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만기狂天滿氣 - 사람들 2
문을 몇 개 지나고, 서책이 많이 꽃혀 있는 어떤 방에 들어갔다. 안쪽에는 하나의 서책을 펼쳐서 읽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검은 수염을 길게 기른 조금 마른 중년인이다. 눈이 매섭고, 정광이 번뜩이는 것이 보통의 사람은 아닌 듯한 느낌을 주었다.
제갈귀산.
북림맹의 총군사인 사내다. 그는 두명이 들어서자 서책에서 눈을 돌린다. 그의 태도 전체가 몹시도 강한 정신적인 압박을 주었다.
하지만 아이를 안은 사내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서오게 화련부당주 모용미. 그리고 그쪽은....."
"비인."
사내가 텁텁한 목소리로 말해 주었다. 사내가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모용미로서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름이 아니다.
비인(非人)이라는 것은 사람이 아니다 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사람에게 붙여질 이름일 리가 없지 않은가.
이름이 없다는 의미의 무명(無名)도 이 보다 지독한 느낌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혈괴니, 마존이니 하는 것도 그나마 인간에게 붙여지는 별호이고 이름이다. 하지만 비인이라는 것을 자신의 이름이라고 소개하는 사내의 모습에 모용미는 가슴 한쪽이 저릿해 지는 것 같았다.
"비인이라.........만나서 반갑소. 북림맹의 총군사를 맡고 있는 제갈귀산이오."
그의 말에 사내 비인은 고개를 까닥인다. 실로 무례한 태도로 보였지만, 그것은 제갈귀산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앉은 탁자에서 일어서지도 않았고 포권을 해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제갈귀산도, 사내도 그런 예법에 대해서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했다.
"앉으시오."
제갈귀산이 의자를 가르킨다. 모용미는 제갈귀산의 태도에서 이상함을 느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의 말 대로 의자에 앉았다.
모용미가 앉자 사내도 의자에 앉는다. 모용미는 제갈귀산이 저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본적이 없을을 생각하며 침묵을 지켰다.
"본맹에서는 스물 다섯 가지의 마병을 오래동안 추적해 왔소. 그것은 본맹 뿐만이 아닌 저 남무련과, 사천연도 마찬가지지. 이번 작전으로 우리는 사안겸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 했지만 실패. 하지만 모용 부당주가 이렇게 생환하고 사안겸을 가지고 왔다는 정보에 크게 기뻐한 참이오. 그런데 귀하가 사안겸의 소유권을 주장했다고 들었소만."
제갈귀산의 차분하면서도 끈임 없이 이어지는 목소리가 끝나자 모용미는 사내를 보았다. 사내는 제갈귀산이 아닌 품에 안긴 여아를 바라보며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단절되어 있다.
그런 것을 느낀 것은 비단 모용미 뿐만은 아닐 터 였다.
"사안겸은 없소. 내가 먹어 버렸지."
탁하고 단조로운, 하지만 듣는 것 만으로도 솜털이 곤두서는 그의 목소리가 간단하게 대답을 내 놓는다.
제갈귀산은 그 말에도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보고는 받았소. 하지만 먹었다는 것이 이 제갈모는 이해가 가지 않더구려."
사내의 손이 휙 움직였다. 동시에 천장과 바닥에서 어떤 움직임이 일어났다. 북림맹 총군사를 지키는 비밀 호위들이었다.
사내의 손에서 날아간 것은 완만하게 날아가 제갈귀산의 앞 책상에 떨그렁 하고 떨어져 버렸다.
인기척은 다시 가라앉아 조용해 진다. 제갈귀산은 무표정함 그대로 자신의 책상에 떨어진 것을 바라보았다.
희번뜩.
꿈틀꿈틀.
그것은 철조각이었다. 손가락 세 개를 합친 것 같은 크기의 작은 크기의 검은 쇳조각이었는데, 표면에 인간의 눈을 닮은 작은 눈알 세 개가 달려서는 꿈틀 거리며 희번뜩 거리고 있었다.
"사안겸이라는 녀석의 남은 조각이지."
제갈귀산은 사내의 목소리에 사안겸의 조각을 한참동안 내려다보았다.
"사실이었군. 사안겸을 먹었다는 것이."
"사실이지."
제갈귀산의 말을 받는 사내는 여전히 시선은 아이를 향해 있다.
이질적이다. 그리고 불쾌하다. 또한 위협스럽다.
모용미는 그렇게 느꼈다.
제갈귀산이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안다. 욕망이 뭉쳐진 북림맹의 총군사를 할 정도의 사람으로, 언제나 가면을 쓴 듯 예의가 바르지만 날카로운 기색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오늘과 같은 모습을 모용미는 처음 보았다.
왜 일까?
이 사람이 있으면.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된다.
오싹.
몸이 조금 떨렸다.
조금씩 젖어간다.
나의 다른 모습은 이거인 거야?
왠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이를 악물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래서......세가지 일을 해 주신다고 들었소만."
"그말 그대로. 내가 줄 대가는 그것 뿐이오."
"귀하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디 까지인 거요?"
"내가 죽이고 싶은 자를 죽이는 것. 단지 그것 뿐이오."
"엉성하구려......하지만 꽤 위험한 말이외다."
"그럴지도."
둘의 대화가 의미심장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모용미는 침묵하며 그대로 둘의 대화를 들었다.
"남무련의 련주라도 죽일 수 있다는 거요?"
"내가 죽이고 싶을 만한 자라면."
"광오하군."
제갈귀산의 말대로다. 하지만 모용미는 사내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사내의 능력이라면 정말로 일대 일로 싸울 경우 정말로 남무련주를 죽일 정도라는 것을 본능 적으로 깨달았으니까.
하지만 남무련주는 혼자가 아니다. 사내의 강함은 알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남무련주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왠지 모용미는 사내의 말이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죽이고자 한다면.
남무련주는 죽는다.
"좋소. 그대에게 요구할 일은 추후에 통보하겠소. 조건은 그것 뿐이오?"
"또 있소."
"무엇이오?"
"학살은 싫어 하오. 그걸 명심해 주시오."
"오늘 참 재미있는 이야기를 여럿 들었군. 결국 강자 세명을 죽여 줄 수 있다는 말이 아니오?"
"그거요."
사내의 목소리가 왠지 모르지만 무섭고도 매혹적이라고 모용미는 생각했다.
"나는 그대들을 위해서 내가 죽이고 싶은 자를 세명 죽여주겠소."
"제멋대로군. 하지만......그래. 그대는 흑수혈마를 가지고 놀다가 죽일 수 있다고 했으니....좋소. 추후에 그대에게 이번 일의 대가를 요구하지. 당장은 일이 없으니까."
"좋소."
"거주할 집을 찾을 동안은 객청에서 머물러 주시오. 모용 부당주. 그를 부탁하네."
이질적이고, 불쾌하고, 위협적인 느낌의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모용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사내와 함께 방을 나섰다.
등뒤에서 창으로 찌르는 듯한 뜨거운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모용미 자신의 착각은 아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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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분위기를 표현해 봤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좀더 심층, 다층 구조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광천만기는 좀더 사람의 어둠부분을 표현하고 싶달까.
그러려면 캐릭터들의 설정과 종류, 그리고 표현방법에도
여러가지 변화를 줘야 겠죠.
참고로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습니다.
요괴도 워밍업이었어요.
요새 제가 크게 깨달은게 있는데.
그걸 시험해서 글을 써볼 생각 입니다.
그런데 그걸 시험하면 정말 보는 걸로 토악질이 나올만한 걸 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왜 토악질이 나오냐면. 그냥 잔혹, 잔인한 장면이 아니고.
이 글을 보시는 독자분들의 마음에도 있는 어느 한 구석을
찌를 만한 내용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원래 사람은 진실을 보면 불쾌감을 느낀다고 하죠.
부모님에게 공부해라. 그래야 좋은 대학 간다는 말 들으면 짜증이 납니다.
왜냐면 노력 안하는 자신을, 나태한 자신을 마주보게 되기 때문이죠.
사실 그런 내심을 후벼파는 소설이 인기가 있을리 없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다루는 거니까요.
즐기려고 소설을 보는 거지. 자학하자고 소설을 보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장 소설이 잘 팔리는 거죠. 불완전한 인간이 시련과 사고를 격어서 훌륭해 지는 것.
그건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것 보다 좀더 리얼한 인간을 그려 볼까 생각합니다.
물론 리얼한 인간이라고는 하지만, 소설이므로 매우 과장 되어서 찔러 버리는 글이 되어 버릴 것 같습니다만.
어차피 출판은 포기 했으므로 그렇게 써도 상관은 없겠지요.
본격 하드코어. 마음을 후벼파는 소설.
그런 소설 입니다만. 다음 편도 일독해 주시겠습니까?
그럼 저는 이만 흙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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