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인의 후예 - 비이사 (8)
신녀는 눈을 감고 뭔가를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온통 검은 장막만이 앞을 가렸다.
‘거기서 가져온 유골 때문일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그랬다면 그것부터 찾으려 했겠지. 그럼 무엇 때문일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조용히 그들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잠시만요, 옷 좀 갈아입고 나올게요.”
“지금 입고 계신 옷도 괜찮은데요. 그냥 가시죠.”
이상하게도 그들은 마치 신녀가 무엇을 할 것인지 이미 아는 것 같았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꺼내려는데 그 안에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둥근 종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어린아이들이 놀던 딱지였다. 그녀는 신발을 집는 척하면서 재빨리 그 위에 검지손가락 손톱으로 별 모양을 그렸다. 정직이라면 알아차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뭐하세요?”
“뭘 신을까 잠시 고민했어요.”
“빨리 아무거나 신으세요.”
신녀는 신발을 꺼냈다. 신녀가 앞장을 서고 그들이 뒤를 따랐다. 차량은 저 아래에 있었다. 한참 걸었다. 뒷좌석에 신녀를 가운데로 밀어넣고는 양옆으로 그들이 탔다. 이미 앞좌석에는 두 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도원 공동체로 가는 거예요?”
“가보시면 압니다.”
그들은 가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신녀를 태운 차량은 하늘교 도원 공동체 마을 안에 있는 도로로 들어갔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마을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벗어났다. 수 km를 더 가고 나서야 차량은 거의 도착한 듯 속도를 줄였다. 나무가 무성한 계곡으로 올라갔다.
도로의 마지막에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었다. 그 주위에는 나무를 모두 벤 것처럼 썰렁했다. 담은 자신의 키보다 두 배나 높아 보였다.
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철문이 덜컹덜컹 서서히 열렸다. 차량은 그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안은 훨씬 넓었다. 넓은 마당에는 2층짜리 건물이 덩그러니 있었다. 건물은 작지 않았다.
대충 보기에도 각 층은 족히 70~80평은 되는 것 같았다. 마당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바닥은 자갈을 깔아두어서 풀 한 포기 자라기 어려웠다.
차량은 문 앞에 이르러 섰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들은 그녀를 내려놓고 바로 돌아서 이곳을 떠났다. 신녀는 돌아가는 차량을 보았다. 정문 옆에 경비 초소와 그 곁에 2층짜리 작은 건물이 있었다.
신녀가 문 앞에 섰다. 초인종을 찾으려고 할 때, 문이 찰칵하고 저절로 열렸다. 신녀가 들어가자 하녀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인사를 했다.
“어서 오세요. 오늘 신녀님을 모실 시녀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신녀도 같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어쩌면 이곳에서 신들의 모임이 이루어지는 건가? 그런데 왜 이곳에 나를...’
하지만 머리는 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거짓말을 응징하기 위해 부른 것은 아니었다.
“타성님, 오셨습니다.”
“들여보내요.”
젊은 여자는 문을 열고 신녀를 들어가도록 했다. 거기에는 타성이 있었다. 타성은 하늘교 교회에서 첫날 만났던 중년의 여인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신녀 씨. 역시 당신은 그분 말씀대로 무녀가 맞았군요. 정말 절 감쪽같이 속였어요. 전 당신이 정말로 ** 전자 회장님의 따님인 줄 알았거든요.”
신녀는 아무 말없이 고개만 잠시 숙였다.
“여기 앉으세요. 차는 저번에 좋아하셨던 사프란으로 준비했는데... 어때요?”
“네, 감사합니다.”
타성이 책상이 달린 의자에서 일어나 손님용 탁자로 걸어 와서 앉았다. 타성이 앉고 나서야 신녀도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에 또 다른 하녀복을 입은 여자가 차를 가지고 왔다.
“그런데 듣자 하니 이제는 그 잘생긴 보디가드랑 같이 안 다니나 봐요. 전 그 사람도 같은 편인 줄 알았는데...”
그들은 아직 정직의 정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그녀는 되도록 침착하려고 애썼다.
“그때 그 사람은 더 이상 속이는 게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도망갔어요.”
“그렇군요.”
그녀는 하늘교에 입문하는 교회의 실질적 책임자였다. 도원 공동체에서는 본 적이 없었다.
“우리가 갈 거라는 것을 모르셨나 봐요? 처음에 많이 놀라셨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명색이 무녀신데... 하기사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고 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요?”
“사실 그런 것보다는 이곳 기운이 저보다 더 세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기만 오면 거의 안 보이거든요.”
“어머, 너무 솔직해서 당황스럽네요. 그럼, 당신이 하늘교에 온 이유는 뭐예요?”
그녀의 눈은 지금 당신은 이 질문에 답을 어떻게 하냐에 따라 당신의 운명이 결정될 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비이사를 보면서 저도 잘하면 하늘교의 후계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럴 수 있을지 알아보기 위해 온 거였어요.”
그녀의 입꼬리가 위로 날리듯 올라갔다.
‘미트라님은 정말 신녀의 이런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인가.’
그녀가 하늘교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하늘교보다는 신녀처럼 비이사를 보고 푹 빠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몸에서 나오는 형언할 수 없는 아우라 때문이었다. 손짓, 말투 하나하나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날부터 타성은 비이사를 보면서 무조건 똑같이 따라하려 했다. 그렇게 따라하다 보니 제법 비이사와 비슷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듣게 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비이사가 그녀를 불렀다.
마치 신의 간택을 받은 것만큼이나 기뻤다. 그날 바로 타성은 하늘교 교회의 실질적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최고의 단계인 신들의 모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신들의 모임에 갔던 첫날.
며칠 동안, 기다림과 설렘으로 그녀는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너무 오랜 설렘과 희망은 종종 실망감으로 돌아오는 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그랬다.
비이사는 어머니였다. 그런데 하늘교의 실질적 지배자는 어머니인 먀가 아니라 아들인 태양, 미트라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닮고자 했던 비이사의 아우라는 진실이 아닌 허깨비에 불과했던 셈이었다. 타성은 그날 엄청난 배신을 당한 것 같았다. 마치 보지 말았어야 할 진실을 마주한 것 같았다.
놀란 것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신들의 예배는 모두 나체로 진행되었다. 말이 예배였지, 정말 변태들이 벌이는 광란의 파티였다.
한 달에 한 번 진행되는 그 파티는 1박 2일 동안 진행되었다.
그들은 정말 자신들이 신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옷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신에게는 그저 성가신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했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과 욕망은 선한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신이기 때문이었다.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감정과 욕망은 타락한 것이지만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신의 욕망은 선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 욕망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너희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너희들도 반응을 보여야 한다. 신의 욕망을 받아들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그런 행복을 표현하는 것은 선한 일인 것이다.”
그는 항상 신들의 모임을 하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참여하는 여자들의 반응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이 가장 불만이었다.
그때 미트라는 바로 박대한 의원이었다. 물론 그 미트라가 국회 의원이라는 사실은 몇 달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런데 갑자기 비이사가 죽었다. 그 즈음에 두 명의 신이 더 죽었다. 비이사를 빼면 두 명은 나이가 많았다. 어쨌든 여덟 명의 신들 중에 무려 세 명이 죽었다.
이제 남은 신은 모두 다섯 명이었다. 그 중에 타성만 여자였다.
하늘교에서는 빨리 비이사를 대신할 새로운 얼굴 마담이 필요했다. 비이사와 가장 많이 닮은 타성이 유력했다.
그런데 일주일 전에 미트라였던 박대한 의원마저 갑자기 죽었다. 먀와 미트라가 사라진 하늘교는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이제 여덟 명의 신들 중에 네 명만이 남은 상태였다.
새로운 미트라는 남자 신들 중에 가장 젊은 박소한 의원이 되었다. 그는 전 미트라인 박대한 의원이 데리고 온 인물이었다.
그는 영악한 인물이었다. 게다가 남들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비이사의 죽음, 게다가 몰래 유기한 시체 두 구도 탈취당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신도들 사이에서도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일련의 사태는 하늘교를 세운 이래로 최대의 위기였다.
새로운 미트라는 이 위기의 파고를 넘기에는 타성으로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타성은 그저 비이사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지난 번 미트라는 도원 공동체에서 예배를 보는 모든 사람의 사진을 찍도록 했다. 그리고 그가 한눈에 찍은 사람이 바로 신녀였다. 신녀에 대해 타성의 얘기를 듣자마자 그는 바로 코웃음을 쳤다. 왜냐하면 **전자 혼외자라는 말은 거짓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거짓말에 타성마저 감쪽같이 속았다는 사실에 더 흥미를 갖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그녀가 무녀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타성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 사람이 무녀일 거예요. 그러니까 데려 오세요. 이 사람을 새로운 먀로 삼아야겠어요.”
미트라는 예지력이 남달랐다. 타성은 그가 예언을 할 때, 놀랄 때가 많았다. 이번에도 그는 신녀가 무녀라고 콕 집어 말하지 않았는가.
신녀를 먀로 삼으려고 했을 때, 타성은 많이 섭섭했었다. 박대한 의원이 있을 때만 해도 자신이 먀가 되는 것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그런데 박소한 의원은 자신을 볼 때마다 아쉬움을 감추지 않고 표현했었다.
“다 좋은데 아우라가 부족하단 말야.”
“제가 조금 더 노력하겠습니다.”
“어떻게 할 건데요?”
“그건...”
“그건 노력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
박소한 의원은 아우라라고 돌려서 말했지만, 실상은 그녀가 미덥지 못했다. 그녀는 좋게 말하면 순박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영악하지 못했다. 그런 인물이 하늘교를 이끈다는 것은 운전면허증이 없는 사람에게 운전을 맡기는 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충실한 부하라는 점에서는 그녀 만한 인물도 없었다. 그녀는 미트라를 신처럼 여기고 있었다.
지난 번에도 자신에게 줄을 선 국정원 요원을 동원해서 신녀가 무녀라는 것을 알아냈다. 타성에게는 마치 자신이 예지력으로 그것을 알아낸 것처럼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것에 전혀 의심을 품지 않았다. 미트라에게 그녀는 누구보다 이용하기 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신녀는 그렇게 쉬운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대담하게 하늘교에 들어와서 사기를 치려고 했다면 보통 인물은 아닐 것이다. 지금 하늘교는 아주 큰 위기에 처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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