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의 제국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최근연재일 :
2019.07.31 21:32
연재수 :
82 회
조회수 :
121,023
추천수 :
2,088
글자수 :
472,916

작성
19.06.29 17:41
조회
819
추천
20
글자
12쪽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DUMMY

수백 년을 이어온 아리오스성의 영주전용집무실은 그 세월만큼이나 곳곳에 역사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금은 한 참 지난 고풍스러운 문양의 가구나 낡은 집기류들.

그 중에서도 세월의 흔적과 함께 아리오스가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은 영주의 책상이다.

일대 아리오스 공작대에서부터 전해져 온 그 낡은 책상 앞에 앉아 레이진이 두 명의 남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병사 서른아홉 명이 전사했고, 백칠십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기사들 중에는 다행히 치명상을 입은 사람은 없지만, 지금 영지의 사정상 그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금을 지급하기가 벅찬 상태입니다. 무엇보다···.”


중간에 하던 말을 잠시 끊고서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는 레이진을 칼트가 눈빛을 빛내며 바라본다.

분명 아직 젖살도 빠지지 않은 앳된 얼굴의 청년이, 연륜이 느껴지는 영주의 책상 너머에 노쇠한 영주들이 보일 법한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 모습은 꽤나 어울리지 않는 이질감으로 다가왔지만, 그 이질감을 덮어버릴 만큼의 능력을 지녔음을 알기에 또한 아무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그는 지금 하고 있었다.

말이 끊기고 제법 긴 시간이 지나도록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자 고개를 든 레이지이 칼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말해봐, 뭐 어려운 일이야?”


잠시 잡생각에 빠져있던 칼트가 퍼뜩 놀라 얼버무리는 사이, 그의 옆에서 어딘가 나른한 표정으로 서 있던 금발의 소녀가 대신 입을 연다.


“아시다시피 저희 영지는 사방이 공왕군에 고립된 상태예요. 교역도 할 수 없고, 당장 간단한 생필품과 곡식의 수급에도 문제가 생길 거예요.”


레이진의 시선이 소녀에게로 옮겨갔다.

루아 라고 했던가?

자신과 비슷한 또래이지만 그보다 훨씬 더 어려보이는 얼굴을 가진 소녀는 그러나 그 외모와는 다르게 늘 변하지 않은 표정과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차가운 느낌을 풀풀 풍기는 소녀였다.

점의 고양이를 이끄는 켄노인이 고지식한 칼트보다는 말이 통할 것이라며 데려다 놓은 아이였는데 노인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와는 상성이 그다지 잘 맞는 편이 아니었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길어야 반 년입니다.”


“반 년?”


레이진의 반문에 칼트와 루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두 사람을 다시 물끄러미 올려보던 레이진이 찻잔에 남은 차를 모두 마셔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반 년이나 버틸 정도인데 무슨 문제라는 거야.”


말귀를 잘 못 알아듣나?

그녀가 칼트와 자신을 무시한 채 집무실 문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레이진을 따라 걸으며 말했다.


“반 년 후에는 겨울이예요.”


귀찮게 따라붙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레이진이 한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그러니까, 난 파이완을 처리하는데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어. 파이완을 몰아내고 루지아트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시고 왕국이 안정을 되찾게 되면 상단이 들어오겠지. 그리고 나면 모두 해결 될 문제들이잖아?”


“공작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반년은 금방 지나갈 거예요.”


이 번, 전투의 승리로 자신감이 넘치는 건 좋다. 그렇다고 이 전쟁 자체를 반년 안에 끝내겠다고?


“제국이···.”


급히 입을 여는 루아의 말을 레이진이 다시 끊었다.


“그러니까, 제국이 본격적으로 달려들기 전에 파이완을 끌어내리고 예전 루에나 시절의 상황까지 만든다. 반년 안에! 그리고 두 사람은 지금부터 그 방법을 생각해봐!”


발걸음을 멈추고서 제자리에 서버린 그녀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빠르게 발길을 옮긴 레이진이 문 밖으로 사라졌다.


뚫어져라, 문만을 바라보고 서있는 루아에게 칼트가 다가왔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분이니까.”


“그렇긴 하지만, 너무 방심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제국 마스터와 다섯 명의 흑마법사를 주살했어. 지금까지 제국과의 전투에서 이보다 더 큰 성과를 올린 영지는 루에나에는 없을 걸? 반군의 병력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당연히 루아도 그 부분은 인정한다. 보통 수성에 성공해 쫓아내 버리기만 했어도 큰 승리로 치켜세울 일인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쳐들어온 적들의 수뇌부를 남김없이 제거해냈으니.


“아무튼 공작님 말씀이 맞아, 제국은 아직 우리를 신경쓰고 있지 않을 거야. 그러니 그 시간 안에 공왕을 몰아내는 것이 유리한 일이야.”


“그게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라면요.”


나라를 뒤집는 일이다. 그리고 상대적인 세력도 턱없이 부족한 현신이다.


“겨울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는 없어요. 또 파이완의 병력,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을 제국의 병력에 대해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없어요.”


그녀는 등 뒤에 불안 요소들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파이완공왕이 제국에 그대로 나라를 떠 넘겨준 탓에 그들은 제국과 변변한 싸움 한 번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터국에서 전해 듣던 흑마법사들과 제국 소드마스터의 실체도 직접 확인 한 것이 이번이 거의 처음이었다.


“정말 안도와 주실 생각인가요?”


그녀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좀처럼 표정 변화가 없는 그녀의 성격상 지금 이 상황이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문제는 세르니아.

‘점의 고양이’에서는 제국 흑마술사 조직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막을 알아야 했지만, 불과 보름 전까지 ‘점의 고양이’의 일원이었던 칼트는 협조를 해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다시 말하지만, 그녀를 내어 주는 건 불가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녀가 작성해 준, 제국 흑마술사 조직의 조직도와 문서들이 전부야. 이건 또한 공작님의 뜻이기도 하고, 공작님의 말을 그대로 전해주자면 그녀는 우리의 동료이니 설사 왕의 명령이라고 해도 들어줄 수 없다, 그렇게 말씀 하셨어. 나로서는 더 이상의 협조는 불가능 해.”


그래서 그녀가 직접 레이진을 설득하려고 찾아온 것이지만 저 제멋대로인 어린 영주는 조금의 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새 예의 그 변화 없는 표정으로 돌아 온 루아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 봉투를 집어 든다.


“그래도 서운 한 걸요. 그렇게 따지면 저희도 왕이 아닌 공작님 한 분에게만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우리는 동료에서 조금 밀려난 거 같아요.”


“그럴 리가. 네 손에 든 그 봉투가 동료라는 의미야.”


자신의 손에 든 서류봉투를 손으로 가리키며 미소를 짓고 있는 칼트를 바라보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곳 생활은 만족해요?”


“지금은 내 만족을 저울질 할 단계가 아니더라고. 내 능력이 주군에게 도움이 될지가 의문이 들 정도거든.”


그 말만은 이견 없이 루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칼트가 다시 미소를 지은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저리 잘 웃는 사람이었던가?

어딘가 달라진 그의 모습에 루아가 새삼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왜?”


“아니요.”


고개를 저은 그녀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곧 점심이네요. 오빠는 배고프지···.”


그때, 집무실 문이 벌컥, 하고 열려 그녀가 말을 끊고서 고개를 돌렸다.

붉은 머리카락을 휘달리며 주위를 둘러보던 미모의 여인과 그녀의 눈이 마주쳤다.


“해라님!”


잠시 동안 루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헤이라의 시선이 칼트에게로 옮겨갔다.


“칼트경! 공작은?”


“방금 나가셨어요.”


고개를 끄덕인 헤이라가 급히 몸을 돌려 시야에게서 사라졌다.


“잠깐! 루아···.”


루아의 어깨를 두드린 그가 그녀의 뒤를 따라 벼락같이 달려 나갔다.


“칼트 오빠, 아···!”


어깨를 두드린 손에 그녀가 들고 있던 봉투가 땅으로 떨어진다.

그녀가 떨어지는 봉투를 잡으려 손을 뻗는 사이 칼트는 문 밖으로 사라지고, 멀어지는 그의 발자국 소리만 들려왔다.

그녀의 손에서 빠져나간 서류봉투 속에서 수십 장의 종이들이 떨어져 휘날렸다. 흩어져 너부러지는 종이들을 바라보는 루아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해라님! 아직 이렇게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아! 잔소리쟁이 마법사!”


“아···. 해라님 너무 하십니다. 잔소라쟁이라니.”


한쪽 눈가를 찌푸리며 다가 온 칼트를 향해 헤이라가 실없이 미소를 보낸다.


“걱정하지마, 소드마스터가 이정도 상처로 누워 있다면 소드마스터라는 명칭을 받을 자격도 없는 거야.”


“그래도 상처가 위중하시잖아요.”


그녀가 멀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내가 보기에 그대 턱이 더 심각해 보여.”


“그럴 리가요. 저는 다 났습니다.”


“나도 다 나았어. 그대가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나 역시 내가 잘 알아서 해.”


헤이라를 잠시 바라보던 칼트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연다.


“해라님···, 점심 안드십니까?”


헤이라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든다.


“벌써 그리 됐나? 깜빡 했군. 고마워 공작과 점심 약속이 있었거든!”


헤이라가 다시 몸을 날려 멀어져갔다. 멀어져가는 헤이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칼트가 한쪽 눈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작게 들려오는 칼트의 한숨소리에 헤이라가 고개를 내젓는다.


“왜 저러는지. 이 마스크를 벗으면 엄청 놀라자빠질 텐데 어쩌나 몰라.”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녀가 잡생각을 지우려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 * *


“오든 경의 검은 정말 무겁습니다.”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나마 힘에서 조금 우위를 차지한 것뿐이야. 렌 나이 때 나는 내단은커녕 검술도 그만큼 하지 못했어.”


정말로 사심하나 담김 없이 깨끗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오든을 바라보며 렌도 따라 웃었다.

그날의 전투 후로 렌은 계속 영주성의 대연무장으로 출근을 했다.

기사단의 일원으로, 그리고 레이진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서 큰 결심을 하고 찾아오고는 있지만, 불과 보름 전까지도 소영주대우를 받으며 아래에 거느리던 기사들과 함께 수련을 하는 일은 렌에게나 그를 상대하는 기사들에게나 서로 편할 리가 없었다.

그런 렌에게 아무런 사심 없이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오든뿐이었다.


“아리오스의 검은 균형이 제대로 잡힌 상태에서 빠르고 정교하게 몸을 다루어야 하니까. 그 부분은 나보다는 베네크님께서 돌아오시면 더 제대로 손을 봐 주실 거야.”


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지금 남아있는 기사들 중에 오래전부터 아리오스가의 검술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래전부터 남아있던 기사들은 모두 볼튼 후작과 일을 도모했던 자들. 그들은 모두 볼튼과 함께 감옥에 갇혀 있고, 지금 남아있는 기사들은 볼튼 후작이 타노아로 온 이후, 아리오스가의 명성에 심취해 새로 들어온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보니 아리오스가의 검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적어서, 이렇듯 오든에게서 조언을 받게 된 것만도 렌에게는 꽤나 큰 도움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땀을 닦아 내고서 잠시 자리에 앉아 목을 축이고 있던 오든에게 렌이 갑작스럽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저희 아버지 때문에 부친께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한 번은 꼭, 짚고 넘어가야할 일. 렌이 오든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렌의 아버지가 배신자가 된 것이 렌의 탓은 아니니.”


사실 마음이 완전히 편해질 수는 없었다. 여전히 문득문득 복잡한 분노가 되살아나고는 했지만, 어린시절의 렌이, 또 하린이 그 분노를 잠재우고는 했다.


“혹시 오늘 저희 집에 와주시겠습니까?”


“집에?”


“어머니께서도, 하린이도 오든경을 뵙고 싶어해서요.”


이유는 알겠다. 그러나 그런 뻔한 이유를 알면서 제 발로 찾아가는 것은 또한 못할 짓이었다.


“글세···.”


얼버무리는 오든을 바라보며 렌이 간절함을 담아 말했다.


“조금이라도, 하나씩 바로 잡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목숨을 바치더라도.”


작가의말

속 제목 정하는 게 쉽지 않네요.

 10장은 아주 짧게 넘어가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마의 제국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주기 변경공지 입니다. 19.05.27 266 0 -
공지 연재주기 공지, 감사인사드립니다. 19.04.13 1,739 0 -
82 제 11 장 - 점의 고양이와 왕국의 운명 - 1 +1 19.07.31 421 12 13쪽
8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3 +1 19.07.27 383 13 14쪽
8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2 +1 19.07.25 373 10 13쪽
7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1 +1 19.07.22 400 13 15쪽
78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0 +2 19.07.19 499 15 13쪽
77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9 +1 19.07.16 514 11 12쪽
76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8 +1 19.07.12 541 12 17쪽
75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7 +1 19.07.12 560 12 14쪽
74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6 +1 19.07.09 561 11 16쪽
73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5 +4 19.07.07 619 12 13쪽
72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4 +1 19.07.04 698 12 14쪽
7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3 +2 19.07.03 769 13 13쪽
7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2 +1 19.07.01 697 16 12쪽
»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20 20 12쪽
68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0 +2 19.06.27 794 20 10쪽
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9 17 12쪽
66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8 +1 19.06.23 853 17 14쪽
65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7 +1 19.06.22 836 18 11쪽
64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6 +1 19.06.21 816 17 12쪽
63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5 +1 19.06.19 920 19 13쪽
62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4 +1 19.06.18 908 17 13쪽
61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3 +1 19.06.18 962 21 16쪽
60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2 +1 19.06.14 999 20 12쪽
59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 +2 19.06.13 1,103 21 14쪽
58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9 +2 19.06.10 1,034 21 15쪽
57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8 +1 19.06.08 1,144 22 13쪽
56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7 +1 19.06.07 1,035 23 12쪽
55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6 +2 19.06.05 1,000 22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