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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차.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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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6.08 23:03
최근연재일 :
2017.06.24 11:13
연재수 :
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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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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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글자수 :
233,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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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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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3쪽

20화.

DUMMY

엎어진 그녀의 등에는 칼이 박혀있었다. 더글라스는 물린 곳을 부여잡으며 단검을 쥐고 있었다. 쓰게 웃으며 그는 병사들에게 돌격 명령을 내렸다.


발레르의 품에 안겨진 애나는 얕은 숨을 빠르게 내뱉고 있었다. 입에서는 피가 역류해 그의 몸과 그녀의 몸을 적셨다. 사방에서 고함이 들려왔지만, 그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애나는 필사적으로 그에게 무어라 말을 하려 했지만, 계속해서 나오는 피 때문에 입술만 간신히 움직일 뿐이었다.


애런은 다가오는 병사를 맞추면서 발레르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어 팔을 잡자마자 그는 있는 힘껏 잡아당기며 뒤로 물러났다. 가까워지는 병사들과 함께 그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었다. 애런에게 끌려가며 그는 애나의 손을 놓지 않았지만, 점점 힘이 풀려가는 그녀의 손아귀에 결국 그는 그녀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다시 땅에 누워진 그녀는 이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모랫바닥을 적시며 새어나오는 피는 점점 커져 그녀의 주위를 감쌌다.


애런에게 끌려가며 발레르는 알 수 없는 신음을 내뱉으며 간헐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애나···애나.”


그의 눈앞은 곧 뿌옇게 변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힘없이 끌려가는 발레르는 차마 분노가 생길 수 없을 만큼 절망감에 빠졌다. 멀어지는 그녀를 끝까지 바라보며 그는 목이 쉴 때까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병사들과 아슬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들은 숲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더 쫓아오려던 병사들은 더글라스의 외침에 주춤거리며 그 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애런은 터질 것 같은 허벅지와 쥐가 날 것 같은 손에 힘을 풀지 않고 억지로 옮겨 더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거리가 꽤 벌려지고, 병사들이 자리를 뜨자 애런은 그제야 쓰러지듯 주저앉아버렸다. 입에서는 단내가 진동했고, 당장에라도 토를 할 것처럼 헛구역질이 나왔다. 발레르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눈물만을 흘리고 있었다. 서럽게 울며 밖으로 나가려는 발레르를 그는 간신히 손을 뻗어 발목을 붙잡았고, 나아가려던 발레르는 그의 손에 걸려 고꾸라져 버렸다. 그 상태로 그는 땅에 고개를 박으며 주먹으로 바닥을 몇 번이고 내려쳤다.


애런은 언제부터 흐르기 시작한 눈물을 대충 닦아내며 나무를 벽 삼아 일어났다. 비틀대며 발레르의 앞까지 간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발레르의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쓰러지며 발레르의 뺨을 쳤다.


“가야 돼.”


울음을 참으며 애런은 겨우 말을 내뱉었다. 얼얼해진 뺨을 붙잡는 발레르는 그의 덕분인지 조금은 흥분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극심한 감정소모에 발레르도 애런의 옆에 눕고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새 소리조차, 바람 한 길 조차 드나들지 않는 숲 속에서는 이제 아무도 없다는 듯 적막만이 있을 뿐이었다. 발레르는 고개를 돌려 애런을 바라보았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아.”


그의 눈에는 티보에게 화를 냈을 때도 없었던 어떤 것이 담겨 있었다.


“더글라스를 내 손으로 죽이겠어. 나를 이렇게 만든 것과, 숨어 지내야 했던 우리 어머니와 티보 아저씨, 그리고 애나. 다 그 사람 때문이야. 반드시···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애런은 그의 눈빛을 받아내며 차마 그러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편지에 당부하던 티보도 아마 이 광경을 같이 목격했다면 그도 아마 발레르의 뜻을 막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우울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며 공감해 줄 수밖에 없었다.


발레르는 빛이 들지 않는 곳에 누워 있다 보니 마치 시간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어떤 공간에 갇혀 그곳에서만 정지된 느낌을 느끼며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차분해진 머리로 바라보니 숲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어두웠다.


특유의 푸른 빛깔은 존재하지 않았다. 바닥의 풀들마저도 어둠이 가려 직접 느껴보지 않고는 풀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바람은 분명 불어오지 않았지만, 그런 느낌이 들며 약간의 한기마저 돌아 스산함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타 없어져 휑해진 가슴을 가지고, 유난히 더 짓누르는 중력을 받아내며 그는 옷에 묻은 풀들을 털어냈다. 애런은 그의 손을 잡아 일어나며 안쪽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글쎄,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겠지.”


방향 감각 없이 둘은 무작정 들어온 곳의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앞은 어두워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것보다 더 어두운 나무의 형체를 피하며 그들은 깊숙이 들어갔다.


한 시간쯤 안으로 들어가자 둘은 동시에 저 끝에서 빛나는 어떤 것을 발견했다. 착각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작은 점을 보며 둘은 어떤 확신도 하지 못했다. 어쨌든 빛이 들어오는 곳이라 생각한 그들은 딱히 방향을 정해 놓은 것도 아니었기에 그곳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대략 삼십 분쯤 지나자 작은 점이었던 빛은 이제 꽤 커져 어떤 것을 비추고 있는지 눈에 대충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쯤 지나자 그들은 빛 아래에 서 있었다.


위를 올려다본 발레르는 빛이 어디서 새어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여전히 하늘은 나무가 가려 빛이 나오는 근원지가 아니었다. 그 빛은 그저 일정한 공간에서 만들어져 있었다.


태양에서 나온 빛이 아닌 몇 발자국 되지 않는 공간만을,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높이가 보이지 않는 큰 바위 아래에 마치 촛불을 켜 밝혀진 것처럼 그곳에만 빛이 있을 뿐이었다.


벽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자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발레르는 손을 뻗어 쓸어보았다. 아니, 그러려고 했지만, 그의 손이 닿자 빛의 공간만큼의 벽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닿은 곳이 돌이 긁히는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가며 서서히 그 너머의 공간을 보여주었다. 둘은 눈을 찌푸리며 손으로 가려야만 했다. 공간이 생김과 동시에 쏟아지는 빛은 어둠 속에 있던 그들에게 아주 강렬했기에 발레르와 애런은 바위 너머의 공간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눈이 익숙해질 때쯤, 돌아가던 바위가 멈추며 너머의 공간을 소개해 주었다. 자신들이 지금 지나온 곳이 잠깐의 꿈이라 생각이 들 정도로, 그곳에는 밝은 숲이 펼쳐져 있었다.


생기있는 짧은 풀들이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고 나무들은 단단히 땅에 뿌리를 박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여름의 햇빛은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발레르는 애런을 돌아봤다. 그 역시 발레르를 보고 있었고 둘은 서로 아무 말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앞에 서 있던 발레르는 경계하며 조심스레 바위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물기 가득한 풀을 밟고 선 발레르는 한 번 눈을 깜빡이자 당황해 하마터면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애런, 보여···?”


“그래, 싱싱한 숲이 보이네. 이게 무슨 일인지...”


“그거 말고...”


발레르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으로 자신의 앞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의 주변으로는 방금까지 숲이었던 것들이 사라지고 돌바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짧은 반경 너머는 다시 처음 봤던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소름이 끼쳤다. 분명 풀을 밟는 느낌이 들었고, 모든 것이 생동감 있게 느껴졌었는데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전부가 아닌 자신의 오 미터 정도의 주변만이 말이다. 분명 흐릿했던 하늘이었지만, 지금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가 되어있었다.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고, 이번엔 좀 더 멀리까지 숲이 돌 바닥으로 바뀌었다. 바위 뒤쪽에 서 있던 애런은 자리에 서 있는 발레르를 의아하게 바라봤다.


“안가고 뭐하냐.”


그가 발레르를 따라 바위 너머로 땅을 딛자, 그 역시 발레르처럼 자리에 멈춰 섰다.


“아니···.”


애런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자신의 발아래를 내려다봤다. 무엇에 홀린가 싶어 그는 두 눈을 비벼봤지만, 결국 그는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발레르, 혹시 너도 주변이 돌바닥으로 바뀌었냐?”


“응...”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만.”


식은땀이 흐르는지도 모르면서 발레르는 용기 내 몇 발자국을 한 번에 내디뎠고, 다시 눈을 깜빡였을 땐, 주변이 아니라 모든 곳이 돌바닥이 되어 있었다. 사방 저 끝에는 파란빛을 머금고 있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삼각형 모양의 지형으로 된 이곳의 가장 끝 부분에는 마을로 추정되는 곳이 보였다.


“저거 바다야?”


“그냥 강 같은데. 아니, 나도 바다 본 적 없어.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여기 너 말고 아무도 없잖아.”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 말이 없지.”


발레르는 애런의 말을 받아치며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바다를 본 적은 없었지만, 왜인지 바다라는 확신이 들었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을 땐 처음으로 책으로만 느껴야 했던 공기 속에 섞인 짠 내가 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둘은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마을을 보고 의식하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작지 않은, 제법 큰 마을에서는 사람이 살고 있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을은 땅끝에 있었고 그 뒤와 양옆 쪽은 절벽이었다. 하지만 절벽 높이가 높지 않아 절벽이라 부르기는 모호했다. 뒤쪽과 옆은 바다가 쭉 이어져 있어서 더 이상의 길은 없어 보였다.


신기하게도 마을로 가는 바닥 전부는 울붕불퉁한 길이 아닌 잘 닦여진 돌바닥이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돌벽 또한 어떻게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꽤 정교했다. 마을 밖 오른쪽으로는 제법 큰 산이 있었다.


“저것도 가짜 아니야? 어떻게 되먹은 게 여기는 멀쩡한 게 하나도 없냐.”


애런은 이제 이 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경계했다. 발레르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빛이 없는 어두컴컴한 숲부터 한순간에 변하는 풍경과 저절로 움직이는 바위. 그 어느 것도 상식으로 통할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이곳에 마냥 서 있을 수는 없었기에 발레르는 마지못해 마을 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가 봐야겠지.”


경계하던 그들을 놀리기라도 하듯 마을 지척에 멈추었을 때까지 더는 주변이 바뀌거나 하지 않았다. 이제 발레르와 애런은 다른 고민에 빠져버렸다. 코앞의 마을에 들어가야 하는가, 였다.


물론 답은 정해져 있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둘은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일을 겪은 둘은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사람 사는 데야.”


애런은 이제 울상이 되어서는 그들을 달래주던 티보를 욕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 티보는 원망하며 그는 이 상황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했다. 하지만 곧 비난할 말마저도 떨어지자, 다시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는 발레르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왜?”


“안가고 뭐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애런을 보며 발레르는 분개했다.


“뭐? 왜 내가 먼저 가야 해? 지금까지 내가 먼저 왔으니까 이번엔 네가 앞장서.”


“아니, 네가 계속 먼저 갔으니 끝까지 날 책임져야지. 어서 가.”


“말도 안 되는···.”


발레르가 반박하려 말을 꺼내는 순간 휙, 하고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그들 사이의 바닥에 화살이 박혔다. 발레르와 애런은 어떤 움직임도 없이 고개만 천천히 움직여 마을 주변에 둘러 쌓여 있는, 사람 네다섯 명의 높이만 한 돌벽 위를 올려다봤다.


“너희 여길 어떻게 왔지?”


정문 벽 위에는 갈색 곱슬머리를 한 남자가 그들을 향해 시위를 당긴 채 질문을 던졌다.

발레르는 당황했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전부 다 말하기 시작했다.


“숲에서 빛을 발견해 따라가니 이상한 글자가 적힌 큰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걸 만졌더니 스스로 움직여 여기로 넘어가게 해줬습니다.”


돌벽 위 남자의 대답이 바로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발레르는 자기들이 뭔가 잘못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남자는 뒤를 바라보며 누군가와 말을 주고받더니 겨냥했던 활을 내렸다.


“들어와.”


너무도 쉽게 경계를 풀자 오히려 발레르와 애런 쪽에서 당황했다. 그들은 약간의 경계심이

들었지만 들어가는 것 말고 다른 게 없었기에 문 앞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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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25화. 17.06.18 213 1 15쪽
24 24화. 17.06.18 178 1 17쪽
23 23화. 17.06.18 194 1 19쪽
22 22화. 17.06.17 221 2 14쪽
21 21화. 17.06.17 232 0 12쪽
» 20화. 17.06.16 246 2 13쪽
19 19화. 17.06.16 262 1 14쪽
18 18화. 17.06.15 251 1 15쪽
17 17화. 17.06.15 234 1 13쪽
16 16화. 17.06.15 229 1 14쪽
15 15화. 17.06.14 212 2 14쪽
14 14화. 17.06.14 246 2 14쪽
13 13화. 17.06.14 244 2 14쪽
12 12화. 17.06.13 27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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