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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현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삼국영웅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예서현
작품등록일 :
2022.05.1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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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5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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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신군부정변(2)

DUMMY

혼신의 힘을 다한 여포는 기어이 길을 열고 성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으나, 성안의 상황은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


수많은 이각의 무리들이 성으로 들어오자마자 곳곳에서 살인을 행하고 노략질을 해대니 아비귀환이 따로 없었다.


여포는 황망히 말을 몰아 황궁으로 가 청쇄문靑鎖門 밖에서 크게 왕윤을 불러 찾았다.


“왕 사도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형세가 위급하니 어서 나오십시오!”


여포의 부름에 왕윤이 나오자 여포가 함께 떠날 것을 권유했다.


“우선 관 밖으로 탈출한 후 차차 좋은 계책을 마련하도록 하시지오.”


그러자 왕윤이 말했다.


“종묘사직의 도움에 힘입어 국가를 평안케 하는 것이 내 소원이었는데,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몸을 바쳐 죽는 것이 더 낫소. 폐하가 어려서 나를 믿고 의지하는데, 환난을 맞이해서 구차하게 벗어나는 짓을 내 어찌 할 수 있겠소? 그대는 힘을 다해 관동의 여러 공들에게 사죄한 후 서로 협력하여 나라를 위해 부지런히 힘써 주시오.”


여포가 거듭 권했지만 왕윤은 끝내 거절했다.


이때 고순은 여포의 처자식을 구하려고 찾았으나 발견하지 못하고 여러 곳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성문에서 불길이 치솟자 급히 여포에게 되돌아가 외쳤다.


“장군, 성문이 불타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불길을 뚫고 빠져나가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습니다!”


여포는 하는 수 없이 왕윤을 내버려둔 채 기병 수백과 함께 급히 장안성의 북쪽으로 탈출을 시도했는데, 북문 밖에는 곽사가 부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여포는 앞으로 나아가 길을 막고 있는 곽사에게 말했다.


“너희 량주 것들이 내게 맺힌 것이 많다던데, 이 자리에서 결투를 벌여 승부를 가름해보겠는가?”


누가 보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여포의 도발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곽사는 여포의 대결신청을 받아들였다.


그는 공명심에 눈이 멀어 피로와 부상으로 정상이 아닌 여포라면 자신이 상대해볼만 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맹수는 상처를 입었을 때 더 사나워지는 법, 위기를 맞아 더욱 포악해진 여포는 곽사와 더불어 싸운지 불과 몇 합 만에 화극을 곽사의 어깻죽지에 찔러 넣었다.


왕방은 곽사가 여포를 상대하러 나설 때부터 불안한 마음을 갖고 잔뜩 경계했는데, 그가 화극에 찔려 비틀거리자 즉시 병사들을 휘몰아쳐 곽사를 구했다.


여포는 곽사를 무찌른 기세를 타고 그대로 적진을 향해 돌진했고, 그 뒤를 용맹한 무장들이 따르니 곽사군의 진영이 흐트러졌다.


장안성을 탈출한 여포는 쉬지 않고 남쪽으로 내달려 무관武關을 빠져나와 남양의 원술袁術에게로 향했다.




태상 충불种拂ㆍ태복 노욱魯旭ㆍ대홍려 주환周奐ㆍ성문교위 최열崔烈ㆍ월기교위 왕기王頎 등이 이각에게 맞서 싸웠으나 모두 죽임을 당했고, 무고한 백성 1만여 명 이상이 전투에 미쳐 날뛰는 이각의 병사들에게 무참히 도륙되었다.


왕윤은 난을 피하기 위하여 헌제를 모시고 선평문宣平門에 올라가 있었는데, 이각 등이 성문 아래에서 헌제를 알아보고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니, 헌제가 그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장안으로 군대를 이끌고 들어와 병사들이 멋대로 날뛰니, 이것이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오?”


이각이 말했다.


“동태사는 사직을 떠받들던 폐하의 충신이었는데 아무 이유없이 왕윤과 여포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신 등은 단지 복수를 하려는 것이지 감히 반역할 뜻은 없사옵니다. 청하옵건데 일이 다 마무리되면 정위廷尉(형벌을 관장하는 관리)에게 가서 죄를 받게 해주시옵소서.”


이각의 말을 듣고 헌제 곁에 있던 왕윤이 아뢨다.


“폐하, 신은 본래 종묘사직을 위해 계책을 내었으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폐하께서 신을 불쌍히 여겨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시면 아니될 일이니, 신을 저들에게 보내주시옵소서.”


헌제는 주저하며 차마 왕윤을 보내지 못했으나, 왕윤이 급히 몸을 피하느라 부상당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망루 아래로 내려와 크게 외쳤다.


“왕윤이 여기 있느니라!”


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이각이 칼을 뽑아들고 왕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동태사께서 무슨 죄가 있다고 살해했느냐?”


왕윤이 의연하게 대꾸했다.


“동탁의 죄가 하늘과 땅에 차고도 넘쳐 이루 말하기가 어려웠느니라! 대역무도한 죄인이 벌을 받고 죽은 날 장안의 모든 백성들이 춤추고 기뻐하였는데, 어찌 그걸 네놈 혼자만 몰랐단 말이냐!”


이각이 다시 말했다.


“만일 동태사께 죄가 있었다 한들 우리는 무슨 죄가 있다고 사면하지 않았느냐?”


이에 왕윤이 크게 꾸짖었다.


“이 역적놈아, 왜 이리 쓸데없는 말이 많은게냐? 나 왕윤, 오늘 한번 죽을 뿐이다!”


왕윤의 당당한 태도에 부끄러움을 느낀 이각이 들고 있던 칼을 내리치니, 강직한 성품의 충신 왕윤이 5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역도들은 왕윤을 죽인 후 병사들을 보내 그의 일족도 모조리 처치했는데, 형의 아들인 왕신王晨과 왕릉王陵은 간신히 탈출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사례교위 황완을 비롯해 왕윤과 가까웠던 벼슬아치들도 모두 체포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사손서만은 동탁이 주살됐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며 공을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돌렸었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각은 왕윤의 시체를 저자에 매달아놓고 장안 사람들이 보도록 했는데, 모든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면서도 감히 시신을 수습하려 나설 수가 없었다.


이때 왕윤의 옛 부하였던 평릉平陵현령 조전趙戩이 나와 왕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내주었다.


그후 조전은 바로 벼슬을 벼리고 형주의 유표에게로 가서 의탁하니, 유표가 후하게 대했다.




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이각 등은 옥에 갇혀있던 이유를 석방하고 동탁과 동씨 집안사람들의 시체를 거두어 장례를 치루는 등 우선 자파 세력의 결속을 다지는데 힘썼다.


이들은 이유의 계책에 따라 매우 노쇠했거나 군사경험이 없어 군을 통솔하기 어려운 조겸ㆍ황보숭ㆍ마일제ㆍ주충 등을 조정의 최고위직에 앉힌 뒤 자신들은 병권을 틀어쥐고 조정의 정사를 관리하였는데, 이각은 거기장군 영사례교위 가절, 곽사는 후장군, 번조는 우장군, 장제는 진동장군鎭東將軍으로 임명되고 모두 열후에 책봉되었으며, 호진ㆍ양정ㆍ왕방ㆍ이몽뿐 아니라 화음에 주둔하면서 정변에 참여하지 않은 단외까지 장군에 제수되었다.


이유는 홍농왕을 협박하여 죽인 일 때문에 헌제가 반대했음에도 시중이 되었고, 가후도 상서에 임명되었다.


애초에 이각 등은 정변에서 모사로 활약한 가후의 공을 높이 평가해 그를 좌풍익군左馮翊郡 태수로 제수하고 제후에 봉하려 했으나, 가후는 신군부정권에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장래에 자신에게 이롭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 겸양하며 태수직을 받지 않았다.


이후 가후는 상서복야의 자리도 사양했고 단지 인사업무를 담당하는 상서의 직을 맡았다.


또한 때마침 량주의 군벌 한수와 마등이 장안으로 병사들을 인솔해왔는데, 이각 등은 한수를 진서장군鎭西將軍으로 삼아 금성으로 돌려보내고, 마등은 정서장군征西將軍으로 삼아 미현에 주둔토록 했다.


원래 동탁은 장안에 입성한 후 서량의 한수를 포섭해 그와 함께 산동 지역을 도모하려고 했다.


동탁의 연락을 받은 한수는 크게 기뻐했고 마등에게는 사면이 내려져 조정을 적대시하는 제후들을 토벌하라는 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마등 역시 반란군의 신분에서 벗어나게 됐다는 소식에 기뻐 한수와 함께 군대를 일으켰는데, 이들이 한양에서 군대를 합쳐 사례司隸로 진입하던 차에 동탁이 죽고 정권이 바뀌게 되었다.


이에 한수와 마등은 진창陳倉에서 발길을 멈추고 사태를 주시했는데, 다시 량주 출신 무신들이 정권을 탈환하자 동탁과의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서 장안으로 진군해온 것이다.


한수와 마등이 장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받은 이유는 이들을 다시 돌려보내고자 했다.


동탁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가 없기 때문에 당장은 산동을 도모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도 이각ㆍ곽사ㆍ번조ㆍ장제의 권력 나누기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 두 명의 실력자가 추가로 늘어나면 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질 것도 우려했다.


이에 이유는 이각을 설득해 한수ㆍ마등에게 장군직을 내리고 되돌아갈 것을 명했다.


다만, 이유는 왕윤과의 전투로 악화된 장안의 군사력을 보조하기 위해 마등을 미현에 주둔시켰는데, 이는 모략이 있다고 알려진 한수보다는 마등이 그나마 믿을만한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권을 잡은 신군부의 인사들은 황제를 핍박하고 백성을 잔혹하게 다루는데는 똘똘 뭉쳐 힘을 합쳤지만 조정에서 더 큰 권력을 갖기 위한 다툼에는 양보가 없어, 겉으로는 사이가 좋은 듯했지만 실제 마음속으로는 관계가 좋을 수 없었다.


가후는 이 상황를 간파하고 매번 대국적인 견해로 이들에게 간언했지만, 오히려 이들은 가후를 점점 더 꺼려했다.


하지만 장제는 과열된 권력투쟁에서 타 장수들에 비해 열세였기 때문에 위기감을 느껴 가후를 찾아가 의견을 물었고, 가후는 이런 장제를 위해 계책을 일러주었다.


“장군이 지금 경험하고 있이니 잘 아시겠지만, 권력은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동공이 살아계실 때는 홀로 권력을 독차지하며 여러 장군들게 필요한 권한을 내려준 것이라 장군들 사이에 불만이 없었지만, 이제 위치가 비슷했던 네 분이 경쟁을 하는데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것을 쉽게 용인할 수 있겠습니까?”


장제가 대답했다.


“나도 문화의 말에 동의하오. 어찌 내가 주도권을 포기하고 저들의 수하노릇을 한단 말이오? 동공은 량주의 제일 큰 어른이었으니 그를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치연ㆍ곽아다, 번경후는 나와 같은 항렬의 사람들인데 그들을 윗사람으로 대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소.”


“거친 전장을 누비던 장군들은 오직 무력으로써 갈등을 해결하려 할 터이니, 이 판에 계속 끼어 한 데 어울린다면 머리를 숙이지 않는 이상 죽음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인데, 장군의 군사력으로는 어느 한 명도 당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자 장제가 가후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이번 장안전투에서 보셨겠지만 내 조카 장수張繡는 능히 백 명을 상대할 수 있는 무용이 있소. 장수가 내 부곡의 기강을 바로잡고, 문화 그대가 모주가 되어 나를 도와준다면 우리도 충분히 권력을 잡을 수가 있지 않겠소?”


장제가 가후에게 일당백이라고 자랑한 그의 조카 장수는 자가 금보錦甫이고 량주 무위군 조려현祖厲縣 사람으로 변장과 한수가 처음 난을 일으켰을 당시 현의 관리로 있었다.


당시 금성을 점령한 반란군이 인근지역을 휩쓸고 다녔는데, 한수의 부하 국승麴勝은 조려현을 침범해 현장을 죽이고 노략질을 해댔다.


이에 장수가 소수의 인원을 이끌고 한수의 부대를 습격해 국승을 죽였는데, 이 일로 명성을 얻게 된 그는 젊은이들을 불러모아 산으로 들어갔다.


이후 장수는 호걸로 몇 년간 지내오다가 숙부인 장제를 비롯해 량주의 대인들이 동향 사람들을 수호하고 동탁의 복수를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자 무리를 이끌고 합류해 장안공격에서 군공을 세웠다.


그러나 가후가 고개를 저었다.


“그 누구도 장군에게 대권을 안겨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장군은 모든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해있습니다. 장금보가 비록 훌륭한 무장이기는 하나 여포에 비할 바는 아니니 그 혼자서 병력의 차이를 전부 감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또한 이문우가 이치연 장군과 밀접한 관계에 있으니 제가 기책奇策을 부릴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오?”


“당장의 권력투쟁에서 벗어나 훗날을 기약하십시오. 나머지 세 사람은 앞으로 치열하게 다툴 것인데, 장안을 떠나 다른 곳에서 실력을 기르고 계신다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올 것입니다.”


장제는 가후의 대답에 가슴이 아팠지만 그의 귀신같은 재주를 알고 있었으므로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어디로 가 있으면 좋겠소?”


“홍농현으로 가십시오. 화음에 단충명 장군이 있지만, 단장군 혼자 산동의 제장들을 막아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장군께서 홍농에 주둔하며 산동의 제장들을 견제하는데 힘쓸 것이라 고하면 전혀 의심받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홍농은 장안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니 장안의 동향을 쉽게 살필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장제는 가후에게 크게 감사해하며 돌아갔고 얼마 뒤 군사를 거느리고 홍농에 주둔하게 되었다.


작가의말

삼국지 여포전 영웅기 주석 : 곽사는 성 북쪽에 있었는데, 여포가 성문을 열어 군을 이끌고 곽사에게 나아가 말했다.

“군사들을 물리고 단지 몸으로 싸워 승부를 결정하자!”

곽사와 여포는 싸웠는데, 여포가 모로 곽사를 찌르자 뒤에 있던 곽사의 기병이 앞으로 달려나와 곽사를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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