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만기狂天滿氣 - 무인들 2
파고든다.
그녀의 마음속으로, 속내로 파고들어 오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정의를, 그녀의 마음이 내리고 있는 어떤 신념을 파고들어 오고 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죠?"
그녀는 반발해 보았다.
"정절이 생명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소. 매우 소수이지만 말이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그들 나름의 순수를 가지고 있지.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정신적 순수...........그것이 그들에게 그런 생각을 가지게 하오. 하지만 당신이 그런 순수를 가지고 있소?"
그녀의 반발은 간단하게 무너져 버렸다. 정절은 생명 보다 귀중한가? 그것은 개개인이 가지는 생각과 마음에 따라 다르다.
그 무게는, 타인이 왈가왈부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내는 그런 것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생명보다 정절을 선택하는 사람을 비웃는 것도 아니었고, 비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묻고 있다.
진실이라는 이름의 들어내기 싫은 마음을 묻고 있다.
생명만큼 소중하다고 소리친 그녀의 속내를 파내고 있다. 그녀 자신이 진정 생명과 정절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가?
그것은 이런 말과 같았다.
네가 진실로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 너의 영혼 깊은 곳의 생각이 맞는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너는 너의 말과 생각을 지킬 수 있겠는가?
너는.
진실로.
순수한가?
"당....당신은....."
또한 사내는 그 질문 속에 또 다른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네가 순수 하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정의 인가.
"그대의 마음이 말하는 것과, 그대의 입이 말하는 것은 서로 다른가 보군. 순수하지 않은 자가 그렇게 쉽게 말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
사내는 그렇게 말하고서 고개를 돌린다.
후벼파져버렸다.
본성이, 마음의 바닥을 보여 버렸다.
그녀는 수치심에, 그리고 분노에, 그리고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에 휩싸여 사내를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당신이 나에게 무엇을 원하는 지 나는 모르오.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는 것은 느끼고 있소. 무엇을 원하오?"
모용미는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 이상.
안돼.
부서져버려.
여기서.
서 있을 수가.
없어.
"다음에 다시 오죠."
모용미는 대답도 듣지 않고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사내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사내의 눈동자 속 모용미라는 여인은, 여기저기에 금이가 부서져 버릴 것만 같았다.
"심했군. 그 일이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버리고 있는데."
사내는 무심하게 눈을 돌려 여아를 바라보았다. 여아는 모용미와 사내의 모습을 두 눈동자에 담고 있었다.
사내는 밤이 될 때까지 여아를 품에 안고서 시장 거리를 지켜 보았다. 그리고 결국 밤이 깊어졌을 때,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아무도 사내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시장의 거리는, 그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것. 그저 방관하며 지켜 보는 사내에게 신경을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사내는 걸음을 옮겨 북림맹으로 돌아온다. 북림맹의 문지기는 사내를 알아보고 통과를 시켜 주었다.
사내의 기괴한 행적, 그리고 언제나 여아를 안고 다니는 것을 북림맹의 절반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었다.
소문은 빨리 돌고, 사내 처럼 독특한 자라면 그것은 더욱 당연한 것일 것이다. 사내가 자신의 거처로 가는 와중에도 사내를 알아본 무사들이 수군 거린다.
사내에게는 그런 그들의 수군 거림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느낌도 없었다. 철저하게 세계와 분리된 듯한 그 태도와 죽은 망자와 같은 눈빛은 무사들을 질리게 만들었기에 누구하나 그에게 시비를 걸어오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북림맹에는 그런 무사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척.
사내의 앞에 세명의 사내들이 막아섰다. 나이는 스물 중후반으로 보이는 자들로, 젊은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젊음과 다르게 사내들은 상당히 고된 수련을 한듯, 기도가 남달랐다. 고된 수련과 정돈된 기도와 심성은 별개의 문제겠지만.
사내는 그런 세명을 무시하고 길을 걸었다. 세명은 사내가 가까이 다가옴에도 비켜서지 않고 있었다.
결국 사내와 그들의 거리가 주먹 하나 정도의 공간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사내는 멈추어 섰다.
사내는 말이 없다. 그 칙칙하고 무저갱 같은 눈동자로 세명중 정면에 선 자의 눈을 바라볼 뿐이다.
정면에 선 자는 이글거리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키는 칠척으로 훤칠하여 사내 보다 조금 더 컷으며, 그 비단의 옷 안에 잘 단련된 육신은 한 자루 보검만큼이나 강인할 것이다.
사내는 그런 정면에 선 이글거리는 눈동자의 소유자를 본다.
여전히 말 없이. 그저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 기묘한 대치는 어느정도 이어졌다. 하지만 결국 먼저 입을 연 것은 사내가 아닌 가로막은 세명중 정면에 선 자였다.
"당신. 모용소저와 무슨 관계지?"
직설적인 질문.
그 질문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함축 되어 있음을 사내는 알고 있었다. 무시, 경멸, 질투, 증오, 분노, 오만.
사람은 한가지 감정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기에, 한가지 행동에도 여러 가지 의미와 감정이 담겨져 있다.
모용미 그녀가 사내에게 와서 그때의 일을 거론하며 그녀 자신에 대한 정절과 마음에 대해서 외쳤지만, 사실 그녀는 그때의 일에 대해서, 정절에 대해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과 같이.
진정으로 그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자가. 그것에 의미가 있는 것 처럼 말하는 것도 사람이 혼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사내는 알고 있었다.
혼탁함.
여러 가지 감정이 섞이고 섞여서, 인간중 순수하게 살아가는 자는 거의 존재치 않는다. 만약 한가지 순수함으로 살아간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겠지.
"큭...."
사내는 웃음이 나왔다.
내가 어째서 이런 것을 알고 있지?
마령아. 너는 나에게 대체 무엇을 보내고 있는 거냐?
"웃어?"
"미안하오. 당신 때문에 웃은 건 아니오."
여전히 겨우 주먹 하나의 공간을 두고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세명중 정면의 사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노려본다.
아까의 복잡한 감정들 중에서 분노가 커져가며 눈동자를 장악하기 시작하고 있다.
"너 이 자식...."
그의 분노를 보면서도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 하게, 그리고 그 아무것도 없는 듯한 검은 눈동자로 바라본다.
그 눈동자 덕분에 그는 더 분노했다.
펄럭펄럭.
바람도 불지 않는데, 정면의 사내의 옷이 부풀어 올랐다. 동시에 주먹이 쐐엑! 하고 날아들어 그대로 사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쾅!
사람의 손이, 사람을 때린 소리가 아니었다. 그건 무언가가 커다랗게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었다.
그 소리 후 정면에서 막아선 이십대 중후반의 사내는 도리어 신음을 내며 뒤로 물러섰다.
그가 내 뻗었던 손은 으스러져서는 피를 흘려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끝났소?"
하지만 여아를 안은 사내는 그 어디도 다치지 않았다. 표정마저 변하지 않은 채로, 감정이 없는 그 인형 같은 눈으로 바라만 본다.
"이....이....."
으스러진 손을 부여잡고서 노려본다. 그러던 그는 사내의 눈동자를 보고는 흠칫 한다.
지옥을 담은 듯한, 검은 심연의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사내는 걸음을 옮긴다. 세명은 주춤 거리며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사내가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
사내는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 그대로 자신의 거처로 향했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많지 않구나."
사내는 여아를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 거렸다.
--------------------------------------------------
어제에 이어서 또 다시 한편. 되도록 매일 연재 정도는 할까 생각 중입니다.
어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고, 언제 또 우선 순위에서 밀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나저나 저번 편의 제 질문은, 사실 여러가지 의미가 함축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명예냐 생명이냐.
그 질문속에는
명예냐 생명이냐를 말하는 당신은 과연 순수하게 그것을 옳다고 생각 하는가? 라는 질문도 들어 있는 셈이죠.
누구나 말로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본심일까요?
전전편의 모용미에게 주인공인 사내가 한 말인.
거짓된 꿈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라는 대사를 생각해 주십사 합니다.
사실 글쟁이는 글로 독자와 대화를 하지만, 저는 이 글을 출판할 수 없을 것이라 판단 했으므로, 사담으로도 독자분들과 대화를 할까 합니다.
스토리는 스토리 대로, 글의 느낌은 느낌 대로. 그리고 저의 부언은 부언 대로 즐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순수하다고 해서 그것은 정의인가? 라는 점이겠죠.
그래서 인간은 재미있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저 자신도 모순적인 인간이니까요.
전편에서 저는 딱히 저의 반대 편의 사상을 공격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다만. 저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제 글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면 합니다. 그게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일 지라도 말입니다.
그게.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 이기도 하니까요.
부디 저와 같이 스스로를 파헤치는 이 불편한 글을 앞으로도 즐겨 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만 흙으로 돌아갑니다.
Comment ' 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