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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렘팩토리 님의 서재입니다.

광천만기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성상영
작품등록일 :
2009.11.20 22:13
최근연재일 :
2009.11.20 22:1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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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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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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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9.0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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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4쪽

요괴 - 미쳐버린 세상

DUMMY

미쳐버린 세상



미쳐버린 세상을 보라.

우리가 사는 세계는 이미 미쳤다.

우리가 사는 것 자체가 이미 미친 것을

증명한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지.

그런데 살생은 죄라며?

미쳤으니까 생물을 죽여서 먹는 거지.

그러면서 살인은 안된다고?

그게 미쳤다는 증거다.

그러니 죽여. 그리고 죽어. 죽이고 죽는다.

그게 미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언제까지?

죽을때까지.



-미친 광인의 노래.


무기에 미친 장인이 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기에 미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광기를 알기에 사랑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는 이를 거절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상처입을 것이 분명하기에.

그는 점점 외로워 졌다. 그리고 그럼으로서 더더욱 무기에 대해서 강한 집념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신병이기를 만들어내는 장인으로서 유명해졌다. 그리고 그가 만든 무기는 천하를 울렸다.

그의 무기가 수십. 수백. 수천의 생명을 앗아가는 문제가 되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는 무기를 만들 뿐이다.

그의 생명보다도 더 값진 최고의 무기를.

하지만 그 자신이 모든 일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을 구했다. 자신의 일을 보조해 줄 사람을.

그의 아래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그의 광기를 이기지 못하고 모두가 떠나갔다.

그는 무기를 계속해서 만들었고 그런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도 생겼다. 하지만 그는 무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 집념으로 그는 강해졌다. 더 강한 무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체력.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 섬세한 손재주를 위한 수련.

그는 어느새인가 천하에서 가장 강한 열명의 고수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광인. 그래서 그는 강했다.

그리고 지금 그의 옆에는 한 소년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타나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의 옆에서 잔일을 도왔다.

그래서 그는 더욱 더 무기에 열을 올리게 되었고 그는 매번 무기를 만들고 나면 그 무기를 바라보다가 버렸다.

그리고 그가 버린 무기는 또다시 강호로 흘러들어가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그리고 오늘. 그는 또 다시 하나의 마병을 만들었다.

하나의 강철 장갑. 하지만 보통의 장갑이 아니다. 팔꿈치에서부터 손까지 덮어지는 이 묵빛의 강철장갑은 그의 심혈적인 노력이 들어간 가공할 살상무기였으니까.

그는 그 강철의 장갑인 탈명수를 손에 들고는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소년에게 말을 건 것이다.

“내가 무기를 만드는 이유를 아느냐?”

소년은 대답이 없었다.

“내가 무기를 만드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다. 정확히는 내 무기에 많은 이가 죽기를 바래서지.”

그의 말은 확실히 옳다. 그가 만든 기병을 차지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였으니까.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적에 망치를 쥐고 있었고 무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나의 할아버지께서 만든 검으로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지. 아마도 그때 부터였을 거다. 내가 무기에 미친 것은.”

그는 장갑을 묵묵히 끼었다.

“그리고 오늘 또 다시 나는 마병을 만들었다. 이 장갑은 기에 의해서 작동하지. 아주 적은 기를 가지고도 십여장 내의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탈명수다.”

그는 하나의 묵빛 장갑을 만지작 거렸다. 그 손이 움직이면 소년은 죽는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공포따위는 생각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 마병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사람을 불렀다. 그들은 사파에서도 꽤나 유명한 자들이고 동시에 꽤나 강한 자들이지. 나의 초대를 받은 이상 그들은 반드시 나에게 올 것이다. 그리고 나를 죽이고 이것을 가져가던가 그들 전부중에서 단 하나만이 살아남아 나의 이 장갑을 가져가게 될 것이다.”

그의 말은 묘했다. 그를 죽이고 가져 간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라면 그 적들 모두가 죽고 무기도 그가 가지고 있어야 했다. 어째서 단 하나만이 살아남아 이 무기를 가져간다는 말인가?

“나는 꽤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무기는 모두다 그렇게 처분했지. 상대를 부르고 그들이 오면 그들에게 내가 만든 무기를 시험했다. 그들 중 단 한명이 살아남을 때까지 말이지. 그리고 살아남은 그 한명에게 나의 무기를 주고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그것이 바로 내 무기의 주인을 정하는 방식이다. 아니면 내가 죽던가.”

그는 기묘하게 웃었다. 그것은 광인의 미소. 그 미친듯한 웃음 때문에. 그리고 그의 그런 광기어린 행동 때문에 그의 도제가 되려던 자들은 모두 떠나거나 죽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재료를 얻을까? 그건 간단하지. 나를 죽이러 오는 자들이 죽으면 그들의 본거지는 비게 되거든. 나는 그곳으로 가서 그들의 잔존하던 자들을 모두다 죽이지. 그리고 그들이 가진 여러 물건을 챙긴단다. 그걸로 다시금 광물을 사고 대장간을 차려서 나는 무기를 만들지. 나는 지난 삼십여년 동안 총 일곱 번이나 이런 짓을 계속해 왔고 오늘이 여덟 번 째다.”

그가 행한 일곱 번의 행위. 그리고 일곱 개의 마병. 그것은 강호의 절대자들이 나누어 가졌다.

바로 강호십대고수들이!

하지만 모두가 다 그가 만든 무기를 가진 것은 아니다. 강호십대고수들 중에서 겨우 넷 만이 그가 만든 마병을 가지고 있다. 거기다가 그는 실패작이라고 생각한 것은 그냥 길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그런 실패작 만으로도 피바람이 불었다. 그가 만든 특별한 일곱 마병. 그 중에서 세 개는 아직도 어둠속에. 하지만 누군가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리지 않아서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면 그 남은 세 개의 무기는 은밀한 무기일 수도 있다. 사용을 해도 흔적이 남지 않는 그런 무기.

“그래서 얼마 후면 이 장갑의 주인이 될 후보들이 도착할 것이다. 나는 그들을 시험할 것이고 언제나와 같은 결과를 얻거나 내가 죽겠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줄 아느냐?”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너는 정말로 특별한 아이다. 수십근이나 나가는 나의 망치를 가볍게 들고 이 뜨거운 열기에도 인상하나 찡그리지 않으니까 말이야. 거기다가 말도 없고 묻지도 않아. 그럼에도 내가 필요한 것을 바로바로 가져다 주지. 나는 네가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어떤 이형의 존재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상관하지 않아. 나는 무기를 만든다. 내가 죽을 때까지. 오로지 그것 뿐이지.”

그는 길게 말하고는 입을 다듬었다. 그리고 장갑을 만지던 손을 떼었다.

“너는 보게 될 것이다. 미쳐버린 내가 만든 이 무기로 만드는 죽은 자들의 축제를. 그건 미친 자들만이 갈구하는 세계지. 너도 그것을 보기 위해서 나에게 왔겠지? 나는 그걸 알고 있어. 그리고 너에게 가르쳐 주는 거지. 나의 무기는 결국 살인무기다. 이 무기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생명도 걸지. 그 탐욕. 생명을 버리는 만용. 죽이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다가 죽는다. 그래. 미친거야. 그들도 세상도 미친거지. 내 무기는 그걸 겉으로 들어나게 하는 촉매에 불과해. 멋지지 않나?”

소년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되었군. 이제 나의 새로운 무기의 주인 후보들이 왔어. 주인을 정하고 다시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대장간을 나섰다. 밖에는 붉은 옷을 입은 자들 수십여명이 서 있었다.

“광병살마. 그대의 초청을 받고 이렇게 내가 왔소.”

붉은 옷을 입은 자들 중 한명이 앞으로 나섰다. 흰 수염을 용처럼 기른 노인. 붉은 장포에 흰 수염은 왠지 섬뜩한 느낌을 준다.

“혈룡방주. 잘 왔다. 내가 보낸 서찰대로 나는 나의 무기에 어울리는 주인을 찾고자 한다. 그 선택의 과정은 서신에 적었던 대로 나를 죽이던가 너희 모두 중, 단 한 명이 살아남는 것이지.”

“그렇군. 좋소. 그럼 말은 필요 없지.”

혈룡방주라 불린 노인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자들이 일제히 활을 꺼내어 들었다.

혈룡방의 독문 무기인 혈룡궁이라 불리는 마궁이었다. 일반의 궁과는 비교를 거부하는 강대한 살상무기.

거기다가 혈룡방에는 혈룡궁법이라는 활을 다루는 무공까지 있었다.

“쏴라!”

혈룡궁이 꿈틀 거리며 붉은 섬전이 쏘아져 나간다. 그리고 그 붉은 섬전은 그대로 광병살마 장전운에게 쏘아져 나갔다.

하지만 장전운이 손을 내민 순간 붉은 섬전은 모두다 박살나며 흩어졌다. 장전운의 손에 끼어진 묵빛의 강철장갑에서 검은색의 선이 수백여개 튀어나와 화살들을 박살낸 것이다.

취리릭!

검은 선들은 너무나도 빠르게 움직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전운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쏴라!”

큐우우우웅!

수십발의 붉은 섬전이 다시금 뿜어진다. 하지만 장전운의 손에서부터 꿈틀 거리는 검은 선들의 춤을 뚫지는 못했다.

붉은 섬전은 그대로 검은 선에 의해서 박살나 흩어진다. 그리고 이윽고 장전운이 혈룡방주의 전면으로 도달했다.

“카아!”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혈룡방주의 손에서 붉은색의 기운이 폭사 되었다. 그를 혈룡방주로 존재하게 하는 이유.

그의 독문장법이자 천하 칠대 장법중 하나인 혈룡장법이 펼쳐진 것이다.

피처럼 붉은 용이 혈룡방주에서 튀어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장전운의 검은 손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아!

천지가 뒤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멀쩡한 장전운이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묵빛의 강철 장갑이 끼어져 있었고 그의 장갑에서부터 검은 선들이 뿜어져 나와 춤을 추고 있다.

“당신은 아닌 것 같군.”

장전운의 손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검은 선들이 한곳을 향해 찔러간다. 혈룡방주의 붉은 힘을 담은 손이 검은 선들과 부딪히고 그는 죽었다. 그의 힘은 이 검은 선들을 막아낼 수 없었으니까.

“쳐라!”

혈룡방도들이 달려든다. 그리고 한판의 춤이 펼쳐졌다. 삶과 죽음을 가르는 선혈의 춤! 그것은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미치광이들의 박수를 받을만한 황홀하고 격렬한 춤사위의 중심에서 장전운은 살육하며 피를 흘렸다.

그의 무기가 강하다 하지만 상대는 수십. 그도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결국 단 한명을 다 죽이고야 말았다.

살아남은 자는 팔한쪽이 아예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악을 담은 눈으로 장전운을 노려 보았다.

“좋은 눈이야.”

장전운이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을 내밀었다.

푸욱.

그의 손이 상대의 눈을 파고 들었다. 그리고 그 눈을 그대로 그집어 내었다.

“크악!”

“이런 눈은 정말 좋지. 이걸 다음 무기를 만들 때 넣어야 겠어. 그러면 좋은 무기가 태어나겠지.”

인체의 일부를 철을 녹일 때 넣는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마병을 만드는 의식중 하나다. 어떤 이는 자신의 아내를 철광로에 던져넣어 그 무엇이든 죽일 수 있는 검을 만들었었다. 지금 그 검은 전설이 되었지만 그런 방법은 고대로부터 지금가지 존재해온 유명한 비법.

“너를 저주한다!”

청년이 말했다. 하지만 장전운은 그의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나를 저주해라. 그리고 미쳐. 그러면 돼. 나는 그걸 원하거든. 내가 원하는 데로 하기 싫다면 나를 저주하지 않고 미치지 말며 살인하지 않으면 돼지. 하지만 너는 결국 내가 원하는 대로 될 것이다. 그렇지?”

“이 더러운 노오옴!”

“으하하하! 나는 지금까지 그런 말은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여기 서 있지. 나는 내가 죽을 때를 찾고 있지. 하지만 아직 죽지 못했어. 그러니 어쩌겠나? 미쳤으니 미친 짓을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장전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상대의 잘린 팔에 자신의 장갑을 벗어 달아주었다. 그러자 철컥 소리와 함께 우지직 하는 소리가 나며 살이 있는 팔과 금속인 부분이 붙어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오. 조금 아플거야. 주술이 들어간 물건이니까. 하지만 한쪽 팔을 충분히 대신 해 주겠지. 그럼 고통에 저항하게. 어차피 죽을 수 없거든. 그 고통 속에 예전에 나를 죽일 뻔할 정도로 강했지만 결국 내 손에 죽었던 천중장마[千重掌魔]라는 자의 무공을 알게 될 걸세. 그의 무공을 익히고 혈룡방주의 무공을 익히면 꽤 강해지겠지. 그 때. 나를 죽이러 와 보게. 그 전에 자네가 많은 이들을 죽이게 되겠지만 말이야.”

장전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시체속에 뒤섞여 쓰러진 사내의 곁을 떠났다. 과연 그는 미쳐있었다.

이렇게 친절하게. 그리고 처참하게 상대에게 기연을 주다니. 아니. 이건 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그저 지독한 악몽이겠지. 그는 소년의 앞에 와서 말했다.

“자아 가자. 나는 다시금 광기를 뿌려야 겠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되어버렸다. 소년의 몸에서부터 갑작스럽게 거대한 뿔이 튀어나와 그를 찔렀으니까.

너무나도 빨랐다. 천하십대고수중 하나인 그로서도 피하거나 도망 갈 수 없는 속도. 그렇기에 그의 일곱 개의 뿔에 그대로 관통당했다.

“커헉...”

“잘 배웠어.”

소년 두삼이 말했다.

“미쳐버린 세상을 보여줘야 하거든.”

“그러냐.....미쳐버린 세상...그래. 역시.....너는....보통이 아니었어...보여다오. 미친 이 세계를.”

“응.”

두삼은 비틀린 미소를 짓었고 그와 동시에 그 몸에서부터 거대한 입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입은 장전운을 모두다 먹어 치웠다. 그리고 이제 장전운은 없다. 하지만 광병살마는 남아있다.

이제 부터는 소년 두삼이 무기를 만들어 세상에 내 놓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무기를 차지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다시금 싸우겠지.

그리고 그 모습은 미쳐버린 이 세계의 가장 극명한 모습이 된다. 바로 두삼이 원하는 미쳐버린 세계의 모습이.

“가야지.“

두삼은 떠났다. 소년이 떠나간 자리에는 수많은 시체와 혈룡방의 마지막 생존자 뿐이었다.



산다는 것은 언제나 슬픔과 고통에 직면하게 된다. 행복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행운아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만약 공평하다면 황제와 거지라는 존재는 없었을 테니까.

이 배부른 세상에서 배부르게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껴라. 그렇지 못한 자들 또한 많으니까.

그리고 지금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쯧쯧. 불쌍하긴 하지만 이것도 명령이니 별 수 없지. 다 자네의 불운을 탓하게.”

지하의 밀실. 횃불이 켜져 밝은 그 안에는 갖가지 고문도구가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 건장한 사내가 만싱창이가 되어서 묶여져 있었다.

그 앞에는 고문관으로 보이는 사내가 혀를 차며 눈 앞의 천장에 묶여 매달린 사내를 바라본다.

“어쩌다 그런 사갈같은 년을 좋아하게 된 건가. 자네는 몰랐겠지만 그 년은 지독한 년일세. 이미 갈아탄 남자만 이십여명이고 그들 모두는 폐인이 되거나 죽었지.”

고문관이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아프지 않게 최대한 처참하게 보이도록 해 주겠네. 그 다음에 고통없이 빠르게 죽여주지.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일세.”

고문관은 고문관이면서도 꽤나 인자했다. 그리고 사실 그랬다. 고문관은 본래 고문을 전문으로 하는 자가 아닌 의원이었다.

고명한 의원은 아니고 그저 그런 의원으로 진주언가에서 일하는 여러 의원중 하나였던 그는 어쩌다가 고문을 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체질에도 안 맞았고 잡혀서 오는 이들 중 대부분은 그리 큰 죄가 없는. 어떤 때는 아무런 죄도 없는 이들까지 있었기에 그는 나름데로 선의를 베풀었다.

별 고통 없이 죽게 만들어 주는게 그의 선의.

그 것만이 그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다. 그 외의 일은 그는 못한다. 그 외의 일을 하면 그 자신이 죽으므로.

그래서 그의 선의는 고통 없는 죽음이다.

“거...거짓말...그녀가....그녀가...”

“못믿겠나? 하지만 사실일세. 거기다가 그 년은 내가 죽인 시체를 가져다가 강시로 만들어서는 시체와 즐긴다네. 그걸 시간이라고 해야할까? 미쳤지. 미쳤어. 하지만 이미 알기에 나도 나갈 수 없어서 여기에 있는 걸세.”

고문관은 고개를 내저으며 혀를 찼다. 진주언가. 과거 유명한 장의사가 모태가 된 집안으로 강시를 다루는 구시술과 몸의 상태를 강시와 흡사하게 바꾸는 강시공으로 유명한 강호의 세가다.

“솔직히 자네 같은 가난한 이와 무엇을 볼게 있다고 사귀겠나. 진정한 사랑? 그런 건 엿하고도 바꿀 수 없는 걸세. 후우...말이 길었군. 이제 그만 죽여주겠네.”

고문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대침을 꺼내어 들었다. 이 대침을 목의 뒤쪽에 꽂아 넣는 순간 이 청년의 모든 감각은 차단될 것이다.

몸을 칼로 찔러도 찔린다는 느낌만이 날 뿐 아프지는 않게 되리라. 그 상태에서 몸을 고문할 것이다.

그래봤자 아프지 않으니 사내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게되고 그 눈으로 천천히 해체되는 자신의 몸을 보게 되리라.

아프지도 않은체 자신의 몸이 고문되고 있는 장면을 보면서 사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고문관은 작업에 착수했다. 그는 빨랐고 능숙했다. 사내의 손톱을 뽑아내고 인두를 지지는 기본적인 고문에서부터.

살의 피부를 벗겨내고 소금을 뿌리거나 그 안에 기이한 독을 바르거나 하는 일까지 했다. 여러 가지 잔혹하고 지옥같은 작업들이 이루어 졌지만 사내는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묵묵히 해체되어 가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본다.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은 점점 일그러져 간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범인은 상상도 하지 못할 비틀림이 생겨나고 있었다.

“대충 되었군. 이제 잘가게.”

고문관은 작은 비수를 들었다. 이제 이 불쌍한 자를 죽여줄 시간이 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그의 옆에 어느새인가 작은 소년이 서 있었으니까.

“으헉!”

그는 놀라서 뒤로 뒷걸음질 쳤다. 이곳은 비밀스러운 장소다. 그런 곳에 처음 보는 소년이 기척도 없이 다가왔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

소년이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그 손에서 흘러나온 하얀 가루가 고문관의 얼굴을 덮었다.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소년은 쓰러진 고문관을 바라보았다. 죽지는 않았다. 잠이 든 것일 뿐.

“힘을 원해?”

소년의 느닷없는 말에 사내는 비틀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원해.”

“너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그래.”

“그럼 이걸 줄게.”

소년이 입을 벌렸다. 턱이 떨어지고 소년의 입이 쩌억하고 찢어지며 무언가를 토해내었다. 그것은 하나의 낫.

기괴한 눈의 모양이 수없이 음각된 기이한 검은 낫이었다. 소년의 키보다도 더 커다란 그 대낫은 요사스러운 힘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이거 네거. 내가 만든 무기 사안겸. 자 이걸로 너의 소원을 이뤄.”

소년이 낫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낫질 한방에 사내를 묶고 있던 쇠사슬이 단번에 잘려나가고 사내가 풀려났다.

사내는 낫을 쥐었다. 그 순간 그의 눈과 코와 귀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을 터트리지는 않았다.

이미 그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신경감각을 완전히 제거한 그다. 비명을 지를리 없지 않은가.

낫을 잡은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그의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그것은 힘! 가공할 힘이었다.

“크흐...”

사내가 낫을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고문관을 죽였다.

푸욱.

“당신은 나에게 잘 해주었지만 나는 이 곳의 모든 생명을 다 죽이기로 했소. 진주언가....이 개같은 집안에 있는 것이라면 아이한명 남기지 않아. 벌레 하나 남기지 않아. 쥐새끼 하나 남기지 않아. 그 무엇도. 살아있는 그 모든 것을 남기지 않아,”

그리고 사내는 천천히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파내버렸다. 그리고 그 눈을 으적으적 씹었다.

“보인다. 그래. 이렇게 사용하는 건가. 대단하군.”

그가 스스로 눈을 씹어 먹은 순간 여든 여덟개의 눈이 조각된 사안겸이 꿈틀 거리기 시작한다. 그 조각된 눈들이 일제히 눈을 치켜뜨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면서 사방을 본다. 이것이 사안겸의 힘.

“거기있구나. 나의 사랑하는 여인. 크흐..사랑..크흐흐흐흐흐!”

사내가 비틀 거리며 문을 나섰다. 그의 몸은 이미 살아있을 수 없는 상태였지만 그는 그래도 걸어다녔다.

그리고 낫을 휘두른다.

쩌억!

강철의 문이 단번에 잘려나갔다. 문이 잘려나가고 그는 계속해서 지상으로 향한다. 어느새 인가 소년은 사라지고 없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진주언가이니까.

“적!”

계단 위의 수문위사들이 사내를 발견하자마자 공격을 가해왔다. 그들은 전문가들이며 동시에 정예.

처참한 시체꼴로 나타난 사내를 보고도 동요하지 않고 바로 공격을 강해해 왔다. 하지만 그들의 모든 움직임은 사내에게 보인다.

“보인다.”

그리고 그들이 움직일 궤적으로 사내는 낫을 휘둘렀다.

푸카악! 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드는 자들의 몸이 그대로 동강나 버렸다. 피는 흐르지 않는다. 두명의 수문위사는 바로 강시였던 것이다.

잘라진 몸이 그대로 하늘로 솟구쳐 올라 땅에 떨어져 내렸다. 그 육신으로 사내가 사안겸을 휘두른다.

순식간에 그 육신이 수십조각이 나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체가 검게 타들어 간다. 그것이 바로 사안겸의 힘.

죽은 자를 죽이고 산자를 죽인다.

“그래. 네가 이제 나의 눈이라는 거냐...검은 세계속의 하얀 선들도 멋지구나.”

사내가 중얼중얼 거렸다. 피가 고인체 눈알이 빠져나간 두 눈을 뜨고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

그는 계속 걸어나갔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아까와 같은 자들이 나타났다. 강시. 무인. 여러 사람들.

그리고 그는 그들을 죽였다.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의 낫의 궤적안에 들어간 것은 그 무엇이든 잘려나갔고 결코 그의 공격을 막지 못했다.

그의 공격은 막을 수 없는 것. 오로지 피하는 것만이 살 수 있는 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과 강시들은 계속 달려들었다.

흉험한 의지를 가지고 달려들고 달려든다. 그리고 그가 걸어간 길에는 시체만이 다진 고기가 되어서 쌓여나간다.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눈을 뽑아 죽여. 이빨을 뽑아 죽여. 눈깔에 칼을 박아 죽여. 이마에 못을 박아 죽여. 손가락을 잘라 죽여. 다리를 잘라 죽여. 살점을 조금씩 떼어내 죽여. 목에 구멍을 내고 피를 빼내 죽여. 심장을 꺼내 죽여. 내장을 으스러 트려 죽여. 전신을 다진 고기로 만들어 죽여. 토막을 내서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만족할 때까지. 죽이는 거다.

사악한 의지가 그에게 속삭인다. 아니 이 의지는 그 자신의 속삭임일까?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상관치 않았다.

그는 그 소리에 충실하게 따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에 따라 사안겸에 달린 무수히 많은 눈들이 기묘하게 휘어졌다.

웃고 있는 거냐. 너도 웃는 거냐.

그래. 웃어보자. 오늘 피를 뒤집어 쓰고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리며 춤을 추어보자.

죽어라! 그리고 나를 죽여 봐라! 이것이 세상이 아니더냐!

사내가 달려갔다. 사내의 이름은 진삼. 평범한 농부의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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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그나저나 저도 괴기물이 좋아하기는 하는 군요.


저는 이만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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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광천만기狂天滿氣 - 심중사념(心中思念) 3 +43 09.11.20 7,343 22 10쪽
37 광천만기狂天滿氣 - 심중사념(心中思念) 2 +35 09.09.09 7,131 15 6쪽
36 광천만기狂天滿氣 - 심중사념(心中思念) 1 +28 09.08.17 7,409 17 9쪽
35 광천만기狂天滿氣 - 무인들 3 +42 09.08.07 7,848 25 8쪽
34 광천만기狂天滿氣 - 무인들 2 +44 09.08.04 7,410 16 10쪽
33 광천만기狂天滿氣 - 무인들 +65 09.08.03 7,432 29 11쪽
32 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람들 3 +32 09.07.25 7,528 15 8쪽
31 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람들 2 +44 09.07.20 7,621 16 9쪽
30 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람들 1 +28 09.07.19 8,263 18 10쪽
29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인魔人 4 +39 08.10.29 9,704 17 8쪽
28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인魔人 3 +38 08.10.17 9,169 16 7쪽
27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인魔人 2 +32 08.10.04 9,205 21 6쪽
26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인魔人 1 +29 08.10.02 9,487 24 8쪽
25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병 사안겸 3 +32 08.10.01 10,268 14 8쪽
24 요괴 - 인간지정 +16 08.10.01 6,048 16 31쪽
23 요괴 - 진실, 그리고 마음 +9 08.10.01 5,609 15 36쪽
22 요괴 - 불사패검 +23 08.09.12 6,759 23 39쪽
21 요괴 - 여행자와 사건 +9 08.09.12 6,754 109 43쪽
20 요괴 - 대가 +7 08.09.12 6,649 29 26쪽
19 요괴 - 마적 +19 08.09.11 8,458 15 40쪽
18 요괴 - 인간애 +8 08.09.11 8,198 14 37쪽
17 요괴 - 세상의 중심에 선 자들 +8 08.09.11 9,024 19 16쪽
» 요괴 - 미쳐버린 세상 +22 08.09.09 10,551 19 24쪽
15 요괴 - 내가 없어도 흘러간 세상 +10 08.09.09 11,592 22 16쪽
14 요괴 - 먹는 행동의 의미 +20 08.09.09 15,849 21 30쪽
13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병 사안겸 2 +43 08.08.25 15,875 19 7쪽
12 광천만기狂天滿氣 - 마병 사안겸 +52 08.08.20 15,761 21 7쪽
11 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내와 여인과 소녀 3 +50 08.07.30 16,824 20 9쪽
10 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내와 여인과 소녀 2 +54 08.07.11 17,818 18 10쪽
9 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내와 여인과 소녀 +44 08.07.01 19,382 2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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