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만기狂天滿氣 - 무인들
무인들
보이나?
저 심장의 뜨거움을.
저 안에 들은 것이 무엇인지 보이나?
봐라. 저게 바로 '질투'다.
-오래 전의 이야기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를 내며, 아이는 살아있음을 표현한다. 과거와 같이 무질서하고, 무이성적인 행동들은 아니다.
계속 무언가를 만지고 꼼지락 거리지만, 그것은 분명 과거와 같이 본능적인 호기심과 마음으로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고 있다.
이지가 살아나고, 판별의 능력이 조금씩 쌓여 간다. 더 이상 아우 하면서 소리를 내지도, 사내에게 달라붙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사내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지만, 반대로 달라붙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행동이 전체적으로 조용해 지고, 아주 적어져 있다.
조심성 많은 작은 생물처럼.
아이는 그렇게 변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 투명한 눈동자로 사내를 빤히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담아내려는 것 같은 눈길을 보낸다.
사내는 그 눈동자가 거북했다. 그 투명한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모용미의 성화 때문에 말쑥해져 있었다.
수염을 자르고, 머리는 정리한 데다가 고급의 비단 무복을 입고 있다.
웃기는 껍데기.
사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비틀리게 웃는다. 그 비틀린 미소는 여아의 눈동자에 비쳐 사내에게 되돌아 온다.
그것을 본 순간 사내는 더 이상 비틀린 미소는 짓지 않았다. 그 후로 사내는 더 이상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 투명한 눈동자의 자신의 모습을 본 이후로. 그의 표정은 석상처럼 굳어져 있다.
"식사입니다."
달칵 하고 문이 열린다. 여아의 시선이 돌아간다. 사내의 품에 안겨 조용히 시선이 돌아가며 하녀를 관찰한다.
사내는 말도, 표정도 없이 무기물처럼 그런 여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여아는 하녀를 보고, 사내는 여아를 본다.
그 이질적인 모습과, 기이한 분위기에 하녀는 겁을 집어 먹었는지 조금 몸을 떤다. 조심조심 수레를 밀고 들어와 음식을 탁자에 늘어 놓는다.
하녀의 시선이 힐끔 사내를 향한다. 사내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면서, 하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가슴에 만들어 내고는 재빠르게 모든 일을 처리 했다.
"그럼....즐거운 식사 되시기를...."
하녀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빠져나간다. 문이 닫히고, 잠시 후에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사내는 여아를 안고 탁자에 앉는다. 이제 살이 오르고, 매일매일 개정대법으로 환골탈태와 같이 몸이 변해 가는 여아는 매우 귀엽고 앙증맞은 소녀가 되어 있었다.
이대로 큰다면 필시 세상에 이름을 알릴 미녀가 되리라.
하지만 그런 사실은 사내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이었고, 앞으로도 중요하지 않을 사실들이었다.
탁.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든다. 한손만으로도 능숙하게 사내는 여아에게 음식을 주었다. 어미새가 아기새에게 먹이를 주듯, 조심 스럽고 정확한 동작속에서 여아는 음식을 받아 조금씩 우물거리며 먹는다.
그 조용하고 이질적인 식사는 한참이나 계속 되었다. 사내의 머릿속에는 아까의 두려움에 떨던 하녀의 일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녀의 상태를 온몸으로 체감하고 있었고, 하녀들이 어떤 반응을 가지고 있는 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내의 머리 속에 하녀의 일은 없다. 철저하게 무관심 한, 주변을 포함한 세계가 사내의 주변에 펼쳐져 있는 것 같았다.
식사는 한참 후에 끝났다. 그 후에 사내는 여아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 섰다. 여아와 이 곳에 머문지 벌써 한달 째.
사내는 여아를 생각하여 한달간 해 왔던 일들이 있었다. 식사를 끝마쳤으니 그 해 왔던 일중 하나를 할 시간이 되었다.
저벅저벅.
여아를 안고서 사내는 북림맹의 객원을 벗어난다. 지나다니는 무사들은 사내를 보고 고개를 갸웃 거리기도 하고, 어느 무사는 사내를 보며 무어라 말을 하기도 했다.
사내는 여아를 안고 그런 그들을 무시하고 지나쳐 북림맹을 나선다. 사내의 하루 일과중 하나.
사내는 여아를 데리고 언제나 북림맹이 위치한 도시에 있는 시장으로 갔다. 그리고 한쪽에 앉아 여아와 몇시진 정도 거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을 보는 것.
그것이야 말로 여아의 제정신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사내는 생각 하고 있었다. 이런 행동도 벌써 한달 째.
여아는 사내의 품에 안겨 그렇게 한달이나 거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 투명한 눈동자에 비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사내는 그런 생각을 잠시 해 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향기가 가까워 지고 있었다.
"여기서 뭐 하는 거죠?"
익숙한 체향. 익숙한 기척. 익숙한 몸. 익숙한 여인.
"사람을 보고 있소."
사내의 무감정한 말에 여인의 눈동자가 상큼하게 치켜 올라갔다. 화가 난 얼굴임에도 묘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사내는 그런 여인의 모습에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불만이었을 지도 모른다. 여인은 사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달간 사람만 봤단 말이에요!?"
"그렇소."
하지만 열을 내는 그녀와 다르게 사내는 낮게 말한다. 그 텁텁한 목소리가 낮게 말하니, 왠지 모르게 마음 안을 흔들고 있었다.
"하아...........한달간 저도 바빴어요. 그래서 찾아 가지 못했고요."
그녀는 한 숨을 내쉬며 이야기를 한다. 그녀가 사내를 이 북림맹으로 이끌었다. 한달 전 사내를 객실에 안내한 후로는 처음 만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설명을 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서려 있었다.
"그렇소?"
하지만 그런 그녀의 표정은 사내의 대답에 일그러진다. 어떻게 되든 상관 없다는 저 목소리와 말투.
그녀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는 저 목소리. 그녀는 필요 없다고 말하는 듯한 저 목소리.
그녀는 그에게 가치가, 존재감이, 긍정 이유가 없다고 말하는 저 목소리.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 안에 자라나는 기이한 감정의 흔들림을 그녀는 본다.
사라져.
나는 약하지 않아.
"당신은..............더 심해지고 있군요."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씹어 삼킨 생명만큼, 나는 점점더 무거워 지고 있을 테니까."
섬뜩한 말에 그녀는 흠칫 한다. 처음 만났을 적의 이 사내는 이렇지 않았다. 그 기색은 비슷하지만 적어도 처음 만났을 적의 사내는 자신의 행동들에 어떤 절망과 비탄을 가진 듯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지금 사내는 보노라면 마치 깊고 깊은 무저갱을 보는 듯 했다.
끝도 없는 늪.
무한히 빠져 들어가는 심연.
"일이 떨어졌소?"
"아니에요. 당신의 기행이 귀에 들어와서 와 봤어요. 후우.............그런데 이렇게 까지..."
그녀는 마음이 착찹해 졌다. 과거에도 기괴하던 사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점점 더 인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모용미. 당신이 나에 대해서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소."
사내의 텁텁하고 무정한 목소리가 그녀의 마음을 찌른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무언가가 그녀의 마음 안에서 튀어 나와 말이 되었다.
"왜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죠! 당신은 나에게 그런 짓을 해 놓고선!"
말을 하고 나서 스스로 당황했다.
모용미.
모용세가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그녀는 자신의 흔들림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벗겨진다.
이 사내 앞에서는 너무 많은 것이 벗겨져 버린다.
"그때의 일 말이로군."
하지만 다시금 사내의 말에 그녀는 마음이 급격히 흔들리며 분노가 치솟았다. 그러면서도 흔들리는 자신을 보며 움츠러 들었다.
진정해.
너는 그런 여자가 아니잖아.
"그때의 일에 대한 대가는 내가 북림맹과의 일을 모두 처리한 후에 청구하시오. 한번에 두가지 일을 할 수는 없으니까."
"대가? 하! 제 생명만큼 소중한 그 일에 대가를 논하나요?"
이제는 오기가 난다. 그래서 소리를 질러 보았다. 그 순간 사내는 드디어 여아에게서 고개를 돌려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나를 봤어.
하지만 그런 기쁨과 동시에 곤혹과 공포가 등줄기를 내달렸다.
"진실로 정절이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오?"
누군가 저런 말을 했다면, 비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질문은 비꼬는 것이 아니었다.
파고든다.
그녀의 마음속으로, 속내로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정의를, 그녀의 마음이 내리고 있는 어떤 신념을 파고들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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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독자 분들 중에서 명예심. 고취심, 자긍심을 가진 분들께 물어 보고 싶었습니다.
'진실로 명예, 자긍심이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전업작가이고, 또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한 집안의 가장이라는 입장이지요. 저는 일전에 양판소를 쓰니 작가로서 취급을 안하겠다 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의 한 독자분은 자신의 아버지가 소설가로서, 그분의 아버지께서는 마음에 차지 않는 글은 언제나 불구덩이에 집어 넣고, 돈은 제대로 벌지 못하여 집안의 생계가 안 좋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그렇기에 고렘 당신을 부정하겠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독자분에게 반대로 물었습니다.
가족중에 아픈 환자가 있고, 당신이 작가라고 했을 경우. 양판소로 돈을 벌어 환자를 부양할 수 있지만, 당신이 말하는 글을 써서는 환자를 부양할 수 없다.
그럴때 당신은 어떤 것을 선택 하겠는가?
여기서 어떤 독자가 끼어들어서, 그럼 작가질 하지 말고 다른 걸로 돈을 벌어 환자를 부양해라. 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웃기는 이야기라고 저는 말해 주었습니다. 왜 작가는 하면 안되는가?
그래서 가끔 생각 하고 독자분에게 글을 통해 물어 보고 싶어질때가 있습니다.
'진실로 명예심과, 자긍심이 생명 보다 소중한가?'
참고로. 저의 집안의 가족중 환자가 계시고. 저는 환자인 가족을 부양하고자 돈을 벌고 있습니다.
단순한 예가 아닌. 제 상황에 빗대서 물어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행을 다녀 와서 첫편.
그럼 앞으로도 부디 저의 이 불편한 글을 즐겨 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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