주마.”

“그래. 열심히 해봐.”


응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원의 목소리가...


이곳은 바다 위인데.


삐걱삐걱 고개를 돌려 옆을 확인해보니 소년이 하늘을 거닐고 있었다. 그는 기분이 꽤나 좋아 보였다.


“살아 있었구나. 그래. 그래도 왕인데 이 정도는 버텨줘야지. 그럼 65%.”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 소년이다. 그러나 가벼운 지껄임에 비해 소년의 공격은 이번에도 경시할 수 없는 충격을 일으켰다.


소년의 발길질 한 방에 주변의 풍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그는 한참 동안이나 허공을 맴돌다가 커다란 절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흐어어억.”


온 몸의 공기가 허파를 빠져나갔다. 분명 주변에 산소는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바엘은 꺽꺽거리며 숨을 못 쉬었다.


만약 그가 바엘이 아니었다면. 모든 규칙과 인과를 비트는 존재가 아니었다면 이미 영혼이 소멸되고 말았을 것이다.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나. 아직 살아 고통을 느낀다는 사실에 절망해야 하나.


그 정도로 전신의 충격은 엄청났다. 그의 모든 권능을 사용하고도 살아있는 것이 고작이니.


게다가 묘하게 첫 번째 공격보다는 더 아픈 것 같다. 퍼센트로 따지면 5%정도.


“아.”


바엘은 드디어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매번 올라가는 퍼센트. 그것은 상대의 전력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를 능멸하기 위함인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이지만 조금은 결이 달랐다.


유희보다는 테스트에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바엘이 얼마나 단단한가를 측정하는 것 같은데. 어째서?


잘은 모르겠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이 있다. 다음 공격은 더 아플 거라는 사실.


“60%, 65% 그 다음은 70%인가? 절대 안 돼.”

“돼.”


어느덧 모습을 드러낸 소년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엘의 모습을 감상했다.


“마음에 든다. 조금만 더 버티면 합격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합격은 개뿔. 이러다 죽는다고!”


고작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여지껏 겪은 적 없을 정도로 죽음의 기운이 가까이 드리우고 있었으니.


그러나 피도 눈물도 없는 초월자는 콧방귀를 뀌었다. 가당치 않다는 표정.


“에이. 목숨도 여분으로 들고 다니는 악마가 엄살은.”

“그 여분이 동나게 생겼다니...”

“70%!”

“까아아아악!”


바다, 하늘에 이어 이번에는 땅바닥이었다. 바엘은 벙커 버스터라도 되는 것 마냥 바닥을 뚫고 지하로 처박히기 시작했다.


실시간으로 여분의 목숨이 까이는 것이 느껴졌다. 몸 상태는 언제 괜찮아졌냐는 듯 다시 걸레짝이 되고 만다.


“내가... 이렇게 죽는다고? 이 바알이? 이렇게 허무하게?”


고통이 점차 둔해진다. 주변에서 전해오는 정보가 줄어들고, 눈이 감긴다.


“차라리 이대로 지옥으로 가버린다면 좋을 텐데...”


멈출 줄 모르고 내려가는 지저 속에서 바엘의 의식이 끊겼다.


* * *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새하얀 세상이었다.


“사후세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애초에 영체로 태어난 존재에게 사후세계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어두컴컴한 지옥이라면 모를까. 자신의 사후세계가 이렇게 밝은 곳일 리는 없다는 것이 바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세상은 새하얬다. 평범한 곳은 아니다. 분명 죽음과 연관이 있는 장소였다.


아직까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초월자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좀 편했다.


“흐흐흐. 75퍼센트? 죽으면 그만이야~”


참을 수 없는 행복함에 웃음을 터트렸는데, 그러자 세상이 180도 뒤집혔다.


태양의 강렬한 빛이 다시금 바엘을 내리쬐었다.


천국에서 신이 PPAP를 추면서 내려와도 지금보다는 충격이 덜하리라.


사후세계가 아니라 지상이었나? 그럼 그가 본 흰 세상은?


의식이 차차 돌아옴에 따라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주변에 떨어진 종이가 눈에 밟혔다.


“종이?”


그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봤던 하얀 세상은 종이였던 것이다. 얼굴 위에 얹어져 있으니 하얀색 밖에 안 보였겠지.


그러다 입가에서 나온 바람 탓에 종이가 벗겨진 듯하고.


시선은 자연스럽게 종이를 향했다. 바엘은 더듬더듬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었다.


“계약서...?”


흥미가 생겼다. 악마치고 계약에 환장하지 않는 놈을 찾기가 어려웠으니.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바엘의 미간에는 주름이 생겼다.


“이런 불공정 거래는 또 처음이네.”


뭔가 길게 적혀 있긴 하다만 중점만 짚으면 다음과 같다.


갑을 향한 을의 절대 복종.


보통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계약서에는 보상에 관한 내용이 단 한 줄도 적혀있지 않았다.


절대 복종과 같이 큰 규제의 경우 얻을 수 있는 리턴이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건 인간이 쓴 것이 분명하다. 악마도 이런 근본 없는 계약서는 쓰지 않는다.


이렇게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추악한 존재는 전 우주에 인간뿐이다...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떨어졌다.


이게 누가 작성한 서류인지. 누구를 위한 계약서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초월자.”

“맞아. 그 불공정 거래는 너의 것이란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이 신기루처럼 무너지고 소년이 나타났다. 그는 계약서를 펄럭이며 싸인을 강요했다.


바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곳이 사후세계가 아닌 지상임을 눈치 챘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찍어.”

“죽여라!”

“싫은데. 네 후임으로 어떤 악마가 탄생할 줄 알고.”


초월자는 악마의 생태를 너무나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바엘 급의 악마가 사라지면 자정작용으로 또 다른 대악마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니 소년의 입장에서는 바엘의 목에 목걸이를 채우는 것이 편할 터.


하지만 바엘의 의지는 굳건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죽으마!”


온 몸의 기운을 일거에 터트렸다. 이미 치명상을 입었으니 이 정도 충격이면 존재가 소멸하고도 남는다.


육체는 죽겠지만 명예는 지켰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초월자의 계획을 망쳤다는 생각에 약간 기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안식을 얻지 못했다. 무형의 기운이 바엘의 체내를 억눌렀기 때문이다.


오히려 몸이 좋아지는 것 같다. 아니 오해가 아니다. 실제로 몸이 회복되고 있다.


“... 어떻게?”

“바딘의 권능을 따라했지. 해보니까 쉽던데?”


제 18위계의 악마 바딘. 그의 권능은 치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초월자는 이를 참고했다고 한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바엘의 권능을 따라했는데 다른 악마의 권능이라고 불가할까.


소년은 비릿한 미소를 띄우며 온전한 승리를 선포했다.


“죽으면 그만이라고? 응. 다시 살리면 그만이야~”

“제기랄.”


이제는 도망갈 구석이 없었다. 더 이상 버팅기는 것도 불가능하다.


때리고, 회복시키고, 또 때리고, 회복시키고. 말을 잘 들을 때까지 무한의 굴레가 이어질 것이다.


힐링 능력의 공격적 사용이라니. 토가 나올 것 같이 어지러웠다.


“계약을 거부한다면?”

“받아들일 때까지 제시할 거야. 아침에, 점심에, 저녁에, 잘 때, 꿈속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언제나. 어디서나. 언제까지라도.”


한숨이 한층 더 무거운 숨을 내뱉었다. 저 몰골이 하루 24시간 따라온다고 생각하니 눈물샘이 터질 것만 같다.


죽기보다 하기 싫은 일을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다니. 코가 꿰였다는 것이 바로 이런 느낌일까.


마음이 착잡했다.


“계획만 성공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제주도 전역에 마법 진을 설치해두었다. 발동만 한다면 섬에 있는 생명체를 희생하여 바엘에게 막대한 힘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바엘도 벽을 깨트리고 초월의 영역에 발을 디뎠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이렇게 손도 못쓰고 지는 일은 없었으리라.


“계획?”


어째서인지 소년이 흥미를 보였다. 어차피 이미 손을 떠난 일이었기에 바엘은 계획에 대해 이실직고했다.


모든 이야기를 들은 소년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 말은. 지금보다 더 튼튼해질 수 있단 말이지? 흐흐흐.”


소름이 돋았다. 저 녀석은 지금 그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다. 고작 때릴 맛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마지막이 70%였으니. 75%, 80% 출력 상승에 더욱 박차를 가하리라.


소년이 바엘의 옷을 붙잡아 일으켜 세웠다.


“계획이라는 거. 해 봐.”

“제주도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그러자 주변의 경치가 바뀌었다. 어느새 바엘과 소년이 처음으로 만난 귤 농장에 도착한 것이다.


“이제 할 수 있겠지? 해 봐.”

“쯧. 그 오만함이 너를 죽이고 말 것이다.”


희망의 불씨가 조그맣게 피어올랐다. 상대의 방심은 바엘에게 있어 둘도 없는 기회였다.


그가 제주도에 이식한 것은 바로 대마경이식진. 발동하는 곳에 지옥을 덮어 씌우는 무시무시한 마법진이다.


그렇게 된다면 제주도의 모든 생명체는 바엘에게 굴복할 것이며, 바엘은 거리낌 없이 에너지를 흡수할 수 있다.


바엘은 지옥을 다스리는 자이니, 감히 누가 지옥에서 그를 거스를 수 있겠는가.


물론 효과가 좋은 만큼 준비 과정이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섬에 지옥을 뒤집어씌우는 일이니만큼 정교하게 진을 설치해야만 했다.


하늘과 바다, 산까지.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조정을 했고.


그러나 그 모든 고생이 이제 결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제주도를 집어삼킨 바엘은 초월자보다 위대한 존재가 될 테니.


미약한 흥분과 함께 바엘은 대마경이식진을 가동시켰다.


“...”


바엘은 고개를 갸웃하며 대마경이식진을 가동시켰다.


“... 뭐하냐?”


마기가 부족했던 걸까? 바엘은 진기가 뒤틀리는 걸 감안하며 마기를 탈탈 부어 넣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떤 조짐도 보이지 않았다.


진이 발동하면 우선 하늘이 지옥의 빛깔로 침식되고, 그 다음 바다에 결계가 생겨 출입을 금지하며, 마지막으로 지각변동을 통해 지옥이 솟구쳐 오른다.


그러나 1단계도, 2단계도, 3단계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지옥은 개뿔, 여전히 평화로운 제주도였다.


“뭐하는 거냐고 묻잖아.”


소년이 한심하다는 듯 바엘을 노려보았다. 어떻게 악당에게 파워 업 찬스를 주었는데 제대로 강해지지도 못하냐고 핀잔까지 들었다.


바엘은 억울한 나머지 자신의 결백을 토로했다. 얼마나 신경 쓴 프로젝트인데 관리하나 제대로 못했겠냐면서.


이를 곰곰이 듣던 소년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무언가 짚이는 게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 그거. 내가 망가트린 거 같은데?”

“... 뭐요?”

“아니. 해산물 좀 잡고, 귤 좀 따고, 별똥별 좀 내리게 하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하하.”


바엘의 움직임이 딱딱하게 굳었다. 몇 개월 동안 피땀 흘려가며 고생한 프로젝트가 쓰레기가 되어버렸다.


초월자가 되는 것도, 소년을 쓰러트리는 것도 모두 물 건너 가버렸고.


차라리 진을 발동 안 해보고 죽었다면 좋았을 걸. 그러면 희망회로라도 굴리면서 자위라도 할 수 있지 않나.


모든 가능성이 부정된 지금, 바엘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심지가 끊어졌다. 이제 모든 것이 다 끝이다.


남은 것은 괴로움과 치욕스러움만 남은 미래뿐.


세계의 2인자로써 천하를 호령하던 악마왕의 초라한 최후였다.


작가의말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선호작, 댓글은 언제나 큰 힘이 됩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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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리셋 22.12.31 240 6 22쪽
200 신의 선택 22.12.30 241 5 18쪽
199 구원자 22.12.30 228 5 23쪽
198 북쪽 전선 22.12.29 220 4 21쪽
197 검정 상혁과의 만남2 22.12.29 225 5 22쪽
196 검정 상혁과의 만남 22.12.28 232 5 18쪽
195 고3의 숙명 22.12.27 232 5 17쪽
194 사랑의 형태 22.12.24 245 4 19쪽
193 사랑과 전쟁 2 22.12.23 233 5 22쪽
192 사랑과 전쟁 22.12.22 237 5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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