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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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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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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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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죄수의 딜레마 (4)

DUMMY

베카가 헤어밴드를 풀고 귀 끝을 드러냈다. 무척 보슬보슬해 보이는 솜털이며, 도드라진 뾰족한 귀가 보였다.

메이븐은 혼란에 빠져 베카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아, 유인원이 나무에 살 때 지니고 있던 뾰족한 귀로군. 인간이 인간으로 진화하고 퇴화한 귀형태야. 반면 숲속에서 진화한 엘프들은 가지고 있지. 다윈결절이라고 하던가. 근데 베카는 유독 다윈결절이 큰 '인간'이로군..."


메이븐의 감동한 눈빛과 엘프의 미모에 대한 찬양을 기대했던 베카는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했다. 심지어 귀를 한 번 만져보겠다는 무례한 부탁을 해도 허락해주려던 그녀는 주줌했다. 그가 품에 안았던 장작불 땔감 용 나뭇가지들을 떨어뜨리고 분노조절장애자처럼 입술을 꽉 깨물자 그 모습에 식겁한 것이다.

둔감한 베카의 눈에도 상태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메이븐 티리얼 씨?"


"야! 이 미친년아. 너 죽고 나 죽자. 황도 17대 미녀에 대한 꿈과 희망을 짖밟고, 마지막 남은 엘프들에 대한 환상조차 조각조각 부서뜨려야 했냐. 그러면 후련했, 냐!"


조금 진정된 메이븐은 도로 마른 나뭇가지와 낙엽을 줍고, 장작불을 피우기 위해 마법부싯돌 아래 무슨 종이쪼가리를 찢어 넣었다.


"그거 책이잖아? 책을 불태우다니, 야만인. 그건 범죄야."


"시끄러워 사이비 엘프."


그러건 말건, 메이븐은 영혼이 없는 눈으로 묵묵히 '대륙을 횡단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두툼한 포켓사이즈 서적을 한 장씩 뜯어 장작 중앙에 깔았다. 베카는 그러며 메이븐이 궁시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엘프는 다 천사라매... 천사 같다매... 친절하고 사려깊다매... 엘프는 다 천사라매... 천사 같다매... 친절하고 사려깊다매... 거짓말 한 마디 못한다매."


"그게 다 수백년간 전 종족이 신경 쓴 이미지 관리의 결실이야. 엘프를 둘러싼 신비를 이용한 거지."


"다윈결절이 큰 '인간'주제에. 엘프인 척 하긴."


듣기거북했던 베카가 이내 모닥불이 피워지자 신발을 벗고 발을 주무르며, 마쉬멜로우를 불에 굽는 메이븐에게 넉살 좋게 이야기했다.


"아, 거 채권자양반 너무 시끄러운 거 아니요. 아직 한 달 안 지났소."


"아, 네. 하핫, 제가 시끄러웠죠? 고갱님, 조용하겠습니다."


우울히 영혼이 사라진 듯 불을 보던 메이븐이 대번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베카를 보았다.

방랑여행의 첫 밤이 깊어갔다.


'한 달만 지나 봐.'



*



일주일이 흐르고, 험한 숲길을 헤치며 서서히 거지꼴로 변해가는 가운데 베카가 참다 못하고 메이븐의 회색망토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투핸디드소드를 이쑤시개처럼 다루는 괴력에 메이븐이 공중에 너덜너덜 봄날 먼지 털리는 이불처럼 사지를 휘저었다.


"야."


"왜 그러시오, 자칭 엘프 양?"


"야, 너 진짜 고자야? 어떻기 이렇게 예쁜 엘프랑 일주일 째 숲속을 헤메는데 한 번도 반응이 없어."


"어허, 그대가 매력이 없는 것을 어찌 나의 탓으로 돌리오? 자신을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슬퍼하지 말고, 자신이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슬퍼해야 하오."


몇 마디 말만 경청했는데 절로 후광이 비치는 듯한 어조에 베카가 메이븐을 곱게 내려놓고 망토도 도로 단정하게 여미어 주었다. 둘 다 며칠째 제대로 씼지도, 쉬지도 못해 얼마전까지 두 마리 홉고블린 같았다.

그나마 개울에 들러 한 번 목욕하자 몰골이 봐줄 만하게 돌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훈훈한 미남 거지와, 아리따운 거지 엘프였다.


"숲이 니 집이라며."


"...아니, 그건 됐고. 메이븐, 아까 말투도 그렇고 내용도 묘하게 기분이 나쁜데. 하루하루 더 심해지고 있어."


메이븐의 비꼼에 반응하지 않을 정도로 베카는 심각하게 도톰한 자기 입술을 괜히 손으로 잡아뜯으며 고민에 잠겼다.


"너 어디 머리에 크게 문제 생긴 거 아니야? 여행 동료로서 서나 안 서나 한 번 만져볼까?"


"어딜 만져! 떨어져."


"남자가 만지면 범죄지만, 젊은 미녀가 만지면 포상이래."


"누가 그런 잘못 된 사고관을 주입한거야? 죽여야해."


정색한 메이븐이 베카를 밀쳐내고 뒤로 도망치다 넘어졌다. 베카가 쫓아가서 음흉하게 메이븐의 두 손을 오른손 하나로 잡아 제압하고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순간 멀리서 쇳소리가 울렸다.


"쉿! 사람의 인기척이오."


메이븐이 재빨리 발로 베카를 밀쳐내고 일어서 귀를 기울였다. 창과 단단한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 금속 흉갑이 무언가에 얻어맞아 북처럼 찌그러지는 소리, 비명. 전장에서 익숙한 소음들이었다.


"이리 다가오며 싸우고 있군. 베카, 정신차리고 검 들어. 반대쪽으로 피하자."


"그래, 쓸데없이 말려드는 건 질색이지."


오래간만에 의견의 일치를 본 두 사람이 재빨리 소음이 들려온 반대방향으로 재빨리 몸을 날렸다.


크우어어어어엉!


오우거의 포효였다. 소드오러가 아니면 가죽도 뚫을 수 없는 위험한 몬스터다. 어쩌면 이 인근 숲의 지배자일지도 모르는 대형몬스터다.


"아아, 여기서 유리아 상단의 후계자도 끝인가. 대륙 최고의 거부의 장남인 것도 소용이 없구나."


움찔. 베카의 달리기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다. 메이븐이 뭐하는 짓이냐고, 얼른 달리라고 외치려는데 쓸데없이 큰 한탄이 다시 들려왔다.


"금은보화와 10만 골드를 싣고 이름모를 숲 속에 죽노라. 오우거의 식사가 되어."


"10만 골드!"


베카가 어느 틈에 헤어밴드를 착용하고 메이븐의 뒷덜미를 손으로 턱 잡았다. 괴력 엘프에게 힘에서 밀리는 메이븐이 목이 졸려 켁켁대며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강제로 달리다 멈춰세워진 그에게 베카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뭐해, 메이븐? 어서 위험에 빠진 분들을 구하러 가야지."


"..."


하급 소드익스퍼트인 베카의 투핸디드소드와 소드마스터인 메이븐의 전투센스면 어떻게 일반적인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할 수 있다 뿐이지 까딱하다가는 죽는다.

메이븐도 상단주의 장남을 구해주면 받을 수 있을 대가에 혹하긴 하지만, 그런 자의 호위용병들이 호락호락했을 리는 없었다. 그런 이들이 고전한다.


'50년 묵은 오우거가 있는 거 아닐까?'


메이븐으로선 소드마스터 시절에는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뼈에서 살까지 분리해 놓을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몸으로는 오우거에게 생체기를 내는 것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나마 믿을 것은 소드오러도 견딘다는, 제1황녀가 하사한 미스릴 에스토크 뿐이다.


'실전에서 써보는 건 처음이로군. 이게 정말 그렇게 대단한 녀석인가?'


메이븐은 전장에서 수시로 검을 부러뜨리고 새로운 제식 검으로 바꿔 사용하던 버릇이 있는지라, 소드오러를 못쓰는 이들 사이에서 미스릴 검이 얼마나 좋은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베카와 메이븐, 둘은 곳 소란의 중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무가 부러져나간 가운데, 숲을 가로지르는 마찻길이 있었다. 밀수범들이나 이용할 법만, 최근 벌목하여 만든 비인가 도로같았다. 그 도로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숲의 공터에 바퀴가 내려앉은 장식없는 대형 짐마차와, 겁에 질린 말 네 마리. 그리고 십여명의 사람들이 오우거와 대치하고 있었다.


후덕하게 살이 찐 남자가 바스타드 소드를 들고 화려한 흉갑을 걸친 채 마차 뒤에서 떨고 있었다. 그가 방금 전 탄식한 유리아 상단의 후계자로 생각되었다.


그리고 상단을 호위하는 용병으로 보이는 7명의 남자와 3명의 여자 용병들이 마차 건너에서 오우거와 대치하고 있었다.

전위의 4명은 카이트쉴드와 아밍소드를 든 채 오우거의 시선을 끌었다. 3명의 창병이 파이크를 들고 방패 사이로 기회를 옅보았다. 후위에는 2명이 활을, 1명은 크로스보우를 들어 오우거의 머리를 조준했다.

4명의 근접전 담당자가 든 카이트 방패는 사실 오우거의 주먹질 앞에서 무의미해 보였다. 땅을 구르고, 오우거의 안면부를 노리는 화살의 지원에 힘입어 시간을 끄는 것이다. 베는 공격은 흠집을 내지 못해 아밍 소드에 의한 상처는 보이지 않았고, 그나마 파이크에 꿰뚫린 듯해 보이는 몇 몇 상처에서 오우거의 파란 피가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시체로 변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죽은 자 다섯여 명이 바닥에 누워 시뻘건 피로 대지를 적셨다.


"초절정 미녀 용사와 용사의 조수가 노다지를 캐러 왔습니다!"


베카가 소리치며, 묵직한 여행짐을 내던지고 팔을 붕붕 돌리는 등 스트레칭으로 모처럼 가벼워진 어깨를 풀었다. 달려왔다고 바로 전투에 뛰어들었다간 부상을 입기 십상이다. 언제나 신체를 한계까지 움직이기 전에는 근육과 인대가 준비하도록 스트레칭을 해두자.

카이트쉴드를 든 용병들 중 하나가 전장에 난입한 선남선녀를 두고 물러나라고 고함쳤다.


"기사들이 아니면 도망쳐 멍청이들아. 보통 오우거가 아니야."


오우거의 날쌘 주먹이 다리를 다친 듯 절뚝이는 한 용병의 카이트쉴드 위로 내리쳐졌다. 팔에 문신이 있는 거구의 용병이 방패를 기울여 빗겨 막았는데도, 신장이 5m라서 세 배 정도 차이가 나는 오우거의 포탄 같은 주먹이 방패를 우그러뜨리고 용병의 왼팔을 뜯어냈다.


"으아악."


그 용병은 간신히 힘줄에 붙은 하얀 뼈가 드러난 왼쪽 어깨를 보고 비명질렀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피가 나지 않게 누르며 바닥에 주저앉아 양 발을 헤엄치듯 저었다. 오우거로부터 멀어지려 노력하는 가운데, 그를 쫓는 오우거의 얼굴로 화살들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오우거는 날아오는 화살들은 무시하여 그대로 이마로 받고, 이따금 날아오는 대형 크로스보우의 화살만 고개를 비틀어 피했다. 용병들이 허무하리만치 소용없는 자신들의 공격에 절망했다.


용병들 틈으로 달려 든 자신만만한 베카가 드디어 초록색 아지랑이가 감도는 투핸디드소드를 들고 오우거에게 접근했다. 호위 용병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산적처럼 우락부락한 덩치에 험상궂은 흉터를 얼굴에 달고 있는 붉은머리의 용병이 베카의 검에 어린 소드오러를 알아보고 반색했다.


"나는 호위대장 헤이거라고 한다. 도와줘서 고맙다."


그리고 헤이거가 팔짱을 낀 채 오우거를 노려보고 있는 메이븐에게 시선을 옮겼다. 얇은 팔뚝고 허리에 맨 가느다란 세검에 실망했다.


"너는 저쪽의 기둥서방인가? 난 너처럼 잘생긴 놈이 싫어! 하지만 검은머리 꼬마, 너도 검을 쓸 줄 안 다면 뽑거라. 여긴 위험할지 모른다."


"아니 이 새끼가... 지금 누구랑 날 엮어."


걱정스럽게 이야기해주는 헤이거의 말에 메이븐이 대뜸 욕을 내뱉었다. 백년 묵은 오우거에게서만 보이는 파랗게 변한 가죽색을 살펴보던 중 끔찍한 질문을 받았다.


헤이거가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당황하는 사이 방금 전 다쳤던 용병이 기어코 바닥을 기어 후방으로 넘어왔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은 무리인 듯 싶었다. 죽음에서 돌아왔기에 두 눈이 흐리멍덩하게 풀려있었고, 크로스보우를 들고있던 여자 용병이 다가가 마약류로 보이는 진통제를 억지로 그 입에 쑤셔넣었다. 다친 용병은 시체처럼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메이븐이 마침내 에스토크를 빼들었다.

소드오러가 깃든 건 아니지만, 끝은 예리해 보이고 흔히 비싼 돈을 주고 마법시약으로 강화한 검에서나 볼 수 있는 파란빛의 은은한 예기가 비쳤다.


'이걸로 될까 모르겠다만.'


베카가 호쾌하게 휘두른 투핸디드소드가 오우거의 오른손 주먹과 정면충돌했다.


콰앙!


공성병기가 성벽에 충돌하는 폭음이 터져나오고, 상단의 후계자라 자칭한 청년이 검을 떨어뜨리고 귀를 막았다.


"베카! 일반적인 오우거가 아니야. 소드오러도 통하지 않을 수 있으니 목이나 관절 안쪽을 노려."


"야, 그걸 왜 지금 말해."


놀랍게도 베카는 오우거의 주먹을 정면으로 막아냈다.

오러를 머금은 투핸디드소드를 맞고도 흡집하나 나지 않은 그 파란색 오우거의 주먹도 보통이 아니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주먹이 막히자 흥미로운 듯 녹색 긴머리를 치렁이는 베카를 내려다 본 오우거가 이번에는 왼손으로 어퍼컷을 날렸다.

당황한 베카가 소리질렀다.


"한 손만 쓰라고!"


베카가 검은 쥔 손아귀에 밀려오는 충격을 해소하려 숨을 고르다가 오른손에 이어 왼손을 휘두르는 오우거에게 불평을 토했다. 반면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오우거의 노란 눈동자가 흥분한 듯 반짝였다.


"자칭 미녀, 그대로 오우거의 시선을 끌어라."


"꿱!"


오우거의 왼쪽 손도 오른손만큼 파괴력이 충만했던지 자세를 가다듬지 못한 채 하프소딩(Half-swording) 검법으로 투핸디드소드의 검신 중앙을 왼손으로 받치고 무게중심을 낮춰 오우거의 어퍼컷을 검으로 받아낸 베카가 뒤로 데굴데굴 굴렀다.


'그래, 잘하고 있어!'


메이븐이 먼지투성이가 되어서 바닥에 나뒹구는 베카를 마음 속으로 칭찬하며, 그녀에게 시선이 쏠린 오우거의 사각지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발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은밀한 달리기였다. 투핸디드소드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킨 베카를 쫓아가 발을 내리찍어 마무리하려는 오우거는 가랑이 밑을 드러냈고, 그 사이로 메이븐의 회색 형체가 유령처럼 슬라이딩했다.

그대로 새파란 광채의 찌르기가 연이어서 두 번 오우거의 샅에 작렬했다.

그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검술 교본보다 훌륭한 찌르기에 용병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오우거가 이해할 수 없는 구슬픈 신음을 내더니 서서리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지 무거운 주먹으로 바닥을 쾅쾅 내리치며 광분했고, 베카는 무사히 뒤돌아 오우거로부터 멀어졌다.


"해냈어! 맙소사. 저 소년 정체가 뭐야."


크로스보우를 쥐었던, 신경질적으로 보이나 콧날이 오똑하고 입술이 붉은 여용병이 메이븐의 외모에 얼굴이 붉어진 채 혼잣말했다. 그 때 차가운 방랑검사 같은 시크한 표정의 메이븐은 주저앉은 오우거를 노려보며 수풀에, 만족스런 성능을 보여준 미스릴 합금 에스토크를 문질러 닦았다.


"오우거, 도망치더라도 앞으로 너는 최소 반년 간 일을 볼 때마다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을 것이다."


그 말에 방금 전 감탄했던 여자용병을 비롯한 10인의 생존용병 모두의 안색이 시커매졌다. 오우거는 여전히 엉거주춤 바닥에 넘어진 채 미동도 하지 못했고, 메이븐은 미스릴 검에 수통의 물까지 부으며 강박적으로 부지런히 수풀에 대고 씻었다.


용병들이, 반씩 나눠져서 다섯은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고 나머지 다섯은 오우거를 끝장내기 위해 서서히 포위해 다가가며 헬쑥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악마다."


"세상에 아무리 몬스터라지만 그건, 잔인한."


"차라리 우리가 숨통을 끊어줘야."


메이븐은 오우거룰 살피며 그 몸에서 현재 그의 신장으로 찌를 수 있는 부위를 탐색했다. 발목과 무릎 뒤, 고환 그리고 샅, 이렇게 세 곳으로 대상을 좁혔다. 베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더 망설일 시간이 없었고, 그 중 오우거의 움직임을 막고, 치명상을 입힐 곳은 하나뿐이었다.


메이븐은 귀한 미스릴 에스토크가 행여나 상할까 기름칠한 천으로 닦아낸 뒤 검집에 납겁했다. 동료인 베카가 괜찮은지 알아보러 다가가자 그녀가 움찔대며 뒤로 물러났다.


"왜 그래?"


"히익, 제가 잘못했어요."


"그래 다가가지 않을 테니까. 움직일 수 있으면 저기 가서 용병들을 도와 오우거의 숨통을 끊어줘. 소드오러를 쓰는 건 여기서 너 밖에 없잖아."


갑자기 존대말을 쓰는 베카가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메이븐은 그대로 오우거에게 다가가 오우거가 용병들의 파이크, 크로스보우를 견제하느라 방심한 사이 오른쪽 눈을 에스토크로 찔렀다. 역시 명검이었는지 오우거의 눈꺼풀을 가볍게 뚫고 안구를 터뜨렸다.


꾸어어엉.


오우거가 분노에 찬 비명을 토할 때, 메이븐은 가볍게 오우거의 양손을 피해 물러섰다 달려들어 반대쪽 눈도 뚫었다.


"어허, 동작이 크잖아! 힘든 때 일수록 마음은 침착해야지, 오우거 이 친구아."


꾸어엉.


메이븐은 기사들과 대련해주던 버릇이 또 살아난 듯, 인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오우거에게 훈계해 주었다. 드디어 기운을 차린 베카가 다가와 그녀의 기다란 투핸디드소드를 눈이 먼 오우거의 옆구리에 박았다. 2m에 가까운 검이 오우거의 피부를 뚫고 갈비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심장까지 찌르자, 오우거의 숨이 끊어졌다.


"살았다."


헤이거가 방패와 검을 땅에 떨어뜨리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리고 난전 중에 오우거의 주먹에 스쳐 어딘가 날아갔던 그의 찌그러진 투구를 주워들었다. 다른 호위용병들의 얼굴도 그제야 밝아졌다.

유리아 상단의 후계자라고 하던 후덕한 인상의 30대 청년이 짐마차 뒤에서 달려나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미녀 용사님과 조수 두 분.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을 율리시스 우드라고 소개했고, 유리아 지역에 본점을 둔 유리아 상단의 상단주 크리스토퍼 우드의 장남이라고 신분을 밝혔다.


"왜 이런 숲에 들어온 거야? 이 길은 언제 만들었고?"


급조된 밀수로로 보이는 길을 보며 메이븐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밀수든 합법수입이든 구해준 목숨 값만 받으면 그만 아니냐는 베카의 째려봄을 무시했다.


"헤이스팅스 영지에서 최근에 과도한 통행세를 요구하여, 에스피온 제국 수도으로 향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는 구역이 있다길래 길까지 냈는데, 그게 다 이 오우거의 영역이라 그랬나 봅니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이야기하는 착한 눈매의 청년이기에 메이븐은 제정신으로 이 숲에 길을 냈냐고 따지려다 말았다.


"헤이스팅스에서? 가도 유지보수는 중앙정부에서 맡을텐데. 소유권도 없는 도로에 멋대로 통행세를 매긴다라. 영지를 다스리는 헤이스팅스 남작의 머리에 문제가 있나보군."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메이븐이 하대를 하는데도, 방금 전 끔찍한 활약이 인상깊게 남았는지 율리시스는 신경쓰지 않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유리아 상단 후계자들 간 사업이윤 경쟁에 들어갔는데, 제가 장남이다 보니 가장 파이가 큰 헬키아 왕국과 에스피온 제국 황도를 오가는 교역로를 얻어냈습니다. 그런데 보란듯 이런저런 문제가 꽃피지 뭡니까."


"아무튼, 죽은 용병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주변을 정리 하시지요. 어디 안가고 기다리겠습니다. 더 도와드릴 일 있으면 말하시구요. 저는 레이크웰이고 저기 아가씨는 베카라고 합니다."


메이븐이 적당히 율리시즈의 말을 끊고 그를 옆에서 보고를 위해 대기하는 용병대장 헤이거에게 보내주었다.

저만치에서 헤이거가 심각한 얼굴로 율리시즈와 따로 대화를 시작했다. 죽은 용병 다섯과, 팔을 잃은 용병의 이야기를 할 것이다. 유가족이 있다면 유가족에게 보내 줄 위로금, 다쳐서 은퇴한다면 은퇴자금, 치료비, 그리고 추가 위험수당, 돌아가는 길의 행로, 오우거 사체의 처분 등 논의할 내용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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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0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7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1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7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09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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