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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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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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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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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글자수 :
304,602

작성
18.07.0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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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7쪽

저승에서 반품처리 (1)

DUMMY

37살의 메이븐 티리얼은 죽는다고 생각되자 눈을 감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거쳐온 시간들이 선명하게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공신이었다. 어째서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황제가 양위할 시기에 이르자 태자는 빠르게 개국공신들을 하나씩 숙청하기 시작했다. 권력의 비대함과 아직 약한 왕권을 지키기 위해 유력가를 반역도로 몰아 제거하고 재산을 흡수했다.


한 숨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어느새 날이 밝아 최후의 만찬이 나왔다. 요청했던 대로 간소한 구운 닭고기와 채소였다. 요리사와 함께 들어온 것은 뜻밖에도 그의 오랜 친우이자 그를 죽음으로 몬 황태자 에번스 에스피온이었다.


분노조차 일지 않았다. 고문으로 망가진 손은 포크와 나이프를 놓치고 결국 보다 못한 황태자가 간수에게 대신 닭고기를 잘라주도록 했다.


"메이븐, 할 말이 있나?"


"제가 사병 철폐안을 통과시켰을 때, 그 대가로 제가 태자님의 측근은 못되어도 태자님의 세력에 굽히고 들어간 줄 압니다. 왜 저를 여기까지 모셨습니까."


"첫째로는 당연히 자네가 역모에 연루되었기 때문이고..."


있지도 않은 혐의인 것을 뻔히 알면서 주위의 눈을 의식하여 황태자가 운을 띄웠다. 황태자의 밝은 금빛의 눈이 광채를 띄었다. 그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풍성한 금발과 수려하고 남자다운 얼굴이 위엄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자네는 뜻밖에 문관으로서도 지나치게 유능했네. 어떤 역모든 자네가 가담하면 성공해 버릴거야. 일찍 두각을 나타내 황제폐화를 도와 개국공신이 되버린 자네의 숙명이랄까. 우리가 고등아카데미부터 함께 수학한 동기이니 자네를 등용하려 했어. 하지만 자네를 견제할 방법이 없더군. 여자관계도 깨끗하고 뭇 사람들의 구심점이 될만큼 인망이 높아 결국 내게 쓸데없는 충언을 해대는 역할까지 맡았지."


충언. 그것이 문제다. 대신들은 황태자의 포악하고 냉혈한 성질을 두려워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목이 날아가지 않을 인물, 황제폐하의 총애를 받으며 황태자와 아카데미에서 함께 수학한 메이븐에게 직언을 담당하게 했다.


그것이 점점 대-황태자 연합, 관료파의 중추로 메이븐을 내몰게 되었다.


"저도 한 때 친구로서 엇나가는 친구에게 이제 피를 그만 흘려도 좋을 때라고 말하려 했을 뿐입니다."


"아니야. 아직 황권은 미약해. 개국에 참여한 공신들이 파이를 나눠가지려 하며 정통성에 언제든 의문이 제기되고, 공로에 비해 상이 보잘것 없다며 반란도 일어나지."


왕국으로부터 제국으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복전쟁을 치르고 황궁 내에서도 암투로 피가 흘렀다.


메이븐은 태자를 노려보았다.


"기회주의자 황태자님. 기억하십니까? 태자님은 바른 길만 걷겠다고, 또 본인보다 더 능력있는 조카가 장성하면 황위를 양보하겠다고 제게 공언했습니다. 개국전쟁만 수습하면 본래 황위를 받아야 헀을 조카를 도로 황제로 세우고 황태자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저를 설득해 수하로 들였습니다."


"메이븐, 메이븐, 내가 유일하게 귀기울이고 내게 쓴소리하던 친구야."


30대의 황태자는 메이븐의 설교에 질린 듯 고개를 내젓고 왼손을 들어 이만 떠나겠다는 신호를 주었다.


황태자는 메이븐의 최후의 만찬을 보며 잔에 붉은 와인을 한 잔 따라주었다.

메이븐 티리얼의 눈에 그 액체는 피처럼 붉었다.

황태자가 작별인사를 남기고 몸을 돌렸다.


"잘 가게."



단두대로 향하는 길은 마나를 금제하는 무쇠 족쇄가 발목에 매인 체 맨발로 걸어가야 했다. 제국에 단 여섯사람 뿐인 소드마스터 중 한 명 이건만 장기간 수감생활과 고문, 심적 고통으로 몸은 쇠약해 족쇄가 제법 무겁게 느껴졌다.


초췌한 안색의 메이븐 티리얼은 그러나 황도 최고의 미남이라는 아명에 걸맞게 비루한 수형복과 정돈되지 않은 수염, 행색에도 구경나온 여인들이 비명을 지르게 했다.


"티리얼 백작님! 저에요. 이쪽을 한 번 봐주세요."


하지만 일중독자로 살아와 결혼은 커녕 연애도 아카데미 시절 이후 한 적 없는 메이븐 티리얼은 자조적으로 웃을 뿐이었다. 눈을 들어 멀리 손을 흔드는 하늘빛 신비로운 머리를 곱게 늘어뜨리고 마치 연회장에 가듯 가슴골이 깊게 패인 드레스를 입은 저 어린 귀족여인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귀족은 맞나? 귀족처럼 꾸민 유복한 평민 가정의 영애이거나, 어쩌면 그날만 화사한 옷을 입은 고급윤락가의 여성일지도.'


대신 공개처형 구경꾼들의 가장 앞줄에 선 귀족들이 서로 건네는 말이 띄엄띄엄 지친 귀에 들려왔다.


"...성공할 수 있는 역모를 계획할 위치도 능력도 되었네. 최근 사사건건 부딪혔잖아. 옳은 결정을 하신 거야. 너무 날뛰었던 거지."


"전란기에 황태자를 위해 가장 앞에서 급진파를 사지로 몬 게 티리얼 백작이잖아. 그런 그도 급진파가 사라진 다음 중도파인 자신 차례가 올 줄 몰랐던 거야."


아니, 티리얼은 중도파도 숙청되리란 걸 알았다. 그게 황태자와 그의 무언의 약속이었다. 다만 친구의 손에 붙잡혀 자기까지 처형장에 끌려갈 줄 몰랐던 거지.


"인생 진짜... 허무하구나."


뼈빠지게 일하느라 결혼도 못하고 자식도 없는데 그게 이렇게 지금에서야 후회될 줄은 몰랐다. 제국과 결혼했다고 여기며 황제폐하와 친구인 황태자를 보필했거늘 이리 토사구팽 당할 줄은 몰랐다.


"다시 태어나면 그 때는 원없이 여자들을 후리고 다닐테다. 씁."


하지 않던 거친 욕설까지 내뱉으며 티리얼은 암울한 그의 심정을 배반하듯 맑은 하늘과 온화한 햇살을 보았다.


단두대가 눈에 들어왔고 경비병과 근위기사단, 사형집행인이 눈에 들었다. 곧 경비병들이 만든 반원형 공간 너머로 공개처형을 구경하러 나온 황도의 소시민들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부분이 젊은 여자들이었다.


"아니, 미친 내 기사단 놈들은 어디 갔어. 왜 모르는 여자들만 나온 거야."


그가 한 때 단장으로 있던 제2기사단이 티리얼의 체포와 처형에 항의하다 소란을 우려해 황명으로 근신처분이 내려진 사실을 모르는 티리얼은 옛 부하들이 떠나갔다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하긴 줄을 잘 서야지. 앞날이 창창한 놈들인데 그렇게 기회를 쫓아 잘 먹고 잘살아라, 썅.'


솔직히 그럴 줄은 몰라서 아쉬웠다.


"일리오네! 이반! 맥스웰! 포울러!"


혹시나 해서 메이븐은 수위를 둘러보며 후임 기사단장과 선임기사들 이름을 외쳤다.


아무 대답도 없다.


눈물을 삼키는 티리얼을 앞에 두고 다시 관중들의 소란이 일었다.


"일리오네가 어떤 썅년이야!"


"일리오네면 제2기사단 단장아닌가?"


"그년이 감히 우리 메이븐 티리얼 백작님을..."


아, 일리오네 너 안 오길 잘했구나. 메이븐은 진심으로 일리오네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이렇게 외롭게 단두대에 오른 메이븐은 단두대 나무바닥에 칼로 새긴 듯 쓰여진 글을 보았다. 제국의 대마법사였던 카이얌의 글이었다. 카이얌은 메이븐이 죽기 일주일 전 쓸쓸히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살아있는한 맹렬히 싸우라. 살아있음이 소용있을 때까지.

맹렬하게 저항했다는 증거를 남겨라. - 카이얌



나무바닥에 남겨진 말을 보고 메이븐은 헛웃음이 나왔다. 당장 죽는 마당에 멋을 부릴 생각이 든단 말인가. 곧 목이 잘려 피를 경동맥에서 뿜고, 똥오줌이 흘러나올 텐데 이런 글이 무슨 소용인가.


'천국에서 보자거나 나는 결백하다거나 그래야지. 하여튼 이 노인장도 괴짜였다니까.'


메이븐은 짧은 단두대까지 가는 길을 걷자 황도의 여인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이건 아직 십대로 보이는 앳된 목소리의 소녀가 메이븐에게 손을 흔들었다. 누가보면 여동생인줄 알겠다. 모르는 여자애다.


"안돼요! 죽이지마요. 죽이기에는 너무 잘생겼어요."


'꼬마야, 내가 일찍 결혼했으면 내 딸이 니 나이였을 거다. 니 부모님은 니가 이런 데 온 거 알고 계시니.'


이번에는 어딘가 퇴폐적으로 보이는 어깨와 무릎 밑이 드러난 검은 드레스를 입은 20대 후반 정도의 아름다운 검은머리 여성이 소리질렀다.


"메이븐 이 쪽을 봐줘요. 죽으며 머리는 내가 가져갈께요! 내가 곱게 향기나는 기름을 발라 단장하고 일주일 동안 울어드릴께요. 이 쪽을 봐주세요! 저에요, 엘리나."


엘리나가 누군지 모른다. 메이븐은 그래도 마지막에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 주길 바래 단두대 왼편에 선 엘리나라는 여성을 보며 미소지어주었다.


메이븐은 모르는 여인들이 그 뒤로 손수건을 흔들고 비명 지르다 실신했다.


유일한 예외는 저 구석에서 카이얌 학파의 문양이 자수로 들어간 검은 로브를 입고 음흉하게 눈을 빛내며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보는 두 여자마법사 뿐이었다. 그건 분명 그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유일무이한 여성인 일리오네 경이 위험한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보여주는 눈빛이었다.


'저 두 마법사만 왜 저렇게 조용하지? 먹이를 노리는 맹금 같군. 마법사가 언제부터 그렇게 한가한 직업인가 공개처형이나 구경하러 오게. 마법사들도 결국 사람이었군. 하긴 기사도 색을 밝히는데...'


사형집행인은 질린건지 속이 불편한건지 그 광경을 보며 혀를 차다가 메이븐을 거칠게 단두대의 고정틀 위에 무릎꿇게 하고 나무덮개를 덮었다.


'나쁘지 않지 않았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저런 여인들이 내게 보여주는 사랑에 보답하며 살았어도.'


메이븐은 다시 태어난다면 난봉꾼으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평생 공을 들인 일이 허무하게 자신의 죽음과 가문의 불명예로 끝나니 누군가의 위로를 받고 싶다는 그런 감정이 심하다


잘난 면상으로 태어나 복받은 외모 한 번 빛을 못보고 달콤한 로맨스 없이 전쟁터에서 20대를 보내고 30대를 숙청의 피바람 속에 살았다.


마지막은 화사하게 가자. 메이븐은 여인들에게 환하게 웃고 사슬에 묶인 양 손을 들어 흔들어 주었다. 여자들이 붉고 흰 장미를 메이븐의 목이 길게 삐져나온 단두대 앞 반원형 공터에 던져주었다.


사형집행인과 근위기사 하나가 다가와 단두대의 틀에 두 팔과 머리가 단단히 고정된 것을 연이어 확인했다. 황실의 특사가 두루마리를 펴더니 무감각하게 메이븐의 역모혐의와 횡령 등 터무니없는 죄목을 열거했고, 칼날을 고정하던 밧줄이 끊어졌다.


단두대 앞의 빈 광장에 메이븐의 머리가 굴렀다. 하늘과 땅이 교차되고 자신을 엘리나라고 소개했던 흑발의 여성이 달려나와 피흘리는 그의 머리를 가져가려 했다.


경비병들이 여인이 뛰어들기 전에 붙잡자 엘리나라던 검은 드레스의 여인이 발버둥쳤다.


'정말 나를 아나? 누군지 기억 못해서 미안해.'


메이븐은 태평하고 평화롭게 시야가 서서히 좁아지는 가운데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메이븐은 혀를 움직였다. 하지만 허파가 없었기 때문에 말은 나오지 않았다.


'살아있는 한 맹렬히 싸우라. 그리고 맹렬하게 살았다 증거를 남기라. 살아있음이 쓸모있는 한.'


메이븐은 웃었다.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원망도 분노도 한도 무의미했다.



*



영혼 상태로는 몸이 반투명했고 아무 힘도 없었다. 메이븐은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려 보이며 줄을 서있다가 자신의 차례가 되자 빈 저승사자 상담창구에 가서 앉았다.


유황냄새가 시큼했다. 썩은 달걀내 같기도 하여 결코 좋은 냄새는 아니었다. 힘없고 무기력한 영혼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만 하루 동안 줄을 서서 대기했는데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았지만 지치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에 입에는 길다란 시거를 꺼내 문 여자악마가 굵고 빙글빙글 휘어진 이마에 난 갈색 두 뿔 중 오른쪽 것을 매만지며 서류를 들어 보았다.


손으로 자주 만지는지 그 오른편 뿔의 휘어진 곳은 맨들맨들거렸다. 하급저승사자 '레이샤'라고 친절하게 직함과 이름이 들어간 명패가 상담창구에 올려져 있었다.


"저승사자 레이샤다. 바쁘니까 빨리 처리하자 이름이 메이븐 티리얼이지? 에스피온 제국 백작이고, 제국이 건국되기 전 왕국시절인 에스피온 왕국력 292년 출생."


"맞습니다."


메이븐은 처음보는 뿔달린 악마의 모습에 감탄했다. 그러던 말든 메이븐의 앞에 앉은 흰자 없는 통째로 새까만 눈을 가진 여자 악마는 고민에 잠겨 몇번이고 오른손의 서류와 왼손에 든 두껍고 불길해 보이는 책을 번갈아 살펴보았다.


이럴리가 없다는 듯, 메이븐이 보기에 분명 인간의 살가죽을 무두질해 만들었을 거라 보이는 불길한 책을 앞뒤로 넘겼다.


"저승사자님, 뭔가 잘못 되었습니까?"


"닥쳐 봐. 고민중이다."


메이븐은 그녀가 겉보기에 멋드러진 갈색 뿔이 돋아난 보라색 장발의 20대의 여자이지만 인간으로 치면 그럴 뿐 악마이기에 한참 연장자리라 생각했다. 몇 살인지 모르지만 몰라도 몇 백살은 되었겠지. 궁금했지만 나이를 물어보면 뚜드려 맞을 것 같다는 불길한 직감이 들어 관두었다.

메이븐은 초면의 신비로운 악마가 반말해도 얌전히 앉아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잠깐 이 새끼가 왜 왔지?'


그 앞에서 저승사자는 혼란에 빠졌다. 명계의 명부록에는 메이븐 티리얼이 45살에 비소로 음독자살 한다고 적혀있었다.


"언제, 몇 살에 죽었다고?"


"에스피온 제국력 9년, 37살입니다."


저승사자 레이샤는 사실 말단이라 업무에 익숙하지 않았다. 처음보는 현상이라 상급자에게 보고해야 하나 머리를 글쩍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끝없이 늘어선 망자의 줄은 계속 늘어나고 있기에 조금만 더하다간 정시퇴근은 글러먹게 된다.


레이샤는 초조했다. 다시 명부록을 봐도 그렇다.


메이븐 티리얼, 제국력 17년 45살, 비소로 음독자살.


"왜지? 너 잠깐만 착오가 있는 거 같은데, 일찍 온다고 돌려보내주고 그런 건 없다."


"왜요?"


얼빠진 메이븐의 영혼의 대답에 레이샤가 입술을 핥으며 되물었다.


"너 황제한테 건의해서 제국 세우려고 전쟁에서 군대에 학도병 징집한 적 있지?"


"네."


"개새끼, 애들이 뭘 안다고 전쟁터로 떠밀어? 지옥에 가야겠네. 너도 걔네들 일찍 들어왔다고 집에 돌려보내주지 않았잖아. 같은 거야."


'젠장, 설득력이... 있어.'


메이븐은 입술을 깨물었다. 착하게 살 걸 그랬다. 문관으로도 잔뼈가 굵은 메이븐은 그의 뒤로 끝도 없이 늘어선 힘없이 축 늘어진 늙거나 어린아이들로 가득한 반투명하고 음울한 영혼의 행렬을 보았다.


곳곳에 갑옷을 입거나 보급형 장창을 쥔 군인들이 보였다. 저승사자가 그를 싫어할만 했다. 전쟁을 일으킨 주역 중 하나이고 그 때 짧게는 10년 간 계속된 제국을 건국하는 전쟁에서 10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나 설마 10년 동안 저승사자들에게 업무폭탄을 던져주다 저승에 온건가?'


메이븐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등골이 쎄했다. 영혼이라 추위를 모르는데 오한도 들었다.


'전쟁에서 지휘관으로 사지에 내몬 숫자가 몇명이더라.'


슬금슬금 메이븐이 레이샤라는 이름의 악마를 곁눈질하는 사이, 레이샤가 쾅하고 인간의 가죽으로 표지로 만들어진 책을 덮었다. 레이샤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메이븐을 노려보았다.


메이븐이 딱히 저승에 온 뒤 저승사자들에게 잘못한 건 없는데 움찔했다. 그도 저 책 안에 자신의 일생이 담겨있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저승에서 삶을 곱게 보내긴 글렀군. 원한에 사무친 눈이 분명해.'


"메이븐 이랬지? 너 이 새끼 보니까..."


레이샤가 고문용으로 사용가능한 시거를 빼내 손에 들고 메이븐의 영혼을 지지려고 하는 순간 레이샤를 찾아온 두 발로 일어선 염소처럼 생긴 악마가 레이샤의 어깨를 두드렸다.


"레이샤, 잠깐 나 좀 보자. 저거 반품처리 하래."


세상을 잃은 표정으로 레이샤가 사람만한 크기의 이족보행 염소를 돌아보았다.


"아니 왜? 이놈 두고두고 조지겠다고 수배된 놈이잖아."


'아, 망했다. 이를테면 악성 민원인 리스트 같은 건가?'


문관일 적 리스트에 오른 귀족이 민원을 넣으면 부하에게 넘길 것 없이 메이븐이 바로 직행해 접대해야 했다.


'근데 마침 그 악성민원인이 어느 날 신입노예로 들어왔단 거잖아?'


메이븐은 눈앞이 왠걸 컴컴해졌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볕들날 없는 인생이라니. 저승사자들이 두고두고 조지기로 결정한 신세라니.


"다음 생에는 일중독자가 아니라 평범하고 상냥하고 이웃들을 위하는 사람이 되겠어요. 한 번만 봐주세요."


레이샤가 못 볼 걸 봤다는 듯 쏘아붙였다.


"뭐래, 이 병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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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0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7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6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4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8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1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1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7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1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7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09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5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1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3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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