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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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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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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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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DUMMY

이번에는 메이븐이 당황하여 방금 전 남궁연호가 그랬듯이 사레가 들려 콜록 거리며 물을 뿜었다.


"레이크웰 소협, 많이 놀랐죠?"


"나... 아니 역적 메이븐 티리얼의 데쓰나이트를 추적중이라고?"


"친척에다가 검술을 사사해 주신 스승님이라고 들었어요. 그래도 그분이 죽은 뒤에도 잠들지 못하고 활강시가 되어 돌아다니게 되셨는데 편히 영면에 드실 수 있게 소협도 힘을 보태줄 거라고 믿어요."


메이븐이 눈에 힘을 주고 겁을 주려는 듯이 당화련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말했다.


"당화련 아가씨, 나를 뭘로 보고. 당연히 동료들이 도와달라는데 도와줘야지요. 메이븐 티리얼을 발견하면 아가씨와 남궁바보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겠소."


뜨끔. 메이븐이 도망치려는 듯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려했다.


"어딜 갑자기 가는 거야 레이크웰 동생? 아까 밖에 레터오프너가 없어지게 하는 마법을 걸려는 미친년이 있어서 위험하다며."


남궁연호는 도대체 메이븐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점이 없는 게 꼭 베카의 남성버전 같았다.


하지만 당화련과 함께 맞은 비밀임무에 어저면 가장 큰 도움이 될지 모르는 조력자를 순순히 보내 줄 생각이 없는 남궁연호는, 다가와서 갑자기 친한 듯 메이븐의 뒷덞미를 잡고 도로 의자에 앉혔다.


다시 의자에 주저앉은 메이븐의 눈이 천장과 바닥, 벽에 걸린 롱소드 장식 등으로 분주하게 빙글 빙글 돌아다녔다.


"휴우... 어. 음... 그래서 황태자가 당화련 아가씨랑 남궁연호 저 바보와 맺은 계약이 메이븐 티리얼의 데쓰나이트, 아니 활강시를 제거하는 거라고?"


"그럼요. 사령술은 만인의 지탄을 받는 사술인걸요. 무사수행을 떠나온 저희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위업이에요. 잠들지 못한 불쌍한 망자가 강시로 변해 또 마기에 뇌수를 침범 당해 어디서 무슨 무고한 이들을 헤치고 다닐지..."


메이븐이 그의 추격자들 앞에서 스리슬쩍 물타기를 시도했다.


"아직 아무 소문도 안 들리는 걸 보면, 사실 그 데쓰나이트는 주인인 오필리아 하이멜이 죽자 어딘가에서 스스로 흩어져 버린 거 아닐까? 먼지처럼."


"그럴까요? 하긴 레이크웰은 메이븐 티리얼의 제자라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당신에게 접근해 감시하면 메이븐의 데쓰나이트가 등장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일주일 째 소식이 없어서 고민이 많아요."


"놈은 역적인데! 내가 그런 자와 연락을 주고받을 리 있어? 당연히 그 따위 놈은 더이상 스승도 아니야. 만에 하나라도 활강시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당화련 아가씨와 남궁연호 공자에게 이야기 해줄께. 친구들의 무사수행에 도움이 된다면 역적놈의 언데드 따위!"


메이븐의 일견 과격해 보이는 반응에 넌지시 협조할 것인지 확인해 보려던 당화련이 오히려 당황했다.


주먹을 허공에 내지르며 메이븐은 속으로 눈물을 머금고 자기 자신을 욕했다. 성신의 신전 대사제들도 깜빡 넘어갈 명연기였다.


"고마워요, 레이크웰 소협."


"뭘 당연한 거야. 무사수행 중에 그런 악독한 언데드를 처치하면 확실한 개인의 명성도 얻고 서방 세계에 동대륙 무인의 우수함을 알릴 수 있겠군. 훌륭한 판단이야."


"동대륙의 검이 우수한 건 당연하니까. 그건 언급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남궁연호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 한 마디 거들었다. 당화련이 사형의 헛소리는 일단 무시하고, 그녀가 서방대륙에 대해 그간 궁금했던 내용을 이참에 레이크웰에게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하나 궁금한 게 있어요. 듣기로는 황태자님과 경쟁하는, 반왕당파가 지지하는 황위계승권자는 제1황녀 가브리엘라 에스피온이라고 했어요. 맞나요? 그녀는 황궁에 있고 저희도 만나봤는데. 왜 황태자님은 그녀를 가만 놔두는 건가요?"


"그건..."


가브리엘라의 눈부신 황금빛 머릿결과 기사 아카데미에 다닐 때 조별 과제마다 대신 보고서를 작성한 안좋은 기억이 떠오른 메이븐의 얼굴이 어둡게 변했다.


공주는 그런 것을 하는 게 아니면서 가브리엘라가 옆에서 마검사가 되기 위한 마법연습과 검술 수련 삼매경에 빠져 있으면, 메이븐이 같은 주제에 대해 두 개의 서로 상반되는 답변서를 만들어서 하나에는 자신의 이름을 적고 다른 하나에는 가브리엘라 에스피온의 이름을 적었다.


메이븐이 두 부의 과제를 제작하면 가브리엘라가 이름만 써서 내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억울하면 다음 생에 메이븐도 왕족으로 태어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에반스가 이 관계를 질투해 메이븐을 가브리엘라로부터 떼어내 구원해 주었다.


"크흠. 타대륙 사람에게 이런 말하기 부끄럽지만, 에반스 그 녀석이... 좀 위험한 수준의 집착을 이복동생인 가브리엘라에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앗, 아아... 그런!"


당화련이 물컵을 놓쳐서 테이블에 물이 쏟아졌다. 당혹스러워하며 손수건으로 물을 닦아내며 정리하는 사이 남궁연호가 다리를 꼬고 거만하게 앉아 무릎 위에 깍지 낀 두 손을 올렸다.


"흥, 흔한 이야기로군. 동대륙 황실의 꼬인 족보에 비한다면야 진부한 스토리야. 역시 중원의 문화와 전통을 따라 서양 오랑캐들의 역사도 흘러가는가. 태초에 신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중원을 가운데 두고 만드셨으니 어쩔 수 없지."


"넌 어떻게 알고싶지 않은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까지 바보 엘프랑 똑같냐. 좀 닥쳐. 그리고 중화바보야! 지구는 둥글다니까!"


"지구가 둥글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떨어질 것 아니냐? 너야말로 바보냐. 이거 봐라."


남궁연호가 메이븐에게 화를 내며 장식용으로 찬장에 놓인 목각인형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 세워보였다가 다시 손바닥 밑에 거꾸로 세워 바닥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유려하게 땅에 충돌하기 전에 다시 인형을 낚아챈 남궁연호는 정말 한심하다는 듯이 메이븐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유사과학이!"


"건전한 상식이다."


당화련은 멱살을 붙잡고 숙녀의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며 뒹굴려는 듯 서로 역정을 내는 메이븐과 남궁연호를 무시하고,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깨달음을 얻은 듯 크게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메이븐 티리얼의 활강시를 처단하기 위해 저희를 거금을 들여 고용한 거로군요. 연적을 지워버리고 싶어하는 거에요. 가엷어라... 가브리엘라 에스피온 황녀님은 메이븐 티리얼 백작을 아꼈다고 들었어요."


"아니, 아끼지 않았어."


"예? 그걸 어떻게 아시죠?"


"사부님한테 들었거든."


그 순간 당화련의 방 밖에서 쿵쿵거리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예고도 노크도 없이 힘껏 열어젖혀졌다. 경첩이 과도한 충격에 비명을 토했고 안쪽 문손잡이가 벽에 부딪혀 귀청을 찢는 폭음을 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녹색 생머리를 흐트러뜨린 베카가 문을 열고 앞에 서있었다.


"하악, 하악! 레이크웰, 어차피 매일 밤 보는 뽀얀 우윳빛깔 등짝인데. 오늘만 심히 부끄러워 하는구나. 하악."


베카의 손에 들려있는 은빛의 손가락 만한 쇠붙이를 본 메이븐이 재빨리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침대 머리맡에 당화련이 놓아둔 그녀의 소검을 빼들고 베카를 겨누었다.


"다가오지 마라! 찌르겠다."


"하악, 하악! 이리 오너라. 너에겐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고, 어차피 입에는 재갈이 물려질 테니 묵비권은 자동으로 행사 된다. 네가 하는 말은 너에게 불리한 증언으로 작용될 수 있으니 아가리 여물어라."


입가에 거품만 좀 물면 완벽한 월간등짝탐구생활 표지모델로 쓰일 수 있는 모습인 베카를 당화련이 다그쳤다.


"바바 언니, 그 쯤 하세요. 그런 장난하면 못 써요."


"장난 아닌데?"


"뭐, 뭐요? 장난이 아니면 더 나빠요. 본인이 싫다는데 억지로 그런 걸 해버리고 하면, 레이크웰 소협이 얼마나 충격 받으셨겠어요. 파르찬 루이스 대장은 고향 루이스 영지에 사랑하는 약혼녀가 있데요. 그 분은 동성애자가 아니에요."


"하지만!"


"하지만 또 뭐요?"


애초부터 파르찬 루이스가 이 일에 동참하는가 마는가는 베카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너도 이미 상상하고 있었잖아, 레이크웰을 묶어놓고 마음껏 유린하는 모습을. 사실은 누구보다 궁금하면서 입은 아닌 척 할 뿐이야. 다들 그래."


"관심법 쓰는 것도 아니면서 그런 소리 하지말아요. 실은 조금...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메이븐이 침대 건너편에 웅크리고 있다가 빼꼼 고개를 내밀고 티테이블 앞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베카를 막아섰던 당당한 자세가 어느틈에 흐트러진 당화련을 흘겨보았다.


"당화련 아가씨, 나 잠시 실망할 뻔 했어."


"아차! 미안해요, 레이크웰 소협. 바바 경! 그래요.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에요. 남편은 하나의 인격체이자 동반자이니 당신의 소유물이나 함부로 아무때나 정서적, 신체적으로 학대해도 좋은 장난감이 아니라구요."


"크윽, 갑자기 정론을 말하다니. 비겁하다."


"눈이 부셔..."


남궁연호도 그의 사매의 등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후광이 비치는 것을 깨닫고 저 도모르게 소림사의 승려처럼 합장했다.

메이븐이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눈물 젖은 목소리로 허공에 소검을 휘두르며 부르짖었다.


"남자들이여 일어나라. 잡힌 물고기에게는 미끼를 주지 않는 건 여자도 마찬가지이다. 언제까지 애인과 아내에게 당하고 살텐가?"


"밤중에 뭔 개소리야! 닥쳐."


"미친놈이 잘 자는데 지랄이야."


"재수가 없으려니까, 아휴."


곳곳에서 메이븐을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당화련의 등뒤에서 비치는 후광에 미내 기세를 잃은 베카가 레터오프너를 얌전히 십대소녀의 손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앞으로 두 번 다시 메이븐에게 강제로 그가 싫어하는 신체적 유사성행위를 시도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쳇."


베카가 기분이 상해 팔짱을 끼고 외면하는 사이 메이븐은 한 쪽 무릎을 꿇고 당화련 앞에 앉아 눈을 감고 고개 숙였다.


"당화련 아가씨... 미천한 레이크웰은 오늘부터 아가씨를 빛화련으로 부르려하오니 부디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허락하니까 이제 정말 잘거니 바바 경을 데리고 가보세요. 잊지 말고 서양식 비도는 내일 주시구요."


"거듭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소인, 오늘의 구명지은을 잊지 않고 갚겠나이다."


졸음이 밀려오는지 당화련이 하품을 하며 엉망이된 방을 정리하고 그녀의 사형인 남궁연호에게도 축객령을 내렸다.

방문 앞에서 돌아가는 베카와 메이븐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당화련이 말했다.


"레이크웰 소협은 나중에 죽으면 몸에서 사리가 나오시지 않을까요? 보살이 되실 것 같네요."


메이븐이 슬금슬금 자기 배를 손으로 북북 긁고있는 아저씨 같은 남궁연호를 곁눈질하며 화답했다.


"빛화련님도 고생이.. 만만치 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상하셔서 티를 내지 못하시지만."


"우리 존재 화이팅이에요."


"네."


그날 밤 메이븐은 생각했다. 세상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이루어진다. 바보들과 그 바보들의 뒤치닥 거리는 하는 사람.


그리고 바보들은 다시 두 종류로 나뉘는데 자신이 바보인 줄 아는 바보와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르는 바보이다. 정말 문제는 그 중 자신이 바보인 줄 모르는 바보이다.


뒤치닥 거리를 하는 사람도 두 부류로 나뉘는데 그건 뒤치닥 거리를 하고 싶어서 해주는 사람과 해주기 싫은데 해야 하는 사람이다.


별이 빛나는 봄 밤이었다.



*



베카는 아침부터 메이븐을 볶고 있었다. 별동대 대장으로서 그녀가 맡은 행정업무를 메이븐이 대신 확인해서 결제하는 중이었다. 무기고에 있는 장비의 수가 서류와 일치하는지 매주 금요일마다 조사하는 역할도 파르찬이 베카에게 위임하고 다시 베카가 메이븐에게 위임해버렸다.


"첩보 들어온 거 있어? 이야기 좀 해봐, 부관."


밀린 서류에 이미 지나간 지난주와 그 전주의 일자를 기입해 소급해서 서명하며 메이븐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베네딕트 남작인 이슬라 베네딕트가 본진이 개털이 났는데도 항복하지 않고 있다는데? 파르찬이 평원에서 대체 왕당파 제1기사단이 반왕당파인 베네딕트 남작의 군대와 어떤 꼴로 맞붙고 있는지 확인해달래."


"누가 확인해?"


"응, 니가."


메이븐이 혹시나 오해가 생길까 싶어 정확하게 손에 들고있는 깃펜으로 베카를 지목했다. 양 손 검지를 방안 여기저리 향하며 빙빙 돌리던 베카카 터무늬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황망하게 자기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나? 그러니까 레이크웰 너보고 대신 가라는 거잖아?"


"그게 왜 그렇게 돼?"


메이븐이 화나서 서류철을 탁 덮어 버리며 잉크통에 도로 깃펜을 담갔다. 팔짱을 끼고 베카가 제 때 결제하지 않고 미뤄둔 서류폭탄의 수령을 거부하는 듯 그 자세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맞잖아. 내가 정찰할 능력이나 안목이 어디 있어? 파르찬이 나에게 시켰다는 건, 곧 내가 너한테 떠넘길 걸 아니까 너보고 가보라는 거야."


"...씁."


부정할 수 없어진 메이븐이 욕지거리를 했다.


'거기 있을 우리 편은 또 얼마나 개판이길래 이슬라 베네딕트 남작이 싹 정리하고 돌아와 본인의 남작령을 탈환하겠다는 여유까지 부리는 거야.'


"휴, 그럼 잠깐만. 떠나게 되었으니 이번에야말로 그 전에 스텔라한테 그 동안 못 부친 편지를 마저 써야해서."


메이븐이 관자놀이를 마사지하며 말하자. 베카가 소리쳤다.


"야! 너 누가 누구한테 제 때 해야할 일을 안하고 내일의 자기자신에게 미룬다는 거야. 임마, 레이크웰! 너도 똑같잖아."


"아무리 그래도 나는 남에게 떠넘기진 않잖아! 내가 왜 '바바'라는 글자로 서명해야 하는데? 니 서명을 연습하는 내 심정도 알아줘."


"쳇."


베카의 앙칼진 고함을 받아친 메이븐이 그 동안 여행중에 벌어진 갖갖이 사건들을 머리를 끙끙 싸매며 편지에 정리해 작성했다. 거의 책 반권 분량에 해당하는 두꺼운 종이 뭉치가 차츰 메이븐의 곁에 쌓였다.


한 번 종이 위에 펜을 가져다대자 멈추지 않고 쭉 이어서 이야기를 술술 써내는 메이븐이 신기했는지, 아니면 심심해서 방해하고 싶어졌는지 베카가 다가와 툭 깃펜을 쥔 손을 건드렸다.


잉크가 번지며 편지 한 장을 망치고 말았다.


"뭐하는 짓이야!"


메이븐이 비명을 지르든가 말든가 베카는 신경써줄 마음이 없었다. 그간 못쓴 편지까지 몰아서 적은 편지가 수북히 편지봉투에 넣어지길 고대하며 쌓여있는 곳에 다가간 베카가 하나씩 빼내 읽어보며 검사했다.


"야야, 좀 더 정성들여서 써야 할 거 아냐. 그러다 또 브레이크 고장난 마차마냥 안 서게 될라."


미간을 좁히고 깐깐한 편집자처럼 오탈자와 정성없이 흔한 문구로 채워진 내용 없는 문장들을 지적하며 베카가 잔소리했다. 그녀도 나름 인기극장의 주연급 배우라 좋은 문장이며 진심성이 보이는 글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안목은 있었다.


"어떻게 쓰라고? 뭐... 하나뿐인 사랑하는 스텔라에게?"


전후 감수성 결핍 증후군에 걸린 메이븐이 대뇌를 거치지 않은 문장을 서슴없이 뱉었다.


"아니 그러며어언! 난 뭐가돼는데에! 안돼! 야, 너는 나랑 뭐 그냥 잠시 전선에서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뭐, 막 엔조이하는 관계냐. 니가 그런 쓸데없는 하나뿐인 뭐시기 저시기 운운하니까 하프오크 성녀님도 로맨스가 있는 줄 착각하시는 거 아냐."


'시발, 어쩌라고 그럼.'


메이븐이 베카가 망쳐놓은 애꿎은 편지지를 손으로 구겨 북북 찢어 조각내 버렸다. 베카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조금 풀리는 듯 했다.

악전고투 끝에 진정성 있되, 너무 추근대지 않고, 연인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을 만큼 다정하지만, 그렇다고 무신경하거나 아예 친딸에게 보내는 편지만큼 아저씨 스럽지도 않은 있어보이면서도 알고 보면 아무 내용도 없는 글로 채워진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편지에 담겼다.


편지들의 작은 언덕을 보며 초록머리의 미녀, 베카가 혀를 내둘렀다.


"워후, 이렇게 쓸데 없이 정성들인 불쏘시개는 오랜만인걸?"


"아카데미 시절에 날림으로 쓰던 가브리엘라 왕녀 대필 과제 이후 이런 자괴감 만발하고 머리만 굴린 글을 적은 건 오랜만이야."


"좋았단 거네? 옛 추억도 떠올리고."


베카가 코딱지를 파며 말했다. 메이븐은 득도한 경지에 다다랐기에 눈을 감고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좋아. 이제 빛화련 아가씨와 남궁시렁궁시렁 형씨를 데리고 나가자."


"어딜 가는데?"


"정찰. 파르찬이 가라잖아. 딱 좋네. 아직 정오도 안 됐고. 서두르면 좋은 목을 잡아서 싸움구경을... 아니 시야가 탁 트인 감제고지에서 전투의 향방을 가늠해 볼 수 있겠어."


"너 혼자 갔다 오면 어때?"


베카가 안락의자에 몸을 던지며 물었다. 메이븐은 어린 딸을 다그치는 아버지처럼 자상하게 제안했다.


"바바, 긍정적으로 사고해보렴. 네가 밖으로 나오지 않아 내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지? 그저 밖에 나가서 화창한 햇살을 느끼고 불어오는 바람에 머릿결을 맡기는 거야. 네가 굳이 남겠다면 난 그것을 강제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


"그만둬. 어머니 같잖아. 갈테니까 그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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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0 0 -
»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1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7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09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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