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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의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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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령
작품등록일 :
2019.04.01 21:32
최근연재일 :
2019.07.31 21:32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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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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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72,916

작성
19.06.14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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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2

DUMMY

“이렇게 타노아의 젊은 영주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평범하다 못해 어딘가 남루해보이기까지 한 노인이, 또한 어딘가 가식적으로 느껴지는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든다.

레이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찻잔을 들어 마시는 레이진을 바라보며 노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점의 고양이라고···,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찻잔을 내려놓으며 레이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전혀요.”


노인이 예의 그 가식적인 미소를 더욱 짙게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곳 타노아에 자리를 잡은 것이 공작님의 조부께서 다스리고 계실 때입니다. 그 후로 선친 대까지는 나름 아리오스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기는 했는데 당시에는 공작님께서 너무 어리셨지요.”


“그래봐야 타노아의 뒷골목 건달들의 두목이시지 않습니까?”


노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희가 영지에 도움을 드린 일이 얼마나 많다구요. 이거 자료를 좀 더 가지고 올걸 그랬습니다.”


능청을 부리고 있는 노인을 향해 얼굴을 굳히며 레이진이 말했다.


“전대의 일은 알고 싶지 않아요. 지금이 중요하지. 이야기를 해보세요. 나를 보자고 한 건 당신이잖아요?”


그에 여전히 능글맞은 웃음을 그리며 노인이 입을 열었다.


“공작님과 거래를 원합니다.”


“거래라···.”


“점의 고양이야말로 지금 공작님께 가장 큰힘이 되어 줄 것이라 장담합니다.”


“왜지?”


“그야···. 정말 가문이 지금 이 상태로 무탈할 거라 생각하십니까?”


“무탈하지 않으면?”


노인 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역시 일반적이지가 않다.

점의 고양이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레이진이 먼저 자신에게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아무리 마스터급의 검술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개인의 무력만으로 이 난세를 헤쳐 나갈 수는 없을 테니.

분명 그는 자신의 존재를 반기리라 생각했다.

겉으로야 어떻든지 속으로는 안달이 나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는 정말 자신과 자신의 조직에 대해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다. 그것을 느끼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내 그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한 명의 아군이라도 아쉬운 상황 아니십니까?”


“아군이라···.”


레이진이 낮게 콧방귀를 뀌고서 말했다.


“당신이 같은 편이라는 증거는?”


“칼트가 있지 않습니까?”


“칼트···.”


어릴 적에는 잠깐씩 스치듯 인사만을 간간히 나누던 사이었다. 마법사들의 정신세계는 원체 독특한 것이어서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했고, 당시 열 살 초입의 그에게 이십대의 무뚝뚝한 청년은 그다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 후로 십 여 년 만에 다시 만난 것인데.


“그 때문에 당신들을 믿으라고?”


뜨악한 표정으로 자신을 비꼬는 레이진을 바라보며 벌렸던 입을 결국 다시 다물었다.

그렇지 쉬운 상대일 리가 없지.

처음 그의 등장에서부터 계속 자신을 고민하게 만들던 것.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소년, 다른 결론을 내고,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 자신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던 소년을 만나는 일인데 그저 호기심만 앞세운 채,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해 이리 낭패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또한 한편으로는 그것이 기분 나쁜 일만은 아니다.

뭔가 노쇠한 그의 몸에 다시 활력인 돋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런 기분은 뭐지?

그의 무위 때문일까?

분명 전해들은 그의 가공할 검술실력은 인간의 범주를 넘어서 미지의 영역에 닿아있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지금 자신에게 전해지는 이는 느낌은 그런 것과는 또 어딘가 달랐다.

거기다 그는 그의 무위를 직접 목격한 적도 없지 않은가?

아직 앳된 기가 남아있는 그의 얼굴에는 간혹 천진하기도 한 미소마저 드러난다.

그러니 저 어린 청년에게 이런 감흥을 받게 된다는 건 쉽게 이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노인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경우가 생길 줄은 사실 몰랐습니다.”


노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지나갔다.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나를 돕고 싶다. 이유는?”


“거기에도 이유를 대야합니까?”


레이진이 아무런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레이진을 바라보며 노인이 헛웃음과 함께 말했다.


“뭐, 저 같은 악한도 나라를 위하는 충정만큼은 남아있다, 그 정도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레이진에게서 비로소 청년다운 미소가 그려졌다.


“좋아, 어째든 충정으로 돕는 것이라면 거래는 아니란 말이지?”


켈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충정을 분명하지만, 저희도 사정이 좋지가 않아서요. 제가 드릴 수 있는 약속은 제 고객은 공작님 한 분뿐이라는 겁니다.”


잠시 노인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던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좋아.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정보는 뭘까?”


“그야 파이완공왕의 근황이 아니겠습니까?”


“이야기 해줘.”


“거래라니까요?”


“아! 원하는 걸 얘기해봐.”


그가 주위를 둘러보며 덧붙여 말했다.


“지금 뭐 줄만한 게 있을까 싶긴 하지만.”


노인이 큭 큭, 거리며 말했다.


“한 번은 서비스로 해드리지요.”


“반가운 소리네.”


레이진의 천연덕스러운 반응에 다시 가식적인 미소를 그리기 시작한 켈노인이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왕국군은 바이로를 시작으로 인근에 있는 세 곳의 영지를 잇따라서 공격했습니다.”


공격이라고만 하는 이유는 영지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왕군은 공왕파의 수족들에게 작은 타격만을 주고 되돌아 나와 다른 영지를 습격하는 식으로 싸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3일 전, 공작님께서 타노아를 탈환하시던 그날, 공교롭게도 국왕의 군대는 제헨 백작의 영지 인근에서 공왕의 군대에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뭐 공왕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겠지.”


담담한 그의 반응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하던 노인이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제국의 소드마스터가 참전을 한 사실이 가장 큰 차이겠지요.”


“공왕의 편에서?”


“네.”


하긴 그게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동안 왕성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밥만 축내며 공왕을 돕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기도 했다.


“지금 왕국군의 피해는?”


“산발해 흩어져서 쫓기고 있다고 합니다. 루지아트국왕께서는 아직 무사하시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구해서 데려와야 하나?”


레이진이 눈가를 찌푸렸다. 몸이 불편한 루지아트와 그를 곁에서 지키던 줄리어의 얼굴이 떠올랐다.

다소 불경스러운 레이진을 말투에 잠시 당황한 빛을 보이던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레이진을 바라보며 노인이 덧붙였다.


“다음날, 센달의 레이델 가문과 리틀리안 가문이 공왕의 감시관들을 처형하고 루지아트국왕의 지지를 천명했습니다. 곧 그들과 합류하게 되면 동부의 일부분이나마 로에나왕국군의 새로운 진지가 형성 될 겁니다.”


“줄리어 영애의 집안이니 분명 공왕도 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너무 허술한데?”


“공왕에게는··· 그다지 큰 권한이 없으니까요.”


“그런 일도 황제의 허락을 받나?”


노인이 한쪽 입가를 올리며 말했다.


“그가 자초한 일인 것을요.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공왕의 작위를 받으며 건네준 불평등한 계약 조건이 수십 가지는 되는 듯 합니다.”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거야 이제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그래서?”


그의 반문에 그러나 노인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잠시 그런 노인을 바라보다 레이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아···.”


노인도 미소를 머금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 공왕은 국왕군을 상대하느라 이곳을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겁니다.”


“그렇다는 말이지.”


레이진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 * *


다섯 개의 계단 위, 검은 휘장이 사방으로 쳐진 사각의 단상을 바라보며 머리에 은빛 왕관을 쓴 사내가 공손한 자세로 서서 고개를 조아린다.


검은 휘장 안에 희미한 불빛이 켜지고 고개를 든 노인이 입을 연다.


“리아크라경의 도움으로 로톤영지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인이 다시 고개를 조아린다. 그 후로도 한 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휘장 안에서 앳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행이군요. 당신의 일은 아내인 나의 일이기도 해요. 남편의 어려움을 아내가 도운 것뿐인데 찾아오실 것까지야.”


“아닙니다. 왕후께서 이리 도움을 주셨으니, 찾아와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자글자글한 주름 진, 얼굴에 반쯤 벗겨진 머리를 왕관으로 가린 노인.

자신의 남편이자 이곳 파이완공국의 공왕인 파이완을 나른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여인 시에린이 입을 열었다.


“다음부터는 일일이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더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그녀의 말에 파이완이 반색하며 입을 연다.


“그게 일이 조금 복잡하게 돼서···.”


잠시 주위로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던 그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패국의 왕자에게 속은 몇 개의 가문들이 반란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간 성가신 것들이 아니어서···.”


“반란의 조짐이라면···?”


“동부의 몇 개 가문이 뭉쳐 패국의 왕자를 찾고 있습니다.”


시에린이 권태로움이 묻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 어쩌지요? 리아크라경께서 황가에 다녀오실 일이 생겼어요.”


파이완이 고개를 조아렸다.


“괜찮습니다. 왕후.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많아서.”


뒷걸음으로 물러서며 반쯤 치켜 뜬 눈으로 휘장 안을 바라본다. 여인의 실루엣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실루엣을 바라보며 파이완이 눈가를 좁혔다.


‘변했어.’


여전히 휘장 속에 모습을 가리고 있지만, 분명 분위기가 달라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저리 도도한 척을 해도 어린아이의 치기가 어쩔 수 없이 비췄었는데.

지금은 정말 철의 여왕같은 위엄이 목소리로 전해졌다.

황제의 딸이면서도 아무런 힘도 없이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끌려온 여인이라 여겼는데.

그나저나 저 로에나의 잔당들을 어쩐다.


뒷걸음질 쳐 사라지는 그의 정수리를 바라보며 그녀가 입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한때, 저 늙은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역겨움이 밀려와 목숨까지 끊을 생각을 했던 그녀였다. 시에린이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파이완 공왕이 사라지고도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던 시에린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셨군요.”


언제부터 있었는지, 검은 복면의 사내가 휘장 안,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시에린이 급히 다가가 그의 맞은 편 의자에 앉았다.


“어떻게 됐나요?”


복면인이 고개를 젓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런가요.”


시무룩해진 시에린을 바라보며 한참을 뜸을 들이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시에린이 말없이 고개를 든다.


“며 칠 전, 아리오스가의 소영주가 서북부의 타노아 영지를 점령했습니다. 그의 숙부를 내리고 스스로 아리오스가의 적통을 외치며 말이지요.”


여전히 시에린은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소드마스터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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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3 +1 19.07.27 383 13 14쪽
8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2 +1 19.07.25 373 10 13쪽
7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1 +1 19.07.22 400 13 15쪽
78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0 +2 19.07.19 499 15 13쪽
77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9 +1 19.07.16 514 11 12쪽
76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8 +1 19.07.12 541 12 17쪽
75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7 +1 19.07.12 560 12 14쪽
74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6 +1 19.07.09 561 11 16쪽
73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5 +4 19.07.07 619 12 13쪽
72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4 +1 19.07.04 698 12 14쪽
71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3 +2 19.07.03 769 13 13쪽
70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2 +1 19.07.01 697 16 12쪽
69 제 10 장 - 타노아의 작은 일상들 - 1 +1 19.06.29 820 20 12쪽
68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0 +2 19.06.27 794 20 10쪽
67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9 +2 19.06.25 799 17 12쪽
66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8 +1 19.06.23 853 17 14쪽
65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7 +1 19.06.22 836 18 11쪽
64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6 +1 19.06.21 816 17 12쪽
63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5 +1 19.06.19 920 19 13쪽
62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4 +1 19.06.18 908 17 13쪽
61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3 +1 19.06.18 962 21 16쪽
»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2 +1 19.06.14 1,000 20 12쪽
59 제9장 - 반격을 시작할 때 - 1 +2 19.06.13 1,103 21 14쪽
58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9 +2 19.06.10 1,034 21 15쪽
57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8 +1 19.06.08 1,144 22 13쪽
56 제8장 - 타노아의 주인 - 7 +1 19.06.07 1,035 2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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