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위해(2)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 돼. 아직 보지 마! 다 쓰면 봐.”
성철이는 우리의 뿌리침에 멀리 떨어져 앉아서 빨리 쓰라고 재촉하였다.
편지를 쓰면서 묘한 감정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성철이 보다 수진이를 더 좋아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 역시 놀림감이 될까 봐,
섣불리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애만 태우고 있던 내가,
성철이를 위해 수진이에게 줄 편지를 쓰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하필이면 글도 술술 잘 써 졌다.
내가 수진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성철이 핑계로 쓰고 있으니 말이다.
“나 다 썼어!”
재민이가 편지를 들고 드러누웠던 거실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말했다.
“나도 다 썼어.”
나도 편지를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
소파에 앉아있던 성철이가 벌떡 일어나 우리에게로 왔다.
재민이가 성철이에게 자신이 쓴 편지를 건네며 말했다.
재민이는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지려는 얼굴을 간신히 억지로 참아가며 말했다.
“내꺼 먼저 읽어 봐.”
“너 장난치면 죽어!”
성철이가 피식피식 웃는 재민이 얼굴을 보며 말했다.
재민이가 쓴 편지를 건네 받은 성철이는,
나와 재민이가 같이 볼 수 있도록 편지를 아래로 내려놓고 읽었다.
[-나의 꽃사슴 김수진에게
수진아. 곧 크리스마스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하니? 약속이 없으면 나랑 같이 크리스마스 보낼래?
수진아, 난 항상 멀리서 널 지켜보았어.
이제야 고백을 하게 되는구나.
넌 성격도 착하고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 널 너무 사랑해.
믿기 힘들겠지만 정말이야.
물론 성격도 나쁘고 얼굴도 오서방이고 공부도 못하는
내가 널 사랑한다니,
네가 무서울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심이야.
증거도 될 수가 있어.
수진아. 널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내 코 옆에 있는 점이 점점 하트 모양으로 변해 가고 있어!
그리고 그 하트가 점점 더 커져가.
점이 점점 커져가, 점이 점점....
이런 나의 진실 된 사랑을 받아 주길 바래.
내가 간직해 온 비밀을 너에게만 말해 줄게.
내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털도 났다.
수진아, 나랑 사귀어 줄래?
From 점이 매력적인 오서방 오성철이...
P.S. 이 편지는 읽고도 나랑 안 사귀면 내 오서방 점을 너에게 옮겨 주겠어!]
편지를 읽는 동안 재민이와 나는 배꼽 빠지게 웃어댔다.
반면 성철이 얼굴은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
성철이가 편지를 끝까지 다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중간에 재민이가 쓴 편지를 북북 찢어 바닥에
내 던지며 재민이에게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야, 너 죽을래?”
“푸하하! 잘못했어! 잘못했어, 성철아!”
성철이는 참지 못하고 재민를 바닥에 눕히고 암바를 시도했다.
재민이는 성철이의 암바에 괴로워하면서도
웃음과 비명이 뒤섞인 요상한 괴음을 내고 있었다.
“우하하헉, 성철아 잘못했어! 우헤헤헉!”
“하하하.”
난 그 둘 모습을 보면서 웃으며 자지러졌다.
그러면서도 재민이가 쓴 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성철이가 찢어 버린 편지 조각들을 주워서 맞춰보고 있었다.
“야, 김준호! 너 뭐해!”
갑작스런 성철이의 외침에 난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아, 아무것도 아냐. 그, 그냥 한 번 다시 보고 싶어서. 큭.”
나는 말하면서도 다시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말했다.
“다시 보긴 뭘 다시 봐! 너도 암바 한 번 맛 봐야겠어?”
성철이는 씩씩거리며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바닥에서 성철이에게 암바를 당해 쓰러져있는 재민이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아냐, 난 정말 제대로 잘 썼어! 내꺼 좀 읽어 봐.”
내가 쓴 편지를 성철이에게 건넸다.
“너도 장난쳤으면 각오해!”
“알았어, 난 정말 제대로 잘 썼다니깐.”
성철이는 불신에 가득한 눈빛으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쓰러져있던 재민이도 잽싸게 성철이 옆으로 와서 내가 쓴 편지를 같이 보기 시작했다.
[*수진이에게
수진아, 내가 갑자기 이런 편지를 써서 당황스럽지?
방학 한지 벌서 열흘이 넘었네.
그만큼 널 만나지 못한 날들이겠지?
마음속에 혼자만 간직해 두었던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 보게 됐어.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널 좋아하고 있어.
물론 너도 잘 알고 있겠지.
아직은 너에게 부담스러운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좀 더 너와 가까워지고 싶어.
너랑 친구가 되고 싶어.
그냥 단순한 같은 반 친구가 아닌 너의 친구가 되고 싶어.
우리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오랜 시간을 망설였어.
용기 없는 내가 이렇게 용기를 내어 본다.
너랑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어.
-겁쟁이 성철이가]
“음, 나름 잘 썼는데?”
재민이가 성철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편지를 보더니 놀라며 말했다.
성철이도 제법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지?”
내가 성철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음, 괜찮네. 제법이야.”
성철이는 편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끄떡이며 대답했다.
“그럼, 나 탕수육 사주는 거야?”
“음...”
성철이는 잠시 망설였다.
“뭐야, 안 사줄 거야? 약속 안 지키려고?”
“마지막에 ‘겁쟁이 성철이가’ 보다 ‘점이 매력적인 오서방 성철이가’로 바꿔. 그럼 완벽 할 것 같아. 하하하.”
재민이가 가만있질 못하고 또 장난을 치며 말했다.
“죽을래?”
“농, 농담이야.”
성철이가 재민이를 째려보자 재민이는 익살스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거, 수진이한테 전해주면 진짜 탕수육 사줄게.”
성철이가 내게 편지를 돌려주며 말했다.
“아, 싫어! 쪽 팔리게.”
나는 펄쩍 뛰며 말했다.
사실 쪽 팔린 게 문제가 아니었다.
떨려서 수진이 앞에 설 자신이 없었고, 내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다른 남자의 고백을 대신 해 줄 수가 없었다. 그것도 내가 쓴 고백 글로는 더욱더 말이다..
“준호야, 친구의 부탁이다. 네가 좀 수진이한테 전해 주라. 그렇다고 저 망아지 같은 재민이한테 시킬 수 없잖아.”
“야, 내가 뭐가 어때서? 내가 해 줄게. 하하하.”
재민이가 말을 끝내자마자 성철이는 재민이를 다시 무섭게 째려봤다.
“어쨌든 난 싫어. 창피해. 그냥 네가 직접 전해줘.”
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성철이는 갑자기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간절한 눈빛을 내게 난사해 대기 시작했다.
“준호야... 정말 친구로서 너에게 부탁한다. 우리 우정을 생각해서 부탁할게. 제발, 준호야.”
제기랄, 친구와 우정이라는 말에 흔들린다.
젠장, 난 너무 마음이 여린 것 같다.
“휴, 알았다. 알았어. 대신 탕수육이나 확실히 사.”
난 마지못해 대답해 버리고 말았다.
“진짜? 준호야 완전 고맙다. 역시 너 밖에 없다!”
성철이는 기뻐하며 나를 와락 껴안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민이도 덩달아 나와 성철이를 껴안고 같이 방방 뛰었다.
“준호야, 성철이가 탕수육 사줄 때 나도 불러줘.”
“넌 뭐야.”
성철이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은 재민이를 어깨로 밀쳤다.
휴, 수진이한테 어떻게 편지를 전해준담?
갑자기 기분이 다운되어 버렸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니었다.
당신은 이미 선작을 누르고 있다! 감사합니다^^
- 작가의말
혹시 조금 웃겼나요?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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