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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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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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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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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5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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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DUMMY

이상하게 기운이 넘치기 시작해서, 어딘가 주위 사람들이 기분나쁘게 만드는 메이븐이 비장한 각오로 내성으로 이어진 유일한 진입로인 돌다리 앞에 섰다.

메이븐이 베카를 슬쩍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본 적 있어? 천막에서 이루어질 나머지가 무엇인지... 하지만 이거 하나 만은 확실하겠지."


당황한 베카가 갑옷을 입고 투구를 눌러쓴 메이븐을 등 뒤에서 투핸디드소드로 베어버리려 하는 순간 메이븐이 예측한 듯 여유롭게 앞으로 달려나가며 그 공격을 피해냈다. 그림같은 회피술이었다.


"훗, 오늘은 내가 무쌍을 찍어야 할 순간이라는 것."


사람들은 갑옷과 투구때문에 보이진 않지만, 메이븐을 향해 검을 휘두르는 동작이 커진 점에서 베카가 죽을 만큼 부끄러워 한다는 추정이 가능했다.


"레이크웰 더 이상 더러운 주둥이를 열지 마."


베카가 등 뒤에서 휘두르는 모든 베기와 찌르기가 메이븐에게 통하지 않았다. 스퍼트를 낸 메이븐이 베카로부터 멀어졌다.


"너의 공격패턴은 내게 읽히고 있다. 지금껏 많이 맞아 온 경력이 있기 때문이지! 잘 알아둬. 이래서 기사단에서도 경력 있는 신입을 뽑는 거야.'"


"신입에게 경력이 왜 있어?"


베카가 메이븐에게 앙칼지게 소리치며 묻자 메이븐이 갑옷에 맞는 화살의 충격에 휘정대면서도 몸을 수그리고, 푸르스름한 여명 한가운데를 찢고 내성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사회발전에 따라 신입의 스펙도 인플레이션을 겪는 법!"


내성으로 향하는 돌다리 끝의 나무 문이 풀 플레이트 아머를 입은 메이븐의 뒤돌려차기를 맞고 빗장이 부서졌다. 멈추지 않고 메이븐은 나무문에 주먹을 꼳아넣고, 오른손에는 에스토크 사군자, 왼손에는 부러진 피에라브라스를 들어 소리쳤다.


"간다!"


"와라!"


영혼을 추진제 삼아, 추잡한 남자의 욕정이라는 사심 가득한 기사 메이븐이 어깨로 문을 들이받았다. 사방에서 은빛으로 광채를 내는 롱소드가 베어들어왔다. 소드익스퍼트의 검사는 방금 외성에서 모두 죽였기 때문에 몸으로 받아내었다.


텅, 카가각!


왼팔의 두터운 암가드와 장딴지, 그리고 흉갑과 목보호대를 맞은 네 개의 롱소드가 튕겨져 나갔다. 그 뒤로 숨어있었던 노림수였는지 메인 디쉬인, 양손용 모닝스타가 떨어져 내렸다. 족히 1m는 되어보이는 길이에 끝에는 오크 주먹만한 크기의 가시가 돋아난 쇠공이 붙어있는 둔기였다.


'저건 맞으면 한 방에 죽는다.'


갑옷이 뚫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충격으로 갑옷이 우그러지고, 뇌가 진탕되거나 내장이 진탕되어 쓰러지는 것이다. 베기와 찌르기에 강한 기사의 갑옷이 가지는 유일한 약점인 대형 둔기류였다.


'둔기에 맞아 쓰러지면 올라타서 눈구멍, 겨드랑이, 갑옷 이음새에 푹푹!'


메이븐은 아직 방금 전 자신이 어거스트 베네딕트 경을 사냥한 방법을 그대로 당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왼쪽으로 굴렀다. 등의 갑옷을 스치고 지나간 흉흉한 모닝스타의 여파에 그의 몸이 살짝 튕겨나갔다. 그 기세까지 살려서 땅을 짚고 방금 전 롱소드를 찔러 댄 자들 중 하나인 왼편의 젊은 남성의 복부에 사군자를 찔렀다.


"컥. 끄윽. 이 황실의 개가...."


롱소드를 놓친 적이 핏발이 선 눈으로 메이븐의 사군자를 부여잡았다. 그러자 무기가 잠시 봉인되어 당황하는 메이븐의 등에 세 자루의 롱소드와 모닝스타의 육중한 일격이 다가왔다.


메이븐은 당황하지 않고 사군자를 놓고 다시 오른편으로 구르며 허리춤에서 쓰로잉 나이프를 꺼내 양 손에 하나 씩 들고 롱소드를 든 자의 양 허벅지에 사이좋게 박아 주었다.


"아악!"


"저항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피를 보고 싶지 않구나. 어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라."


"피를 보기 싫은 것 치고는 너무 흥겹게 달려든 것 아니냐!"


메이븐은 코웃음치며, 허벅지에 칼이 꼽힌 남자를 발로 차서 쓰러뜨리고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갑옷에 롱소드 검사 두 명의 검이 내리꽂혔지만 레깅스와 건틀릿을 조금 안으로 파이게 했을 뿐 역시 플레이트 아머를 뚫지 못했다.


"나의 갑옷을 뚫기에 노오오력이 부족해."


"크흑. 눈물이 멈추지 않아. 너무 분해."


"가슴이 콱 막히고 답답해...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메이븐의 정신공격에 당한 롱소드 검사들이 패닉에 빠진 사이 모닝스타가 횡으로 크게 반원을 그리며 메이븐에게 날아들었다. 소드익스퍼트는 되지 못했지만 타고난 용력이 보통이 아닌 자였다.

구렛나루가 자란 얼굴에는, 기다란 흉터도 있는 것이 어디가서 산적일을 하면 한 몫 단단히 붙잡을 듯 했다.


"먹고 살기가 힘들다지만 양민이 산적이라는 부정한 짓을 해 먹고 살도록 방관하는 것은 군자의 도가 아니지. 부끄러움을 알아라. 레이크웰식 유교검술 제1초 [도천지수]!"


메이븐은 어깨와 손목의 스냅을 이용해 양손으로 쥔 피에라브라스로 그를 향해 날아오던 모닝스타를 바닥에서 천장으로 올려쳤다.

모닝스타가 태산처럼 버티고 선 메이븐의 반쪽만 남은 미스릴 검을 맞고 불똥을 튀기며 돌로 된 천장을 긁고 거한의 왼편 어깨로 돌아갔다.


"난 산적이 아니야! 되고 싶었던 적도 없다고!"


"거울이나 보고와. 자세한 변명은 서에 가서 하시지."


단순히 생긴 것 가지고 장래의 유망한 도적지망생으로 몰린 모닝스타를 쥔 사내가 억울함에 소리질렀다. 외모차별을 시전한 메이븐은 롱소드를 들고 눈물을 흘리던 사내 하나에게 허리에 태클을 걸어 어깨에 짊어지고 방패처럼 들어 돌진했다.


그의 오른손에는 인간방패가, 왼손에는 피에라브라스가 쥐어져 있었다.


모닝스타로 차마 가족같은 이를 죽일 수는 없었기에 거구의 사내가 모닝스타를 멈췄다.


"비... 비열한!"


"전쟁터에 비열한 짓은 없다. 받아라! 이것이 군자의 검이다."


둔기류 무기는 갑옷을 입은 기사에게 상대적으로 훌륭한 효과를 보이지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아무리 힘이 세도 몇 분간 휘두르면 지쳐서 빈틈을 보인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지금과 같이 멈추면 무거운 무게로 인해 다시 속도를 붙여 휘두르는데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그 찰나의 시간이면 솜씨 좋은 검사는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다.


그리고 거한에게는 불행히도 메이븐은 솜씨 좋은 검사에 속했다. 오른쪽 어깨에 짊어진 인간방패를 모닝스타의 경로를 방해하는 방향으로 버린 메이븐이 피에라브라스로 거한의 복부를 베었다.


피분수가 튀면서 상대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꿀렁꿀렁 피가 바닥으로 흘러나오고 내장이 비치지만 그는 불굴의 투지를 보이며 아직 모닝스타에서 손을 놓지 않은 채 원한에 사무친 눈으로 메이븐을 노려보았다.


"죽여라."


메이븐이 그의 목에 피에라브라스를 가져다대고, 투구 너머로 오만하게 내려보았다.


"베네딕트 가문에 주어진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포기하고, 에스피온 제국의 혁명을 승인하며, 평민으로 돌아가 황제폐하의 백성이 되겠다는 각서에 서명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그런 특권이 어디있는데? 메이븐 티리얼 그 두 번 죽여도 시원찮을 개잡놈이 사병철폐부터 온갖 지랄을 저릴러서 귀족은 이미 평민이나 다름 없어."


뜨끔. 피에라브라스를 든 메이븐이 양심에 격한 통증을 느꼈다.


"아, 아무튼 알량한 영지에 대한 수조권과 영지민에 대한 사법권한 등등..."


"경범죄에 대한 사법권한이 뭔 의미가 있냐, 씨앙. 가져가던가. 죽어라 황태자의 후장을 빠는 개!"


메이븐이 정색하면서 무릎꿇은 채 모닝스타를 든 거구의 베네딕트 가문 구성원을 노려보았다. 최후의 힘을 끌어모아 무릎꿇은 자가 휘두른 모닝스타를 메이븐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허리를 비틀어 피해냈다. 입가에 피가 흐르는 그 거한의 배에 메이븐의 오른주먹이 작렬했다.


퍼억.


"쿠어엉."


'넌 내 앞에서 해선 안 될 말을 했어.'


일리오네의 유품인 피에라브라스를 차마 욕되게 할 수 없어 집어넣은 메이븐이 바닥에서 그의 에스토크, 사군자를 집어들었다.

그가 최후까지 발악한 그 거한의 몸이 마치 다진 고기처럼 보일 때까지 샘솟는 피로 갑옷을 물들이며며 백여번 가까이 찍어대자, 그 광기 어린 기세에 질린 남은 인물들이 멀리 물러났다.


챙그랑, 챙, 챙그랑.


아직 숨이 붙어있다는 사실 때문에 더 끔찍하게 여겨지는, 한 때는 살아있는 사람이었던 피륙 덩어리를 보며 턱을 덜덜 떠는 나머지 잔당들이 무기를 바닥에 버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귀족들의... 악몽."


"무조건 투항입니다."


귀족들의 악몽, 레이크웰 경의 전설이 시작된 날이었다.



*



베카가 들어와서 잔혹한 광경에 눈쌀을 지푸리는 사이 메이븐은 층계를 따라 내성 위를 정리하러 올라갔다.


"이 잔인한 자식! 어디라고 올라오느냐. 베네딕트 남작령은 절대 꺾이지 않는다!"


"좋구나. 나의 사군자도 부러질 지언정 굽히지 않는다!"


바보같은 대사를 읊으며 메이븐이 뛰어들어 용감한 병사들의 심장과 폐, 목, 신장 등에 구멍을 하나 씩 만들어 주었다.


레이크웰을 저주하는 귀족들의 악몽이라는 말이 울려퍼지는 사이 싸구려 철제 갑옷을 온통 피로 물들인 메이븐이 마침내 숏소드를 들고 모습을 드러낸, 궁사들의 대장으로 보이는 이에게 달려들었다


"레이크웰식 유교검술 제2초 [인의예지]!"


거의 동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빠른 4연격의 찌르기가 숏소드를 든 중년 사내의 양 어깨와 옆구리에 쏟아졌다. 막거나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이를 보던 상대가 멍하니 치켜 뜬 눈으로 옷에 새겨진, 점점 번져가는 네 개의 핏빛 동그라미를 돌아보다 허물어졌다.


이번에는 메이븐이 기술명을 외치는 망발을 본 베카가 본대의 선두에서 진입해 오던 당화련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쟤한테 너네 바보 묻었어. 어쩔거야!"


멱살을 잡힌 당화련이 베카의 눈을 피했다.

향방을 찾지 못하는 눈은 메이븐을 뜨거운 남자의 눈으로 바라보며 주먹을 쥐고 있는 남궁연호에게 닿았다.


"...죄송해요, 무림인으로서 사과드립니다. 중원의 안 좋은 문화가 이렇게 퍼져나갈 줄은 몰랐어요."


*



빛나는 소드오러 한 줄기 보여주지 않았건만 메이븐의 활약은 게릴라 부대원 사이에 하나의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물론 베네딕트 남작령을 점령한 뒤 방에서 한 동안 베카와 메이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문에 다른 살도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창피해?"


"야, 우리가 창피 운운할 사이가 아니잖아. 볼 것 안 볼 것 다 봤는데."


한숨을 쉬며 메이븐이 그와 베카의 갑옷을 기름 먹인 천으로 닦았다. 베카는 침대에서 뒹구는 중이었다.


시녀와 종자를 구하는 게 급한 일인 것 같았다. 최근에는 편한 사이가 된 김에 베카가 세족과 세안은 물론 속옷 빨래까지 메이븐에게 시키려는 낌새가 보였다. 일방적으로 퍼주거나 당하는 관계는 지속불가능한 관계라고 명확히 선을 그어야 한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더니 베카와 메이븐이 머무는 베네딕트 성 귀빈실 문 밖으로 파르찬 루이스의 부관 목소리가 들렸다.


"레이크웰 경... 대장님께서 시간이 되시면 잠시 와인이나 한 잔 하자고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네, 곧 가겠습니다."


일단 부대 지휘관의 명령아닌 명령이라 거부할 수 없는 메이븐이 을의 입장에서 겪는 서러움에 대한 논문을 구상하며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베카가 키득거리며 약을 올렸다.


"오늘도 부르네? 이야, 레이크웰 너 남자한테도 인기가 좋아서 부럽다. 난 언제 파르찬 루이스 대장 한테 특상품 와인을 받아 마셔 보나. 날 불러주는 대장은 없나."


"썩을... 약 올리지 마라. 나 예민하다."


오밤중에 남자에게 불려가 술접대를 하는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러나 연 2만골드에 상여금과 성과금 별도는 대충하기에는 너무 큰 돈이었다.


'시발.'


메이븐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베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파르찬 루이스가 있는 영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노크하고 들어가자, 예의 그 부담스러운 호랑이 가죽 롱부츠를 착용하고 종이에 만 담뱃잎을 입에 물고 태우는 은발의 지휘관이 앉아있었다.


"레이크웰 대위입니다."


"앉게. 혁명 동지. 잘 왔네. 나는 자네 가마음에 들어. 왜인지 모르지만 나와 말이 통할 것 같단 말야. 혁명이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 지금부터 토의해 봅세."


베네딕트 남작령 점령 후 장장 5일간 연속으로 불려나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었다. 파르찬 루이스는 사실 메이븐의 의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그의 몽상적이고 이상적이며 이론적인 이야기를 이해하지도 흥미를 갖지도 않는 게릴라 부대원의 틈에 유일하게 이론적 배경과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는 메이븐이 있기에 일방적으로 그의 넋두리를 풀어놓는 것이다.

메이븐이 반박하거나 오류를 짚어주면 중간에 끊고 다시 논리적 모순이 드러난 자기의 주장을 고수했다. 지친 메이븐이 양보할 때까지, 몽롱한 눈의 몽상가는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만해! 이제 질렸어. 혁명이니 민주주의니 나는 관심이 없단 말입니다."


"이런이런, 황태자 암살계획까지 서로 터놓은 친구사이에 그러면 못쓰지. 내가 이해해 줌세."


'이해하지 말고, 삐져서 날 내쫓아 달란 말이다!'


메이븐이 마음 속으로 절규하며 게속 이야기했다. 베네딕트 영지의 특산품이 특등급 와인을 잔에 따라 파르찬 루이스가 메이븐에게 건넸다.


"누구를 죽여야만 손에 넣을 수 있는 그런 이상에 민중들은 관심이 없어. 그들 중 대다수는 사실 지난 제국 건국전쟁 때문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기도 하지. 민중이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관심이 없는데 당신이 불어넣는 이념을 따라 움직일 이유가 없어. 여물지 않았다고! 시기도 여론도. 민중이 없는 민주주의 따위 결국 이상주의라는 간판을 내건 독재나 폭정으로 흘러갈 뿐이야. 단두대에서 반민주주의 인사라며 또 수십, 아니 수백명의 목을 자르고 피에 목말라 하겠지."


"호오?"


"그게 당신들, 혁명가라는 족속들이야!"


메이븐이 마침내 5일 동안 뱃속에 꾹꾹 담아온 화를 토해냈다. 민중이 없는 민주주의, 민중들이 스스로 원하지 않은 정치제도. 그런 건 강제로 외부에서 주입하는 게 아니다.


"혁명은 혁명가의 두뇌나 꿈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많은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지로부터 출발해야 해. 위로부터 강요하는 건 출발부터 실패한, 혁명의 탈을 쓴 정치폭력일 뿐이야. 그건 혁명이 아니라 쿠데타지."


"아니 레이크웰 동지. 그대는 아직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대한지, 혁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네. 그것은... 개개인의 삶보다 거대한 운명적 부름이지."


"무슨 뜬구름 같은 개소리야! 두 발을 딛고 사는 지상에 관심을 가져."


메이븐이 폭발해서 와인잔을 거칠게 내려놓고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부여잡았다.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였다.

혈압을 다잡은 메이븐이 파르찬 루이스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들어봐, 어떤 혁명가는 권력을 쥔 뒤 식량 생산이 줄어들자 초조해했어, 그래서 모든 경작용 소들을 다음해부터 공동소유로 해서 농업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계획을 공표했지.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아름다운 계획이군. 시도해 볼만 해. 모든 밭을 공동의 소유로하고 농기구와 경작하는 소들도 함께 쓴다면 이웃간의 불화는 사라지고 낙원이 건설될 거야."


"아니야! 사람들은 어차피 내년이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되는 소들을 도축해서 그 해 겨울 모두 잡아먹었어. 그리고 이듬해 흉작으로 대기근이 닥치면서 인구 열 명 중 하나가 아사했지."


파르찬 루이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이 원목의자의 팔걸이를 주먹으로 쿵 하고 내리쳤다.


"그렇군! 혁명가가 좀 더 불꽃처럼 몰아붙이지 못하고, 공포문을 붙이고 이듬해까지 유예를 둔 게 잘못이었군. 혁명은... 혁명은 한 번에 몰아붙이는 불꽃이어야 했던 거야. 레이크웰, 자네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거지?"


메이븐이 파르찬의 개소리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유리로 된 와인잔을 벽에 내던졌다. 유리가 챙그랑 깨어지는 소리에 놀란 부관이 칼을 빼어들고 문 밖에서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파르찬 루이스가 손을 들고 괜찮다는 듯 제지하자 부관과 경호원이 멈춰섰다. 메이븐이 유리조각이 박혀서 피가 흐르는 손을 늘어뜨리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멍청아. 위로부터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아래로 하달하는. 그 위에서 주도하는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다. 불꽃? 부울꼬옻? 장난하냐. 현장의 농민들이나 학자들에게 의견수렴만 제대로 받고 숙의했으면 안 죽어도 됐을 무고한 사람들이 혁명가의 몽상 때문에 수만 단위로 죽었다는 이야기야."


"새로운 시도는 어느 정도 희생을 요구하지."


파르찬 루이스가 와인을 삼킨 뒤 담뱃대를 물고 담담하게 말했다.


"레이크웰 경, 그러나 곰팡이가 무서워 치즈를 못담가서 쓰겠나. 지상낙원을 만들기 위해 시행착오가 있을 걸 나도 예상한다네. 새로 한 잔 들게."


'저 놈은 황태자만큼 미친 놈이야. 자기가 하려는 쿠데타가 혁명이라 믿고 있어.'


메이븐이 파르찬 루이스의 부관에게 받은 손수건으로 손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속으로 생각했다. 파르찬은 다른 와인잔에 피처럼 붉은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메이븐은 유리잔의 투명한 벽을 따라 흐르는 붉은 포도주를 보았다. 그는 파르찬 루이스가 혁명이라는 단어로 민중의 미래를 멋대로 납치하려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에반스 에스피온이 집권하든 파르찬 루이스가 쿠데타에 성공하든 이 제국은 망했군.'


파르찬이 잔을 넘겨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나저나 지난 전투에서 자네와 바바 경의 활약은 대단했네. 성과금으로 1만 골드를 주지."


"파르찬 루이스, 당신은! 당신은...!"


메이븐이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테이블을 내리쳤다.


"정말 훌륭한 혁명가요!"


그러고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파르찬에게 악수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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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0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7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6 0 17쪽
»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8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1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1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7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1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7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09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5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1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3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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