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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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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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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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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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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7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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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DUMMY

"일리오네 경께서 늦어도 오늘 즈음 합류하셨어야 했는데, 어째서 모습을 보이지 않으실까?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생기셨나?"


기사들이 묶는 고급 지휘관 천막으로, 기사 토마스가 번을 교대하기 위해 들어서며 그보다 앞서 꾸벅꾸벅 졸며 지휘관석에 앉아 있던 프레디에게 물었다.


"글쎄요. 소드마스터이신데 설마 무슨 일이 있을 것 같진 않습니다. 마지막 교신 이후 출발이 늦어졌거나 다른 용무를 처리하시느라 일정이 지연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섯 기사들 중 막내인 프레디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경례하고 말했다.


"그렇지. 소드마스터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 상상하기 어렵지."


토마스가 언젠가 황도에서 한 번 보았던 새빨간 피에라브라스를 휘두르는 일리오네 헬버디아 경과 검은빛 펄션(falchion)인 듀란달로 그런 일리오네의 공격을 가볍게 흘리던 아에스 클렘페러 대장군의 대련을 떠올려보았다.


사람이 휘두른 무기가 부딪히기 보다 바위와 벼락이 부딪히는 충격이었다. 바닥이 갈라지고, 성벽에 금이 갔다. 철제 방어구도 무의미한 소드마스터들의 전투였다.


그 때 막사 바깥에서 병사의 고함이 들려왔다.


"두 죄수가 사라졌습니다!"


곧이어 소피아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



미스릴에 대한 불경이라고 대장장이가 보면 소리지를지 모른다. 그러나 메이븐과 베카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메이븐이 에스토크를 조심스럽게 겨냥해 위치를 잡으면 베카가 무식한 완력으로 돌멩이를 내리찍어 족쇄를 조금씩 끊어냈다.


그렇게 베카의 마력봉인용 족쇄가 끊어져나가자 비로소 홀가분해진 그녀가 투핸디드소드에 소드오러를 일으켜 메이븐의 나머지 수갑과 족쇄를 잘라주었다.


베카가 탐욕스럽게 메이븐의 푸르스름한 명검, 사군자를 들어 살펴보았다. 송곳처럼 뾰족한 검날 끝은 그렇게 험하게 다루었는데도 흠이 나지 않았다.


"나도 미스릴 합금 무기 하나 사주면 안돼?"


"4만 골드만 줘."


"야! 이 돈벌레야. 그럴 땐 '미천한 저의 검을 녹여 미녀님께서 원하시는 검을 만드소서'라고 말해야지."


"미천한 저의 검은 놓고 미녀님께서 원하시는 검은 과분하니 실력부터 기르소서."


"검술 스승은 얼어 죽을. 제자에게 명검 하나 딱 주는 게 스승이지."


"정말이야. 순수미스릴 검은 재료확보 뿐 아니라 제련까지 어려워서 가격을 따질 수 없다. 평범한 장식없는 장검이 50만 골드를 상회한다. 제국에도 알려진 건 10자루를 넘지 않아. 그 중 2자루가 소드마스터들의 손에 있고 5자루가 황궁에, 나머지 3자루는 공작가문들에게 하나 씩 모셔져있지. 미스릴 합금검은 비교적 흔하지만 그래도 소드익스퍼트 중급은 되어야 사용자로써 격이 맞지."


"내 실력이 그 정도라며?"


"네 통뼈와 괴력이 그 정도라고."


베카가 등을 주먹으로 때리자 메이븐이 앞으로 엎어졌다. 얼굴에 묻은 안개에 젖은 흙을 털어내고 메이븐은 꾿꾿이 일어나 걸어나갔다.


안개 덕분에 추격자는 크게 걱정할 필요 없어 보였다. 날이 밝기 전에 거리를 충분히 벌려 놓으면 뒤쫓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한결 개운해진 팔다리를 놀리며 분주하게 봄 낙엽을 밟고 달리는 사이, 메이븐이 불안하게 뒤의 베카를 힐끔거렸다.


"뭐야. 남자가 찌질하게 힐끔거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저... 소피아 아니, 이사벨라라던가. 그거는 거짓말 맞지?"


"푸하하, 당연하지. 넌 엘프가 왜 인구가 적은지 알아?"


베카가 달리던 걸음을 늦추고 애꾿은 고리쇠나무를 붙잡고 폭소했다. 메이븐이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진 채 물었다.


"모른다. 내가 어떻게 아냐. 히치하이킹 책은 엘프들은 지고지순한 정신적 사랑을 하며 득도한 신선님들처럼 성욕이 없어서 그렇다던데..."


"와, 이 똥멍청이가 우리 종족이 심혈을 기울인 이미지 메이킹의 희생양이구나."


베카가 오랜만에 메이븐을 멍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가 오자 눈을 가늘게 뜨고 웃어젖혔다. 그 동안 속성으로 검술지도 받으면서 쌓인 게 많았다. 그녀는 이 기회에 복수하고 싶었다.


"엘프들은 선천적으로 지독한 난임이야. 정상적인 성생활을 하는 엘프 부부가 100년 동안 동거할 때 아이를 가질 확률은 통계적으로 50%래. 뻔질나게 해대도 안된다고. 엘프도 생물이고 종족유지 본능이 있는데 욕구가 없다니! 레이크웰 스승님, 그게 말씀입니까 방귀입니까?"


똥씹은 얼굴로 휙 먼저 떠나버리는 메이븐을 쫓아서 베카도 얼른 달려갔다. 신이 나서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금새 메이븐을 따라잡은 그녀는 촐랑대며 놀리는 메이븐의 앞뒤를 빙글빙글 돌았다.


"미안하다. 거 덕분에 참 좋은 거 배운다. 차라리 평생 몰랐다면 더 좋았을 텐데."


"이제라도 알게 된 걸 감사하라구. '감사합니다, 바바 스승님.' 해봐."


"닥쳐."


하긴 엘프의 수명을 보라. 만약 그들이 인간들만큼 쉽게 자식을 보았다면, 대륙을 정복했을 게 분명하다. 환상보다 이성적 합리성이 더 중요한 까닭을 새삼 깨닫는 메이븐이었다.


"이 방향으로 가면 루이스 영지라는 작은 자작령이 있다. 산속 마을이니 어쩌면 수배서도 없을지 몰라. 그곳에서 식량과 물자를 보급하고 말을 구해서 그리미어 숲으로 떠나자."


"그래, 그리미어 숲이면 일리오네 경도 쫓아오지 않을 거야. 그런데 돈은?"


"...차차 생각해보지."


가다가 또 운이 좋아서 다 죽어가는 오우거를 만나고, 오우거의 시체를 해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메이븐은 아파오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길을 재촉했다. 안개가 자욱한 수풀을 헤치고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하늘이 옅은 푸른빛으로, 뒤집힌 바다처럼 밝아왔다.


메이븐이 문득 한숨을 쉬며 걸음을 멈췄다.


"봐, 제 말하면 돈이 온다니까."


미스릴 에스토크인 사군자와 쓰로잉나이프를 뽑고 메이븐이 언덕 밑을 내려다보자, 베카도 긴장한 얼굴로 투핸디드소드를 뽑고 오른손으로 쥔 뒤, 카이트 쉴드를 왼손에 고정했다.


"컹, 컹."


불청객이 등장했다. 냄새를 맡고 다가온 웨어울프 무리였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녀석은 키가 3m는 넘어 보였고 잿빛 털에 갈기까지 지니고 있었다. 거칠고 두꺼운 털을 뚫고도 드러나는 흉포해 보이는 근육이 두 발로 일어선 놈의 몸에서 꿈틀대었다. 저 손톱에 스치면 단순히 아프고 피가 나는 수준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 외에도 2.5m 가량 크기의 장신인 갈색 털을 지닌 웨어울프 셋이 베카와 메이븐을 포위하듯 넓게 일렬로 달려오고 있었다. 우두머리가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가운데, 놈들은 시간차로 달려들어 사냥감을 물어뜯을 준비를 마쳤다.


"쿠워어어어!"


"야, 쟤 뭐라는 거야?"


"음, 스스로의 성적 매력을 과신하고 섹스어필을 하려는 게 아닐까?"


베카가 나름 진지하게 답했다. 그래도 엘프라고 만물과 교감하는 정령의 후예라기에 물어본 메이븐은 후회했다.


'배고프다고 한 것 같은데.'


슬금슬금 다가오는 웨어울프 네마리와 뒤에서 포효를 내뱉고 조소하듯 지켜보는 우두머리를 보며 마른 침을 삼킨 메이븐이 전략을 세웠다. 일단 그와 베카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유리하다.


웨어울프들은 단순히 사냥을 나온 것이므로 사냥감의 저항이 생각보다 거세다면 목숨까지 거는 피해를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바바, 쟤들은 우리처럼 목숨을 건 게 아니라, 그냥 가볍게 아침식사하러 여흥삼아 나온 거잖아? 네 마리 중 한 마리 정도만 죽이면 사냥을 포기하고 갈 거야."


"요컨데 사냥감이 아니라 동격의 사냥꾼이라는 걸 보여주면 된다는 거야?"


"맞아. 등을 보이면 안 돼. 차라리 처음 달려드는 놈을 깔끔하게 한 방에 보내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웨어울프 무리는 그러면 꼬리를 말고 떠나더군."


메이븐이 경험에서 우러나는 조언을 한 뒤 천천히 부채꼴로 퍼지며 앞뒤를 점하려는 네 마리의 웨어울프를 보았다.


반인반수형의 이성이 없는 몬스터였다.

이족보행형 거대 늑대인간 넷을 차분하게 노려보던 메이븐은 베카와 등을 마주하고 볼 때 그의 왼편에서 다가오는 놈이 덩치가 작고 다리를 저는 것을 알아보았다.


"정면에서 왼쪽 놈이 약하군. 베카, 등뒤를 부탁한다."


베카에게 뒤를 맡기고 메이븐이 먼저 뛰어들었다. 거리가 스무걸음 내로 좁혀지자 메이븐은 발을 내딛으며 쓰로잉 나이프에 발목부터 복근, 어깨의 근육을 차례로 긴장시키며 체중을 실어 투척했다.


메이븐의 귀신같은 쓰로잉나이프는 메이븐을 노려보며 돌진하려던 늑대인간의 콧잔등을 가격했다. 애초에 눈을 노렸지만 코 역시 늑대인간에게 급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살점이 한 뭉텅이 썰려나가며 피가 튀었다.


"크헝."


늑대인간이 울부짖으며 분노한 듯 앞발톱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큰 신장을 십분 활용해 내리찍고, 메이븐의 머리 위에서 발목에 이르는 커다란 엑스표를 그렸다.


그것을 힘으로 마주할 계획이 없었던 메이븐은 늑대인간의 오른쪽 품으로 파고들며 에스토크를 자신의 어깨 위에 사선으로 기울여 늑대인간의 왼팔을 흘려냈다. 오른손잡이라는 예측이 맞았는지 늑대인간의 오른쪽 팔은 메이븐의 어깨힘과 에스토크의 단단함에 밀려 메이븐의 머리 위로 흘러나갔다.


그 사이 메이븐은 다시 왼발을 밀고 오른발을 직선으로 뻗어 내리찍으며 늑대인간의 가슴 중앙을 찔렀다.


푸욱!


심장을 관통당한 늑대인간이 괴로움이 몸부림치는 사이, 깔끔하게 사군자를 뽑아낸 메이븐이 유려하게 피를 털어내며 한바퀴 돌아 베카에게 달려왔다.


베카는 두 마리의 늑대인간이 메이븐이 뛰쳐나감과 동시에 달려들자 소드오러를 씌운 투핸디드 소드로 한마리의 팔을 팔꿈치까지 잘라내고 다른 하나의 물어뜯기 공격은 입안에 카이트 쉴드를 처박아 주어 막아냈다.


"바바, 하나 잡았어!"


"좋아, 이제 얘네들 물러나는 거야?"


"크아앙!"


겉보기와 다르게 먹이감이 강하자 위험을 감지한 잿빛 털의 우두머리가 어느 틈에 폭발적으로 메이븐과 베카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구의 덩치가 왠만한 소형 오우거 못지 않았다.


박력에 질린 베카가 투핸디드소드를 크게 휘둘러 두 마리의 웨어울프를 물러서게 하고 뒤로 뛰어올라 간격을 벌렸다.


"레이크웰! 이건 말이 다르잖아. 네가 어떻게 좀 해봐. 죽으면 티리얼 영지의 네 유산은 내가 잘 물려받을께."


"퍽이나!"


베카가 물러나자 막 한마리를 처리하고 돌아온 메이븐이 혼자 남겨져 박력이 넘치는, 우두머리를 맞이했다. 메이븐이 방금전 한 마리를 쓰로잉나이프로 부상입힌 뒤 손쉽게 처리한 걸 아는지 우두머리는 두 팔로 얼굴과 상체를 가리는 가드를 세운 체 대쉬해왔다.


그 순간 메이븐의 눈이 반짝였다. 상대적으로 하체는 무방비상태이다. 그의 손이 품안에 들어갔다가 빠르게 앞으로 내질러졌다.


"컹!"


크로스가드가 없는 일자형태의 손바닥만한 단검이 웨어울프의 하복부보다 밑, 근육이 없으나 고통은 격렬한 부위에 박혔다. 고통을 이겨내지 못한 대장 웨어울프가 낙엽이 쌓인 억던배기를 쾅쾅 두 손으로 내리쳤다.


"아프냐?"


"크어엉! 크헝! 컹!"


"그래, 나도 아프다."


베카가 황당하게 바라보는 가운데 메이븐이 차가운 대사를 내뱉으며 눈빛만으로도 메이븐을 씹어 삼킬듯 바라보는, 생식능력이 사라진 늑대인간에게 다가갔다.


구슬픈 우두머리 웨어울프의 울음 속에 전의를 상실한 살아남은 웨어울프 두 마리가 뒤로 물러났다. 그들이 뛰어들지 않는 한 본인도 메이븐을 거들 생각이 없는 베카가 뒤에서 메이븐에게 힘내라 소리쳐주었다.


"대장전이네. 자, 어서 스승님의 힘을 보여줘."


"아니! 이미 생식력을 상실한 저 늑대녀석은 대장이라고 볼 수 없다."


"쿠오오오!"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메이븐의 말에 분노한 양 늑대의 긴 포효를 내뱉은 잿빛갈기의 녀석이 피로 물든 하반신의 고통을 참고 뛰어들었다.


"이미 남자는 아니지만, 기백만은 남자로구나!"


"크와아아아!"


메이븐이 혹시나 싶어 다시 도발하자 잿빛의 웨어울프가 다시 발악했다. 어떻게 조롱이라는 사실은 아는 것 같았다.


'웨어울프의 지적능력에 대해 다시 평가해봐야겠군.'


네 마리의 늑대인간 중 하나를 죽이고 둘을 부상입혀 한층 한가로워진 메이븐이 여유를 부리며 고민하자, 어느새 다가온 대장 웨어울프가 양 옆으로 팔을 끄게 뻗더니 그대로 평행성을 그리며 그의 앞을 쓸어버렸다. 마치 천년거목도 통째로 잘라버릴 커다란 가위가 입을 열고 닫는 기분이 들었다.


"워워! 죽을 뻔 했잖아."


메이븐이 바닥에 닿을 듯이 낮게 엎드려 피하고 발톱이 지나가며 드러난, 방금전 당한 곳과 같은 부위를 찔렀다.


웨어울프가 구슬픈 울음을 토하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만 괴롭히고 하늘나라로 보내줘, 변태야. 불쌍하잖아."


보다못한 베카마저 한 소리했다. 뒤에 있던 웨어울프 두 마리도 메이븐의 악독한 손속을 보고 분노한 듯 컹, 컹 짖어댔다.


"아냐, 이쯤하면 얘네도 포기하고 물러설거야. 이기지 못할 상대에게 덤비는 어리석은 놈은 야생에서 살 자격이 없어."


메이븐은 눈물을 글썽이는 늑대인간이 투지를 상실했다는 것을 깨닫고 천천히 등을 보이지 않은채, 여전히 피묻은 에스토크를 겨누고 뒷걸음질 치며 물러났다.


웨어울프 대장은 그런 메이븐을 뒤쫓지 않고 5분 여의 시간 동안 노려보다 주춤주춤, 비척거리며 두 마리의 남은 웨어울프들을 이끌고 뒤돌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늑대인간 가죽은 장식용으로나 겨울옷 재료로나 인기가 많아, 땡 잡았잖아. 잘했어, 레이크웰."


베카가 신이나서 메이븐이 심장을 찔러 깔끔하게 죽인 늑대인간을 보았다. 그리고 죽은 늑대인간의 가죽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찜찜한지 에스토크 사군자를 옷에 잘 문질러 닦은 메이븐도 곧 다가와 그의 소드브레이커를 꺼내 베카를 도와 빠르게 늑대인간 사체를 해체했다.


베카가 솜씨좋게 가죽을 살에서 분리해내는 메이븐에게 으스대듯 이야기했다.


"혼자였으면 못 잡았을 텐데 동료가 있으니 편하지?"


"혼자였으면 애초에 사람을 피해 이 숲을 이 시간에 헤매는 상황은 없었을 텐데..."


"레이크웰, 못 되어가지고. 고맙다는 말도 못하니."


"고맙다."


영혼 없는 대답을 하고 늑대인간 가죽을 묶어서 메이븐이 등에 지었다.

사투를 벌였던 언덕 위로 올라서자 멀리, 백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목책에 둘러쌓인 시골 영지가 보였다. 작고 아담한, 저택 크기의 영주성이 그 중앙에 해자에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해가 뜨자마자 밭일을 하러 집을 나온 몇몇 분주한 농민들이 보였다.


루이스 영지였다.


"안개 속에서 나침반도 없이 길을 찾는 나같은 안내자가 있으니 마음이 편하지?"


메이븐이 으쓱해서 베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안내자만 아니면 소드마스터에게 원한을 사서 죽을 일도 없을 텐데."


"못 되어가지고는."


간밤의 도주와 웨어울프와 전투로 지친 둘이, 웨어울프의 피가 묻은 채 힘없는 걸음으로 언덕비탈을 걸어 내려갔다.



*



사냥꾼의 집 하나를 찾아서 그에게 웨어울프의 가죽을 처분하자 200골드를 받을 수 있었다. 족히 250골드는 받아야 하는 물건이지만 느긋하게 상인들을 만날 수 없기에 대신 처분해 달라며 건넨 것이다.


마침 사냥준비를 하던 루이스 영지의 사냥꾼은 때아닌 횡재에 넙죽 감사인사를 올렸다.


"이 녀석을 잡은데다가, 마을의 골칫거리 였던 잿빛발톱까지 부상입히셨다구요? 시절이 하수상한데 시름을 덜었습니다. 영지민의 한 사람으로써 감사드립니다."


"뭐, 여행객인데 우연히 마주쳐서 살려고 발버둥치다 보니 그리 됐어요. 저희는 정말 죽을 뻔 했어요."


대충 둘러댄 메이븐과 베카가 놈들과 싸우다 짐을 잃어버렸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사냥꾼에게서 여행용품과 간단한 옷을 구하고 나섰다.


"루이스 영지는 뭐가 유명해?"


"몬스터가 많이 나오기로 유명하지."


"아니 그런 거 말고."


베카가 수배되어 도주중이란 현실에서 잠시 도피해 여행온 사람처럼 메이븐에게 물었다. 누가 봐도 기운이 넘치는 엘프였다.


"루이스 가문은 대대로 선정을 베풀기로 유명하지. 작위는 낮지만 귀족 중에서 평민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가문을 꼽자면 루이스 가문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어."


메이븐이 곰곰히 기억을 되새기며 이야기했다. 내무대신으로 일할 때 중요한 건 루이스 가문의 평판과 파벌, 그리고 루이스 영지에서 올라오는 몬스터부산물로 된 공물들이었기에 딱히 기억나는 건 그런 내용 뿐이었다.


실망한 베카가 '쓸모없는 녀석'이라고 막말하고 메이븐이 무시하는 사이, 외양간의 두엄을 칠 때 쓰는 기다란 삼지창을 닮은 포크를 어깨에 메고 지나가던 청년이 메이븐의 말을 들은 듯 화난 얼굴로 한 마디 했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 거요?"


"네? 무슨 일이 있나요?"


"그건 옛날 일이오. 지금 마을이 한창 농번기에다 몬스터들이 날뛰는데 최소한의 경비병력만 영주성에 남기고 강제로 징병해가 버렸소. 거기다 세금도 올려서 돈을 빌려서 가을에 비싸게 이자를 쳐서 갚기로 했다오. 영주가 미쳤소."


"루이스 자작님이 말입니까?"


메이븐은 백작인 자신 앞에서도 당당하자 영지민들의 복지와 영지의 안정을 위해 더이상 젊은이들을 모병해 보낼 수 없다고 따지던 루이스 자작을 떠올려 보았다.


호방한 얼굴에 갈색 장발을 하였고, 얼굴도 덥수룩하고 지저분한 수염으로 덥혀있었다. 누가 보면 귀족이 아니라 자유로운 용병이나 키가 인간만 한 드워프를 떠올릴 남자였다.


"그 분이 정말 마을 청년들을 징발해 전선으로 보냈단 말입니까?"


"말도 마시오, 여기만 그런 게 아니라오. 인근 다른 영지들도 마찬가지 이지만 유독 심한 듯 하오. 또 어디서 전쟁을 일으키려는지. 빌어먹을 메이븐 티리얼도 처형당했겠다 당분간 발뻗고 자나 했건만... 말세요. 말세."


메이븐이 욱하고 청년에게 따지려다 가까스로 참았다. 부르고 에스피온 황제는 와병중이라고 얼핏 들었다.


그에 따라 에반스 에스피온 황태자가 메이븐 티리얼 백작을 역모혐의로 처형한 뒤 파죽지세로 반왕당파를 잇달아 단두대에 세우며 피의 숙청을 진행중이었다. 왕당파만 군대를 모을리 없다. 왕당파가 그렇다면 반왕당파도 그렇다는 것이다.


"내전이요?"


"그럴 거라 하더구려. 사람들 사이 떠도는 말이 표면적으론 신성왕국 엠마뉴엘의 선전포고로 토벌을 떠난다지만, 실제론 왕당파 군대의 소집이라 들었소. 메이븐 티리얼의 처형이 생각지도 못한 권력투쟁의 기폭제였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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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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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1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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