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엑시타투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0,091
추천수 :
54
글자수 :
233,206

작성
17.06.13 22:24
조회
277
추천
2
글자
13쪽

12화.

DUMMY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 막대기로 모닥불을 쑤시고 있던 티보는 공기가 차가워지자 아이들에게 겉옷 하나씩 덮어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더니 졸음이 쏟아졌지만, 그는 억지로 참았다.


밤의 일이 일단락 된 후 발레르는 남은 힘이 없는지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 둘도 이제 곧 어엿한 성인이 될 것이다. 삶의 목적을 정하고 방향을 정하는 그 기간을 앗아가 버린 기분이 그는 들었다.


아나테마로 보낸 다음엔 무엇을 하라고 해야 할까. 거기서 그냥 정착해서 살라고? 모두 다 잊고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괜찮다는 말과 함께? 말도 안 되는 말이지. 그럼 아버지의 복수라도, 다시 한 번 질서를 바로잡으라고? 무책임한 일이지.


고개를 내저으며 그는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어떤 방향을 제시해 줘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고민하고 있을 때, 몸의 뒤척이던 애런이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깼어?”


“잠이 안 와.”


“그래도 억지로 더 자. 날 밝으면 바로 출발할 거야.”


왠지 티보는 애런이 어색했다. 정작 중요한 건 아들에게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임을 그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어서 티보는 괜히 입술만 움찔거렸다.


“많이 밉지...?”


“응.”


예상했던 대답이었지만 직접 그의 입에서 들으니 예방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무너지는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와중에 애런은 말을 이어갔다.


“나오자마자 말 타고 보름 동안 달려야 한다니 너무 하잖아. 난 여유롭게 이곳 저곳 구경 좀 하고 싶었는데, 이러다 말이랑 사랑에 빠지겠어.”


“그게 아니라···.”


“고민 중이야.”


애런은 그의 말을 자르며 말했다. 표정은 여전히 밝았지만 옅었다.


“나도 정말 억울한데, 거기로 가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 없이 데려다 줘. 그러면 뭐, 용서해 줄 수도 있으니까.”


애런은 알고 있었다. 그도 발레르처럼 화를 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장난을 치며 배려해 주는 그 마음에 티보는 고마우면서도 더욱 미안했다. 그는 콧등이 시큰해지고 목이 메어 왔다. 어둠 쪽으로 고개를 조금 돌리며 티보는 고개만 끄덕였다.


“거기도 그냥 사람 사는 곳이지?”


대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내 또래 아이들도 많다는 거고?”


“...그렇지”


“오, 그러면 예쁜 친구들도 많겠지?”


“···그만 자라.”


************************************


이틀 동안 그들은 잠을 아끼고 쉬는 것을 아끼며 최대한 달렸다. 체력이 남을 때면 발레르는 틈틈이 말을 타는 것을 익혀두어 이제는 능숙하게는 아니지만, 꽤 능숙하게 탈 줄 알게 되었다.


이틀간 발레르는 어느 정도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자신의 등에 걸려있는 엑시투타스는 직접 그 상황을 봤음에도 온전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믿기는 하지만 약간 동떨어진 기분이 늘 함께했다. 그는 아마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때문에 더 그렇게 만드는 거라고 판단했다. 아나테마는 그보다 더했다. 티보가 거짓말을 했을 리 없으니 믿음을 가지면서 동시에 불신했다. 아마도 직접 두 눈으로 볼 때까지 이 마음이 변치 않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티보의 뒤에서 화를 냈던 그 당시를 자주 생각했고 부끄러운 마음과 티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했던 말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표현이 과격했을 뿐 그는 자신이 잘 못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을에 도착할 동안 굳이 티보에게 사과를 하지는 않았다.


티보와 발레르는 대체로 말이 없는 편이었다. 둘 다 말할 상대가 원래 한 명 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공통점이었다. 물론 애런도 그 부분은 같았지만, 그는 그들과 별개로 말이 많았다. 둘이 할 말을 그가 다 가져갔다고 할 만큼 그의 입은 쉬이 멈추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발레르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물어보기도 했다.


“원래 우리 또래 애들은 너처럼 말이 많은 거야?”


애런은 당연한 이야기를 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모르지. 산속에서만 살았잖아.”


해답을 찾지 못했고 그다음 물어볼 말이 있었지만, 그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낮과 저녁 사이쯤이 되어서야 하나의 점이었던 것이 서서히 모습을 들춰내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마을의 모습이 점점 가까워짐과 동시에 애런의 눈 또한 같이 커졌다. 발레르도 그 크기에 적잖아 놀랐다. 몬토야도 분명 작은 마을은 아니었는데 이곳은 그곳보다 배는 더 크고 아름답고 멋스러웠다. 사람들의 옷차림부터가 귀티가 흐르는 게 어딘가 조금 움츠러들게 만들면서도 계속 쳐다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눈을 반짝이는 그들의 모습에 티보는 웃음이 나왔다.


일단 한시름 놨다는 생각에 티보는 긴장이 풀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확실히 왕궁 근처는 다르지?”


휘황찬란함에 애런은 넋을 잃은 채 감탄사를 내뱉었다.


“진짜 장난 아닌데? 야 발레르, 너 이런데 와 봤냐?”


“아니... 나도 처음이야”


입구에 들어서자 발레르는 몬토야의 대로 한가운데에 다시 왔다고 착각할 정도로 사람들은 들끓었다. 거리에 앉은 행상인들과 흥정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 지치지도 않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그 북적임 틈새에서 그들에게 조심하라고 소리치는 아주머니들과 한가롭게 그늘 밑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말을 타지 않았다면 아마 그곳을 빠져나오려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간신히 빠져나오며 티보는 가장 먼저 여관을 찾았다. 건물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다른 마을로 가는 입구와 가까운 곳으로 잡은 그들은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했다.


조개류와 채소로 만든 농도가 진한 차우더 수프와 잘 훈연된 돼지고기와 치즈 소스, 으깬 감자가 그들 앞에 펼쳐졌고, 고급스럽게 플레이팅 된 음식들과 그에 걸맞은 맛에 애런은 감격하다 못해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누가 만든 거죠? 저, 주인 아줌··· 아, 알았어, 발레르. 내 평생 이런 음식을 먹어 볼 줄이야. 아빠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건 다 잡동사니였다고.”


묵묵히 듣던 티보는 마지막 말에 발끈했다.


“뭐? 잡동사니? 잘 먹어 놓고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당치도 않다는 듯 애런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거야 먹을 게 그거밖에 없으니까 그렇지. 발레르, 네가 말해봐 봐. 여기가 훨씬 낫지?”


애런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발레르를 바라보았고, 갑자기 불똥이 튄 그는 티보를 한 번 바라보고는 우물쭈물거렸다.


“아니, 뭐. 여기가 맛있기야... 더 맛있지. 아니, 아저씨! 아저씨 음식이 맛 없다는 게 아니고요···.”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티보는 수프에 수저를 푹 담갔다.


“발레르, 그새 친해졌다고 나를 버리는구나.”


그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티보는 애런을 보며 쏘아붙였다.


“다 상대적인 거야 이놈아. 평생 요리하던 사람보다 어떻게 더 맛있을 수가 있어? 게다가 우리 집엔 다른 재료가 없었잖아. 그 정도면 훌륭한 거지.”


어찌 말해야 하는 발레르와 애써 변명하는 자신의 모습에 즐거워하는 애런을 보며 티보는 그에게 완전히 놀아났다는 생각에 분을 삭이며 헛기침을 했다.


“어쨌든, 너네는 들어가서 잠이라도 좀 자둬라. 나는 잠시 나갔다 올 테니까.”


자리에 일어나 나가는 그를 바라보며 애런은 끝까지 이죽거렸다.


“올 때 여기 요리하시는 분한테 부탁해서 비법 좀 알아내고 와.”


방에 들어가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둘은 씻기도 전에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함에 금방이라도 잠에 빠질 것 같았지만 근 삼 일간 몸에 물을 묻히지 못했기에 그는 억지로 뭉친 몸을 일으켰다. 애런은 여전히 침대에 엎드린 채 이상한 신음을 뱉고 있었다.


“씻기 싫다.”


“...”


그 놀라운 말에 발레르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애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발레르, 우리 씻지 말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나도? 왜?”


“음, 너만 씻으면 내가 너무 더러워 보이잖아.”


발레르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건 실제로 더러운···.”


“그러지 말고, 응?”


깊은 고민에 빠진 듯 그는 고개를 조금 숙인 채 한참을 망설였다. 바라보던 애런이 다시 말을 붙이려 할 때 그는 무언가 큰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알았어, 안 할게.”


분위기와 전혀 다르게 진지한 표정을 본 애런은 다시 웃음이 터졌다.


“뭐야, 그게. 그렇게 진지하게 나오면 장난친 내가 미안하잖아. 씻으러 가게 나 좀 일으켜줘.”


한 숨을 푹 내쉰 그는 애런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켜 줬다. 문으로 나가면서 애런은 궁금함을 표했다.


“가끔 너는 나랑 말할 때 어색하단 말이야. 그게 뭐 난 재밌긴 한데, 어떨 때는 너도 나처럼 산속에서만 살았던 걸로 느껴져.”


앞서서 걸어가는 발레르는 억지로 웃으며 그가 자신의 표정을 못 보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옅은 보라색이었던 하늘이 어느새 점점 짙어지자 티보는 발걸음을 빠르게 놀렸다. 불쑥 튀어나온 안주머니를 그는 한 번 툭툭 건드렸다. 짤랑거리는 소리가 그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면서 슬퍼지게 만들었다. 요즘 시세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래도 제값에 가깝게 받은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집 안에 모든 장신구란 장신구는 다 털어왔기에 돈 걱정은 이제 크게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다음으로 그가 찾은 곳은 칼집 장인이 있는 곳이었다. 그 건물 옆에는 칼 제작공의 가게와 대장장이의 가게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크기가 꽤 큰 걸 보아하니 길에서 알려준 사람이 제대로 알려준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과연 크기에 걸맞게 수많은 다양한 칼집들이 줄줄이 진열되어 있었다. 발레르의 것보다 더 장식이 잘 되어있는 것부터 싼 돈으로 살 수 있는 품질이 떨어지는 것까지 다양했다. 티보는 고민 할것도 없이 가장 저렴한 곳에서 가장 평범해 보이는 진열대 앞으로 걸어갔다.


머릿속으로 발레르의 검을 기억해뒀던 그는 그 검과 가장 비슷한 칼집을 하나 골라내 구매했다. 어디까지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한 그는 괜히 튀어봤자 좋을 거 없다고 생각했다.


값을 치르고 나온 그는 쉬지 않고 꾸준히 걸어 다녔다. 으레 그렇듯 고급 정보는 후미진 선술집에서 나오기 마련이었다. 옛 생각을 끄집어낸 그는 어느 후미진 골목길로 들어갔다. 낯선 길이었기에 유심히 살펴보며 걷던 그는 문득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을 느꼈다.


긴장을 끌어올리며 그는 태연하게 걸으며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활을 꺼내며 화살을 먹였다. 앞의 모퉁이까지 걸음 속도를 유지하던 그는 꺾음과 동시에 반대로 돌며 뒷걸음질쳤다. 모든 신경을 모퉁이에 집중하며 어둠 속으로 자신을 숨긴 채 제자리걸음을 하던 그는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자 팽팽히 당겼던 시위를 놓았다.


팍, 하고 벽에 화살이 사내의 귀 옆을 스쳐 벽에 깊게 박혔다. 그리고 동시에 따라오던 사람은 움찔하며 멈췄다. 티보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티보의 모습을 정체 모를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그건 티보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짙게 깔려 티보는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천천히 화살 통에서 화살을 꺼내며 티보가 말했다.


“덱스터?”


“...”


대답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그는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아니면 그의 사주를 받은 사람이거나. 어쨌든 더는 따라오지 마시오. 방금 건 일부러 맞추지 않았다는 건 본인도 잘 알 테지.”


대답이 없는 정체 모를 남자에게 여전히 겨냥한 채 그는 뒷걸음질쳤다.


“뒤돌아 두 손 들어 벽에 짚으시오.”


천천히 양팔을 든 그 사람은 티보의 말대로 뒤돌아 벽에 손을 짚었다. 슬쩍 뒤를 훑어 본 티보는 그대로 걸어가다 다른 모퉁이가 나오자 그곳으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 글 설정에 의해 댓글을 쓸 수 없습니다.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엑시타투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시간과 요일. 17.06.08 148 0 -
36 에필로그. +2 17.06.24 268 1 6쪽
35 마지막화. 17.06.24 222 1 17쪽
34 34화. 17.06.24 231 0 15쪽
33 33화. 17.06.23 168 0 15쪽
32 32화. 17.06.22 298 0 15쪽
31 31화. 17.06.21 180 0 13쪽
30 30화. 17.06.20 194 0 13쪽
29 29화. 17.06.20 226 0 17쪽
28 28화. 17.06.19 192 0 13쪽
27 27화. 17.06.19 178 0 15쪽
26 26화. 17.06.19 176 1 12쪽
25 25화. 17.06.18 215 1 15쪽
24 24화. 17.06.18 179 1 17쪽
23 23화. 17.06.18 195 1 19쪽
22 22화. 17.06.17 222 2 14쪽
21 21화. 17.06.17 233 0 12쪽
20 20화. 17.06.16 249 2 13쪽
19 19화. 17.06.16 262 1 14쪽
18 18화. 17.06.15 252 1 15쪽
17 17화. 17.06.15 235 1 13쪽
16 16화. 17.06.15 230 1 14쪽
15 15화. 17.06.14 212 2 14쪽
14 14화. 17.06.14 247 2 14쪽
13 13화. 17.06.14 245 2 14쪽
» 12화. 17.06.13 278 2 13쪽
11 11화. 17.06.13 308 3 15쪽
10 10화. 17.06.13 386 2 16쪽
9 9화. 17.06.12 333 2 18쪽
8 8화. 17.06.12 332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