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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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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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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3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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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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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9화.

DUMMY

애런은 다음 날부터 학교에 다시 나갔다. 그의 성격으로 더는 가지 않을 것 같았지만 그는 학교에 나갔다. 그게 혼자 남게 된 타라 때문인지, 더미드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지는 몰랐다. 다만 그는 타라와 대화할 때가 아니면 죽은 사람처럼 조용히 지냈다. 착 가라앉은 두 눈으로 그는 수업에 집중하지도 않고 자리를 지켰다. 가끔 그는 더미드를 바라보며 충동적인 느낌을 받았지만, 이내 깊은 한숨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와 타라는 거의 매일 발레르에게 병문안을 갔다. 발레르가 깨어났다는 이야기를 애런에게 들은 날은 그녀 혼자 찾아와 한참을 그의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삼 일째 되는 날, 이제는 낮과 밤의 길이가 서로 비슷해지고 가을 냄새가 슬그머니 풍겨오는 어두컴컴한 밤에 그녀는 평소와 달리 긴장된 모습으로 그에게 찾아왔다.


집에서 가져온 마실 것을 탁자에 올려놓고는 그녀는 발레르가 깨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약간의 어색함을 가지며 그녀는 어떤 말을 꺼내려다 다시 삼키기를 반복했다. 보다 못한 발레르가 되려 걱정하며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는 움찔거리더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일 뿐이었다. 발레르는 숙여진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보았다.


손을 빼는 그녀의 손에서 땀이 묻어 나왔고, 발레르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고, 그녀는 끝내 아주 조그마한 목소리로 인사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닫힌 방문을 바라보던 발레르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


하얀색의 수병모가 날아와 그의 앞에 떨어졌다. 발레르가 집으려 몸을 숙이자 바람이 불어와 모자를 그의 곁에서 떨어트리게 했다. 덩그러니 있는 모자를 집으러 다시 발레르가 다가가자 바람은 다시 불었고 그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부아가 치민 발레르는 재빨리 달려가 바람이 불어 날아가기 직전에 모자를 낚아챘다.


두 손으로 잡은 모자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나를 구하지 않았어?”


같은 목소리지만, 겹쳐 들려와 발레르는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자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때문에 왜 내가 죽어야 해?”


그 말을 들은 순간 발레르는 목소리를 알아채기 전에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모자를 꽉 쥐었다.


“애나···.”


“오빠는 나를 죽였어.”


“아니야, 아니야. 그렇지 않아.”


강하게 부정하며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쥐고 있던 모자는 어느새 윗부분부터 모래 가루처럼 부서져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발레르는 모자를 껴안았다.


“발레르, 네가 날 죽였어!”


모자는 이제 수많은 기다란 송곳이 되어 그의 몸을 뚫고 나왔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고통이었지만, 그는 더욱 힘을 줘 끌어안았다. 온몸에서 흐르는 피는 자신을 적시고 땅을 적셨다. 입으로 피를 토하며 천천히 허물어지는 발레르는 서서히 눈을 감아버렸다.


"아니야!"


경기를 일으키며 일어난 발레르의 몸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옷은 물론 베개와 침대보, 이불까지 모두 땀으로 젖었다. 오한을 느끼며 발레르는 이불을 끌어당기고 무릎을 세워 거기에 얼굴을 박았다.


숨죽여 흐느끼며 그는 무릎을 껴안았다. 다시 현실을 깨달은 그는 조금씩 열리려던 마음의 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나무판자를 덧대고 못을 박아 누구도 열지 못하게 막아버렸다.


"나도 모르겠어."


물기 묻은 목소리가 이불에 묻어진 채 뜨겁게 흘러나왔다. 그는 손에 더욱 힘을 주며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그는 이제 자신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멈춘 것은 멀어지기에 잊혀지기 마련이었고 빛바래져 갔다. 자연스러운 것이었지만, 그는 그렇게 생생함을 잃어가는 것에 스스로에게 역겨움을 느꼈다.


그는 억지로 다시 베개에 머리를 대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눈을 꽉 감으며 그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밀어내고 억지로 잠을 자려 애썼다.


**********************************************


침대를 털고 일어나 발레르가 정상적으로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기까지 그로부터 꼬박 나흘이 걸렸다. 손목은 아직 뻐근했지만, 무리하지 않으면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고, 화상은 꽤 가라앉았지만, 정도가 심했기에 원래의 피부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클레망의 말에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는 말만 되뇌었다.


재판은 다음 날 오후에 진행되었다. 마을 한쪽 구석에 지어진 건물은 원래 그럴 용도로 지어놨지만,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게 오래됐는지 부식이 심했고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았다.


들어가는 문 앞으로 놓여 있는 의자에는 마을에 필요한 최소 인원만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했다. 가장 첫 줄과 간격을 두고 양쪽에 대각선으로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사이에는 책상과 의자가 있었다. 그 자리에는 마을의 최고 권위자인 클레망이 앉아 있었고, 왼쪽에는 발레르와 애런, 에즈라와 타라가 참석해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더미드와 쪽지를 건네준 아이, 그리고 더미드의 부모님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클레망은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 헛기침을 하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모두가 그를 바라보며 조용해지자 클레망은 미리 준비해 온 듯 거리낌 없이 말을 꺼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최근에 큰일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일에 죄를 묻기 위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럼 일단 피해자인 발레르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자리에 착석해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발레르에게 돌아갔다. 그는 건물 안의 달아오른 열기를 느끼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략 열흘 전의 일이었어요. 약초학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께서 2인 1조로 약초를 구하고 그것에 대해 조사하라는 숙제를 내주셨었죠. 그때 저는 타라와 짝이었고, 홀로 남아 있던 애런에게 더미드가 같이 하자고 제안을 했었어요."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앉아 있는 아이들 몇몇은 고개를 끄덕였고 더미드 또한 잠자코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조사하다 저녁이 가까워졌을 무렵 저희는 다리가 아파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저기 앉아 있는 아이가 저에게 다가와 따로 이야기하자며 불렀어요. 그래서 따라가니 쪽지 하나를 주는데 거기에는 애런을 마비시켜 산속 동굴에 두고 왔으니 데려가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더미드의 표정은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지만, 다리 사이에 둔 손은 쉬지 않고 꼼지락거렸다. 클레망은 이미 대강 들었던 이야기였지만, 분노를 삭이며 상황을 설명하는 발레르를 보자 다시 감정이입이 됐다.


"산에 올라갔어요. 겨우 동굴을 찾아서 들어가려는데 위에서 더미드가 저를 부르더니 타라에게 치근덕대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그때 너무 화가 난 상태이기도 했고, 전 친구로서 대했지 더미드의 말처럼 그런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싫다고 했죠. 그러자 더미드가 갑자기 휘파람을 불더니 큰 소리로 소리쳤어요."


말을 하며 그때 일이 다시 떠오르는 듯 발레르는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제 발이 묶였고, 동굴에서 누가 나왔어요. 그 사람이 손을 뻗자 갑자기 양옆에서 나무가 살아 움직이듯 몸을 흔들더니 저를 공격해 왔습니다. 세 번을 막고 네 번째에 그럴 힘이 없어 죽기를 기다렸는데, 애런과 에즈라 선생님이 때마침 오셔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만약 오지 않으셨다면 전 이미 이 자리에 없었겠죠."


말을 마치고 가만히 서 있는 그를 앉으라 손짓한 클레망은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더미드를 바라봤다. 더미드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그저 발레르에게 장난을 친 거예요. 애런에게 같이 약초를 구하자고 한 것도 사실 쟤네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런 거였고요. 동굴에 대한 건 우리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하는 장난이에요. 동굴에 버리고 온다느니 그런 류의 장난이요."


억울함을 호소하는 그의 모습은 반대쪽에 앉은 그들과 클레망을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진실되게 비춰졌다. 발레르는 떨리는 입꼬리로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여기 있는 분들 다 아실 거예요. 제가 타라와 미래에 약혼할 사이라는 걸요. 그런 제가 매일같이 타라와 붙어 다니는 저들에게 이상한 낌새를 느낄 수밖에 없었어요. 전... 그냥 타라를 너무 아끼는 마음에 그런 말을 했던 것뿐이에요."


더미드는 교활하게 자신의 것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것들에만 반박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주변을 둘러보던 더미드의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미드가 그럴 아이가 아니라는 건 모두가 아실 거예요. 제 아들은 이미 전에 저 아이들에게 타라에게 너무 가까이 지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대요. 그런데 듣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다시 묻는 것에 거절당하자 더미드가 자신도 모르게 홧김에 그런 것 같아요."


팔짱을 끼며 경청하던 어른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누군가는 나지막하게 그럴 수 있지 라며 공감하는 말을 내뱉었다. 더미드의 어머니는 이제 가슴에 양손을 모으고 클레망을 바라봤다.


"사실 이렇게 일을 크게 키울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촌장님. 애들 싸움에 어른이 껴야 하겠나요? 게다가 우리 마을 사람이 아닌 애들이 왔으니 처음에 조금 다툼이 있는 건 당연하잖아요. 발레르라는 저 아이도 크게 다친 건 아니고 말이에요."


의자를 세게 밀어내며 에즈라가 일어섰다. 클레망은 그의 모습을 보며 겨우 중립을 유지했다.


"크게 다치지 않다뇨. 이틀을 의식을 잃고 쓰러졌었습니다, 이틀 동안이요. 한쪽 다리는 화상의 정도가 심해 원래 피부까지 돌아올 수 없어요. 이런데도 심하지 않은 건가요? 오히려 이 정도 다친 것에 감사해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만."


"어쨌든 무사하잖아요. 화상이야 나가서 배타는 분들도 자주 입는 건데 너무 호들갑 떠시는 거 아니에요, 선생님? 되려 타라와 제 아들의 관계를 건드리는 저 아이들을 나무라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말도 안 되는···."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클레망의 중재에 에즈라는 이를 갈며 거칠게 자리에 앉았다. 더미드의 어머니는 그런 그의 모습에 눈 하나 깜짝 안 하며 여유롭게 자리에 앉았다. 보나 마나 한 결과였다.


애초에 사람들은 더미드를 두둔하는 마음으로 참석했었다.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더미드가 잘못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고 싶지 않아 했다. 마을에서 가장 촉망받은 아이인 더미드를 자신들의 손으로 어긋나게 하고 할 수는 없다는 게 지배적이었다.


유스터스에게 나쁜 감정을 품은 몇 어른들은 그들끼리 오히려 이 모든 게 이방인인 저 아이들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애초에 쟤네들이 없었으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리고 그건 꽤나 먹히는 이야기였다.


이성적으로 하려는 발레르 쪽과는 반대로 더미드는 오로지 감정으로만 표현했다. 언제나 그렇듯 감정 앞에서 이성은 작아지기 마련이었다. 즉, 사람들 중 이제 발레르의 편에 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마저도 자기 생각을 표출하다 욕먹을 것이 두려워 말없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 전부였다.


발레르는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토악질이 나왔다. 치졸하고 역겨운 이 분위기의 냄새를 단 한 순간이라도 그는 맡고 싶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분노에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살짝 맺혔다.


에즈라는 죗값으로 돌벽에서 정찰조 2년과 바깥 임무 수행 3년을 건의했지만, 거센 반발로 묵살되었다. 아이들을 집에 보내고 나서 에즈라는 마을 모두와 싸웠다. 클레망이 간간이 거들어 줄 뿐, 그는 홀로 발레르를 감쌌다.


에즈라 자신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걸 느꼈다. 이미 기울대로 기운 분위기, 아니 애초에 기울어졌을 분위기를 그 혼자 막아낼 수는 없었다. 단절된 마을에서 이방인은 결코 그들을 이길 수 없었다. 그게 사실이었고, 변하지 않는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죄의 무게가 정해지고 사람들은 만족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일제히 건물에서 빠져나갔다. 자신만만하게 일어난 더미드의 어머니는 예상했다는 듯 흡족한 미소로 에즈라를 바라봤다.


좁아보였던 건물은 둘 만 남자 아득하게 넓어 보였다. 공허해 보였고, 차가워 보였다. 에즈라와 클레망은 서로 앉았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촌장님, 저는 못 말하겠습니다."


"..."


"발레르에게 제가 어떻게 말합니까. 근신이라뇨? 고작 더미드가 받은 죗값은 학교 며칠 안 나가는 근신이 전부라고 어떻게... 말합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거 다 했다고 받아들이자고 달래야 하나요? 아니요, 그건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예, 말도 안 되죠."


절망감에 그는 두 눈을 비볐다. 그리고 그 상태로 꽤 오랫동안 의자에 기댄 채 앉아있었다. 클레망은 연신 고개를 흔들며 현실을 부정했다.


"자신이 없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고,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말을 들은 애들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클레망은 그저 조용히 자리에 일어나 에즈라의 어깨를 어루만져줄 수밖에 없었다. 그 무거운 책임감에 대해 그는 함부로 말을 할 수 없었다. 패배감을 맛보며 그들은 오랫동안 건물에서 나가지 못했다.


에즈라가 집에 들어갔을 때는 이미 주변이 어두컴컴해진 상태였다. 그는 차라리 애들이 모두 자고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문을 열었지만, 그들은 의자에 앉아 에즈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라볼 면목이 없던 에즈라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살짝 돌렸다.


"오셨어요?"


"그래..."


착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발레르의 조심스러운 물음이 흘러나왔다. 에즈라는 그의 말에 다른 뜻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짐작했지만, 섣불리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애런은 그의 분위기에 눈치를 챈 듯 발레르의 뒤에서 고개를 숙여버렸다.


"어떻게... 됐나요?"


올 것이 왔음을 느낀 에즈라는 빠르게 뛰는 심장과는 다르게 그의 대답은 괴로움이 섞인 채 느리게 흘러나왔다.


"더미드는 근신 처벌을 받게 됐단다."


싸늘한 침묵의 공백이 채워졌다. 발레르의 눈에 빛이 사그라지며 자리에 못 박힌 채 초점 없이 에즈라를 쳐다봤다. 애런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과 함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요, 근신? 하,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듯 그는 이단교의 목사처럼 팔을 벌리며 과장된 몸짓으로 박수치며 놀라워했다.


"기적이네, 대단해 정말. 신도 하지 못할 일을 가볍게 해내는 이 땅에 축복만이 가능하리."


웃고 있는 그의 얼굴과는 다르게 눈은 차갑게 식어 경멸스러운 빛을 띄웠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굳게 문을 닫아버렸다. 에즈라는 옆의 의자에 쓰러지듯 힘이 풀린 채 앉아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간간이 애런의 방 안에서 욕지거리가 새어나와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미안하구나."


그는 뱉기 싫었던 말을 내뱉었다. 그 말로 모든 상황을 끝내려는 것이 싫었고 그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는 발레르 만큼 아픈 마음을 조금은 떼어놓고 싶었다.


"선생님이 왜 미안해하세요."


처연한 표정의 발레르는 자신의 어떤 것을 잘라버린 모습이었다. 그는 힘없는 발걸음을 돌려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걸어갔다.


"잘못한 건 다른 사람들이죠."


끼익 거리며 천천히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에즈라는 거실 한가운데 홀로 서서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봤다. 닫힌 방문들에서 그는 그들의 마음이 함께 닫힌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억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그는 그들과 자신 모두 유난히 길고 긴 밤이 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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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마지막화. 17.06.24 222 1 17쪽
34 34화. 17.06.24 231 0 15쪽
33 33화. 17.06.23 167 0 15쪽
32 32화. 17.06.22 297 0 15쪽
31 31화. 17.06.21 180 0 13쪽
30 30화. 17.06.20 194 0 13쪽
» 29화. 17.06.20 226 0 17쪽
28 28화. 17.06.19 191 0 13쪽
27 27화. 17.06.19 178 0 15쪽
26 26화. 17.06.19 176 1 12쪽
25 25화. 17.06.18 214 1 15쪽
24 24화. 17.06.18 179 1 17쪽
23 23화. 17.06.18 195 1 19쪽
22 22화. 17.06.17 221 2 14쪽
21 21화. 17.06.17 232 0 12쪽
20 20화. 17.06.16 249 2 13쪽
19 19화. 17.06.16 262 1 14쪽
18 18화. 17.06.15 251 1 15쪽
17 17화. 17.06.15 235 1 13쪽
16 16화. 17.06.15 230 1 14쪽
15 15화. 17.06.14 212 2 14쪽
14 14화. 17.06.14 247 2 14쪽
13 13화. 17.06.14 244 2 14쪽
12 12화. 17.06.13 277 2 13쪽
11 11화. 17.06.13 307 3 15쪽
10 10화. 17.06.13 385 2 16쪽
9 9화. 17.06.12 332 2 18쪽
8 8화. 17.06.12 33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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