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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현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삼국영웅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예서현
작품등록일 :
2022.05.11 23:23
최근연재일 :
2022.06.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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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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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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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쪽

악업악보(2)

DUMMY

드디어 출정의 날이 밝자 손책이 씩씩하게 군대를 이끌고 원정에 나섰다.


조랑은 앞으로 하천이 흐르고 배후로는 두 개의 산이 병풍처럼 둘러싼 곳에 부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경현에 도착한 손책은 다음 날 전투를 벌이기 위해 우선 군대를 쉬게 했다.


손책의 병사들이 하천 근처의 평지에 영채를 세우기 위해 바쁘게 수풀을 헤치며 주둔할 곳을 정리하고 있는데, 하천 옆으로 길게 퍼져있는 갈대밭에서 숨죽이며 매복해 있던 조랑의 병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오며 일제히 활과 쇠뇌를 발사했다.


사정없이 날아드는 화살에 손책의 병사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자, 다시 한번 손에 창칼을 든 병사들이 갈대밭에서 ‘와’하는 함성 소리와 함께 달려나와 손책군을 포위해 공격했다.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조랑은 여느 도적들과는 달리 체계적으로 군대를 운용하고 항상 척후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손책군의 경로를 예상하고 기습을 가했던 것이다.


조랑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게 되자 손책의 군사들 중 원래 도적이었다 투항한 자들이 모두 명령에 따르지 않고 도망쳐버렸다.


손책은 위기를 타계하기 위해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가며 적병들을 쓰러뜨렸다.


멀찍이 뒤편에 떨어져 전황을 살펴보던 조랑이 분투하는 손책을 보고 그를 잡기 위해 용맹한 부장들과 함께 갈대밭 사이로 몸을 바짝 엎드려 손책의 뒤로 접근했다.


주위에 가득한 적들로 인해 후방을 신경쓰지 못한 손책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려는 순간, 노련한 정보가 바람의 방향과는 다른 갈대의 움직임에 수상함을 느껴 부장 한 명을 대동하고 손책의 뒤로 달려갔다.


정보가 손책을 엄호하기 위해 달려오자, 조랑은 서둘러 손책에게 다가가 갈대밭에서 뛰어오르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나 서두름으로 인해 조랑은 마지막까지 기척을 숨기지 못했고, 조랑의 움직임을 알아챈 손책은 재빨리 몸을 비틀어 말에서 내렸다.


아슬아슬하게 손책을 비켜간 조랑의 대도는 손책이 타고 있던 말의 안장을 찍었다.


조랑과 그의 부장들이 이내 말에서 내린 손책을 둘러쌌으나, 정보가 말 위에서 사모를 휘두르며 조랑의 부장들을 돌파하니 손책이 큰 위기에서 벗어났다.


손책군은 수적 열세에 놓였지만 과거 손견의 부곡이었던 정예병사 수백 명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분전하여 겨우 조랑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전투에서 손책의 병사들은 겨우 백여 명 남짓만이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뼈아픈 실패를 경험한 손책은 아직까지 자신의 기량이 충분치 않음을 절실히 느끼고 다시 원술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원술은 손책을 보고 안타깝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손견의 병사 중 천여 명을 돌려주며 그를 자신의 휘하에 머무르게 했다.


아직 산중지왕山中之王이 되지 못한 새끼 호랑이 손책이 원술의 야박하고 비인간적인 처사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을 굽히며 객장 생활을 시작한 이때가 초평 4년 12월 말이었다.




한편 초평 4년 초 휴전을 체결하고 유주로 돌아가야 했던 공손찬은 원소와의 전투로 군사적 역량이 많이 손상됐기 때문에 이전과 같이 전선을 넓게 유지할 수 없었다.


이에 그는 유주로 돌아가기에 앞서 일부 지역을 포기하고 해안선을 따라 길게 늘어선 지역에 병력을 재배치하여 유주와 서주를 잇는 합종책을 취했다.


평원국상이었던 유비 역시 공손찬의 변경된 전략에 따라 평원현에서 물러나 평원군 동쪽의 염차현으로 치소를 옮겼다.


민생의 안정을 챙기기 위해 유비가 염차현에서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날, 웬 장수 하나가 관부로 나는 듯이 말을 몰고와 유비를 만나기를 청했다.


유비가 그 장수를 안으로 들이자 그는 유비에게 예를 갖춰 인사한 뒤 북해상 공융이 보낸 서찰을 전했다.


그 서신에는 북해군이 황건적의 침입으로 위태로워 원군을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글을 다 읽은 유비가 서찰을 가져온 장수를 다시 살펴보았는데, 8척 남짓한 훤칠한 키와 멋스럽게 자란 수염에서 늠름한 자태가 뿜어져 나오는 것이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귀 공께서는 누구신지요?”


“저는 동래군東萊郡 황현黃縣 출신의 미천한 사람으로 태사자太史慈라고 합니다. 공북해와는 골육骨肉도 아니고 향당鄕黨(같은 고향 사람)도 아니지만, 그분께 입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어려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지금 북해는 관해管亥가 이끄는 황건적 수만 명에 포위당했는데, 천하가 어지러워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 수 없이 고립된 상태에 처했습니다. 듣자하니 공께서는 평소 인의仁義를 드높이는 인물이라 반드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해주실 것이라 하니, 부디 운명이 조석에 달린 북해의 백성들을 외면하지 말고 도와주십시오.”




태사자는 자가 자의子義로 어려서부터 학문을 연마하여 문무를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과거 태사자가 고향에서 군주조사로 있을 때 동래군과 청주 사이에 큰 문제가 생긴 적이 있었는데, 태사자는 자신이 속한 군을 위해 주에서 올리는 공문서를 파기해 주목을 분노케한 일이 있었다.


이후 태사자는 주목으로부터 화가 미칠까 두려워 요동으로 피신했는데, 이 소문을 들은 북해상 공융이 태사자를 뛰어난 인물이라 여겨 홀로 남은 그의 모친을 돌봐주었다.


요동에서 7, 8년을 지낸 태사자는 최근에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의 모친은 반가움을 뒤로한 채 몇 년 만에 만난 아들을 곧바로 공융에게 보냈다.


“너는 일찍이 공북해와 만난 적이 없을 것이나, 네가 떠난 이후 공북해께서 나를 오랜 친구 이상으로 대우해주며 돌봐주셨다. 그런데 지금 그가 황건적에게 포위돼 있다고 하니 너는 마땅히 공북해를 도우러 가야 할 것이다.”


모친의 말을 들은 태사자는 공융이 포위돼 있는 도창으로 간 뒤 야심한 밤을 틈타 적진을 뚫고 성안으로 들어가 공융을 만났다.


공융은 태사자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그가 영용한 호걸인 것을 알고 있었기에 크게 기뻐했다.


태사자는 무예와 병법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공융에게 군대를 내어달라고 청했다.


“바라건데 출병할 것을 허락해 주신다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겠습니다!”


그러나 공융은 적의 형세가 너무 크기 때문에 태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고 외부의 구원만을 기다렸다.




황건적의 포위는 날로 강해지는데 아무도 북해를 구원하러 오지 않자 걱정에 빠져 마음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던 공융은 과거 황건적이 봉기했을 때 의용병을 이끌고 청주를 구원한 유비를 생각해내게 되었다.


‘평원국상 유현덕이 예전에 황건적으로부터 청주를 구해준 일이 있으니 그에게 청하면 다시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공융은 휘하의 관리를 파견해 유비에게 위급함을 알리고자 했으나 성안의 제장들은 어느 누구도 나가려하지 않았다.


출성出城해서 도적들과 싸웠던 장군 종보宗寶가 불과 몇합만에 관해의 칼에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태사자가 나서서 그 임무를 맡겠다고 말했다.


“뜻이 비록 장하기는 하나 황건적의 포위가 삼엄해 모든 사람들이 못한다고 하는 것을 어찌 경 혼자 할 수 있겠소?”


공융은 아까운 젊은 영웅을 잃을까 걱정돼 우려의 뜻을 나타냈는데, 태사자가 말했다.


“지난날 부군께서는 제 어머니를 정성껏 돌봐주셨습니다. 이에 감격하신 어머니께서 저를 보내 부군의 위급함을 도우라 하셨는데, 제가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이곳에 온 것은 반드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뭇 사람들이 가능하지 않다고 해서 저 역시 그냥 포기한다면 부군께서 제 어머니를 돌봐주신 은의와 어머니의 부군에 대한 보은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태가 급박하니 철저히 준비하여 행동할 것입니다. 부군께서는 의심을 거두시기 바랍니다.”


공융은 태사자의 말을 장하게 여기고 결국 그에게 임무를 부탁했다.


성을 나가기로 한 태사자는 빈틈없이 여장을 꾸린 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건鞬(활과 화살을 꽂아 넣어 등에 메는 물건)을 두르고 활을 쥔 채 말에 올라탔는데, 두 명의 기병에게 과녁을 가지고 자신의 뒤따라오게 했다.


태사자가 성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성을 포위하고 있던 황건적 병사들이 모두 놀라 병마를 대기시켰는데, 태사자는 성 밑의 해자로 들어가 활쏘기만 연습한 후 그냥 성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태사자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니 황건적 병사들은 태사자를 경계하지 않게 되었는데, 태사자는 이 틈을 노리고 말을 달려 포위망을 돌파했다.


도적들은 뒤늦게 태사자를 추격하려했지만, 태사자가 백발백중의 활솜씨로 여러 명을 쏘아죽이니, 도적들은 활시위 소리만 들어도 겁을 먹고 몸을 엎드리기에 바빠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유비는 도적들의 칼날을 무릅쓰고 포위를 탈출해 자신에게 달려온 태사자의 의기에 감복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봐준 공융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공문거孔文舉께서 천하에 이 유비가 있음을 아는구나!”


유비는 공융을 돕기 위해 신속히 출진 준비를 마친 후 관우, 장비, 전예와 함께 정병 3천을 이끌고 북해로 진군했다.


도창성을 포위하고 있던 관해는 멀리서 구원군이 다가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이에 대적하기 위해 친히 대군을 이끌고 나갔다.


그는 유비군의 규모가 얼마 되지 않자 대단치 않게 여기고는 스스로 앞장서 적진을 향해 달려나왔다.


유비, 관우, 장비와 함께 진의 선두에 있던 태사자는 관해가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관우가 그 사이를 미처 참지 못하고 먼저 날려나가 관해에게 달려들었다.


두 필의 말이 맞붙자 양측 군사들이 큰 함성을 질렀는데, 두 장수가 수십 합을 겨룬 끝에 관우의 청룡언월도가 관해의 몸을 쪼개 말 아래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태사자와 장비가 일제히 출격해 나란히 적진을 휘저었고, 유비는 전군을 몰아 황건적을 덮쳤다.


도적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지자 성 위에서 전황을 살피던 공융이 신속하게 군대를 출병시켰고, 공융이 대장 무안국武安國이 용기백배하여 병사들을 이끌었다.


황건적은 양쪽의 협공을 버티지 못하고 패주했는데, 도망치지 못한 많은 인원이 관군에 투항했다.




황건적이 포위를 풀고 도주하자 공융은 크게 기뻐하며 유비 일행을 성안으로 맞아들였다.


서로가 인사를 나누자 공융이 큰 술자리를 마련해 승전을 축하했다.


공융과 유비 등이 즐겁게 술을 마시며 승전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병사 하나가 들어와 서주에서 미축麋竺이란 자가 찾아왔다고 아뢨다.


도겸이 파견한 미축은 애초에 북해의 치소인 극현劇縣으로 향했는데, 공융이 관해를 상대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도창으로 뒤쫓아왔다.


그런데 미축이 도창에 도착했을 때는 공융이 황건적에게 패하고 성이 포위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성 밖에 머물며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비의 군대가 황건적의 포위를 풀고 성을 구원하자 그제서야 입성해 공융을 찾아온 것이었다.


미축은 공융이 서주의 요청을 들어줄만한 상황이 안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이상 도겸의 서찰은 전해야겠다고 생각해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원군을 요청했다.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지금쯤이면 서주는 조조의 공격으로 인해 매우 위태로운 상황일 것입니다. 그의 군세가 너무 커서 서주 혼자서는 맞설 수가 없으니 명공께서 구원의 손길을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도겸의 서찰을 받은 공융은 기가 막혔다.


자신도 유비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형편에서 도겸을 돕는다는 것은 전혀 말이 안되는 것이었다.


“나와 도공조는 교분이 두터운데다가 또 이렇게 자중子仲(미축의 자)이 몸소 여기까지 왔으니 어찌 돕지 않을 수가 있겠소. 다만 내가 조맹덕과는 원수진 일이 없으니 군사를 움직이기 보다는 먼저 두 사람을 화해시키도록 힘써보겠소.”


도겸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어려웠던 공융은 우선 조조에게 서신을 보내 화해를 주선해주려고 했다.


그러나 미축이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조조는 서주를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기고 있는데 쉽게 화해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는 병위兵威를 믿고 결코 화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공융이 어쩔 수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감히 도공조의 부탁을 사양할 수는 없겠지만 자중도 보시다시피 북해는 병력이 미약하고 장수도 적으니 쉽게 움직이기가 어렵소.”


미축이 보기에도 공융의 상황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 무리하게 부탁할 수도 없었다.


이때 옆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비가 말했다.


“도서주는 공손백규 장군과 연합해 원소와 겨룬 적이 있으니 유주로 도움을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미축이 말했다.


“유주까지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해서 사람을 보내지는 않았지만 임치에 있는 청주목 전자범에게는 서주의 진원룡이 갔으니 이미 서신이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공손 장군께 가서 추가적으로 군대를 얻어 서주로 가겠습니다. 제가 과거에 조맹덕과는 작은 인연이 있으니 미력하게나마 도공조를 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미축이 유비의 말을 재차 확인했다.


“공께서는 절대 실언하지 마십시오.”


“미공께서는 저 유비를 어떻게 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성인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로부터 사람이란 모두 죽기 마련이나 신의가 없다면 살 수가 없다’고 하셨소. 제가 공손 장군을 설득하지 못하면 저만이라도 서주로 갈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그러자 내심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공융이 말했다.


“미력하나마 유공께서 서주로 가실 때 제가 군사 천 명을 보태도록 하겠소.”


미축은 유비와 공융의 말을 듣고 깊은 감사를 표한 후 서주로 돌아갔다.


작가의말

강표전(손보전 주석분) : 손책이 강동을 평정한 이후 조랑을 토벌하여 생포하자 말했다. "네가 지난날 나를 습격해 나의 말안장을 베었으나 (생략) ..."


정보전 : 손책이 일찍이 조랑을 공격하다 포위됐는데,정보와 기병 한 명이 손책을 막고 말을 몰아 내달리며 창으로 적들을 돌파하니 적이 분산되어 손책이 포위망을 탈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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