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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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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99
추천수 :
60
글자수 :
304,602

작성
18.07.2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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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DUMMY

[베니 양에게,


...언니 분은 아직까지 큰 사고는 치지않고 여행하고 있습니다. 헤이스팅스 성에 온 뒤로 다친 사람도 죽은 사람도 없으니까요. 성에 오기 전에는 어땠냐구요? 설마 숲 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제가 성추행 당할 뻔 한 일 외에는.


베니 양도 엘프이시죠? 베카가 엘프라고 이야기하고 저의 세상은 무너져내렸습니다. 환상이란 허망하고, 저는 억울하고 심란한 마음에 일주일간 잠을 설쳤습니다. 엘프에 대해 남자들은 으레 희망과 로망을 가지거든요. 그간 언니 분의 엘프 망신 때문에 남 몰래 눈물 흘리셨을 베니 양의 나날이 떠올라, 저 역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하지만 의심치 마세요. 베니 양만은 이야기책에 나오는 슬기롭고 가녀리며 이해심 많은데 상냥하고 아름답기까지한 엘프라는 사실을 저는 압니다.


...아참 그리고 저 때문에 장가가 아니라 시집을 가게 되었다던 모리츠는 잘 지내고 있습니까?

쾌유하기를 기원하고 미안하다고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꿈에 모리츠가 의사선생님 앞에 절망하는 장면이 등장했지만, 기분 탓이겠지요.

모든 누명을 풀고 황도로 돌아가 베니 양을 만날 수 있는 순간을 꿈 꿉니다.


- 베니 양의 행복을 기원하며, 레이크웰]



*



메이븐이 갈증은 나는데 물 한모금만 마셔도 토할 듯한 메쓱거림을 견디며 일어났다. 눈을 뜨자 침대에 누운 초록빛 생머리의 미녀가 잠든 채 코딱지를 파고 있었다. 옆자리에 누워있던 메이븐이 움직이며 이불이 들춰지자, 그녀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던 얼굴을 찌푸리더니 익숙하게 손가락을 빼서 침대 밑을 쓱 훑었다.

손가락 끝이 깨끗해졌다.


'뭐야? 코파는 엘프잖아.'


"아아아아악!"


"끼아아아아악!"


메이븐이 소리지르자 베카도 일어나 메이븐을 손가락질 하며 마주 소리지르기 시작했다.


"미친년아! 이제 어떡할건데?"


"귀걸이!"


메이븐은 이해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떠올린 베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베카가 메이븐을 때려서 방 밖으로 내쫓았다. 힘으로 베카를 이길 수 없는 메이븐이 이불에 둘둘 말려 방 앞 복도에 내던져지자 문 앞에서 처량하게 몸을 이불로 가리고 소리질렀다.


"바바! 여긴 내 방이야."


메이븐의 고함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닥치고 있어봐.'라는 베카의 고함이 들려오고 메이븐은 술에 골아떨어진 그보다 먼저 일어나 하루를 시작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여자 손님들이 웃으며 얼굴을 붉히고 메이븐의 드러난 어깨와 장딴지를 흘깃거리며 지나쳤고, 남자 손님들은 메이븐은 의미심장하게 웃어젖혔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지난 밤 식당에서 식사를 했던 이들 몇몇은 간밤의 소란을 기억하고, 격려삼아 한두마디 하며 메이븐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이렇게 되면 잘못은 무조건 남자에게 있는 거야. 자네는 무릎꿇고 문 앞에 앉아 있어. 처분을 기다려야지."


"내가 피해자잖아!"


"그건 레이크웰, 너의 일방적인 주장이지."


차가운 현실을 직시하라는 취지로 메이븐의 어깨를 두드려 준 인생선배, 간밤 스스로 한스라고 소개했던 배틀액스를 가진 용병이 인자하게 설명했다.


"피의자 진술은 담당 기사님과 판사님께 하라구."


버터를 바른 호밀빵을 들고 층계를 올라 온 다른 사람이 하품을 하며 거들었다.


"이게 나라냐!"


메이븐이 더 이상의 수치심을 견디지 못하고 그가 배정 받은 방의 문을 다시 발로 쿵쿵 걷어찼다.


"바바, 애초에 니 방은 건너편이잖아. 열어 봐. 최소한 옷은 좀 꺼내서 입자."


"으앙, 나 이제 죽었다. 술김에 했어. 일리오네 경이 날 죽이러 오고있을 거야. 어떡해! 레이크웰 너 어떻게 책임질거야?"


"미친년아. 책임지긴 뭘 책임져? 니가 책임져야지. 수도에 있을 일리오네가 어떻게 여기서 벌어진 일을 안단거야? 그보다 최소한 옷이라도 던져줘. 이러고 복도에 서있으란 거냐."


"일단 내 옷부터 가져와. 아, 여기 있구나. 어제 이 방으로 곧장 왔나보네."


"그래, 근데 니 옷말고 내 옷도 좀."


"쓰레기가 입었던 옷은 더러워서 방금 다 창문밖으로 던졌는데?"


"야!"


기겁한 메이븐이 이불이 벗겨지지 않게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 여관문을 열고 나갔다. 흙더미 속에 나뒹구는 신발부터 찾아서 신었다. 그리고 바지, 상의, 속옷 순서로 집어들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을 가린 채 도로 달려들어왔다.

사람들이 비웃는 모습에 메이븐은 3일을 묶기로 했던 예정을 취소하고 오늘 아침 당장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건 악몽이야.'


진정이 된 베카가 문을 열어주자, 이불을 옆구리에 낀 흙투성이 옷을 입은 메이븐이 무서운 눈으로 베카를 노려보며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옷을 입은 베카는 새카만 색으로 물든 채 작은 조각들로 부서져서 그녀의 손바닥 위에 놓인 귀걸이를 보며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안녕. 나의 인생."


"귀걸이 귀한 거였냐? 내가 실수로 밟았나 보네. 저런, 장하다 지난 밤의 취한 나."


"레이크웰! 너 진짜 이럴거야. 자세한 건 서에 가서 읊을 준비나 해. 나 진지하다고."


"서에 가서 뭘 읊으란 거야."


메이븐이 발끈하며 부서진 귀걸이 조각을 살폈다. 비싼 보석 같지는 않은데, 새카만 것이 흑요석이 아니고 묘한 귀걸이였다. 베카가 저렇게 울상을 지으니 지난밤에 그가 실수로 밟아서 부서뜨린 건 아닌지 양심의 가책이 들었다.

그러나 말려들면 마치 피해자인 그가 악역으로 몰릴 순간이라, 뻔뻔하게 메이븐이 소리쳤다.


"니 잘못 자업자득이잖아. 그리고 일리오네가 어떻게 2주일 거리를 가로질러서 여기서 가명으로 벌어진 일을 알겠어?"


진실을 말할까 고민하던 베카가 부서진 귀걸이 조각을 상의 포켓에 넣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절망의 숨을 내쉬었다.


"윽 그건... 하아, 술이 원수지. 메이븐. 소드마스터의 습격에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해?"


"간단하군."


메이븐이 왜 그런 쉬운 질문을 던지냐는 듯 의아하게 베카를 바라보았다. 속이 울렁거릴만큼 술냄새가 지독했다.


"정말? 뭔데에."


"소름돋으니 콧소리 내지 마라. 같은 소드마스터가 되는 거다."


베카는 찰나간의 희망이 짓밟히자 더 무섭게 메이븐의 멱살을 부여잡고 흔들었다. 기껏 방법이라고 꺼낸 이야기가 비현실적인 판타지다.


"그게 말이 되냐!"


"왜 말이 안돼? 내가 있다면 가능하지. 일리오네도 내가 특훈으로 소드마스터로 키웠고, 스텔라도 내가 업어주고 먹어주고 재워주며 소드마스터급 전사로 성장시켰다."


물론 두 가지 사례 모두 10년의 시간과 고된 특훈이 들어갔다. 그러니 베카로서는 당장 한 달 뒤 소드마스터가 그녀를 회썰러 오는데 특훈에 돌입한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건 아니었다.

베카도 메이븐도 그 사실을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므로 멍청한 대화가 이어졌다.


메이븐의 말에 혹한 베카가 우물쭈물 대다 멱살을 풀고 바닥에 내려놓은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 막 여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실전이야말로 최고의 훈련이라며 버티라고 한 쓰레기는 아니지?"


"...어, 아마도."


확신이 없는 메이븐이 베카의 눈을 피하며 천장과 창문을 살폈다. 화창한 봄날이다. 밖에서 수련을 하면 땀과 흙 사이를 구르기 딱 좋은 시절인 것이다.


"야, 레이크웰 너 잘못한 것도 있겠다 그 대신 내 검술도 지도해줘. 한 달내로 소드마스터가 습격해도 살아남을 수 있도록."


"싫어."


"왜? 잘 키운 제자 하나 소드오러 안 부럽다. 이런 격언도 몰라? 너 또 오우거랑 전투하면 어쩔거야? 소드오러도 못 쓰잖아. 내 치마자락 부여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버려두고 간다."


"안 돼. 그래도 내 마음은 안 바뀌어."


"그러면 그 대신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널 완벽한 방탕아로 만들어줄께."


"뭐?"


드디어 혹한 메이븐이 방탕아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 베카를 보았다.


"말 그대로야. 도박하는 법, 마약하는 법, 사창굴에서 안전하게 즐기는 법 뭐든 노하우를 전수해 줄께. 내가 그런 건 잘 알아."


"정말?"


말로만 제국 제일의 방탕아가 되는 것을 꿈이라고 했지 아직까지 사건에 쫓기느라 실천으로 옮기지 못한 메이븐이 베카의 제안에 혹해서 진심인지 물었다.

황도의 번화한 유흥가와 붙어있는 황도의 협곡에서 성인 여성계층을 노린 로맨스물을 연기한 베카의 경력과 평소 그녀의 품행을 보면 도움이 되긴 할 것이다.

어차피 남은 인생 7년 8개월, 불꽃처럼 살다가 갈거라면, 열심히 배운 검술을 남길 제자 하나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마침내 결심한 메이븐이 양 팔을 팔짱끼고 말했다.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일단 지금 팔굽혀펴기 50회, 스쿼트 50회 실시."


"후후, 그러면 메이븐 너도 아침마다 팔굽혀펴기 50회, 스쿼트 50회 실시. 익숙해지면 횟수를 늘리자."


"뭐야? 내가 왜? 난 스승인데?"


스승이 지시한 내용을 그대로 다시 스승에게 지시하는 베카의 망언에 머릿속이 아득해진 메이븐이 팔짱을 풀고 물었다.


"방탕아가 되려면 필수코스야. 밤을 새서 술마시고 도박하는데 기초체력이 중요하거든."


"그게 방탕아 인생이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너처럼 멍청한 줄 아냐?"


베카는 일리오네가 공격하면 너도 도와야 한다고 솔직히 이야기하려다가 영 부실한 메이븐의 미소년형 어깨와 팔뚝을 살피며 이야기했다.


"그것도 몰라? 원래 남자는 말벅지와 복근이야. 어깨는 기본이지. 어제 보니까 야리야리해서 영 힘도 못쓰고 여자한테 인기도 없겠더라. 얼굴만 반반하면 뭐해. 방탕아의 기본은 복근과 하체에서 시작되는 거야."


베카의 옳은 듯 옳지 않은 듯한 난봉꾼에 대한 지론에 메이븐은 관자놀이를 엄지로 마사지했다.


"으르릉! 컹! 컹컹!"


"어머, 레이크웰, 너 미쳤니?"


"아니, 네가 한창 개소리 하길래. 나도 소통이란 걸 좀 해볼까 개의 언어를 연습했어."


"어떻게 그런 심한 소리를 해!"


베카가 빽하고 실망했다는 눈으로 메이븐을 보았다. 울듯이 울먹이는 눈에 또 찔끔 양심이 찔린 메이븐이 결국 포기하고 팔굽혀펴기 할 공간을 만들었다.


"휴, 아무튼 실시. 나도 할테니까 불평은 그만한다."



*



새까만 소드브레이커가 어둠속에서 튀어나와 주방에서 흥얼거리며 설겆이를 하던 여관주인의 부드러운 목 살집에 붙여졌다.


콧노래를 흥얼거린던 살찐 중년남성인 여관주인은 차가운 쇠의 감촉에 분주히 접시를 닦던 손을 멈췄다.


"쉿, 왜 바바와 내가 같은 방에 있었지?"


서늘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제야 소드브레이커의 주인이 누군지 깨달은 여관주인은 양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싸울 의사가 없음을 보였다. 지난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도 못하면서 여자 칼잡이 둘을 제압한 방년 18살 레이크웰이다.


"으음, 밤중에 깨어난 엘프 양이 니 방문을 열어 달라길래 마스터키로 열어주었어. 명백히 실수였더군. 이 낡은 여관이 간밤에 얼마나 삐걱이던..."


"목숨이 두 개인가? 이 상황에서 장난이라니."


신경질이 난 메이븐이 좀 더 깊게 소드브레이커를 들이밀었다. 여관주인이 한층 고분고분해지자 메이븐이 그의 오금을 걷어차고 다시 일으켜세우더니, 분노에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37년을 간직해 온 내 정조가 개박살났다. 시발새키야. 이... 이 오필리아보다도, 베카보다도 나쁜 놈아."


당장 내뱉을 수 있는 최악의 욕을 내뱉은 메이븐이 씩씩 거리며, 식은땀을 흘리는 여관주인에게 다가갔다.


"레이크웰, 일단 진정하게나. 그러지 않으면 니 사육사를 부르겠어."


"야, 누가 사육사인데? 내가 짐승이냐."


"어젯밤의 소음을 놓고 보자면 분명히..."


메이븐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소드브레이커를 집어던진 뒤 여관주인의 얼굴을 주먹으로 후드려 패기 시작했다. 찰진 주먹소리가 어두운 주방에 퍼졌다. 소리를 듣고 다가온 주방장과 종업원은 레이크웰의 핏발이 선 살기등등한 눈에 기겁하고 도망갔다. 기사를 불러온다고 난리인 것을 보니 얼른 끝내고 도망쳐야 할 듯 싶었다.


"야, 이 말본새부터가 글러먹은 배불뚝이 사장아. 어린 손놈이 아침식사로 빵에 버터를 바르려다 버터나이프를 든 손이 미끄러져서 여관 주인 중요부위가 실수로 잘린 사건 들었어?"


"맙소사 웃기는데, 어디서 일어난 사건이야?"


"바로 오늘, 니 여관에서 일어날 사건이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피범벅이 되고 퉁퉁 부은 얼굴로 여관주인이 이러다 죽겠다 싶어 손을 들어 레이크웰을 붙잡았다.


"잠깐! 인생에 뼈가 되고 살이 될 내 조언으로 퉁치면 안 되겠는가?"


"뭔데?"


"결혼은 하지 말게."


"...왜?"


여관주인이 우울하게 나뭇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그건 원래 하는 게 아니야..."


그 모습이 너무 불쌍해보여서 메이븐은 일단 그를 놓아주기로 하고 몸을 빼냈다. 기사단에서 인원이 출동하기 전에 튀어야 한다.


"이따가 조사하러 왔을 때 알지? 확, 미성년자한테 술팔고, 미성년자 겁탈이 일어난 업소라고 소문내 버린다."


"히익! 선생님, 2개월 영업정지만은... 토끼같은 자식과 오우거 같은 마누라가 있습니다."


"그래, 그래. 그러니까 말을 잘 들으란 말이야."



*



숙소에서 짐을 챙겨 나온 뒤, 어딘지 모르게 비장해진 베카와 함께 메이븐은 헤이스팅스 영지 성벽 너머 언덕을 올랐다. 시야도 탁 트여 추격자가 생기면 바로 내뺄 수 있고, 검술을 연습하기에도 좋았다.

메이븐이 사악하게 미소짓다가, 재빨리 스승다운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베카를 향해 돌아섰다.


"휴, 소드마스터를 길러낸 경험이 있는 소드마스터의 개인지도다. 기연이니 영광으로 알도록."


"푸하하, 영광은 얼어죽을."


뒷짐을 진 채 엄격한 척하는 소년이 귀여운지 베카가 메이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려다 메이븐의 살기등등한 파란 눈동자에 멈칫했다.


"웃을 수 있을 때 웃어라. 바바, 너는 선천적인 괴력을 타고났고, 감각적인 검술로 소드익스퍼트 하급이 되었다. 둘의 조합이면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은 낼 수 있지. 그러나 그게 다다. 너의 잠재력은 그 이상이니 내가 기초부터 차근차근 조져서 너를 반년 내로 소드익스퍼트 중급, 실제 실력으로는 상급에 이르도록 해주마."


메이븐의 긴 말을 차분히 듣던 베카가 슬쩍 떠보았다.


"그러면 소드마스터, 이를테면 일리오네 경으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방어만하면 한 10분 정도는 버틸거다. 긴 시간이지. 그 뒤는 소드마스터가 원래 지치지 않는 초인이기 때문에 당한다. 또 도망쳐도 특별한 은신처나 숨을 방법이 없다면 머지 않아 따라잡힌다는 소리지."


"20번 싸우면 몇 번 이길 수 있어?"


"일리오네를 예로 들면 소드마스터 초급인데, 네가 상급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면 20번 싸우면 1번 정도는 운으로 이길 수 있을 거다."


베카가 20분의 1의 확률. 무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5%의 승률을 보장한다는 말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메이븐은 당연히 감사해야 할 은혜인데 반응이 애매한 제자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0.5%가 5%로 올랐는데 10배의 승률 상승이면 스승에게 감사하다고 절이라도 해야 하지 않은가?


"그냥 날 소드익스퍼트 중급이 아니라 상급으로 만들어주면 안 돼?"


"냉정하게 봐서. 네겐 그럴 재능이 없다."


메이븐이 단호하게 베카의 기대심리를 즈려 밟았다.


"야! 스승이 그런 말하면 안돼지."


"이해가 안 되면 투핸디드소드를 쥐어라. 내 눈에 보인 네 검술이 얼마나 주먹구구식이었는지 설명해주지."


메이븐이 날이 서있지 않은 에스토크의 검면으로 베카의 투핸디드 소드의 검신 끝부근과 크로스가드 바로 앞부분을 차례로 두드렸다.


"검술의 기본은 지렛대의 원리다. 손잡이를 쥔 네 손이 지렛대의 받침이다. 검을 휘두를 때 손잡이와 가까운 크로스가드 부근은 느리지만 강한 힘을 견딘다. 반면 얇고 날카로운 검의 끝부분은 빠르지만 힘이 약해 버티기를 할 수 없다. 따라서 끝부분은 적의 허점을 찾아 베고 찌르는데, 뿌리부분은 적의 공격을 튕겨내는 방어에 쓰인다."


"그런거야? 몰랐어."


"보통은 본능적으로 알아야하는데, 너는 힘으로 휘두르니까 모르는 거다. 오우거의 주먹을 투핸디드소드 끝부분으로 막더군."


"막았잖아?"


"시발. 내 몸이 너만큼 힘이 셌으면 오우거는 혼자 잡는건데. 하늘은 지력과 무력을 공평하게 배분하지."


"응? 칭찬이야?"


칭찬일리가 있나. 메이븐은 실소했다. 앞으로도 말을 조금 꼬아서 하면 베카가 알아듣지 못하게 흉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메이븐이 생글거리며 설명을 이어갔다.


"지렛데의 원리는 검 뿐만 아니라 검을 쥔 너의 팔에도 적용된다. 큰 근육은 큰 힘을 내고, 근육과 힘줄이 뼈에 어떻게 붙어있는가를 살피면 지렛대의 받침이 되는 관절에서 먼 곳에 붙어있을수록 힘이 강해짐을 알 수 있다."


"아! 뼈와 근육도 지렛대의 원리가 적용되는구나. 허, 시발."


"그래, 그래서 체급차이가 절대적인 거다. 근육의 양뿐만 아니라 지렛대의 원리로, 더 길어진 뼈에 더 먼 힘점에 근육과 힘줄이 붙으니 강력해지지. 네가 괴력을 가진것도 아마 큰 키에 손목 굵기부터가 일반적인 여성의 범주를 벗어나 있기 때문..."


"거기까지! 닥쳐, 레이크웰."


콤플렉스인 부분을 지껄이려하자 베카가 메이븐의 말을 잘랐다.


"스승님이다."


"거기까지! 닥쳐, 스승님."


"야!"


메이븐이 발끈해서 소리질렀지만 베카가 혀를 내밀고 약올렸다.

원채 힘도 권위도 없는 교권에 심각한 침해를 당하고 사는 게 이 시대의 스승이라 메이븐이 참을 인자를 가슴속에 새기며 입을 열었다.


"그래, 늘 이런 식이지. 수준 높은 경지에 닿으려면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검술을 연구하고 펼쳐야 하는데, 너는 감정적이야. 그런 정신력으로는 소드익스퍼트 상급에 도달할 수 없다. 자신의 약점과 콤플렉스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진정한 검사라고 할 수 있는 거다. 알겠나?"


메이븐이 절박한 눈으로 베카를 보았다.


'이 기회에 납득시켜 놓지 않으면 베카를 팩트로 후드려 팰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다.'


그는 곧 절박한 심정을 감추려고 일부러 더 검술수업을 위해 필요한 과정인 척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다.

팔랑귀 베카가 거기에 넘어가서 메이븐을 겨누었던 그녀의 투핸디드소드를 반신반의하다 결국 바닥을 향해 내렸다. 그리고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그렇다. 한 점 거짓도 없는 스승의 조언이다. 스승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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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1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9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8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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