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엑시타투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0,110
추천수 :
54
글자수 :
233,206

작성
17.06.09 20:42
조회
394
추천
3
글자
13쪽

2화.

DUMMY

묻혀진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껴주고 사랑해줬고 늘 그 자신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서슴지 않았던, 그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사람이 그리움을 못 견뎌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한평생 한 사람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끝내 이루지 못한 채 저물었다.

결과는 참혹하다. 아니 어쩌면 그건 남겨진 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녀 자신에게는 그리워하는 이를 만나러 가게 되는 날이니 기뻐할지도 모를 일이다.


파여진 구덩이에 흙을 채워 넣을 때마다 들려오는 부딪힘의 소리는 그의 억장을 무너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삽질 한 번에 하나의 기억이, 하나의 슬픔과 기쁨. 잊혀져가는 좋은 기억과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나쁜 기억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장례식에는 마을 어른 대부분이 참석했다. 그녀의 성격은 자신의 아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증거이며 발레르에게는 그나마 작은 위안거리가 되어주었다.


사실 발레르와 어른들과의 관계는 또래들과는 정반대로 아주 좋다고 할 수 있다. 어머니의 인품 좋으신 성격은 피를 물려받은 그에게도 완전히 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묻어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마을에서 늘 인기가 좋았다. 원래부터 살던 토박이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고 마음의 경계를 풀게 만드는 무언가가 존재해 그 둘은 이 마을에 비교적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그 자신은 어머니와 다르게 표현을 잘 하지 않은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모난 일을 저지르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어른들께 깍듯이 대했고, 그것이 어른들이 그를 좋아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아마 그는 들을 때마다 인정하지 않지만, 남성적이면서 미려한 외모 또한 그 몫에 빠지지는 않았을 터다.


“···.”


시먼은 그의 옆으로 와 조용히 어깨에 손을 얹어 주었다. 발레르가 잠시 쳐다보았지만, 그는 그저 덮여지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도 결국은 아무 말도 없이 이 경건한 상황을 깨트리지 않고 지켜보았다. 발레르 그 자신에게 존경의 대상이었으며, 하나뿐인 가족인 어머니가 자연으로 돌아가시는 모습을 그는 한순간도 잊지 않기 위해 모든 걸 눈에 담아두었다.


********************************


“이번 주는 다들 알다시피 졸업 주니까 괜히 일 만들지 말고, 지금까지 해 왔던 거 물거품 되지 않게 실수하지 말고. 잘 알아서들 할 거라 믿는다.”


새로운 주가 시작되고 담당 교수의 첫마디였다. 실수하지 말라는 건 이번 주 내내 있을 차출 식을 두고 말하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학생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어딜 가나 그렇듯 졸업을 하는 그 일주일은 모두가 바쁘다. 지금껏 배워왔던 것들을 백이십 프로 보여줘도 될까 말까 한 상황들 속에서 학생들은 모두 예민해 있었다.


“더글라스 가문에서도 여기 찾아올까?”


“야, 이런 촌구석에서 바랄 걸 바라야지.”


이 나라에서 산다면 누구나 아는 더글라스 가문은 문과나 무과 둘 다 타 가문에 비해 월등해 ‘가문 선거’라는 3년마다 열리는 일종의 선거에서 5회 연속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타공인 가문 중 가장 뛰어난 가문이다.


졸업을 앞둔 이 나라 모든 학생들은 아마 그곳에 가기를 가장 원할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은 학생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쉬울 것이다. 졸업식이 오기 전 작고 큰 모든 가문들은 각 마을에 있는 학교를 찾아와 재능 있는 학생을 찾아 서로 데려가려 애를 쓴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그 아이들을 가장 먼저 선점할 수 있는 곳은 더글라스 가문이다. 게다가 이 시스템을 만든 것 또한 그 가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말 다 한 셈이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유망한 인원을 데려올 수 있다는 점에서 가문에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기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이 일에 적극적이었다. 지금 발레르의 옆을 지나며 나누는 이야기는 당연히 이 일을 두고 하는 말인 것이다.


“...”


발레르로서는 가장 화두가 되는 이 일에 대해 약간 거리를 두고 있었었다.

애초에 이 마을은 정말이지 시골 중의 시골이라 학교라고 말하기에 무색했고, 교육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않으며 과목 또한 무예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 나라 코린트에서 망하기 직전인 곳을 제외한 가문에서 차출된다는 이야기는 집안과 마을의 자랑거리가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얘기는 그들의 눈에 띄기에 여간 특출난 게 아니면 안 되는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제 다 무슨 소용일까. 그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그는 어머니의 방에서 편지봉투 하나를 발견했었다. 받는 사람의 이름은 발레르 그 자신이었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 열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직 그 봉투를 열기에는 아직 감정이 절제가 되지 않았기에 그는 방 안 한 곳에다 잘 놓아두었다. 하지만 곧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압박했다.


툭, 하고 그의 어깨를 누군가 치며 지나갔다. 누군지 보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지나가는 모습을 쳐다본 그는 역시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라이벌인 리비오란 애의 옆에서 아첨하기 바쁜 떨거지 중 하나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은 리비오의 주변을 같이 걸으며 자신이 뭐라도 된 양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그들에게 발레르라는 존재는 공공연히 리비오에게 견준다는 소문에 대한 불안함의 요소며 눈엣가시였다. 그 중 한 명이 발레르에게 들으라는 것 마냥 주변이 들리게 소리를 높였다.


“더글라스 가문이 여기로 온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 리비오를 보러 온 게 아니면 이 시골까지 올 이유가 있을까. 안 그래?”


주변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방금 한 말에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쳐 주었다. 그는 리비오의 눈치를 살살 살피며 침이 마르도록 그를 추앙했다. 리비오는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오만한 저 성격을 보니 아마 당연한 이야기를 하지 않느냐는 뜻일 거라고 그는 자명했다.


순간 리비오는 고개를 조금 돌렸고 발레르와 눈이 마주쳤다. 그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발레르는 분명 자신을 봤고 그 웃음 역시 자신에게 향했다고 느꼈다.


언제까지고 참는 것도 이번 주면 끝이 난다는 생각에 발레르는 조금 속이 후련해졌다. 안 그래도 그간 그 멸시와 주변 아이들까지 물들이는 것도 모자라 살살 긁어대는 것에 슬슬 부아가 치밀어 버티기 힘들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게다가 어머니 일까지 겹치니 지금 그의 상태로는 조금만 더 부추기면 폭발해 버릴 지경이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는 애들은 아니니 졸업 주에서까지 자신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그는 예상하며 애써 속을 달랬다.


졸업이 있는 그 주는 수업이 없고 그저 가문들이 오는 날까지 컨디션 조절과 몸 관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들이 오는 전날이나 이틀 전쯤에는 각 서로에게 대등하게끔 조정해 대진표를 만들어준다.


시간은 적고 사람은 많기에 대련 시간은 고작 삼 분이 전부였다. 그나마 삼 분을 모두 썼다면 좋은 징조였다. 대부분은 그 짧은 시간이 채 가기 전에 가문에서 나온 사람들 과반수에 의해서 중단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과 동시에 두 대련 자는 서로 이기기 위해 악착같이 무기를 휘두른다.


그 과잉되는 분위기에 상처가 나는 것은 당연했고, 화를 주체 못 할 때는 정말 가끔이지만 그곳에서 유명을 달리할 때도 있었다. 그만큼 무예를 익힌 사람 중 성인이 되기 전인 자신과 같은 또래들에게는 정말이지 중요했고 또 그만큼 진지했다. 그는 정말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음을 절실히 느꼈다.


**************************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마.”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기기 시작하자 시먼은 기다렸다는 듯 화장실로 향했다. 여름의 해는 길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결국 저물고 달이 뜨게 되어있다. 어느새 시끌벅적했던 주변은 어둠이 옴과 함께 조용해져 있었다. 발레르는 슬슬 마감 준비할 겸 빗자루를 꺼내려 창고로 가려 했다.


“이거 하나만 줘라.”


그의 등 뒤로 낮지만 약간의 조롱이 섞인 말이 들려왔다.


“···.”


리비오··· 속으로 그의 이름을 부른 발레르는 가만히 눈을 마주 봤다. 그의 주변에는 늘 같이 있는 두 명이 여전히 옆에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오늘 발레르의 어깨를 친 아이였다. 대꾸를 하지 않는 발레르의 모습에 그 어깨를 쳤던 아이가 짜증을 냈다.


“귀먹었어? 이거 달라고 하잖아.”


발레르는 눈길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리비오를 응시했다. 짙은 눈썹과 눈.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있었고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워 보이는 인상이다. 날렵하게 뻗은 코와 작은 입술. 한쪽으로 깔끔하게 쓸어 넘긴 머리는 그가 잘생겼음을 보여줬지만, 입꼬리에 묻어있는 예의 그 비열함은 쉽사리 친근감을 느끼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발레르는 갑자기 두통이 오는 것만 같았다.


“용건이 뭐냐.”


재미있다는 듯 리비오는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그냥 과일 사러 온 거라고. 나도 엄연히 손님이야.”


기가 찬다는 듯 발레르는 헛웃음을 쳤다.


“그래, 뭘 줄까?”


리비오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오른발로 앞에 있는 과일 상자를 툭툭 쳤다.


“이거 다 얼마냐?”


“6페니.”


“그래?”


리비오는 비열하게 웃으며 상자를 걷어차 부숴버렸다.


“아, 실수.”


“...”


그리고는 발레르 앞에 돈을 던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발치에 나뒹구는 사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상자값까지 7페니다. 이거 참··· 너희 아주머니께 드리려고 했는데 못 쓰게 됐네.”


발레르는 화를 참아내느라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입··· 다물고 그냥 가라.”


주먹을 쥔 채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리비오는 툭, 슬며시 사과를 떨어트렸고 그대로 발로 짓밟아버렸다. 주변에서 킥킥거리는 조롱거림이 들려왔다.


“네가 나 대신 잘 골라서 전해드려라. 응? 과일 좀 팔아봤으니 알 거 아냐?”


도를 넘어 선 발언이었다. 발레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대로 빗자루를 던지려는 찰나 건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냐.”


성큼성큼 다가오며 시먼은 긴박한 상황을 중재했다. 그는 부서진 상자와 바닥에 나뒹구는 사과를 쳐다보았다.


“죄송해요, 아저씨. 저희끼리 장난치다가 그만 일을 만들었네요.”


리비오 옆에 있던 아이 한 명이 재빨리 시먼에게 고개 숙이며 사과를 건넸다. 한 아이가 숙이자 나머지 애들도 마지못해 대충 사과를 건넸다. 시먼은 그대로 사과를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됐다. 그만 가봐라.”


그 말을 기다렸는지 리비오 일당은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벗어났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서로 웃으며 한밤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었다. 달갑지 않은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시먼은 발레르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냐?”


시먼은 장사 막바지에 접어들자 숨 좀 돌릴 겸 계산대 의자에 털썩 앉았다.


“네? 뭘요?”


발레르는 떨어진 사과를 주우며 짐짓 모른 척했다.


“뭐긴 뭐냐. 역시 너도 떠나겠지?”


그는 못 들은 척 더렵혀진 바닥을 빗자루로 쓰는데 집중하는 척했다. 시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대답이 되었다는 듯 먼 곳에 시선을 두었다.


“잘 됐다.”


그 말에 발레르는 멈칫하며 당황이 역력한 표정을 지은 채 몸을 돌려 시먼을 바라보았다.

그는 조금이지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네가 어머니 때문에 좋은 기회를 걷어찰까 봐 내심 걱정됐다. 널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야. 그래도 사실은 사실이야. 넌 여기에서 썩기엔 아까워. 너도 알잖아?”


발레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긴 인마··· 이 마을에서 네가 검 좀 휘두르는 놈 중 하난데 그쪽으로 까막눈인 내가 봐도 아는데 그 귀한 양반들은 얼마나 더 잘 알겠냐? 모르긴 몰라도 내가 볼 때는 말이야 그 까탈스러운 놈보단 네가 더 한 수 위라고 본다, 나는.”


툭, 하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머니 장례식 때도 참고 참았던 눈물이었다. 그렇게 마음에 벽을 치고 회피하고 기대하지 않으며 버텨냈던 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의 말 앞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해지게 무너져 내렸다.


참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 거칠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 방울은 줄기가 되어 버리고 줄기는 결코 마르지 않을 것처럼 흘러내렸다. 이제 그는 어깨조차 볼품없이 흔들릴 정도로 감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저 시먼은 조용히 다가와 그를 감싸 안아줄 뿐이었다. 말없이 토닥여주는 그의 모습에서 발레르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품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엑시타투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과 요일. 17.06.08 149 0 -
36 에필로그. +2 17.06.24 268 1 6쪽
35 마지막화. 17.06.24 223 1 17쪽
34 34화. 17.06.24 232 0 15쪽
33 33화. 17.06.23 168 0 15쪽
32 32화. 17.06.22 298 0 15쪽
31 31화. 17.06.21 180 0 13쪽
30 30화. 17.06.20 194 0 13쪽
29 29화. 17.06.20 226 0 17쪽
28 28화. 17.06.19 193 0 13쪽
27 27화. 17.06.19 178 0 15쪽
26 26화. 17.06.19 177 1 12쪽
25 25화. 17.06.18 216 1 15쪽
24 24화. 17.06.18 180 1 17쪽
23 23화. 17.06.18 196 1 19쪽
22 22화. 17.06.17 222 2 14쪽
21 21화. 17.06.17 233 0 12쪽
20 20화. 17.06.16 250 2 13쪽
19 19화. 17.06.16 263 1 14쪽
18 18화. 17.06.15 252 1 15쪽
17 17화. 17.06.15 235 1 13쪽
16 16화. 17.06.15 230 1 14쪽
15 15화. 17.06.14 213 2 14쪽
14 14화. 17.06.14 248 2 14쪽
13 13화. 17.06.14 245 2 14쪽
12 12화. 17.06.13 278 2 13쪽
11 11화. 17.06.13 308 3 15쪽
10 10화. 17.06.13 386 2 16쪽
9 9화. 17.06.12 334 2 18쪽
8 8화. 17.06.12 334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