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임무 (2)
“허우대는 멀쩡하게 생겼는데 ... 오늘 아침에 존댓말은 밥에 말아먹었는지 갑자기 다가오더니 반말을 하는 거야. 아는 넘이 그러면 다 큰 녀석이 그러면 안 된다고 야단이라도 칠 텐데 아예 생판 모르는 넘이야.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났으면 예의란 개념은 머리에 자동으로 탑재되어 태어나는 거 아니었어? 이거 몸은 동방예의지국인데, 머리는 샛노란 서양물이 든 건지... 아니지 서양 애들도 이러지 않지 않아?”
그런데 한참 쫑알대던 신녀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입을 쫑긋 내밀었다.
“얘는 말도 안 하고 끊어버렸네. 조금 전에 뭐라고 하셨죠?”
그제야 신녀는 정직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학생 같아서... 그런데 아까 전화 안 왔는데요. 제가 눈썰미가 좀 있거든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그녀는 새초롬하게 입술을 모았다.
“아닙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나이가 어떻게...?”
“우리 만난 지 아직 1분도 안 됐는데... 그쪽은 이름보다 다른 게 더 궁금한가 봐요. 이왕 얘기하는 김에 우리 신체 사이즈부터 얘기해 볼까요? 전 가슴부터 얘기할 테니까 그쪽도 거기 사이즈 ...”
“실례했습니다. 전 김정직이라고 합니다.”
정직은 정신없이 날아드는 잔펀치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전, 강신녀에요. 반가워요. 언제까지 함께 일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신녀가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손을 먼저 내밀었다. 정직도 손을 내밀었다. 얼굴만큼이나 그녀의 손은 작았다. 하지만 그 손은 그녀의 싸늘한 말투에 비해 정말 따뜻했다.
신녀가 문자로 온 사람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를 듣고 나서 눈을 감고는 한참을 중얼중얼거렸다. 중얼거리면서 엄지와 검지, 중지 손가락을 서로 계속 문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일어나요,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가요.”
“네?”
“유세라 씨에 대해 알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맞아요.”
“그러니까 만나러 가야죠.”
“유세라 씨가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 있어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녀는 정직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러고는 일어나 주문하는 곳으로 갔다.
“뭐 드실래요?”
정직을 돌아보며 말했다.
“네, 저는 카라멜 마끼야또요.”
신녀는 카라멜 마끼야또 두 잔을 주문했다.
“카드 주세요.”
“네?”
“계산해야죠. 정직 씨를 만나는 일은 모두 공적인 일이라고 알려주셨는데요.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맞아요.”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신녀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남은 한 손으로는 가방을 챙겨 카페를 나섰다. 그러자 정직도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차는 어디에 있어요?”
“지하 3층요.”
그녀는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승강기가 열리자 그녀는 그보다 반 발자국 뒤를 따랐다. 그녀는 그가 차문을 열자, 옆자리에 탔다.
“카드 주세요.”
“네?”
“룸 예약해야 할 거 아니에요. 이런 건 제 돈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정말 거기에 있는 거예요?”
“무슨 의심이 이리 많으실까. 가보면 알 거 아니에요. 왜요? 내가 처음 본 당신에게 반해서 유혹이라도 할까봐 그러는 거예요?”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정직은 이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두 정신을 못 차리게 하다 보니 ‘그 여자가 거기에 있나?’ 하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신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그곳에 있다고 해도 룸을 예약하는 것은 또 뭐란 말인가. 그 여자를 예약한 룸으로 부르겠다는 소린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정직은 신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서쪽 하늘로 노을빛이 바알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예약한 30층 스위트룸으로 들어갔다. 신녀는 커텐을 닫고 가방에서 방울과 부채를 하나 꺼냈다. 방울을 흔들면서 부채를 들고 방 안에 있는 물건이나 벽을 한 번씩 두들렸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뭐라고 중얼중얼거렸다.
“아저씨, 누구야?”
조금 전까지 들었던 목소리가 아닌 전혀 다른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아저씨가 날 부른 거 아냐? 그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혹시 내가 왜 죽었는지 이유라도 알려줄지 알았더니, 이거 완전 실망이네.”
“혹시, 유세라 씨.”
“어머, 맞아, 맞아요. 정말 아저씨가 날 부른 거예요?”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폴짝 뛰어 침대에 올라가 베개를 등에 기댄 채 앉았다. 손만 뻗어서는 옆에 있던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여기 옆으로 와요.”
“아뇨, 괜찮아요.”
“아저씨, 제 스타일인긴 한데요. 그렇다고 보자마자 덮칠 만큼 야만적이진 않으니까, 여기 옆으로 와요. 옆에 와야 뭐든 얘기를 할 거 아니에요?”
정직은 신녀인지 세라인지 모르는 여자 옆으로 갔다. 그도 세라를 따라 베개를 등에 기댄 채 앉았다. 하지만 다리는 쭉 뻗은 신녀와 달리 다소곳하게 가슴 쪽으로 모았다.
“아저씨, 쫌 귀여운 거 같아요.
세라는 그 모습에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는 요즘 한창 뜨거운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엽기적인 살인 사건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을 보더니 그녀가 입술을 한쪽으로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정말 웃긴 데가 있어요. 저 범인에 대해 분노를 저렇게까지 쏟아낼 필요가 있어요? 겨우 두 사람밖에 안 죽였는데요.”
“겨우 두 사람이라니요, 한 사람은 서른여섯 번을, 또 한 사람은 열여섯 번을 찔렀다구요. 그것도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요. 그런데 죽인 이유가 뭔 줄 알아요?”
“몰라요.”
“그냥 눈이 마주쳤단 이유로. 정말 그것뿐이었어요.”
“그래도 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벌을 받잖아요. 열 명도 넘게 죽였는데 벌도 안 받는 사람한테는 분노도 하지 않으면서... 이런 사람에게만 분노를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니에요?”
“아니,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우리나라를 너무 헐렁하게 보는 거 아닙니까?”
“우리 아빠요.”
“네?”
“우리 아빠가 기업의 회장이거든요. 세계적 기업은 아닌데 이익이 제법 난대요. 그런데 그 이익이라는 게 말이에요. 사람을 쥐어짜서 생기는 것이거든요. 이건 제 얘기가 아니고 항상 아빠가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렇게 쥐어짠 돈으로 너가 지금까지 입고, 먹고, 쓴 거니까.. 그 사람들말고 나한테 감사해야 한다구요. 왜냐 내가 쥐어짰으니까. 이러면서 막 웃는 거예요.”
“그냥 하는 말이겠죠. 그래도 법이 있는데 법을 대놓고 어겼겠어요?”
“아빠가 늘 그랬는데... 안전 장치를 마련하는 비용을 그냥 하청업체에 준대요. 그게 더 싸게 먹힌다구요. 안전 장치를 마련한다고 사고를 완전히 줄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것저것 신경쓰느니 차라리 위험한 것은 하청업체에 주는 게 훨씬 이익이라는 거죠.
뭐 사회적 비난이야 잠깐 있겠지만, 법적인 문제는 다 하청업체의 몫이니까요. 그런데요, 안전 장치를 했으면 줄일 수 있는 사고를 안 줄인 거니까 우리 아빠가 죽인 거나 마찬가지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구 자꾸 말하는 거예요. 이거나 그거는 완전히 다른 거라 하는데 아저씨는 어때요? 난 정말 그렇게 다른지 잘 모르겠어요.”
“그럼 세라 씨라도 바꾸려고 노력하지 그랬어요?”
“내가, 왜요? 사람들도 관심이 없는데. 아무도 아빠를 비난하지 않아요. 심지어 정부에서는 잘한다고 상도 주던데요. 전 관종이거든요. 사람들이 관심 있는 거만 할 거예요. 제 SNS에 와 보세요. 어디에 ‘좋아요’가 많은지. 명품도 비싼 것일수록 ‘좋아요’가 많거든요.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음식 사진이에요. 제가 소고기를 좀 많이 좋아하거든요. 이것 때문에 제가 한몸매 하잖아요.”
갑자기 일어나서 거울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이 몸의 원래 주인 쫓아내고, 내가 이 몸으로 살아볼까 잠깐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얼굴은 이 정도면 꽤 쓸만 한 거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계속 노려보는 바람에 정직은 마지 못해 대답했다.
“네, 예뻐요.”
그렇게 대답을 하고 보니 정말 올망졸망하니 앙증맞게도 생겼다.
“뭐 얼굴은 의느님이 조금만 손보면 연예인 해도 될 정도인데, 문제는 이 몸이에요. 몸은 어떻게 늘릴 수도 없잖아요. 이건 아무리 명품으로 도배를 해도 태가 전혀 안 나는 몸뚱이에요. 명품 아동복을 입으면 좀 나으려나...”
거울을 보고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더니 옷이 불편하다며 욕실로 들어갔다. 그러더니 편안한 가운으로 갈아 입고 나왔다.
“와, 가슴이 장난 아니에요. 깜짝 놀랐어요. 이건 경차에 스포츠카 엔진을 단 꼴이라니까요. 어떻게 이런 몸에 이런 가슴일 수 있지? 한번 보실래요?”
“네? 아뇨.”
“보고 싶으면 언제라도 말씀하세요. 어차피 내 거도 아닌데요, 뭘. 정말 안 보실래요? 이럴 때 착한 기부나 한 번 해 보고 싶어서 그래요.”
말을 하고 나서 정직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쳐다보았다.
“알았어요, 그냥 농담한 거예요. 설마 내가 보여주겠어요? 알았다구요, 이제 그만 좀 해요. 자꾸 이러면 정말 미친 척하고 이 가운을 이 사람 앞에서 확 벗어던질 수도 있다구요.”
“지금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이 몸 주인한테 한 말이에요. 이 짜리몽땅 몸 주인이 한 번만 더 가슴 보여주겠다고 하면 당장 쫓아내겠다고 난리예요.”
“그러면 매일 소고기를 먹었던 거예요?”
“아마, 거의 그랬을 걸요. 아무리 좋은 것도 매일 먹으면 질리잖아요. 그래서 전 색다른 소고기 요리를 하는 곳은 거의 찾아가는 편이에요.
세계 맛집 투어. 이런 거 좋아하거든요. 일본은 점심 먹으러 이틀 걸러 한 번씩 갔다 와요. 유럽이나 미국은 한 달 정도 일정을 짜서 갔다 왔구요. 그런 세계적 맛집 사진이라도 올리면 정말 ‘좋아요’가 막 쏟아지거든요.”
“그럼, 그 돈은 다 아버지...”
“아니요, 처음에는 아버지 돈이었는데... 저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요. 광고비가 제법 돼요. 게다가 제가 한몸매 하잖아요. 이제는 아버지의 도움 없이도 살아갈 정도로 제법 벌고 있어요. 아마 아저씨보다 많이 벌걸요. 뭐 그만큼 쓰니까 남는 게 없긴 하지만요.”
가운을 입은 채로 다시 침실로 폴짝 뛰어 올라와서 이불 속으로 폭 들어왔다. 이번엔 이불을 목까지 덮고 누워버렸다.
“그런데 저 왜 죽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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