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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현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삼국영웅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예서현
작품등록일 :
2022.05.11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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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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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6.12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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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적국(10)

DUMMY

소패로 돌아온 유비는 어수선한 마음을 다잡기 위하여 업무에 집중하려 했으나 이미 한번 흔들린 마음은 쉽게 추슬러지지 않았다.


유비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과 함께 체면치레와 자신감 부족으로 서주를 맡겠다고 나서지 못한 자신에게 한심스럽고 분한 마음이 들어 한동안 밤잠을 설치기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몇몇 훌륭한 인재들이 유비의 소문을 듣고 그의 곁에 모이니, 유비는 이를 통해 어느 정도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다.


이 무렵 유비가 얻은 인재들은 진군陳群, 진도陳到, 손건孫乾이었다.


우선 예주 서쪽 지방인 영천군 허현許縣과 여남군 남돈현南頓縣 출신인 진군과 진도는 조조가 무고한 백성을 학살하고 곽공은 여포의 거병에 부화뇌동하여 대의를 어긴 반면, 유비는 불리함을 무릅쓰고 서주 백성을 위해 조조에게 맞서고 도겸이 서주를 양도하는 것을 사양함으로써 대의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해 유비에게 출사한 인물들이었다.


자가 장문長文인 진군은 대대로 명망높은 집안 출신으로 학문이 깊고 지모가 뛰어났으며, 자가 숙지叔至인 진도는 용맹하고 충성스러워 이 둘을 등용한 유비는 무척 기뻐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도 위안을 얻었다.


‘자룡과 국양이 동시에 나를 떠나 무척이나 섭섭하고 아쉬웠는데, 이제 그 두 사람에 필적할만한 인물들이 내 휘하로 들어오니, 인생사 돌고 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구나. 이런 인재들을 새로 얻은 것처럼 내 꿈을 펼칠 기반 마련의 기회도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지.’


북해군 고밀현高密縣 출신으로 자가 공우公祐인 손건은 당대의 대학자였던 정현鄭玄의 추천을 받아 유비 진영에 가담하였다.


손건의 스승인 정현은 손건과 마찬가지로 북해군 고밀현 출신이었는데, 과거부터 유비가 청주에서 명성이 있고 자신과 가깝게 지내던 북해태수 공융 역시 유비의 인품과 사상을 칭찬했기 때문에 제자인 손건을 유비에게 보낸 것이었다.


사실 정현은 원소와도 교류하는 사이였는데, 천하의 기재들이 모여있는 원소의 진영에서는 손건이 두각을 나타내기가 어려울 것이라 생각해 인재가 부족한 유비에게 그를 보냄으로써 자신의 제자가 중히 쓰일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도 있었다.


손건은 말과 행동이 진실하고 끈기가 있으며 도리를 거스르는 바가 없는 인물이었으므로 유비는 그를 매우 믿음직스럽게 여겼다.


유비는 진군, 진도, 손건을 별가, 교위, 종사로 임명하여 새로 얻은 인재들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조조의 광모狂謀(광포한 계책)로 말미암아 서주와 연주가 큰 난리를 겪고 있을 때 그 동안 상대적으로 잠잠했던 익주에서도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본디 익주는 영제 시절 내내 이민족들과 스스로를 황건적이라고 칭한 지역내 도적떼들로 전란이 들끓었으나, 중평 5년 주목으로 부임한 유언이 지역의 권세가들을 잘 활용하여 난을 수습했다.


유언은 익주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자신을 따라 입촉한 사람들과 중원에서 몰려온 유민들 가운데 장정을 가려뽑아 동주병東州兵이라는 강병을 조직해 힘을 길렀고, 오두미도의 젊은 후계자 장로張魯를 독의사마督義司馬로 삼아 한중을 점거하게 해 익주를 외부로부터 단절시켰다.


이후 유언이 파군태수巴郡太守 왕함王鹹, 임공현장臨邛縣長 이권李權, 건위태수犍爲太守 임기任岐, 종사 진초陳超 및 교위校尉 가룡賈龍을 비롯하여 익주의 실력자 십수 명을 차례차례 제거해 나가니, 유언의 위광威光이 익주 전체에 뻗쳐 아무도 그를 거스를 수 없었다.


유언은 익주가 평안해지자 자신을 황제에 견주며 분수에 넘치는 행동까지 저지르며 아무 근심걱정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는데, 흥평 원년(194년) 그의 두 아들 유범과 유탄이 마등의 반란에 연루돼 장안에서 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 사건을 발단으로 익주는 다시 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유언은 두 아들이 위기에 빠졌을 때 교위 손조孫肇에게 수병叟兵(촉지방의 이민족으로 구성된 군대) 5천을 딸려보내 그들을 구원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재능있는 두 아들을 잃자 그는 크게 낙담하여 병을 얻게 되었다.


또한 엎친데 겹친 격으로 이 무렵 면죽에서 큰 불이 일어 성과 많은 재물이 소실되었고 민가까지 큰 피해를 입었다.


유언은 잿더미가 된 면죽을 버리고 성도로 치소를 옮겼지만 이미 자신의 운이 다했다고 생각해 삶에 큰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등창으로 고생하다 죽음에 이르렀다.


유언이 죽자 그의 근신近臣이었던 조위趙韙는 남은 유언의 두 아들 중 셋째인 유모劉瑁가 아닌 넷째 유장을 익주목으로 삼겠다는 표를 조정에 올렸다.


유언은 모두 네 아들을 두었는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첫째 유범과 둘째 유탄의 재능은 몹시 뛰어났던데 반해, 셋째 유모와 넷째 유장은 우유부단하며 판단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좋은 자질을 갖춘 두 아들은 이미 비참한 죽음을 맞았기 때문에 유언의 후계자로는 능력이 부족한 두 아들 중 한 사람이 낙점돼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셋째 유모는 아둔할 뿐만 아니라 가끔씩 정신이 혼미해지는 증상을 앓고 있었으므로 조위를 비롯한 유언의 공신들은 유장을 익주목으로 선택하였다.


익주에서 올라온 표를 받은 이각과 곽사는 유언이 오랫동안 길이 막혔다는 이유로 조정에 공물을 바치지 않은데다가 반란을 일으킨 두 아들을 돕기 위해 군대까지 파견해 그를 괘심하게 여겼으므로 사신을 꾸짖고 되돌려 보낸 후 혼란에 빠진 익주를 자신들의 수중에 장악하기 위해 영천 출신의 호모扈瑁를 익주목으로 임명했다.




한편 형주목 유표는 초평 3년(193년) 원술과 조조의 전투를 시작으로 형주의 동쪽 지역이 혼란에 휩싸여 자신에게 위협이 되지 못함을 알고 서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표 역시 난세를 읽는 영웅이었기에 여러 호걸들이 각축을 벌이는 동안 자신은 익주를 병합해 원소와 더불어 남, 북으로 양대 세력을 구축하려는 구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에 그는 익주로 세작들을 잠입시켰고 첩보를 통해 익주에서 유언의 통치에 반감을 갖고 있는 호족들과 호걸들을 빠르게 파악했다.


또한 유표는 유언이 황제에 준하는 호사스러운 생활을 한다는 소문을 입수하자 이를 조정에 고하는 등 유언을 견제하며 호시탐탐 익주를 노렸다.


그런데 마침 유언이 여러 가지 일로 낙담해 병석에서 죽음을 맞고, 조정에서 유장 대신 호모를 새로운 익주목으로 임명하는 일이 벌어지자, 유표는 이 혼란함을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 했다.


그는 즉시 자신의 심복인 별가 유합劉闔을 직접 형주로 보내 그 동안 파악한 익주의 반동세력인 감녕甘寧, 심미沈彌, 누발婁發 등을 포섭했다.


심미와 누발은 익주 출신의 장수들이었는데, 유언 시절부터 중원에서 건너온 조위 등이 익주의 호족들을 억압하고 권력을 독점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고, 감녕은 희평 연간(172~177년)에 이민족이 반란을 일으키자 큰 활약을 펼쳐 10대 후반의 나이에 촉군승蜀郡丞에 올랐으나 자유분방한 성격에 무능하고 답답한 상관들과 잘 융화하지 못하였으므로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장정들을 모아 협객생활을 하던 인물이었다.


특히 이 감녕이란 사내는 자가 흥패興霸로 파군巴郡 임강현臨江縣 출신이었는데 기력氣力과 무용武勇이 그야말로 대단해 그가 차고 다니던 구슬소리만 들려도 사람들이 몸을 사렸을 뿐만 아니라 벼슬아치들조차 감히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조심하는 지경이었다.


감녕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무뢰배들의 대장노릇을 하며 호화롭게 살고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며 사람 죽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런 생활을 20여 년 가까이 지속하다 보니 지겨움이 느껴졌고, 그 스스로 보다 큰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되었다.


이런 그에게 유합의 사주를 받은 익주의 무장들이 유장을 몰아내고 조정에서 임명한 호모를 받들자는 제안을 해오자 감녕의 마음이 동하지 않을리 없었다.


특히 감녕은 유언에게 죽임을 당한 파군태수 왕함과 가까운 사이었으므로 이참에 왕함의 원수까지 갚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고작 마상 같은 도적놈들한테도 쩔쩔매던 것이 익주의 군대였는데, 내가 나선다면 그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일단 유장을 몰아낸 후 호모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봐야겠다. 만약 그가 변변치 않은 인물이라면 내가 익주를 차지해도 괜찮을 듯 싶고... 미적米賊(오두미도를 부르던 이름)놈들도 한중을 차지하고 큰소리 떵떵치는 마당에 이 감흥패가 익주의 주인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심미, 누발과 함께 하기로 결심한 감녕은 유합에게 호모가 중앙군을 이끌고 익주로 들어가다 접경지역에서 교전을 하게 되면 자신들도 파군에서 군사를 일으켜 성도로 침공해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유합은 익주가 호모의 군대와 내부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워지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형주의 군대 역시 신속히 진군해 성도를 점거하겠다고 화답했다.


모든 계획을 모의한 두 진영은 서둘러 군사행동을 준비하며 호모가 익주로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장안에서 출발한 호모는 장로를 당해내지 못해 익주는커녕 한중을 통과하지도 못했다.


일이 예상과 달리 흘러가자 감녕은 형주로 연통해 날짜를 잡고 동시에 안팎에서 익주를 공격해 점령한 후 땅을 나눠갖자는 대담한 제안을 던졌다.


유표는 부임길에 오른 호모가 익주에서 공격을 받게 되면 황명을 받들어 호모를 돕는다는 구실로 군대를 일으키려 했는데, 어처구니없게도 호모가 한중을 넘지 못하게 되니 군대를 파견할 명분을 잃게 되었다.


따라서 그는 익주에서 온 연락에 대해서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이때 책사 괴월이 간했다.


“호모가 부임길에서 낙마하였지만, 우리가 익주를 병합하려는 계획은 아직 유효합니다. 허니 익주의 반란세력과 날짜를 정해 유장을 공격하십시오.”


“호모를 돕는다는 구실로 우리가 익주로 들어가는 것이 원계획이었으며, 익주의 반란군은 그저 내부를 시끄럽게 만들어 익주가 우리를 의심하거나 견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수단에 불과하오. 그런데 이제 호모가 없어져 익주 병탄의 계획은 아예 실행이 불가능해졌는데, 이도는 어찌하여 유장을 공격하라 하시오?”


유표가 묻자 괴월이 간했다.


“호모 역시 우리가 군대를 파병할 구실에 불과했습니다. 허니 그가 없다면 또 다른 구실을 만들면 될 것인데, 익주의 반동파들이 그 대상으로 제격입니다. 익주의 반동세력들이 파군을 점령하고 성도를 공격한다면, 우리는 익주를 도와 반란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단 익주 경내에 들어간 후 반동세력과 연통해 익주군을 협공한다면 우리는 손쉽게 익주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모를 돕는다고 한 후 은밀히 그를 죽여 무주공산이 된 익주를 차지하는 것은 세상사람들로부터 크게 지탄받지 않을 일이나, 도적을 정벌한다고 군대를 일으켜놓고 그 도적과 합심해 익주를 빼앗게 된다면 나의 위엄과 명성이 크게 손상될 것이 아닌가?”


“호모도 죽일 작정이었는데, 반란을 일으킨 도적놈들을 왜 못 죽이겠습니까? 도적들로 하여금 성도를 공격하게 하고, 우리는 천천히 움직이며 뒤에서 관망한다면 세상사람들이 어찌 우리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겠습니까? 이후 양쪽 모두 힘이 빠졌을 때 둘 다를 공격해 쳐부순 후 반란군이 유장을 죽였다는 소문을 내면 되는 것입니다. 일을 이렇게 처리한다면 우리가 처음부터 익주를 병합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 누가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괴월의 계책을 들은 유표는 다소 꺼림칙했지만 익주를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감녕 등과 날짜를 잡고 익주를 공격하기로 했다.


작가의말

정사 삼국지 진군전 : 유비는 예주자사로 임명된 후, 진군을 불러서 별가로 삼았다.


계한보신찬 : 조자룡, 진숙지를 찬함. 숙지는 이름이 도이고 여남군 사람이다. 예주에서부터 유비를 수행하였다.


삼국지 정사 유언전 : 형주목 유표가 유언이 승여와 기물, 의복을 분수에 넘치게 윗사람에 견줬다고 조정에 상표했다.


삼국지 정사 유언전 영웅기 주석 : 유장이 익주목을 대신하자 장안에서 영천사람 호모를 자사로 임명해 한중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때 형주의 별가 유합은 유장의 장수 심미, 누발, 감녕을 반역시켜 유장을 공격하게 했다.


삼국지 정사 감녕전 오서 주석 : 감녕은 계연으로 선발됐고 촉군승으로 보임되었으나 오래지 않아 관직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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