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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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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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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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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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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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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죄수의 딜레마 (2)

DUMMY

아직 동이트고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이었다. 동편 하늘은 불그스름하게 밝아왔고 그 밑으로 짧게 깍은 남청색 머리의 소년이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베에에카아아!"


황도의 협곡 앞, 굳게 잠겨있는 소극장 문을 두드리면서 소년이 아직 단잠에 빠져있는 일대의 주민들에게 민폐를 끼쳤다. 공연시작 시간은 멀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회를 치는 수탉처럼 사람들의 귀를 폭행하는 소년은 그러건 말건 계속 억울함에 사무쳐 고함질렀다.


"베에카아아! 니 녀석이지!"


메이븐의 손에는 검은빛 불길한 오러를 줄기줄기 내뿜는, 37살인 메이븐 티리얼의 얼굴이 그려진 수배 벽보가 들려있었다. 훼손시 엄중처벌 한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반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처음 보이는 벽보를 뜯어왔다.

수배지에는 단순 신고포상금 50골드, 체포에 결정적 공헌시 500골드, 잡아오거나 죽여올 시 2000골드 등 다채로운 유인책이 쓰여있었다.



[데쓰나이트 주의보,

내용: 소드마스터 메이븐 티리얼의 시체로 만들어진 상급언데드.

위험도: A-급

보상: 죽일 시 2000골드, 체포/사살을 위한 단서 제공시 공헌도에 따라 50-500골드 차등지급.

비고: 흑마법사가 만들어낸 저주받은 마물, 사람의 시체를 먹는다고 하므로 발견시 즉시 신고바람, 이지를 가지고 있는지 불분명. 메이븐 티리얼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음.]



수도기사단에서 메이븐 티리얼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소년으로 몸이 어려진 것이나 소드오러를 못써 나약해진 점은 파악하지 못했기에 수배된 존재가 평민소년 레이크웰과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긴 힘들 것이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는 듯 메이븐보다 20cm는 더 커 보이는 어깨가 벌어진 황도의 협곡 스태프가 잠긴 문을 열고 나왔다. 문틈으로 흘깃 보앗을 때, 그의 가슴께에도 오지 않는 야리야리한 미소년이 소란의 주범이란 걸 알고 그는 방심한 듯 어깨를 풀며 하품했다.


"아가야. 베카 양이 무슨 니 친구니? 너 같은 찌질한 스토커를 한 두 번 본 게 아니라 좋은 말로 안 돌아갈 건 아는데. 아직 어린 친구인 것 같아서 내 특별히..."


"넌 뭐야! 이 대머리가."


메이븐의 심한 말에 덩치가 험악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년을 노려보았다. 그가 소매를 걷어붙이는 사이 메이븐이 차올린 오른발이 정확히 그의 사타구니를 가로질러 중요 부위를 가격했다.


"아직 다섯 가닥 남았.... 끄허어."


대머리가 낭심을 부여잡고 그 자리에 허물어지자 메이븐이 무릎꿇고 부들부들 떠는 그의 머리를 오른손으로 밀어 옆으로 치우고 박력넘치게 내부로 진입했다.


"야, 베카 나와! 너 깨어있는 거 다 알거든!"


메이븐이 우렁차게 소리지르자 이번에는 십수명의 남자스태프들이 몰려나왔다. 그들은 중요한 부위를 부여잡고 거품을 문 대머리 덩치를 보더니 이를 갈았다.


"아직 장가도 못 간 모리츠의 알을 깨다니. 뭐하는 꼬마냐?"


"어차피 쓰지도 못할 것, 쳇. 배신자를 찾아왔다. 산채로 넘겨라."


메이븐 역시 십여명의 다 큰 성인남성들을 앞에 두고 한치의 물러섬 없이 이를 갈며 답했다. 대표로 보이는 중년의 미남자가 부스스한 금발을 정리하며 메이븐에게 되물었다.


"무슨 사정인데 이 난리인가?"


"말 할 수 없는 깊은 사정이다."


"사정이라니 그런 말을! 설마 베카 양과?"


옆에 있던 턱이 각진 키가 작은 젊은 청년이 충격을 받은 듯 가슴을 부여잡으며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 메이븐을 바라보았다.


"아, 너 님의 더러운 마음 속 깊은 곳은 알고 싶지 않아요. 하 참, 이 새끼들은 누가 그 일상생활 불가녀 동료 아니랄까봐."


메이븐은 미스릴 에스토크와 소드브레이커, 행낭 등을 챙기고 이반의 저택을 나와 여기까지 오며 보았던 광경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머리가 피가 쏠리는 것 같았다. 메이븐 티리얼의 데쓰나이트를 퇴마한다고 새벽부터 고위 성직자들과 어디서 구해왔는지 동대륙의 퇴마사들까지 성안에 쫙 깔려 있었다.

아직 오필리아 하이멜 저택을 현장보존도 다 이뤄지지 않았고, 그녀의 연구자료는 메이븐이 태워버렸다. 오필리아의 조수인 그레이시 윈스턴은 아직 체포되지도 않았으니, 메이븐이 바보가 아닌 한 연구자료를 읽어 본 베카에게 심증이 쏠렸다. 성난 메이븐과 십여명의 극단 남자스태프들이 대치 중일 때, 천장 위로부터 베카의 가녀린 미성이 새어나왔다.


"모르는 일이야! 결백해. 동네 사람들, 여기 미친개에 물린 소년이 미녀를 핍박한다. 구해줘요. 얘 좀 말려봐요."


"베카! 뭐가 결백하다는 거야! 아직 뭐 때문에 온지도 말 안했어."


"아차차."


메이븐이 천장을 보면서 제 발이 저려서 결백운운한 베카에게 따끔하게 일침을 날린 순간 서로 눈짓을 보낸 십여명의 스태프들이 일제히 메이븐에게 달려들었다. '이 당돌한 미소년 꼬맹이를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는 듯 보이던 극단 주인은 메이븐이 능숙하게 그를 잡으려는 사람들의 손짓을 빠져나가자 생각을 바꿨다.


메이븐은 가볍게 앞으로 뛰며 제일 앞에 다가오던 사람의 얼굴에 라이트훅을 날렸고, 제일 앞사람이 다리가 풀려 헤롱거리는 사이 의자를 집어들어 두번째 사람의 허리에 내리찍었다.


'개싸움이로군.'


두 명이 당하자 독기가 오른 나머지 아홉명이 이번에는 동시에 달려들었다. 도망다니며 부러진 나무의자 다리를 검처럼 붙잡고 접근하는 사람을 때리는 메이븐과 그를 쫓는 아홉명의 사내들도 소극장 손님대기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태의 원흉인 베카가 허름한 평상복을 입은 채 퉁퉁 부은 얼굴로 위에서 내려왔다.


"흑흑, 저 소년이 날 팔아넘겨서 어제 흑마법사에게 죽을 뻔 했잖아요."


메이븐이 얄미운 베카의 연기에 열불이 치밀어서 빠르게 찌르기로 주위 남자들을 물러서게 만들고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 어디서 피해자인 척이야!"


"아 글쎄 왜! 난 모른다니까. 배 까줄까? 칼 들고와서 째! 째라고!"


베카가 메이븐과 싸우는 대신 상의를 들추려는 듯 허리띠를 풀자, 당황한 메이븐이 기겁해서 멈춰섰다. 동작이 굳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황도의 협곡에서 일하는 짐꾼 하나가 뒤에서 달려들어 메이븐의 목을 붙잡았다.


"잡았다!"


"으왁! 악! 놔! 놓라고."


버둥대는 메이븐을 몸 좋은 스태프 네 명이 더 달려들어 각자 팔과 다리를 나누어 붙잡고 들어올렸다. 땅에서 발이 떨어진 메이븐이 버둥거렸지만 쪽수에는 장사가 없었다.

그대로 사람들은 메이븐을 바깥으로 던져버리고, 십여명이 달려들어 자근자근 먼지가 날 때까지 밟아주었다. 이른새벽 난데없이 깨어난 짜증과, 먼저 번에 2세 계획에 큰 차질이 생겨버린 모리츠란 동료의 복수였다.

두 손으로 급소인 머리와 얼굴을 보호하려 감싸고 여전히 입만 산 메이븐이 소리질렀다.


"아아악! 베카, 너 진짜 두고봐!"


퉤하고 문 밖으로 침을 뱉은 베카가 메이븐을 향해 혀를 내밀었다.


"푸하하, 두고보자는 놈 치고 무서운 놈 없더라."


메이븐은 산발한 거지꼴이 되어서, 곧 그가 들고온 에스토크며 소드브레이커며 봇짐들과 함께 오거리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치밀어오르는 화와 얻어맞은 고통을 가라앉히려고 그는 그대로 드러누워 일출을 보았다.



*



한편 베카는 이제 차분해진 마음으로, 메이븐을 처단하고 돌아온 사람들에게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키가 작은 주걱턱의 남자가 특히 그런 베카의 반응에 헤롱거리며 손을 흔들었다.


'쳇, 머리도 좋아. 놈이 너무 일찍 들통나는 바람에 메이븐의 비밀엄수 사례금은 못받았네. 그래도 녀석을 흠씬 두들겨 패줬으니 됐지 뭐.'


십수명의 남자 동료들에게 보이던 천사같던 표정은 지워버리고 악마도 울고갈 사악한 미소를 지은 그녀는 잠에서 깬 김에 침실 머리맡의 다음 공연 예정작 대본을 꺼내 읽었다.



[베르미온의 멸망: 악의 기사, 메이븐 티리얼에게 멸망당한 슬픈 왕국의 이야기]



베카가 희열에 젖어 메이븐 티리얼의 간계로 영토가 사분되고 각 왕국이 메이븐 티리얼에게 각개 격파 당한 무고한 나라의 전설을 읽었다. 그 왕국의 막내공주 역할이 그녀의 몫이었다.


"아아, 간만에 마음에 드는 수작이야!"


레이크웰, 아니 메이븐 티리얼 백작이 역모혐의로 처형당한지 아직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황실의 뒷구멍을 빨아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어용작가들은 이미 그를 천하의 악역으로 연출한 주옥 같은 신작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베르미온의 멸망은 황도의 협곡에서 공연이 결정될 만큼 뺴어난 비극작품이었다.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골라든 베카는 막내공주 헬렌 베르미온에게 감정을 이입하며, 연기 전략을 구상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자 아쉬운 마음을 잠시 뒤로하고 대본을 내려놓은 베카가 문을 열었다. 그녀와 꼭 닮은 그녀의 동생 베니가 손에 봉투를 들고 하품을 했다.


"편지 왔어. 기사단에서 온 것도 있더라."


기사단이라는 말에 '벌써 신고보상금이 온 건가'하고 잔뜩 기대에 젖어 편지봉투를 뜯어 읽는 베카의 얼굴이 웃는 채로 굳었다.


"베카 언니? 왜, 무슨 편진데?"


고소한 듯 메이븐을 비웃던 베카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하더니 울듯이 엉망이 되었다.


"어떤 시발 새끼야! 엉엉, 베니야. 언니 좀 살려줘. 빈민가 대표 명의 피해보상청구서와 기사단 피의자 출석 요구서? 피해금액을 보전해도 날 어떻게든 법원에 세우겠다는데. 어떡해? 합의보려면 정신적 피해랑 이런 거 저런 거 덧붙는다는데? 맙소사 누가 그 난리 속에 날 알아 본거야."


"진정해 언니 변재해야 하는 금액이 얼마인데 그래?"


베카가 말없이 우물쭈물해하다 편지를 뒤집어 베니에게 보여주었다.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왼쪽 소매에 닦았다. 콧물이 묻어나왔다.


"14만 골드? 이게 진짜야?"


"소시민은 평생 만져보지도 못할 돈을 어떻게 하란 거야. 베니, 나 돈 좀..."


"누구세요?"


베카가 충격 받고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베니, 너마저..."


"언니 강물은 봄이라 얼지 않았데요. 어제 언니가 밤새 이야기한 레이크웰 씨는 딴 여자한테 도망 못가게 잡아다 잘 숨겨서 못 나가게 한 뒤 먹여살릴테니, 걱정하지 말고 형기를 살고 돌아오세요. 만기출소하시면 형부는 성인이 되어있겠지요?"


"야 베니! 하나 뿐인 내 동생! 너 되게 낯설다."


베니가 두 팔을 얼굴 앞에 들어올리더니 떨어지라는 듯 눈물콧물 범벅이 된 채 그녀를 안으려는 베카를 밀었다.


"안 빌려드려요."


베니의 단호함에 질린 베카가 그녀 방으로 돌아와 급히 드렁크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



베카가 도주하기 위해 짐을 급한대로 싸들고 투핸디드소드를 등에 메고 창문을 타넘고 나갔다. 황도 서문을 향해 이어진 샛길로 접어들자 어둠 속에서 시커먼 그림자가 일어나더니 발을 허리높이까지 들어올려 벽을 찍었다.


쿵!


사람의 발과 벽이 부딪힌 거라고 여겨지지 않는 묵직한 울림이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시나 여배우 양반?"


"뭐야?"


베카는 그 형체가 메이븐일거라 생각했는데 가녀린 여인의 목소리였다. 백금빛으로 희미하게 반짝이는 화려한 여성용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건물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형체의 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소드오러를 몸에 둘러 강화할 때처럼, 눈에서 번쩍이는 빛은 사냥감을 보는 암호랑이의 차가운 눈빛 같았다.


"베카. 황도의 협곡의 여배우 자매 중 언니. 어제 빈민촌에서 발생한 대규모 기물파손 사건의 범인. 맞지?"


"누구... 세요?"


기세에서 밀린 베카가 분노조절을 서둘러 실시하고 공손하게 되물었다.


"나는 너를 쫓고 있는 제2기사단의 수장인 일리오네 핼버디아다. 공식적으로는."


"공식적으로는 이라니요?"


일리오네가 건물의 그림자로부터 완전히 나와 골목길을 가득 메우는 존재감을 뽐내며 베카의 정면을 막아섰다. 베카는 소드마스터가 내뿜는 살기에 질려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이지 못하고 들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일리오네가 스릉, 검집에 들어있던 그녀의 붉그스름한 시미터를 뽑아들었다. 마법적으로 예기가 강화된 소드마스터의 애검, 피에라브라스가 베카를 압박했다. 베카가 투핸디드소드에 두 손을 하늘로 들어올렸다.


"일리오네 핼버디아? 가만, 설마 소드마스터 일리오네 핼버디아?"


"맞아, 공식적으로는."


기세에서 밀린 베카가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사이, 제2기사단의 제식 갑옷을 입고 잔근육이 발달한 건강한 미녀인 일리오네 헬버디아가 감정 한 줌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서서히 돌로 된, 황도의 서문으로 통하는 샛길 바닥을 밟고 거리를 좁혀왔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어둠의 두 번째 자매이다."


번쩍, 어느새 머리 위로 들어올려진 일리오네의 시미터가 베카의 이마를 향해 내리그어졌다.



*



메이븐은 처량하게 밝아오는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다 옷을 털며 일어났다. 늦기 전에 메리에게 들러 사례금을 전해주고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생도 시절 동기인 황태자 에반스 에스피온과 함께 술취해서 술집에서 건달들에게 시비를 걸고 패싸움 한 이후로 이렇게 다수에게 개처럼 맞아본 건 오랜만이었다.

24살에 소드마스터에 오른 이후 근 13년간 경험해 보긴 처음이었다. 울고 싶은건지 시원하게 웃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채 산발한 소년이 쿡쿡대자 행인들이 피해갔다.


"엄마, 저 형 이상해. 혼자 하늘보며 웃어."


"저쪽 보지마! 모르는 척 해. 그냥 지나가는 거야."


메이븐은 착한 꼬마아이를 향해 윙크해주고,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에스토크를 허리에 찬 채 성신의 신전으로 향했다.

메이븐이 성신의 신전을 향해 힘없이 걸어가다보니 어느 틈에 입구에 도착했다.

마침 그곳에서 견습신관복을 입은 더벅머리의 소년 하나가 성신의 신전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딘가 의기소침해 보이는 소년이었는데, 메이븐의 겉보기 나이인 16살과 비슷해 보였다.


소년은 손에 든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침부터 열심히 일하는 사제를 보고 제국의 미래가 밝다며 기뻐하던 메이븐은 마주 걸어오는 소년이 앞에 이르자 그가 뚫어져라 보고 있던 게 다름아닌 자신의 수배 몽타주임을 깨닫고 흠칫 멈춰섰다.


그러다 이상하다는 듯한 소년의 시선을 받고 아무렇지 않은 척 태연하게 걸었다.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변화와 짧게 자르고 남청색으로 변한 머리카락 덕에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마나 한 줌 없는 신체는 어떤 탐색마법에도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애시당초 데쓰나이트도 아니고 호문클루스다. 신관의 시선 따위야.'


신관 소년이 메이븐으로부터 고개를 돌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쳇, 재수없어. 잘 생겼잖아. 꼭 역적 메이븐 같네."


메이븐은 아무렇지 않게 소년을 지나쳐 신전 입구로 들어갔다. 뒤에서 소년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내 생각이 틀렸나? 놈이 살아났다면 분명 우리 사랑스런 스텔라 성녀님을 뵈러 신전에 들릴 텐데... 데쓰나이트의 마수로부터 성녀님을 내가 지켜드려야 해."


스텔라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목소리가 부끄러운 듯 살짝 떨려왔다. 메이븐은 자신이 태연하게 왼손과 왼발을 동시에 내딛고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할 채 신전 입구를 통과해 걸어갔다.


'세넓취다: 세상은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 테이먼 지크문드 할아범의 말은 진리였구나.'


황궁이 있는 방향으로 메이븐은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 방향 외무부 집무실에 새벽일찍 출근해 간밤의 사고소식을 듣던 외무장관은 등에 소름이 돋았다. 괴상한 걸음걸이와 불순한 눈빛을 한 메이븐을 위병들은 붙잡을까하다 말았다.

식은땀을 흘리며, 메이븐이 성신의 신전 안으로 진입하자 아침 구보를 뛰는 완벽한 삼각어깨의 남녀사제들이 연병장에 둥글게 모여앉아 단체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신이시여! 사악한 데쓰나이트의 행방을 가르쳐주소서."


가장 상급자로 보이는 여자사제가 일어나 먼저 기도문을 읊었다.


"암흑의 마나 탐색마법. [으앙 쥬금]!"


"데쓰나이트의 은신처를 알려주소서. [으앙 쥬금]!"


메이븐은 저들 역시 수도에 나타난 상급언데드를 퇴치하려 기도한다는 것을 꺠닫고 빠르게 지나치려 오른손과 오른발을, 왼손과 왼발을 어색하게 함께 움직였다.


"이상하다. 고장났나? 자꾸 신전 안쪽을 가르키네."


뜨끔. 메이븐 생각에 신성마법의 명칭은 둘째치고 [으앙 쥬금]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 사실을 알리 없는 사제들은 삼삼오오 모여 기도의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데쓰나이트가 이미 황도를 빠져나간 건 아닌지 의논했다.


"때려서 고쳐볼까?"


우두둑하고 여사제 다음 번으로 선임으로 보이는 남자사제가 손가락뼈를 풀자 다른 사제들이 바들바들 떨며 한 번만 살려달라고 허리를 굽신거렸다.


"메리, 여기 돈! 그리고 면접보러 오래. 왜 기사단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고 싶은지, 너를 어째서 채용해야 하는지 잘 고민해. 이틀 뒤 해가 밝으면 제2기사단 본부에 가서 부단장 이반 군터 경을 찾아."


"메이... 아니 레이크웰님! 감사드려요."


평민 소녀가 그녀보다 어려보이고, 먼지가 묻은 허름한 차림의 소년에게 거듭 존대하는 이상한 광경이 연출되자 병실에 있던 사제가 그쪽을 돌아보았다. 주의를 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메이븐은 재빨리 손사래치고 메튜 경의 쾌유를 빈 뒤 치료사령부에서 빠져나왔다.


메이븐은 성신의 신전 입구를 나와 황도의 동문 방향으로 길을 정하고 뒷골목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서둘러 황도를 벗어나야 했다.


'근데 뭔가 중요한 걸 잊은 것 같단 말야... 어제도 그렇고.'


찝찝한 기분 속에 그의 발은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포석이 깔린 황도의 잘 정비된 길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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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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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1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9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2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9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30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8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3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7 0 18쪽
»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6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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