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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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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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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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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2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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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황도의 비밀결사 (3)

DUMMY

갈색 짧은 머리에 금빛 눈동자, 그리고 무엇보다 메이븐 자신이 오늘 아침에 꼭꼭 세심하게 조여준 멋들어진 제2기사단장 맞춤의 백금빛 여성갑옷.

메이븐은 빈민촌 어느 녹색지붕의 집에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골목길 반대편에서 베카가 벌인 파괴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짚으며 걸어오는 일리오네를 보았다.


이곳은 메이븐과 베카가 난리를 치며 통과한 곳 가운데 가장 인적이 드문 지점이다. 햇볕도 들지 않고 쥐들만 창궐하는 하수도 도랑이 있는 골목이었다.

그래서 전날 밤에는 메이븐이 이 근처 도랑에 대머리 도적의 시체를 던져버리기도 했었다.


'일리오네. 네가 직접 움직였구나.'


일리오네는 멀리서 메이븐이 보기에도 걱정을 한가득 담은 표정으로 근심스럽게 소드오러에 파괴된 흔적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면 곧 오필리아 하이멜의 저택으로 향했던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메이븐의 안위를 걱정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져 일리오네를 향해 마법으로 강화한 검을 겨눌 준비를 마친 채 잠복해있던 메이븐은 순간 망설였다.


메이븐이 이내 결심한 듯, 골목 밑을 지나는 일리오네를 바라보았다.

그는 지붕 반대편 밑으로 뛰어내리더니, 바닥에 닿을 때 재빨리 몸을 앞으로 굴려 충격을 분산하고 그림처럼 정확히, 다가오던 일리오네의 맞은편에 멈춰 그대로 일어섰다. 일련의 추락과 착지, 구르는 동작을 연계해 끝맺는 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시미터 대신 글라디우스와 서늘한 예기를 품은 단검을 꺼내 들었고, 머리카락도 검게 물들여 짧게 깎았지만 일리오네는 단번에 메이븐을 알아보았다.


"단장님? 무사하셨네요!"


"일리오네, 다가오지 말고 검을 들어라."


"네? 무슨 말씀이세요."


일리오네가 검을 검집에 납검하고 성큼성큼 걸어왔다. 메이븐은 경고삼아 글라디우스를 일리오네에게 겨누고 왼 손으로 파란 예기가 감도는 망고슈를 역수로 잡아 들어 올렸다.

마치 권투를 준비하듯 글라디우스를 쥔 오른 손 옆에 가드처럼 망고슈를 쥔 왼손을 가져다 붙였다.


"'어둠의 자매들'에 대해 말해라."


일리오네가 그 말에 다가오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여전히 검은 손에 들지 않은 채 황금빛 눈동자로 메이븐을 애타게 응시했다.


"저와 함께 하는 동지들입니다. 단장님께 해가 되는 일은 한 적 없습니다."


"그래,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해가 되는 일은?"


"종종 있을 수 있었겠지요."


"그 종종이 어떤 일들을 말하는지 묻고 싶은데. 오필리아 하이멜과 티리얼 영지의 시골귀족 레베카 양에서 일어난 사건도 포함하겠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 내가 결투로 널 이기면 말해주는 거냐?"


일리오네가 착잡한 듯 말하며 허리에 찬 시미터 손잡이에 그녀의 단련된 잔근육이 붙은 손을 올렸다.

메이븐은 자세를 유지하고 무릎을 살짝 구부려 언제든 달려나갈 수 있게 준비했다. 서늘한 바람이 황도의 뒷골목 속으로 불었다. 찌르는 듯한 악취가 실려왔다. 예전부터, 평기사 시절부터 일리오네의 검을 봐주기 위해 정기적으로 하던 대련들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자신이 가르쳐주듯 느슨하게 대련에 임했으나, 일리오네는 무서운 재능으로 메이븐의 지도를 흡수하더니 소드익스퍼트 상급에 들었다.

메이븐이 진심이되어 싸우지 않으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소드마스터가 된 후로, 그가 문관으로 사무실에 붙잡혀있던 7년간 일리오네는 현장과 기사단 연무실을 오가며 실력을 가다듬었다.

태생적으로 근력이 부족한 여인의 몸이라는 점도 소드마스터가 되면서 더는 약점이 아니게 되었다.

일리오네는 생각했다. 반면 메이븐 티리얼 전 단장은 현재 마나를 쓸 수 없는 몸이다. 그녀가 질래야 질 수 없다.


"나쁘지 않군요."


"결투에서 내가 이기면, 네가 아는 모든 것을 말해."


"쉽지 않을 겁니다. 대신 단장님도 제 소원 하나를 그게 무엇이든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들어주는 겁니다."


일리오네가 시미터를 빼내어 그녀의 몸 앞에 일자로 세우자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유려한 곡도의 검신이 메이븐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좋아."


"이런 조건이면 저도... 부탁드릴 게 있고 절대 질 수 없습니다. 봐드리지 않습니다."


일리오네가 오른손에 그녀의 마스코트인 붉은 빛이 감도는 차가운 시미터를 들고 달려들었다. 소드마스터 일리오네의 검으로 유명한 '피에라브라스'였다.


메이븐은 불안하게 오필리아 하이멜의 저택 병사가 쓰던 글라디우스를 보았다. 피에라브라스에 부딪히면 이가 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승부를 길게 끌 생각도 없고, 그러면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그가 불리하다.

일리오네가 마나를 쓰지 못하고 어려진 메이븐을 보며 방심하는 순간, 한 순간에 망고슈에 걸린 강화마법과 순간가속기술을 믿고 승부를 걸어야 한다.


"다쳐도 치료는 걱정마십시오."


마치 간을 보려는 듯 일리오네는 시미터에 소드오러를 두르지 않고 시미터를 발목 높이까지 낮게 내린채 느긋하게 다가왔다. 그녀의 피에라브라스에 베이는 거리까지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재던 메이븐은 글라디우스로 가볍게 중단 찌르기를 넣었다.

일리오네는 걸음을 멈추지도 않고 여유롭게 손목만 움직여 발목까지 내렸던 시미터를 위로 쳐올렸다. 그런데 시미터의 칼날이 아닌 칼등으로 글라디우스의 검신을 때렸다. 그 기묘한 움직임에 메이븐은 옛날 지도대련에서 처음으로 이 천재 검사에게 엿을 먹었던 기억이 나서 바로 왼손의 망고슈 단검을 얼굴 앞으로 들어올렸다.


캬강!


일리오네의 시미터와 메이븐의 글라디우스가 힘겨루기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던 건 일리오네의 속임수였다.

곡도인 시미터의 도신은 휘어져있기 때문이다.

새들이 날아가는 푸른 하늘을 향해 위로 뻗어있던 시미터가 일리오네가 칼등을 댄 체 겨루던 도신을 뒤집자, 태양을 향하던 날카로운 피에라브라스의 첨단이 그대로 메이븐의 얼굴에 쏟아져내렸던 것이다.

물흐르듯 자연스러운 곡도의 운용이었다. 메이븐은 식은땀을 흘리며 망고슈로 빗겨낸 시미터를 보았다.


"역시 근접전에서 까다로운 검이야."


"단장님께는 통하지 않지만요."


검신을 서로 맛대고 힘을 겨루는 대치상태 일 때 검사들은 보통 방심한다. 도신이 극단적으로 휘어있는 시미터는 그 상태에서 검을 한 바퀴 뒤집는 것 만으로 검끝이 상대방의 어깨, 목, 얼굴 등에 치명적 일격을 입힌다.


메이븐은 시미터를 망고슈와 글라디우스로 힘껏 밀고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일리오네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멈추지 않은 느긋하고 나긋나긋한 걸음걸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앞에 내딛은 발은 정면을 향해 곧게 정령되고 뒤의 발은 사선으로 위치시키며 흔들리지 않는다.


"누군지 몰라도 잘 가르쳤네."


"덕분입니다. 단장님, 그리고 오늘 그 누구를 넘어서겠네요."


일리오네는 시미터를 다시 고쳐잡아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소드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는 메이븐의 검은 두려울 게 없다. 그녀가 메이븐을 향해 달려왔다.


'드디어 얕보고 있군. 기회다.'


탐색전은 끝났다는 듯이 순식간에 일리오네가 거리를 좁혔다. 눈부시게 빛나는 붉은색 소드오러가 피에라브라스에 맺혔다. 시미터 자체가 보이지 않을 만큼 활활 타오르는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불꽃이 피어올랐다.


메이븐도 이번이 마지막임을 느꼈다. 그는 마법시약으로 강화된 망고슈를 역수로 쥔 채 무릎에 대고 몸을 낮췄다.


'힘으로 맞서면 내가 메튜의 대검에 맞았던 때처럼 통째로 날아가 벽에 처박힐 것이다. 일리오네는 찌르기는 하지 않는다. 베기의 궤적에 망고슈를 가져다대고 그대로 피에라브라스의 도신을 따라 달려들어 품으로 뛰어든다.'


메이븐은 일리오네와 7년 전 겨루던 지도대련을 떠올리며 망고슈로 그녀가 즐겨 노리던 왼쪽 옆구리를 막았다.


펑!


칼을 말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슬레지헤머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대로 이를 악물고 식은땀을 흘리며 달려들었다.

그 와중에 일리오네가 미소짓더니 부드럽게 피에라브라스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몸을 회전하며 등 뒤로 거둬들인 오른손을 뻗었다.

시미터는 까다로운 검이다.

시미터로 찌르기를 하던 메이븐의 어설픈 검술과 달리 일리오네는 제대로된 시미터 검술을 사용했다. 직선형 검이라면 등을 돌아 허공으로 뻗었겠지만, 극단적으로 휘어진 시미터는 일리오네의 몸을 따라 휘어져 일리오네의 왼편에서 메이븐의 목을 향해 튀어나왔다. 마치 일리오네의 왼편 어꺠에서 날카로운 뿔이 튀어나오는 느낌이었다.

일리오네의 황금빛 눈동자가 오만하게 메이븐의 파란 눈을 내려다보았다.


'근접전에 까다로운 무기라고 말했지요?'


메이븐은 허전해진 망고슈를 따라 일리오네가 회전한 방향으로 따라 돌아들어가며 휘어진 시미터의 끝을 피하려 했지만, 슬레지헤머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주춤거렸다.

결국 그대로 우측 정면에서 찔러들어오는피에라 브라스에 오른쪽 어깨를 꿰뚫렸다.

어깨를 관통하자 피에라브라스에 실렸던 소드오러가 지워졌다. 행여나 메이븐이 움직이며 오른쪽 팔이 떨어져나갈까 걱정한 일리오네가 소드오러를 없애고 시미터를 도로 뽑은 것이다.

그녀가 당황하는 잠깐의 틈을 포착하고 메이븐이 일리오네의 품을 향해 앞으로 쓰러지면서 오른쪽 어깨의 통증을 참은 채 글라디우스를 그녀의 목에 휘둘렀다. 그러자 살갗이 옅게 베이며 피가 베어나왔다.


퍼석-!


두 번, 명검 피에라브라스에 실린 소드마스터의 오러를 막은 대머리 도적의 단검이 가만히 있다 절로 부러졌다.


"...내가 이긴건가?"


"단장님, 실전이면 이미 오른팔이 잘린 다음입니다. 그 상황에서 오른팔로 검을 휘둘러 목을 벨 순 없습니다."


"대련이었잖아?"


"대련에서 어깨에 그 정도 상처를 입는 즉시 끝나는 겁니다."


"비긴거네, 그럼."


일리오네가 욱하고 따지려다 피를 철철 흘리며 부러진 단검 손잡이와 이가 나가 고철이 된 글라디우스를 내던지고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운 메이븐을 보고 힘이 풀려서 그만 피식 웃었다.

팔다리를 꼼짝할 기운도 없는지 그대로 드러누워 귀여운 파란 눈동자만 굴려서 그녀를 돌아보고 있었다. 일리오네는 터무늬 없이 젊어지다 못해 어려진 그녀의 스승을 보며 한숨을 쉬고 그의 어깨상처를 보았다. 상처 속에 들어간 옷조각들을 그녀가 건틀릿을 낀 손으로 빼내자 메이븐이 아픈지 얼굴을 찌푸렸다. 일리오네가 간단하게 지형한 뒤 갑옷 안에서 제2기사단장에게 주어지는 값비싼 힐링포션을 꺼내 메이븐의 어깨에 부어주었다.

거품이 일면서 상처가 서서히 아물었다. 근육이나 힘줄은 비켜갔다.


"...뭐, 특별히 제2기사단장의 권한으로 비긴 걸로 해드리겠습니다."


메이븐은 그대로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채 스멀스멀 올라오는 뒷골목의 불쾌한 악취에 코를 한두번 킁킁 거렸다.


"그럼 반만 말해줘. 어둠의 자매들이 뭐야?"


"팬클럽이 양지에서 메이븐 티리얼을 추종한다면, 어둠의 자매들은 그림자 속에서 메이븐 티리얼을 공공재이자 문화유산으로 선언하고 보이지 않는 투명한 방울을 만든 귀족들의 모임입니다."


'악성 스토킹 모임이잖아?'


입안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끼며 메이븐이 침을 삼키고 물었다.


"어둠의 자매들의 수장은 누구이지? 인원은 몇 명이고?"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단장님, 그런데 누워있는 게 재밌어 보이네요. 저도 그 옆에 누워도 될까요? 답해주는 대신 팔베게 해주십시오."


"...일어나야겠군."


메이븐이 오른쪽 어깨에 자극이 가지 않게 주의하며 왼쪽으로 몸을 굴려 땅을 짚었다. 고통으로 오만상을 찌푸리면서도, 자존심상 일리오네의 팔베게 신세를 피하기 위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예상컨데 그들은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인생이 따로 있는 이들이겠지?"


"맞습니다. 귀족여인들이라 혼기가 차면 정략결혼을 하게되지요. 애정이 넘치는 가정생활을 가진 분도 계시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계십니다. 오해하시면 안 될 게 이제 어둠의 자매회는 단순히 단장님을 공동재산 정도로 취급하는 여인들의 모임이 아닙니다. 제국의 운명과 위태로운 앞날을 헤쳐나가기 위해 그림자 속에서 활약하는 여인들의 모임이지요. 그간 조금씩 성격이 변해서 메이븐 티리얼 백작의 죽음은 제국의 안정과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당신을 보호하는 것 입니다."


"레베카 양의 편지를 찢어서 돌려보내고, 빼돌리고. 내 편지를 그녀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그게 제국의 안정을 위한 거야? 오필리아 하이멜이 광증에 빠질 때까지 그녀와의 접촉을 막은 것도?"


"때로 과격한 의견을 가진 이들이 주도권을 가질 때가 있었지요."


"예를 들어 황실 말이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공작가 영애를 저 지경으로 만들었겠어."


"이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나는 개처럼 굴러가며 제국을 세우고 에스피온 황가를 위했는데. 어째서..."


일리오네가 메이븐의 얼굴을 외면하더니 메이븐이 지팡이 삼기 위해 집어든 글라디우스를 강제로 메이븐의 손에서 빼았았다. 메이븐의 손이 힘이 풀려서 떨리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메이븐의 왼손을 그녀의 목 뒤로 넘겨 부축했다.


"대답해드린 건 비밀로 해주시고. 제 부탁은 부축을 받아주시는 걸로 하지요. 그리고 승부는 단장님에게 마나가 돌아오면 다시 냅시다. 그 때 진짜 부탁을 말할 겁니다."


메이븐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며 일리오네가 고개를 돌렸다. 목까지 얼굴이 붉어져있었다. 메이븐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갑자기 뇌리를 스친 불길한 예감에 일리오네의 오른쪽 귀에 대고 살포시 속삭이듯 물어보았다.


"야... 여자들 뿐이지?"


"남자도 몇 명 있습니다."


"시발."



*



제1치료사령부 응급실로 2m 20cm는 되어보이는 거대한 키의 거인이 들어섰다. 위쪽 문틀에 잘도 머리가 부딪히지 않았다. 송곳니가 발달한 듯 튀어나와 있었고, 들창코와 녹색빛이 감도는 질긴 피부는 그 거인이 사람보다 오크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주었다. 거인은 길게 기른 검은색 머리를 등 뒤에 단아하게 한 줄로 묶고 있었다.

하얀색 장식없는 간편한 옷을 입은 그 거인이 응급실로 들어서자 응급실에 있던 간호원과 치료사들이 입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곧 그 거인이 입에서 가느다랗고 높은 여인의 음색이 흘러나왔다.


"취이익! 메리라고?"


베카가 갑작스런 오크의 등장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투핸디드소드에 손을 가져대었다. 그 때 거인이 황록색 눈동자로 메튜의 침상을 사이에 두고 베카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메리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취엑! 메리, 정말 너로구나. 췩! 네가 메이븐님의 편지를 가져왔니?"


메리와 아는 사이인 것으로 보이는 오크의 행동에 베카가 잡으려던 투핸디드소드의 손잡이를 도로 놓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고 있는 메리를 보았다.


"네, 성녀님. 신전에서 나오고 오랜만입니다. 빌려주신 '미남과 야수'는 아직도 애독중입니다. 티리얼 백작님께서 여기 누워있는 메튜 경의 치료를 부탁한다고 하셨어요. 조만간 찾아 뵙는데요."


순간 오크의 얼굴이 수줍게 붉어졌다고 베카는 생각했다. 베카는 성녀님이 환자를 보실 수 있도록 침상에서 비켜선 메리에게 슬금슬금 다가 두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메리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뭐? 성녀님? 성녀니임?"


"...나중에 설명해 드릴께요. 조용히 계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베카의 무례에도 익숙한 듯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오크, 아니 성녀는 가만히 누워있는 메튜의 얼굴 위에 거의 메리의 얼굴만한 크기의 두툼한 녹색피부의 손을 올리고 성신께 올리는 기도를 드렸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할 뿐]!"


그러자 신비로운 새하얀 신성력이 돌면서 메튜의 난장판이 된 얼굴에서,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듯이 새살이 돋고 잃어버렸던 코와 왼쪽 귀, 윗입술의 피부가 재건되었다.


"장난아니다. 정말 성녀님이셨네!"


베카의 경박한 감탄 가운데 신성력을 이용한 치료를 마친 스텔라가 인자한 황록색 오크의 눈으로 메리와 베카를 돌아보며 푸근하게 미소지었다.


"이것으로 응급처치는 마쳤습니다. 일주일간 입원해 요양하면 흉터는 지겠지만 어느 정도 얼굴의 원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흑, 스텔라 성녀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메리가 울먹거리며 연신 성녀 스텔라님의 털이 자란 솥뚜껑만한 손을 잡고 감사인사를 드렸다.


"취엑! 그래, 그나저나 메이븐 님이 살아있다니 다행이로구나."


메이븐을 떠올린 듯 뺨에 불그스레한 홍조를 띤 하프오크가 걸어와 얼굴이 망가진 메튜 경 앞에 섰다. 응급실에 온 뒤로 잠들어있던 메튜가 치료가 이루어지자 정신을 차린 듯 끙 신음소리를 내며 눈꺼풀을 떨었다.

메튜가 헛것이 보이는 듯 침대에 누워 공중에 두 손을 허우적댔다.


"으아가, 몬스터다. 몬스터, 천사님 어서 도망쳐."


메리가 자연스럽게 그런 메튜에게 달려가 양손으로 힘껏 방금 막 재생된 입을 잡아눌렀다. 피가 흘러나와 얼굴 옆으로 줄기줄기 흘러내리는 가운데 메튜가 차츰 차분해졌다.

칼에 찢어졌던 입술이 다시 벌어졌는지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는 가운데 메튜 보울더 경이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다 서서히 다시 의식을 잃어갔다.


"취엑! 호호, 상처가 심한지 열이 올라서 헛소리를 하는군요. 취이익! 치료는 잘 마무리 되었어요."


베카가 조용히 이마의 땀을 닦는 메리에게 자가가 이제 응급실의 다른 침상을 돌며 회진을 시작한 성녀 스텔라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속삭여서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성녀님이라니, 암컷오크잖아?"


"암컷오크라니요! 스텔라님은 그저 하프오크이세요. 반은 인간, 반은 오크이시지요."


베카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메리가 들어올 때부터 이상했던 성신의 신전의 풍경을 하나하나 되짚어주면서 베카의 이해가 되도록 쉽게 이루어지도록 설명했다.


"오실 때 보았겠지만, 모토가 '강인한 몸에 강인한 신성력이 깃든다'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강인한 몸하면 하프오크, 하프오크 하면 성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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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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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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