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농사짓는로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봄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SF

로리칼국수
작품등록일 :
2017.08.21 01:30
최근연재일 :
2021.02.13 09:16
연재수 :
116 회
조회수 :
14,534
추천수 :
182
글자수 :
530,484

작성
18.06.08 04:09
조회
82
추천
1
글자
9쪽

72화

DUMMY

“가보자. 쓸만한 게 있나 살펴봐야지.”


“벌써 내가 다 돌아봤어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어요. 누가 벌써 전부 가져가버린 건지 다 말라버린 건지 기름도 한 방울도 없던데요.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그냥 가던 길 가요.”


봄이가 어깨를 벌려 못마땅하다는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상훈이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들쳐맸다.


“네 말대로 이 동네에 들어오고 나서 개미새끼 한 마리도 못 봤어.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한 느낌이 들어. 다른 차들이 다녔던 흔적도 없고, 발자국도 없어. 녀석들의 발길이 오래 전부터 끊겼다는 소리야. 사실 누군가는 차를 지켜야겠지만, 지금 이 분위기라면 차를 도둑맞을 것 같지는 않군.”


“아니면 벌써 볼일 다 보고 나서 훌쩍 떠나버린 건지도 모르죠.”


봄이가 헝클어진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이미 눈은 그쳐버렸기 때문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건조하기만 했다. 상훈이 대답하지 않자 봄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어쩌시려구요?”


“주유소 안으로 들어가 보자. 10분 정도면 충분하겠지.”


“할 수 없죠. 그럼 앞장설 테니까 얼른 끝내고 돌아가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며 거리낌없이 상훈을 지나쳐갔다. 아까 보았던 작은 1층짜리 건물은 주유소와 이어져 있었고, 여전히 창가에 붙은 신문지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쪽 창가를 확인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 다음에야 봄이는 창가 오른편에 작은 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봄이는 나지막이 닫힌 철제 문 앞으로 다가가 살며시 문고리를 잡고 돌려 보았다. 문고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봄이가 자신을 따라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훈에게 눈길을 보내자 그 의미를 알아챈 상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


봄이는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당겨 문을 열었다. 실내로부터 새어나오는 공기는 바깥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만 퀴퀴하고 비릿한 철근 냄새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오른쪽 벽에는 작게 갈라진 틈새가 있었고, 바로 트이게 보이는 정면에는 왼편으로 향하는 통로와 지하로 이어진 듯한 계단이 있었다. 봄이가 처음 안쪽으로 디딘 발 밑 구석에는 먼지가 가득 쌓인 나무 판자와 각목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고, 머리 위 천장에는 거미줄이 잔뜩 엉켜 있었다.


도무지 사람이 살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장소였다. 봄이가 앞으로 손을 뻗을 때마다 끈적끈적한 것이 손가락 끝에 걸렸다. 기분 나쁜 감촉이었다. 바깥에서 보이던 신문지들은 안쪽 창가에도 붙어 있었다. 그 신문지들이 바깥에서부터 비추는 햇빛들을 모조리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내에는 빛이 한 줄기도 들지 않았다.


빛이 필요했다. 안으로 한 발자국 더 내딛은 봄이는 조용히 가방에서 손전등을 꺼낸 다음 치마폭에서 권총을 뽑아들었다. 상훈도 손전등을 꺼내 벽면에 이리저리 비추며 잠자코 봄이의 뒤를 따라갔다.


실내에는 두 사람의 발소리만 들렸다. 봄이의 손전등 빛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만 같은 정적 사이를 갈랐다. 검붉고 두꺼운 시멘트로 떡칠된 벽은 손전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마저 거의 다 빨아들였다. 문을 닫지 않아서 스며드는 바람을 타고 실내에 쌓인 먼지가 흩날렸다. 전혀 환기가 되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봄이는 바깥 뿐만 아니라 실내에도 끊임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신문지 뭉치들을 보고 이렇게까지 해서 창문을 막아놓을 필요가 있었나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곰곰이 생각하던 봄이는 창문을 막아놓았던 이유가 과연 추위 때문이었을까 하고 다시 되짚어보았다. 그렇다면 이곳에 살던 사람은 무엇 때문에 창문을 막아 놓았을까? 그렇게 의문을 품은 봄이의 뇌리에 누군가의 짧은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이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봄이는 순간적으로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보고 싶다는 충동이 솟구쳤다. 하지만 상훈은 지하보다는 왼쪽 통로에 관심이 더 가는 모양이었다. 그걸 본 봄이는 상훈의 눈을 피해 몰래 계단을 내려갔다가 슬쩍 돌아오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호기심은 곧 뒤에서 자신의 등을 찌르는 목소리에 의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음침한 곳까지 내려갈 필요 없어. 거기엔 아무것도 없을 거야.”


봄이는 잠깐 주춤하기는 했지만 생각을 고쳐먹지는 않았다. 사실 봄이는 쓸데없이 고생하는 걸 죽을 만큼 싫어했지만, 그 때 봄이는 무엇인가에 이끌렸다. 끝이 희미한 계단은 마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길을 떡 벌린 입구 같았다. 그리고 봄이 자신도 모르는 무엇인가가 그녀의 팔을 미지의 입구로 잡아끌고 있었다.


“그럼 여기 잠깐 계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봄이는 그렇게 말하기는 했지만 상훈이 자신을 따라와 주기를 마음속으로 내심 바랬다. 지하로 향하는 녹슨 철제 계단을 한 발짝 내려가자 삐걱거리는 쇳소리가 실내 가득 울려퍼졌다. 계단을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손전등 빛은 점점 약해졌다. 봄이는 배터리가 다 되었나 하고 손전등을 몇 번 두드려 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봄이의 숨통마저 짓누를 정도의 무거운 습기가 지하실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여러가지 냄새가 섞인 공기의 흐름이 한데 뒤섞여 거대한 막(膜)을 이루고 있었다. 봄이의 손전등 빛은 이 견고한 막을 뚫지는 못했다.


지하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난데없이 소름끼칠 정도로 수많은 동물들의 발소리가 일제히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화들짝 놀란 봄이는 재빨리 소리가 나는 쪽으로 손전등을 비췄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소리는 특이하고 불규칙적이었다. 종종걸음 치는 소리가 들렸다가 곧 조용해졌다. 봄이는 그 소리를 듣고 이 동물들의 다리가 몇 개일지 생각해보았다. 네 개 같기도 했고, 두 개 같기도 했다. 한 개일지도 몰랐다.


동물들의 발소리는 한 곳에 모였다가 두 곳으로 갈라져 흩어졌다. 그것을 본 봄이는 직감적으로 지하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두 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쪽 통로는 언뜻 보기에도 텅 비어 있었고, 한 쪽 통로는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텅 빈 통로는 넓었지만, 벽면에 주먹만한 환풍구가 있어서 햇빛이 쥐꼬리만큼 스며들고 있었다는 것을 빼면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없었다. 봄이는 통로에서 손전등을 치우고 닫힌 철문의 문고리로 들고 있던 빛을 비추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고리를 당겨 보았다.


문이 열렸다.


문을 열자마자 정신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코를 찌르는 독한 냄새가 풍겨왔다. 너무나도 심한 독취에 봄이는 자신도 모르게 소매로 코와 입을 틀어막았다. 독한 화학 약품에서나 날 법한 냄새였다. 아니, 휘발유 냄새던가? 서둘러서 지하실 안쪽을 비춰보던 봄이는 바로 정면에 보이는 벽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아직 마르지 않은 시멘트 벽 위에 무엇인가가 있었다. 봄이는 그것을 자세히 보기 위해 지하실 방 안으로 더 깊이 들어섰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유리조각이 밟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벽면에는 무엇인가가 빨간 스프레이로 대충 휘갈겨 쓰여있었다. 그림 같기도 했고, 글씨 같기도 했다. 낙서되어 있는 벽 바로 아래에는 빈 스프레이 통들이 쌓인 채로 굴러다녔다. 아마도 봄이는 들어올 때 풍겼던 약품 냄새가 이 스프레이 냄새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봄이가 그쯤 보고 돌아서려고 하는데, 그 순간 봄이의 뒤통수에 묵직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녀의 몸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버렸다.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감각만으로 유추해 본다면 조그마한 쇳덩이 같은 것이었다. 그 쇳덩이는 봄이의 뒤통수에 닿은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봄이도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뒤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만약 그 상황에서 뒤를 돌아봤다간 모든 것이 끝나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봄이는 이미 그 공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 자신이 직접 그 공포를 느꼈었던 적은 없었다.


“가만히. 흥분하지 말고.”


뒤에서 나지막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하게 들렸다. 지금 봄이가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다.


“미리 말해주지. 네가 잠자코만 있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등 뒤의 남자가 총구로 봄이의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렸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지막 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6 113화 21.02.13 31 0 9쪽
115 112화 21.02.05 30 0 15쪽
114 111화 21.01.25 33 0 12쪽
113 110화 21.01.20 53 0 12쪽
112 109화 21.01.15 29 0 11쪽
111 11. 끝나지 않는 밤 21.01.11 48 0 13쪽
110 107화 21.01.08 34 0 12쪽
109 106화 21.01.06 124 1 11쪽
108 105화 21.01.05 32 1 12쪽
107 104화 21.01.03 65 1 13쪽
106 103화 20.12.21 46 0 9쪽
105 102화 20.12.20 27 0 16쪽
104 101화 20.12.16 63 1 12쪽
103 100화 20.12.11 29 0 13쪽
102 99화 20.12.08 38 0 12쪽
101 10. 종착점 20.12.07 37 0 11쪽
100 97화 20.12.02 58 0 13쪽
99 96화 20.11.29 67 0 11쪽
98 95화 20.11.28 30 0 14쪽
97 95화 20.11.23 41 0 13쪽
96 94화 20.11.20 40 1 9쪽
95 94화 20.11.19 62 1 9쪽
94 93화 20.11.17 70 0 13쪽
93 92화 19.11.27 57 0 9쪽
92 91화 19.11.24 57 0 17쪽
91 90화 19.11.23 50 0 26쪽
90 89화 19.11.19 55 0 18쪽
89 88화 19.11.17 52 0 17쪽
88 87화 19.11.16 87 0 19쪽
87 86화 19.11.15 57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