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 - 비이사 (6)
그렇게까지 노력했지만, 그녀는 반에서 존재감을 잃어갔어요. 그녀도 학기 초와 달리 평범한 아이들처럼 조용하게 지냈죠.
그런데 그녀가 학교를 지옥으로 느끼는 데는 단 하루도 걸리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그녀가 자기들 공간을 더럽혔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어요.
‘아빠도 없다면서, 엄마가 건물 청소부라고, 그러면 몸 팔아서 쟤 낳은 거야? 그러면서 그렇게 있는 척했던 거야? 이제 이 학교도 다 됐나보다, 저런 애까지 입학시키는 걸 보면...’
그녀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 얘기들을 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떠들었어요. 걔네들 영미가 자기들 옆을 지나가면 입을 닫아요. 그러다가 그녀가 지나가자마자 다시 떠들어요. 마치 ‘이거 너 얘기야’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이 소문의 진원지가 어딘 줄 알아요? 바로 담임이었어요. 참, 어이가 없죠.
그렇게 되면서 영미는 학교에서 말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오로지 나만 남은 거죠. 어느 날, 그녀가 날 찾아 왔어요. 처음에는 무작정 자기 말만 하고 갔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도 영미 때문에 추억이 생긴 거 같아요. 그녀마저 없었다면 그 학교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안 남을 뻔했으니까요. 비록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요.
그렇게 힘들면 전학을 가라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엄마가 반대한대요. 어떻게든 이런 학교를 나와야 당신의 딸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나 봐요.
그러고 보니 영미가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어요. 특히, 영어와 국어를 잘했어요. 영어 발음은 마치 원어민 같았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아이들이 그녀가 외국에서 유학을 했다고 오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오던 그녀가 언제부턴가 더 이상 안 오더라구요. 하루에 꼭 한 번은 찾아왔거든요. 그렇게 오면 20~30분 떠들다가 갔어요. 처음에는 조금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다 돌아간 교실에 혼자 앉아 있는 저가 있더라구요. 그러니까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오늘은 또 어떤 얘기를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렇게 한 달이 지났나... 하루는 영미가 와서 울었어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울다가만 갔어요. 하지만 전 아무 것도 묻지 않았어요. 그녀가 우는 것을 멈출 때까지 그녀 곁에서 조용히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고맙다고 하더군요.
그때 반에서는 영미가 남자들에게 꼬리를 치고 다닌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그때는 이상하게 영미에 대해 반 아이들이 얘기할 때면 귀를 쫑긋 세우게 되더라구요. 사람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는 사실에 저도 좀 놀랐어요.
그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열흘 만이었어요. 그날도 와서는 한참을 울었어요.
이 학교에는 한 반에 의사나 변호사를 부모로 둔 학생이 두세 명씩 있었어요. 그런데 힘께나 쓰는 검사 아들이 옆반에 있었나 봐요. 그가 영미에게 손을 내밀었대요. 그러니까 그녀가 저에게 오지 않았던 이유가 그거였나 봐요. 정말 걔가 좋았대요.
그는 착했대요, 거기다가 잘생겼대요. 또 그녀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자에 권력이 있는 아이가 손을 내밀었으니 마치 신데렐라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잠자리를 몇 번 하고 나더니 걔가 변했대요. 그녀는 어떻게든 그를 예전으로 되돌리고 싶었대요. 그랬더니 걔가 그랬대요.
“내 친구들한테 몸 한 번씩만 대주면 다시 옛날처럼 만나줄게.”
그래서 영미는 그의 말대로 했어요. 그런데 그 새끼는 그녀와 잘 사람을 순서대로 뽑고 있었어요. 자기를 추앙하는 애들을 모아서 경매로 부쳤다고 하더라구요.
며칠 전부터 아이들이 걸레라는 단어를 쓰더라구요. 전 그때까지도 걸레가 그런 의미로 사용하는지 몰랐어요. 영미가 걸레라는 의미를 가르쳐 주었을 때, 분노가 일어났어요. 아마 그때가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가져본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걔네들 패 줄까?”
“그래, 넌 똑똑하고 당당하니까.”
영미는 이 말을 정말 믿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이름 얘기해 봐. 정말 패 줄게.”
“기철이, 나머진 나도 몰라. 너 힘이 세?”
“걔네들 정도는 충분히 때릴 수 있지.”
“그럼, 더 큰 소원 말해도 돼?”
“그래.”
“난, 이놈의 나라가 아예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정말로.”
그 말에는 나는 대답하지 않았어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았거든요.
그날 밤 그녀가 죽었어요. 아침이 되자 바로 담임은 아예 언급도 없이 그녀의 책상을 치우라고 하더군요. 아무도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어요. 죽어서도 여전히 그녀는 걸레로 불리더군요. 그렇게 부른 애가 기철이었어요.
“너가 기철이야.”
“그래. 왜?”
“그런데 그렇게 걸레라고 부르면서 넌 왜 그런 걸레를 물고, 빨고, 핥은 거냐?”
“뭐래? 이 미친 년...”
날아오는 주먹을 잡고 바로 팔을 꺾어 책상에 밀어버렸죠. 책상에 부딪혀 넘어진 놈은 둔탕한 소리를 내며 넘어지더라구요. 그놈은 화가 난 듯 다시 덤벼들었지만 살짝 피하고는 옆구리를 발로 냅다 차버렸어요. 그러자 책상에 부딪혀 우당탕 넘어지더라구요. 발로 맞은 옆구리가 아픈지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더군요.
제가 싸움을 좀 잘해요. 엄마가 저에게 강요한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격투기만 어릴 때부터 강제로 배우게 했어요. 아마도 내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할 줄 알았나 봐요. 적어도 맞지는 말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날 오후에 남자 아이 둘이 오더니 방과 후, 옥상으로 올라오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들 낮짝이라도 보려고 올라갔죠. 그랬더니 그 검사 아들 새끼가 딱 그 무리 중간에 서 있더라구요. 마치 보스처럼요. 거기에 기철이 그 새끼도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어요. 겁을 잔뜩 먹은 채요.
“왜 불렀어?”
“니가 입에 걸레를 물었다는 년이야?”
“걸레가 더러운 게 아니야, 더러운 것을 닦아서 걸레가 된 거니까.”
“뭐래?”
그때 옥상으로 올라온 한 애가 자물쇠로 문을 잠갔어요. 그러면서 주머니에 열쇠를 넣더니 이쪽으로 걸어오더군요.
“이년이야? 기철이 쟤 봐라. 얼마나 팼길래 애를 저렇게 병신으로 만든 거야?”
거기에는 그 검사 아들을 포함해서 모두 열 명이 있었어요.
“너가 걸레 친구? 그러면 너도 걸레 아닌가?”
“나 걸레 맞아. 내가 좀 닦아줄 테니까... 앞으로는 너희들도 좀 깨끗하게 살자.”
그랬더니 그 녀석이 대뜸 주먹을 휘두르더군요. 아무리 싸움을 잘해도 열 명을 모두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그러니까 이럴 때는 시간을 끌면 안 돼요.
단 한 번에 팔을 잡아서 뒤로 꺾어서 그대로 부러뜨렸죠. 덜렁거리는 팔을 보더니 엄청 소리를 질러대더군요. 그런데도 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에게 외쳤어요.
“두 번째는 팔이 아니라 너네 그 중간 다리를 영원히 못 쓰게 할 거야. 그거나 알고 덤벼.”
그랬더니 아무도 덤빌 생각을 못 하더군요. 팔이 부러진 녀석은 어떻게든 나가려고 했어요. 주머니에서 꺼낸 열쇠를 뺐었죠.
“너희들 그냥은 못 나가. 여기서 나가고 싶으면 니들이 그렇게 신처럼 모시는 쟤를 때려. 그러면 보내줄게. 그러지 않으면 이제부터 너희들 중간 다리는 영원히 못 쓰게 되는 거야. 지금부터 열까지 센다.”
“우리가 더 쪽수가 더 많아. 한꺼번에 덤비면 저 년 하나 못 잡겠어. 빨리 덤벼.”
그 검사 아들 새끼가 말했어요. 그 목소리는 많이 떨리고 있었어요.
“그러겠지. 하지만 먼저 오는 놈은 평생 불구가 된다는 것만 잊지 마. 그게 몇 명까지 될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랬더니 그들 모두 얼굴이 사색이 되더군요. 그 중에 기철이란 놈이 제일 먼저 검사 아들 새끼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정말 순식간이더라구요. 바닥에 깔린 그 검사 아들은 비명도 못 지른 채 그들에게 발로 마구 밟혔죠.
문을 열고 나오려는데 뒤에서 한 녀석이 달려오더군요. 저한테 주먹을 날리려구요. 전 슬쩍 피했죠. 그랬더니 그 주먹은 내가 아니라 쇠문으로 향했죠.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단말마 같은 비명이 딱 한 번 들렸어요.
그 일로 검사 아들 새끼를 비롯해 세 놈이 병원으로 실려갔죠. 근 한 달이 지난 뒤에야 검사 아들이 퇴원을 했어요. 그날 자기를 때렸던 애들을 찾아 한 명씩 자기가 맞은 것보다 더 많이 팼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렇게 영미와의 약속을 지켰어요. 그리고 학교를 그만뒀어요.
그만두던 날, 담임 선생님이 많이 아쉬워하더군요. 지난 모의고사에서 전국 1등을 했거든요. 그가 아쉬워한 것은 제가 아니라 그 1등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 선생님 귓가에 대고 말했어요.
“싫어요, 그리고 애들 데리고 모텔 그만 가세요. 당신 별명이 발정난 발바린 거 알죠?”
그랬더니, 한마디도 못하고 얼굴만 새빨개지더군요.
그 선생님은 원조 교제로 유명한 사람이었어요. 영미한테도 그것을 요구했다고 하더라구요.
이게 제가 우리나라에서 공부한 마지막이었어요. 그후로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했으니까요.
*****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오랜 시간 듣고만 있던 흑은 그녀의 예상과는 달리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우리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요? 최종 목표가 다르더라도 같이 갈 수 있는 곳까지는 서로 협력할 수도 있잖아요.”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당신도 결국 있는 자들에게 복수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 그렇게 하고 싶죠. 하지만 제겐 그럴 만한 힘이 없어요.”
그는 한참 뜸을 들이고 나서야 대답을 했다.
“힘이 없다구요? 그럼 레드칩을 맞은 사람을 죽인 이유가 뭐죠?”
“그건... 명령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당신의 명령 중 대전제는 지구의 종말을 막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드칩에 면죄부를 부여함으로써 모순이 된 경우입니다. 그것을 제로가 나름 계산하여 내린 결론입니다.”
“뭐라구요? 그럼 당신이 제로를 제어했던 게 아니라는 의미예요?”
“아직은요.”
수라는 지금 흑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제로가 그런 것까지 스스로 계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어쩌면 제로를 인간이 제어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예요?”
“믿든 안 믿든 그것은 당신의 선택일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면요?”
“그럴지도 모르죠. 그게 인간이니까요.”
“지금 이 얘기는 앞으로도 또 명령을 어기겠다는 말인가요?”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러면 정말 곤란해요. 결국 당신은 날 협박범으로 만들 셈이군요.”
“죽일 건가요?”
“아니요, 전 당신을 살릴 거예요. 그것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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