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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서현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삼국영웅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대체역사

예서현
작품등록일 :
2022.05.11 23:23
최근연재일 :
2022.06.1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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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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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5.2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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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악업악보(1)

DUMMY

연주를 완전히 장악하고 예주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해 하남 일대의 강자로 부각한 조조는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인생지사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조조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가족은 연주로 오지 않고 그 대신 조숭을 비롯한 일족 모두가 몰살당했다는 끔찍한 비보가 조조에게 날아들었다.


조조의 연락을 받은 조숭은 매우 기뻐 막내아들 조덕曹德과 서둘러 이사 준비를 마친 뒤 하루라도 빨리 조조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응소의 군사를 기다리지 않고 가솔 40여 명과 수레 백여 량을 끌고 지름길을 따라 연주로 출발했다.


조숭이 일가를 이끌고 큰 규모로 길을 나서자 도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조에게 번번이 좌절을 맛보았던 도겸은 조숭을 순순히 보내주기가 싫었고 결국 조조에게 화풀이할 목적으로 장개와 기병 수십여 기를 파견해 조숭의 재물을 빼앗게 했다.


그런데 장개는 발간에서 조조에게 패해 많은 병사를 잃은 후 도겸에게 푸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조조와 도겸을 모두 원망하고 있었다.


장개는 조숭을 추격해 태산군의 초입인 화현華縣에서 따라잡자 단지 치중을 약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조조와 도겸 둘 모두에게 복수하려는 마음으로 조숭 일가족을 몰살시켰다.


그후 그는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회남으로 달아났고, 도겸이 조조의 일가족을 죽였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조숭을 영접하기 위해 낭야로 이동하던 응소의 병사들은 조조 일가의 시체를 목격하고 이를 즉시 응소에게 보고했다.


응소는 조조에게 사실을 알린 뒤 후환이 두려워 태산태수직을 버리고 원소에게 의탁했다.


가족이 참화를 당했다는 비보를 접한 조조는 대성통곡을 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주변의 여러 사람이 깜짝 놀라 조조의 몸을 주무르고 물수건으로 이마를 축이는 등 갖은 애를 써가며 간호했다.


정신이 혼미한 상태로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조조는 분한 마음에 이를 갈며 말했다.


“내 아버님을 해친 원수놈과 어찌 한 하늘 아래 살 수 있단 말인가! 도겸 이 원수놈을 지금 당장 갈가리 찢어죽여 내 한을 씻을 것이다!”


조조는 앞뒤 생각하지 않고 조인, 조홍, 악진, 우금, 전위, 이건 등의 맹장들과 즉시 동원할 수 있는 병사들을 이끌고 서주로 쳐들어갔다.


급하게 출진한 상태였지만 조조의 군대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보수설한報讐雪恨(원수를 갚아 한을 씻는다)’ 네 글자가 크게 적힌 깃발을 앞세우며 서주를 침공한 조조는 팽성彭城에 이르기까지 진군로에 있던 10여 개의 성들을 모두 함락시켰다.


조조는 서주를 싹 쓸어버리려고 작정한 듯이 성을 함락시킨 후에도 계속해서 공격명령을 내렸고, 그의 명을 받은 청주병은 거리낌없이 성안의 백성들을 모조리 도륙했다.




복수를 위해 군사를 일으킨 조조가 무자비하게 백성을 살육하며 진군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큰 두려움을 느낀 도겸은 급히 여러 관리를 모아 대책을 상의했다.


“장패臧覇에게 연락을 한번 넣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자가 선고宣高인 태산군 화현 사람 장패는 18세 때 억울한 누명을 쓴 부친을 위해 부친의 식객으로 와있던 손강孫康, 손관孫觀, 오돈吳敦, 윤례尹禮 등 수십 명의 호걸들과 함께 백여 명이 지키는 호송행렬을 뚫고 부친을 구해 용맹하다는 평판을 얻은 사내였다.


동해로 망명한 그는 황건적의 난이 일자 무리를 이끌고 도겸을 도와 기도위에 제수됐는데, 이후 도겸이 정직한 자들을 멀리하고 소인들을 가까이 하는 등 문란한 정치를 펼치자, 장패는 그와의 왕래를 끊고 병력을 모아 낭야국 개양開陽에 주둔했다.


그러자 장패가 왜 도겸과 멀어졌는지를 잘 알고 있던 하비 출신의 전농교위典農校尉 진등陳登이 나서서 말했다.


“이런 위기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자들도 나서기가 어려운 법인데, 이미 별도의 군세를 이끄는 총수가 되어 연을 끊은 그가 어찌 우리를 돕기 위해 나서겠습니까? 장패 역시 서주의 여러 현이 공격받는 것을 알고 있을 터인데 그가 우리를 돕고자 했다면 벌써 움직임이 있었을 겁니다.”


자가 원룡元龍인 진등은 서주에서 손꼽히는 대호족으로 놀랄 만큼 머리가 기민하고 상황판단이 정확한 인물로 25세에 효렴으로 추천돼 벼슬길에 오른 후 줄곧 서주 백성을 위해 선정을 펼치고 있었다.


“이 사달이 날 줄 알았다면 궐선이라도 좀 더 살려둬서 계속 조조를 귀찮게 할 걸 그랬소.”


장패가 자신을 돕지 않을 것이란 말에 도겸은 도적들을 붙잡아 병사를 보충하기 위해 한동안 이용하다 죽인 하비의 종적 궐선마저 아까워하며 머릿속에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진등이 도겸의 말을 받았다.


“조조의 병세兵勢가 막강한데 궐선 따위가 살아있다 한들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궐선을 이용해 도적 수천 명을 모은 후 그를 미리 준비한 함정에 빠뜨려 죽이는 계략도 진등이 입안한 것이었기 때문에 진등은 궐선의 실력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진등이 계속 자신의 말을 반박하자 도겸이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서주가 큰 위기에 놓여 장수 한 명이 아쉬우니 그러는 것 아니겠소! 나의 말이 틀렸다 하니 어디 한번 원룡이 좋은 계책을 내놓아 보시구려.”



도겸이 묻자 진등이 대답했다.


“서주의 군대로는 적을 당해낼 수 없으니 조조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제후들에게 구원군을 요청해야 할 것입니다. 예주는 이미 조조의 영향력 아래로 넘어갔으니 청주에서 도움을 받으십시오. 공손백규는 우리의 군사적 우방이라 할 수 있는 자이니 제가 직접 제국으로 가 그의 부하인 청주목 전해에게 군사를 일으켜 구원해 달라고 청하겠습니다. 그리고 공문거(공융) 또한 사군과 함께 장안을 토벌하기 위해 동맹을 맺은 사이이니 다른 한 사람을 북해로 보내십시오. 제국과 북해의 군마가 우리를 도우러 온다면 조조는 반드시 병사를 물려 돌아갈 것입니다.”


도겸은 진등의 제안을 흔쾌히 수용하며 북해로 파견할 사자를 찾았다.


“북해로는 어느 분이 가서 원군을 구해오겠소?”


그러자 바로 한 사람이 북해에 가겠다고 나섰는데, 그는 동해국東海國 구현胊縣 출신으로 자를 자중子仲이라 하는 미축麋竺이었다.


미축은 대대로 낙양을 오가며 상업을 행하던 서주 대부호 집안 출신으로 그 역시도 원래 상인이었다.


미축은 가업을 위해 부리는 하인과 노비가 1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성격이 온유돈후溫柔敦厚하여 매년 가재家財를 베풀어 가난하거나 재난에 빠진 사람들을 구휼해 널리 명성이 있었다.


도겸이 서주에 부임한 이후 점차적으로 주의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도겸은 소문이 자자한 미축을 초빙해 별가종사로別駕從事로 삼고 그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았다.


진등과 미축이 나서자 도겸은 그 자리에서 바로 두 장의 서찰을 써주며 제국과 북해로 파견을 보냈고, 자신은 나머지 제장들을 거느리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 무렵 조조에게 대패해 수춘으로 달아났던 원술은 자신이 파견한 양주목 진우로부터 입성을 거부당하는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본래 진우는 고관의 자손으로 자신과 같은 명문가 출신으로 자신감과 패기가 있다는 이유로 원술을 지지했으나, 원술의 행동이 갈수록 음학淫虐해지자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후회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생겨 일군을 이끌고 스스로 구강에 자리를 잡게 되자 그는 원소와의 왕래를 끊어버린 것이었다.


진등과 일족이었던 진우는 구강과 가까운 하비의 대호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서주로부터 도움을 받으면 원술을 견제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졸지에 갈 곳이 없어진 원술은 우선 음릉의 외각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단양을 공격하던 손분에게 연통하여 자신에게 합류할 것을 명했다.


손견의 군대는 단양을 거의 함락직전까지 몰아붙이고 있었으므로 손분은 오경, 정보, 서곤을 남겨 주흔을 계속 공격하게 한 후 나머지 제장들과 함께 원술에게로 향했다.


진우는 원술과 손분이 군대를 합치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무렵 서주는 조조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원군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손분과 함께 군대를 정비한 원술이 수춘으로 진군해오자, 진우는 자신의 병력으로 이들을 당해낼 수 없음을 알고 일단 동생 진종陳琮을 보내 화의를 청했다.


원술은 진우의 배신에 노기가 충천한데다 천성이 너그럽지 못했기 때문에 사신으로 온 진종을 붙잡아 때려죽이고 군대를 계속 전진시켰다.


이에 진우는 결국 하비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춘을 차지하게 된 원술은 지난 1년간의 어려움을 모두 잊고 연일 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쪼그라든 위세를 만회하고 싶은 마음에 온갖 추행을 저질렀다.


원술은 큰 군세를 이룬 시점부터 참칭할 뜻을 마음에 품고 있었으므로 우선 강도로 사람을 보내 손견의 처를 겁박하고 옥새를 강탈했다.


그리고 장훈과 교유를 대장군으로 임명하는 등 자신의 권한에 맞지 않는 관직을 수하장수들에게 남발했다.




현자를 찾아가 섬기고 어진 선비를 벗으로 삼으며 지낸던 손책은 모친이 원술에게 험한 꼴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즉시 집으로 달려갔다.


손책은 가족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밖으로만 나돈 자신을 자책하며 이제 어느 정도 자신의 뜻이 세워졌으므로 강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자 했다.


‘원씨와 함께 동탁을 격파했지만 안타깝게도 공업을 완성치 못하고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의 뜻을 이제 내가 펼칠 때가 되었다. 원양주(양주목 원술)로부터 병사들을 돌려받아 오회吳會에 웅거하며 조정의 바깥 울타리가 될 것이다. 천하의 혼란을 바로잡고 돌아가신 아버님의 원수를 갚는다면 대장부로서 더할 나위 없는 삶 아니겠는가!’


마음을 굳힌 손책은 애초에 종친들이 살고있는 부춘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마침 외숙인 오경이 주흔을 물리치고 단양태수에 올랐다는 소식을 전해오니 모친을 곡아로 모신 후 자신은 한달음에 수춘으로 달려갔다.


손책은 부친이 되찾은 옥새를 빼앗기 위해 모친을 협박한 원술이 증오스러웠으나 병사들을 돌려받기 위해 자존심을 굽히며 청했다.


“돌아가신 부친께서는 지난날 장사에서 군대를 일으켜 동탁을 토벌하러 가다가 남양에서 명사군을 만나 호의로 맺어졌습니다. 두 분께서는 동탁을 격파하고 낙양을 수복하셨지만 불행한 일이 발생하여 공업이 완성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제 두 분의 은의에 감복한 저 손책이 명사군에게 의지하여 부친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니 제 정성을 갸륵하게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손책의 장렬한 기상을 보고 원술은 그를 대단하게 여겼으나 손견의 병사를 돌려주지는 않았다.


“내가 그대의 외숙을 단양태수로 삼았네. 그리고 또 바로 얼마 전에 그대의 종형되는 손백양(손분)을 도위로 삼아 단양으로 파견했다네. 그러니 그대는 그리로 가서 병사를 얻도록 하게.”


손책은 원술의 야박한 처사에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찌할 바가 없었기에 단양으로 가 오경에게 의지했다.


원술은 손책에게 단양에서 정병을 얻으라 했지만, 주흔과 전투를 치른지 얼마되지 않은 단양은 치안이 매우 불안했기 때문에 오경과 손분이 손책에게 지원해줄 수 있는 병력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사정을 이해한 손책은 차라리 도적들을 사로잡아 군세를 확장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손책은 단양에서 얻은 수백의 정병들을 데리고 주변의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고된 토벌활동을 펼쳤는데, 여범呂範과 유하가 항상 좌우에서 그를 수행하며 고난을 함께 헤쳐나갔다.


여남군 세양현細陽縣 출신의 여범은 자가 자형子衡으로 수춘으로 피난을 갔다 그곳에서 손책을 만났는데, 손책의 기상과 영민함에 감탄해 몸을 굽히고 그에게 귀의한 인물이었다.


유하는 손견이 죽은 후 그 휘하의 장수들이 대부분 원술을 따른 것과는 달리 그 당시부터 어린 손책을 주군으로 모시며 수종하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을 겪고 많은 고생을 한 끝에 손책은 제법 군세를 늘릴 수 있었다.


여러 번의 토벌로 자신감이 붙은 손책은 경현에서 제일 큰 종적 조랑祖郞을 소탕해 군대의 규모를 일시에 확대하고자 했다.


그러자 토착화돼 오랫동안 지역에서 활동하는 종적의 강맹함을 잘 알고 있던 오경 등이 손책을 저지했는데, 젊은 혈기의 손책은 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때 손씨 집안 장수들의 좌장座長 정보는 주흔과의 전투 이후 계속 단양에 머물고 있었는데, 손책의 계획을 듣자 그를 도와 조랑을 토벌하겠다고 나섰다.


정보는 아직 전투 경험이 많지 않은 손책을 염려하면서도 과연 천하제일 장수 손견의 피를 이어받은 그가 어떻게 강적을 제압할지에 대해 내심 기대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다.


작가의말

연의에서 전해와 공융에게 원군을 요청하자고 진언한 사람은 진등이 아니라 미축입니다. 그런데 정사에 미축은 돈후하고 고상했지만 문장은 빼어나지 않아 상빈의 예로 대접받았지만 큰일을 도맡은 적이 없다고 나옵니다. 즉, 돈많은 사람이 인색하지 않고 인심이 후해 크게 존중받았지만 실제로 관리로서 실력은 별로였다는 것이죠. 그 반면에 진등은 재능이 뛰어났다는 평가가 있고 여포를 물리치라고 조조에게 진언하는 등 실제 계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이에 제 글에서는 둘의 역할을 바꿔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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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주중적국(2) 22.06.02 39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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