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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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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조회수 :
10,093
추천수 :
54
글자수 :
233,206

작성
17.06.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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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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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26화.

DUMMY

"..."


갑자기 떠오른 에즈라는 눈동자를 아주 조금 움직여 애런의 눈이 아닌 인중에 고정했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자 그는 자리에 앉아버렸다.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네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어."


움찔거리던 에즈라의 입술에서는 순간 생각해낸 말이 국어책 읽듯 흘러나왔다. 애런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죠. 아저씨는 깜빡한 거잖아요."


"절대 아니야. 이건 다 애런 네가 늦게 일어나서 그래."


완강하게 잡아떼는 모습에 애런은 이를 갈며 분을 삭였다. 그는 어쨌든 집주인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인 걸 알았기에 더 추궁하지 않기로 했다.


수군거리는 아이들 틈에서 더미드 혼자 이를 갈고 있었다. 그의 바로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그의 눈치를 보던 중 한 아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타라가 저러는 거 처음 봐."


"신기해서 그렇겠지. 밖에서 온 놈을 처음 보니까."


더미드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과 아이들을 진정시켰다. 그의 바로 옆에 붙어있던 아이는 기분 나쁘다는 표정과 함께 땅에 침을 뱉었다.


"그래도 저건 아니지. 안 그래, 더미드?"


"미꾸라지 하나가 물을 흐리는 법이지."


그의 말에 아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동조했다.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아이들도 하나둘 분위기가 바뀌며 그들을 아니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몇몇 남은 아이들만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불안한 중립을 지킬 뿐이었다.


적당히 쉬었다고 생각이 든 에즈라는 먼저 일어나 발레르에게 손을 건네 세워주고는 큰소리로 다시 시작하라는 말과 함께 자세를 잡았다. 부러진 목검을 내려다보던 발레르의 옆에서 애런이 자신의 것을 내밀었다.


"너는 어떡하고?"


"재미없어서 그냥 구경이나 하련다."


타라는 아예 근처 나무 그늘 밑에 앉아 그들의 대련을 구경할 준비를 마쳤다. 웃어 보이며 손을 흔드는 그녀에게 살짝 손을 들어 답례를 한 발레르는 애런의 검을 받아들고 부러진 목검을 건네주었다.


"이번엔 내가 공격해 볼 테니 막아 보거라."


날아가 말라버린 땀 자국에 다시 땀이 맺히는 이마를 대충 닦으며 발레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의 통증은 약하게 남아 있었지만, 문제 될 것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자세를 고쳐잡고 기다리는 발레르를 향해 에즈라는 천천히 거리를 좁혀 나갔다.


사정거리가 되자 에즈라는 처음에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끝까지 검을 쳐다보며 군더더기 없이 방어해내는 발레르에게 그는 천천히 강도를 높여 나갔다.


정직하게 나가던 검은 점점 속도를 붙였고, 힘을 가중시켰다. 공격했을 때보다 발레르는 훨씬 안정적으로 방어해냈다. 에즈라는 약간 욕심을 내며 변칙적인 검술도 구사하며 한층 더 날카롭게 목검을 휘둘렀다.


둘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고, 검이 부딪히는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지금 이곳에 단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그들은 마치 짜인 대로 행동하듯 절도 있는 모습을 보였다.


에즈라의 강도는 점점 높아졌다 어느 수준에 이르러서는 일정해졌다. 그는 자신의 것을 조금 남겨두었지만, 버겁기는 하지만 막아내는 발레르를 감탄했다. 그리고 그건 타라의 입에서도 터져 나왔고, 몇 아이들의 입에서도 작게 새어나왔다. 애런은 팔짱을 낀 채 완전한 관객이 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꽤 하네."


애런은 말과 다르게 발레르를 바라보는 시선에 친구에 대한 자랑이 담겨 있었다. 타라는 손을 모으고 자신마저 긴장한 채 그들이 하는 양을 바라봤다.


무시하고 자신의 대련에 집중하던 더미드는 이따금 들려오는 탄성 소리에 짜증이 솟구쳤다. 그러면서 그는 상대편에게 자신의 심정을 담아 휘둘렀다. 막아내는 상대는 묵묵히 그의 검을 받다가 뒤로 물러났다.


"한마디 하지 그래?"


땅에 침을 뱉었던 아이가 더미드를 진정시키려 대련을 멈추며 그에게 말했다. 더위와 짜증이 섞여 폭발하기 직전이었던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었다.


"아무래도 그래야겠어."


"여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줄 필요가 있어. 모른다고 규칙을 어기면 안 되지."


에즈라는 몇 번 휘두르더니 거리를 벌리고는 자세를 풀었다. 그도 온몸이 땀으로 적셔져 있었지만, 발레르는 그것보다 심했다. 바닥에 떨어져 적실 정도로 많이 흘렸고 잡고 있는 목검의 끝 부분은 불안하게 떨려왔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도 천천히 검을 내리자 에즈라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주변을 향해 외쳤다.


"수업 끝. 다 같이 정리하고 집에 가라."


"아저씨, 이건 어떻게 해요?"


애런이 부러진 목검을 위로 들며 흔들어댔다. 에즈라는 손으로 높이 자란 풀숲을 가리켰다.


"그냥 저기다 버리렴."


아이들의 검을 건네받는 아이에게 검을 건네주는 발레르의 사이로 아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멀어지는 그들 사이로 간간히 자신의 이름이 들려오자 그는 멍한 눈으로 그쪽을 쳐다봤다.


"뭐해? 안 오고."


어느새 다가온 애런은 그런 발레르의 팔을 툭툭 치며 그가 보는 곳에 뭐가 있는지 그도 같이 쳐다봤다.


"가야지."


걸어가는 그들에게 타라가 지나치며 손을 흔들어 보였다.


"내일 봐, 얘들아."


마주 인사해주며 어디론가 빠르게 걸어가는 그녀를 바라보던 발레르는 방향을 틀어 다시 학교 쪽으로 걸어가려 했다. 애런은 그가 왜 그러는지 안다는 양 묻지도 않고 말했다.


"할 일이 좀 있다고 먼저 가래."


다시 방향을 틀어 이야기하며 집으로 걸어가던 중 그들은 뒤에서 어느새 가까워진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 자리에는 더미드가 그들의 발자국에 맞춰 멈추어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불쾌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애런의 눈빛을 받아내며 더미드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며 그들을 번갈아 봤다.


"타라한테 치근덕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뜬금없는 그의 말에 애런은 헛웃음을 지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그게 뭔 소리야? 네가 뭐 약혼자라도 되냐?"


"그렇다면 어쩔 거지?"


"뭐?"


더미드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려 보였다. 약간 흥분된 상태인 애런을 저지하며 발레르는 더미드에게 한발 다가갔다.


"우린 그저 친구로서 대했을 뿐이야. 네가 뭘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건 아닐 거야."


발레르와 그는 꽤 오랫동안 서로 마주 봤다. 감정을 숨긴 채 푸석하게 말하는 발레르와 감정을 표출하며 끈덕지게 이야기하는 둘은 확실히 달랐다. 뜨거운 여름 바람이 그들 사이를 훑고 지나갔다.


"마을의 규칙을 어기지 마."


그말을 끝으로 더미드는 대답도 듣기 싫다는 듯 재빨리 몸을 돌려 그들의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애런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 방향으로 침을 탁, 뱉었다.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네. 가자, 발레르."


찜찜한 기분으로 지켜보던 그는 애런의 옆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정말 약혼자일까?"


"신경 쓰지 마. 딱 봐도 그냥 막 내뱉은 거야."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타라가 그에게 대하던 태도는 짧은 시간에 판단하기 충분했다. 발레르는 애런의 말처럼 곧 머릿속에서 그 이야기를 지워버렸다.


******************************************


며칠이 지났지만, 그들은 타라에게 평소에 하던 것처럼 대했다. 더미드의 말을 듣고 괜히 다른 행동을 하는 건 그녀에게 상처 주는 일이기도 했고, 애런은 그 녀석 약을 올려주겠다며 오히려 그들끼리 이야기할 때 주변을 둘러보며 더미드가 있나 찾아보곤 했다.


아이들의 반응은 두루뭉술했던 것에서 점점 진하게 바뀌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더미드의 편에 섰다. 마을의 특성상 섬과도 같은 형태이기 때문에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너무나도 뚜렷하고 단단했다.


타라는 더미드에게 어떤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 눈치를 봤지만, 애런과 발레르에게 대하는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그 기묘한 분위기에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같이 가는 길에 발레르는 궁금함에 그것에 대해 그녀에게 물어봤고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어떤 것에 이겨내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너희도 이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듯 더미드는 날 좋아해. 그리고 아이들도 그걸 다 알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우리는 그런 게 있어. 일종의 순서나 양보 같은 거. 아이들은 더미드가 나를 가장 좋아하는 걸 알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아."


강한 충격에 발레르는 벌어지는 입에서 믿을 수 없다는 말투가 흘러나왔다.


"그게 무슨···."


슬픈 눈으로 발레르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은 어떤 것에 반쯤 포기한 얼굴이었다.


"웃기지 않니? 상대의 의사는 무시하고 그저 가장 잘 어울린다고 다른 모두가 말도 걸지 않고 서로 이어주려 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너희는 모를 거야. 마치 없는 사람인양 대하고, 침묵으로 대하는 그 압박은 때때로 내가 감당하기가 힘들어."


"아니, 그래 그건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 그런데 왜 여자애들까지 말을 걸지 않는 건데?"


애런은 자신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추궁했다. 그걸 받아내는 그녀는 그저 암담함 속에 피어난 덤덤함이었다.


"부러우니까..."


"뭐?"


그녀의 입 밖으로 나온 말을 잘 못 들었다는 듯 발레르는 황당해하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더미드는... 우리 마을에서 약초학을 이을 유일한 아이야. 그것뿐만 아니라 다방면에서 보통 이상의 재능을 보여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아. 그리고 여자아이들도 마찬가지지. 어쩌면 걔네들은 내가 빼앗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게··· 이 마을의 규칙이라는 거야?"


"그래. 이 고립된 섬 같은 곳에서 생겨서는 안 될게 생긴 거야. 그리고 이건 고칠 수가 없어. 우리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그래 왔어. 어른 중 이미 나와 더미드가 미래에 결혼할 거라 확실시하는 분들도 있을 정도니까."


발레르는 충격적인 그녀의 말에 충혈된 두 눈을 비볐고 애런은 이마를 감싸 쥐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껏 들어보지도, 상상도 못 했던 이야기가 바로 그들이 서 있는 마을에서 일어난다는 걸 깨달은 발레르는 새삼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이 무서웠다. 분위기가 묘하게 음산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얘기를 들은 다음 날부터 그들은 학교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무관심한 시선에서 일종의 역겨운 것으로 바뀌었고, 그것은 더미드를 바라볼 때 극에 달했다. 쉬는 시간 반 안의 활기참은 그녀만을 완벽히 빗나갔고, 모두가 뛰어다닐 때 그녀 혼자 멈춰 있는 것만 같았다.


에즈라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가 그들은 일부러라도 학교에서 타라를 제외한 어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간혹 여자아이들이 쑥스러워하며 말을 걸어왔지만, 발레르와 애런은 형식적인 대답만 할 뿐 자신의 감정을 나눠주지 않았다.


고립된 마을에서조차 고립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발레르는 지난날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명확히 왕따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를 죽이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마을의 그것에 절망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와 애런은 타라에게 먼저 다가갔다. 꽉 찬 반 안에서도 그들은 조용히 앉아 넋 놓는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그들에게 진실된 웃음을 보여주었고 발레르는 그 속에서 절박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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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27화. 17.06.19 178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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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17.06.18 215 1 15쪽
24 24화. 17.06.18 179 1 17쪽
23 23화. 17.06.18 195 1 19쪽
22 22화. 17.06.17 222 2 14쪽
21 21화. 17.06.17 233 0 12쪽
20 20화. 17.06.16 249 2 13쪽
19 19화. 17.06.16 262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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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7화. 17.06.15 235 1 13쪽
16 16화. 17.06.15 230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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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17.06.14 245 2 14쪽
12 12화. 17.06.13 27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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