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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33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6.27 06:20
조회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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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8쪽

75화

DUMMY

“봄아, 이제 출발할 거야.”


그 소리를 들은 봄이는 차량으로 향하며 마지막으로 텅 빈 주유소를 돌아보았다. 불이 꺼진 주유소 간판이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봄이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것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과거에 남아버린 그 세계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이 세계는 끝내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겠지.


봄이는 더 이상 미련을 남기지 않고 몸을 돌려 차량으로 향했다. 조용하던 허공에 엔진 소리가 서서히 울려퍼졌다. 봄이는 차량 뒷자석의 문을 열고 들어가 좌석의 중앙에 다소곳이 앉았다. 뒷자석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운전석에 앉은 상훈은 정면의 계기판을 손보고 있었고,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신기하다는 듯 내부를 두리번거리며 벨트를 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봄이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물론 봄이 쪽이 조금 더 빨랐다.


아까와는 다른 차가운 좌석의 냉기에 열을 빼앗긴 봄이의 몸이 움찔거렸다. 바깥뿐만 아니라 차량 내부에서도 입김이 멈출 줄을 몰랐다. 봄이의 이빨이 추위로 인해 경련하여 딱딱 부딪혔다. 가죽 망토를 굳게 부여잡고 몸을 와들와들 떠는 봄이를 상훈이 돌아보고 나서 중얼거렸다.


“그래도 올 겨울은 저번보다는 많이 풀렸어.”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맞받아쳤다.


“그건 아니지. 이번에 날씨가 풀렸다기보다는 저번 겨울이 유난히 심했었던 거야. 이 정도면 낮게 잡아도 평범한 수준이지. 그 사태가 조금만 더 일찍 터졌어도 아마 지금 남아있는 생존자들 중에서 반이나 더 얼어 죽었을 거야. 지금도 동사자랑 아사자가 발생한다는 소문이 간간히 떠돌고 있는 마당에......”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훈이 그의 말을 잘랐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앞이나 봐. 저거 보여?”


상훈이 그렇게 말하며 손바닥을 들어 셔터가 완전히 내려온 3층 높이는 되어보이는 건물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조수석에 앉은 남자는 목을 빼고 좀 더 자세히 보려고 눈을 찡그렸다.


“예전에는 저 건물을 돌아서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잡동사니들이 길을 완전히 막아버려서 저기로는 못 가. 좋은 방법 있어?”


상훈이 묻자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일단 밟아. 자세한 길은 가면서 안내해 주지.”


남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봄이의 몸이 앞으로 붕 쏠렸다. 조수석의 남자는 가끔 상훈에게 뭐라고 속삭이며 손짓을 하는 것 외에는 조용히 앉아있기만 했다. 상훈은 남자의 말에 기계처럼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봄이가 앞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든 순간 이쪽을 쳐다보던 남자와 그녀의 눈이 다시 한 번 마주쳤다.


봄이가 재빨리 그의 눈을 피하려 하는 순간 그녀에게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 아까는 미안했어.”


생각지도 못한 남자의 말에 화들짝 놀란 봄이가 벙찐 눈으로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코에 흉한 상처가 있다는 점만 빼면 그의 얼굴은 티끌 하나 없이 말끔해 보였다. 또 봄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딘가 앳돼 보이기도 했다. 이런 세상에서 지내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 그의 검은 머리는 오랜 기간 손보지 못해 헝클어져 있었으며, 그의 어깨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송이가 여기저기 앉아 있었다.


봄이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서 한동안 차량 내부에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그녀는 대놓고 피하지는 않고 어딘가 뚱한 눈으로 그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보고만 있었다. 남자는 그런 봄이의 시선이 불편했는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나서 부스럭거리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유상민이야. 이름이 뭐야?”


상민의 물음에도 봄이는 조금의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잡아줄 사람이 없는 그의 손바닥이 점점 아래로 떨어지다가 거두어졌다. 상민이 아까 전 들이쉬었던 공기를 한숨에 내뱉고 나서 앞으로 몸을 돌리려는 순간 봄이가 대답했다.


“봄.”


상민이 몸을 돌리려다 말고 다시 뒤돌아보았다.


“뭐라고?”


“봄이라구요.”


순간 대답할 말을 잃은 상민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구르다가 초점을 잃었다. 그는 당황한 듯이 뭐라고 중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똑바로 들고 말했다.


“그래, 그랬구나. 만나서 반갑다.”


상민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봄이는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녀를 향해 내밀었던 팔이 다시 그에게로 되돌아갔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 건지 그녀와의 대화가 영 어색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상민은 그대로 몸을 돌려버렸다. 봄이는 그가 몸을 돌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좌석 너머로 보이는 상민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의 뒤통수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봄이의 머릿속에서 묘한 궁금증이 샘솟기 시작했다.


“저, 거기 당신. 궁금한 게 있는데.”


봄이는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상민도 한동안 그녀가 자신을 부르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았다.


“아까 가지고 있던 그 총은 어디서 난 거죠?”


봄이는 말을 낮출까 하다가 그냥 상대를 조금이라도 존중해주기로 했다. 그녀의 말에 상민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반응했다. 의외로 상훈까지 흥미를 보였다.


상민이 몸을 뒤쪽으로 다시 돌리며 한껏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전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이거 말이야?”


상민이 그렇게 말하며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져 큼지막한 자동권총 한 정을 꺼냈다. 분명히 아까 전에 봄이의 관자놀이를 노렸던 권총이었다. 봄이는 그것을 보자마자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움찔거렸다. 몇 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은 긴장감이 다시 한 번 그녀의 등줄기를 스쳤다.


그런 봄이의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상민은 태연하게 권총을 치켜들었다. 그는 권총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손가락으로 탄창멈치를 당겨 탄창을 뽑았다. 그리고는 뽑은 탄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허탈하게 웃었다.


“별 거 아니야, 걱정 마. 그냥 길 가다 주운 장난감 총이니까.”


봄이는 그 말을 듣자 지금까지 쌓아 두었던 긴장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린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그에게 묘한 배신감마저 느껴졌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에게 휘둘릴 필요조차 없었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봄이의 가슴 속에서 수치심이 끓어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당장 상민에게 달려들어 주먹질을 날리는 것도 조금 이상할 것 같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봄이를 약올리기라도 하는지 상민은 뒤로 얼굴을 더 가깝게 들이밀며 말했다.


“네 귀에는 안 좋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효과는 끝내줬어. 녀석들은 이걸 보자마자 가진 걸 모두 털어놓고 도망치기 바빴어. 물론 예전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겠지만 말이야. 안 그래? 아무리 녀석들이 이런 세상에 익숙해져 있다고는 해도 살아남기 위해 목숨 건 녀석들에게는 이 총이 진짜 총이느냐, 가짜 총이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본능적으로 몸을 죄어오는 공포에 굴복하느냐, 아니면 이 껍데기만 남은 공포를 스스로 극복하느냐 뿐이지.”


봄이는 보란 듯이 신나게 떠들어대는 상민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상민은 계속해서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그가 주로 하는 이야기는 바깥에서 마주친 사람들이나 사냥꾼들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이야기가 떨어져 갈 때쯤에는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봄이는 차량 안이 사람의 목소리로 가득 차는 것이 싫지는 않았기 때문에 잠자코 앉아 있었다. 자신 이외의 사람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이나마 마음이 안정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봄이는 한동안 그렇게 상민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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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101화 20.12.16 6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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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95화 20.11.28 30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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