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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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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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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8.03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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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DUMMY

"그래, 그렇다고 실행해내지 못할 사람도 아니지."


파르찬 루이스가 평소의 흐리멍텅한 눈이 아닌 또렷한 눈빛으로 메이븐을 마주보았다. 그의 정체를 아는 것은 아닌데 저도 모르게 그 눈빛에서 근거를 알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발견한 메이븐은 진지하게 그에게 되물었다.


"...나에 대해 알아?"


"레이크웰 대위, 그대는 전략과 공성전이 무엇인지 안다고 보인다. 네 행동양식이나 말투를 보면... 메이븐 티리얼에게 단순히 검술만 배운 건 아닌 것 같다. 네가 투입된다면 할 수 있다는 걸 알 따름이다. 부족한 무력은 바바 경, 아니 바바 소좌와 황태자님께서 붙여준 특별용병들이 메워줄 것이다."


"뭐, 최선을 다하지. 위험하면 중도포기하고 복귀할테니까 원망하지는 말라고."


"그것은 재량이다. 레이크웰, 자네도 알겠지만 이 세상에는 한낯 인간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몽상가 저놈 저거, 또 뜬구름 잡는 소리하고 자뻑하네...'


메이븐이 혀를 차는 가운데, 파르찬 루이스가 회의실에서 정보작전담당과 군수보급담당의 작전준비 관련 보고를 듣고 돌아보며 지휘부 작전회의의 종료를 알렸다.


"이것으로 작전회의는 종료한다. 계획대로 오늘 저녁에 해가 저물면 그와 동시에 주둔지를 떠나 자정 전까지 베네딕트 영지 인근으로 이동하기로 한다."


그 때 미처 깜빡했다는 듯 파르찬 루이스가 메이븐과 베카를 노골적으로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아, 아까 말한 지원군으로 황태자님의 특별용병 두 명은 그곳에서 합류할 예정이다."


메이븐은 생각했다. 그럼 그렇지. 파르찬 루이스는 뭔가 꿍꿍이가 있었던 것이다. 그 지원군 둘의 정체는 별동대 일곱명을 이끌고 출발 준비를 완료한 베카와 메이븐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성문을 열기 위한 특공대는 병사 일곱명과 베카, 메이븐, 그리고 지원군이라며 등장한 헐렁한 동대륙식 복식을 갖춘 검은 머리가락과 눈동자를 가진 두 남녀까지 총 11명이었다.



*



"저딴 성벽이 뭐가 문제라고 이리 조심하는가!"


남궁가인지 뭐시기 가문인지에서 수련을 위해 서역으로 떠나왔다는 남궁연호라고 하는 궁시렁쟁이가 레이크웰에게 불평을 토로헀다. 그는 남자다운 선이 살아있는 다부진 얼굴에 귀공자다운 품위를 가지고 있어 메이븐과 베카가 보기에 그의 고급스러운 금장식이 들어간 동양식 장검과 함께 어우러져 한 눈에도 동야의 귀한집 자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그럼 딱 봐도 견적 나오잖아. 저걸 어떻게 공략해. 우리가 잠입해서 성문을 연다니까."


"야밤에 잠든 적을 급습하는 것만도 비겁한데, 잠입해 성문을 열어버린다니. 무사의 이름이 부끄럽다."


"야! 무사수행 하러 왜 전쟁터를 와."


"내 마음이다."


"레이크웰 소협이 너그럽게 참으세요. 남궁 오라버니는 툭하면 저러니까요."


"당 사매 자꾸 그러기인가? 사매는 나에 대한 판단을 고칠 필요가 있어."


"그럴까요? 주위에 물어보시죠."


당화련라고 불리는 새침한 인상의 어린 여인이 작전 개시 전부터 서로 옥신각신하는 남궁연호와 메이븐을 떼어 놓았다. 다행히 남궁연호는 보기와 다르게 그가 사매라고 부르는 당화련에게 꼼짝도 못하는 듯 싶었다.


'시발. 파르찬 루이스 새끼. 쓰레기를 하나 더 줬어.'


그나마 다행히 당화련의 경우는 남궁시렁궁시렁과 달리 신중하고 작전계획의 검토도 도와주며 장비를 일일히 확인하는 등 노련한 면모를 보였다. 아직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인임에도 신뢰감과 믿음을 주었다.


파르찬 루이스의 말에 따르면, 황태자가 고용한 특급용병인 그들이 이번 작전의 수행에 꼭 필요할 것이라고 했다. 뭐라던가, 몸이 가벼워서 순식간에 벽을 넘어설 수 있다고 하던가? 메이븐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실제 목격하지도 않고, 전에 비슷한 사례를 들은 적도 없는 일을 덜컥 믿어버릴 만큼 그는 순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마법사인가? 검을 든 거나 몸의 근골이 발달된 형태를 보나 둘 다 무인들인데... 어떻게 몸무게를 가볍게 해서 벽을 타오른다는 거지?'


총 열한 명의 인원은 조용히 녹조류가 잔뜩 낀, 맑은 물이라고 농담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물을 헤엄쳐서 건너갔다. 물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잠수와 수영을 반복했다.

더러운 해자에 들어갔다 나온 베카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이게 뭐야. 우웩."


"베카 언니, 조금만 참으세요."


당화련이 베카를 달래며 얇고 튼튼한, 그녀 가천잠사락 라고부르는 실이 매달린 갈퀴를 마치 암기처럼 성벽 위로 던졌다. 소리도 없이, 갈퀴가 성벽 꼭대기 난간에 두부처럼 박혀들었다.


"아가씨, 굉장한데요. 소드오러를 실에 실어서 보내는 방법도 생각도 못했고, 거디가 갈퀴가 돌에 고정되는 순간 바로 오러를 거뒀어요. 소리 하나 나지 않다니!"


메이븐이 진심으로 감탄하면서 당화련이 걸어준 천잠사를 붙잡아 사람의 체중을 견디는지 당겨보았다. 가느다란 실은 놀랍도록 튼튼했다.


베카는 경의와 흠모의 감정을 담은 메이븐의 눈빛이 못마땅했는지 다가와 메이븐의 옆구리를 걷어찼다.


"윽."


"야, 레이크웰 넌 저런 거 안 배워두고 뭐했어."


"내가 만능이냐. 도적도 아니고, 나는 검이 주력이고 투척류 무기는 보조라..."


남궁연호가 긴장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베카와 메이븐의 만담에 핀잔을 주고 당화련을 따라 천잠사를 붙잡고 소리없이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실없는 소리들 그만하고 어서 올라가지?"


베카가 메이븐의 등을 떠밀었다.


"레이크웰, 니가 먼저 올라가."


"어허, 너 지금 하늘같은 스승님보고 어둠 속에서 날아 올 보이지도 않을 화살들을 제자 앞에서 쳐내란 것이냐?"


"나는? 내가 먼저 가면 나보고 그러란 거냐 시발아?"


메이븐은 베카를 남겨두고 꾸역꾸역 성벽을 타고 올랐다. 당화련과 남궁연호는 놀랄만큼 몸이 가볍고 날랜지 메이븐이 중간 쯤 오고 베카가 삼분지 일 높이를 막 지났을 때 저 위에서 이미 소리없이 경비병의 목에 암기와 검을 박아 넣으며 기습을 시작했다.


그제야 빨리 올라가서 도와야 겠다는 생각이 든 메이븐이 성벽을 박차고 올라서서 성문을 내리는 도르레가 설치된 지점을 보았다. 베네딕트 영지 성문인근 구조는 작전계획서와 함께 받은 건축도면을 보고 외워되었다.


'저기로군.'


푸르스름한 빛이 나는 에스토크 사군자 대신, 검은빛으로 칠해져 빛을 반사하지 않는 그의 소드브레이커를 꺼낸 메이븐이 살금살금 다가가다 신호용인 듯한 뿔피리를 들어올리는 경비병을 발견했다.


급한대로 메이븐이 소드브레이커의 날카로운 날이 서있는 면을 휘둘러 뿔피리를 쥔 오른손을 잘라버리고 다가가 손으로 그 경계병의 입을 틀어막았다.


"쯧, 손목 하나 잘렸다고 비명지르기는... 얌마, 형은 모가지가 잘려도 아프단 신음소리 한 번 안냈어."


'시방새야...! 당연히 목이 잘리면 성대와 폐가 분리돼 공기를 내쉬지 못하는데. 안 낸게 아니라 못 낸거지!'


십대소년이 형 운운하는 게 기가 막히지만 입이 틀어막혀져 목소리가 안나오는 병사가 악을 쓰며 버둥거렸다. 겁에 질려 메이븐에게 붙잡힌 채, 오른손이 잘려나간 충격에 희끅대며 악을 쓰는 경계병의 폐에 다시 재빠르게 소드브레이커가 박혔다.


폐에 단검이 찔리자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이제 병사는 더이상 소리를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서 곧 죽을 것이다.


계단을 따라 뛰어내려가는 메이븐이 적을 상대하느라 여력이 없는 당화련과 남궁연호를 대신해 도르레에 고정된 밧줄을 소드브레이커로 끊었다.


끼리릭


기름칠이 안 된 도르레가 축에서 돌아가는 소리가 나며 천천히 성문이 해자를 넘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삐이이익!


호각소리가 들렸다. 이제 침투사실이 들킨 것이다. 성벽 위는 베카를 필두로 올라온 엄선된 일곱 명의 별동대 병사들까지 더해서 혼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메이븐은 다시 계단을 뛰어 올라가 그들을 거들었다. 저 성벼 벽위에 궁병이 올라서면 골치가 아플테니까.


정신없이 쓰로잉나이프를 날려 장창을 휘두르는 잘 훈련된 베네딕트 영지의 경비병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그리고 가끔은 다가가 에스토크로 목이나 심장, 폐부를 찔러 무력화했다.


베카는 대여섯명을 쓰러뜨리고 십수명을 해치운 무서운 암기술의 달인인 당화련과 함께 서로 등을 맞대고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성문 위를 정리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메이븐의 근처로 달려온 남궁연호가 이제 성벽 위 정리가 끝났으니, 그들도 밑으로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레이크웰, 위쪽은 이제 다 정리가 되었다. 내려가서 밑의 병력과 합류하자."


남궁연호가 성벽에서 훌쩍 뛰어 내렸다. 분명 같이 뛰어내렸는데 남궁연호는 어느순간 갑자기 훌쩍 가속해서 더 빠르게 나려가더니 쿵 하고 활짝 열린 성문 위로 무거운 포탄이 내리 찍듯 떨어졌다.


"워매, 뭐야. 남궁시렁, 너 무릎 괜찮냐?"


메이븐이 저도 모르게 걱정스러운 말을 뱉으며 성벽에 작게나마 있는 경사를 이용해 발을 디디며 서서히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래도 계단을 이용하는 베카와 당화련보다는 빠른 하강이었다.

답답한 듯이 이미 성문 앞 땅에 내려선 남궁연호가 검을 휘두르다 메이븐에게 소리질렀다.


"빨리 와라! 도대체 내공도 기초가 없고, 단전에 기를 모으지도 않으며 혈도도 모르고 서역의 검사들은 아마추어들이야. 설마 천근추도 모르나?"


"천근추? 뭐냐?"


"아아! 맙소사. 내공을 몸에 돌려 순간적으로 체중을 늘려 허공에서 원하는 순간 땅으로 꽂아내리는 우리 중원의 신비로운 수법이다."


메이븐은 속사포처럼 터지는 남궁연호의 중원자랑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다가 자랑스럽고 오만한 얼굴로 턱을 치켜 올리고 자신을 내리깔아보는 그의 얼굴에 삿대질했다. 남궁연호도 중원식 장검을 뺴들고 전투준비 중이고, 메이븐도 쓰로잉나이프와 에스토크를 뺴들고 그 옆에서 전투를 위해 호흡을 가다듬던 와중이었다.


"남궁연호, 무슨 개소리야. 물체의 낙하속도는 무게와 관련 없잖아. 자유낙하에서 낙하속도는 질량과 무관하다는 건 피사의 사탑에서 증명되었다."


"뭐? 피사의 뭐? 하여튼 그런 서역의 지식은... 조악하군!"


"시발! 그게 아니야 들어봐, 무게를 늘린다고 추락속도가 빨라지지 않는다니까. 이건..."


문관본성이 깨어난 메이븐이 잘못된 상식을 정정해주려는 찰나, 성문 안에서 당화련이 날카롭게 그에게 쏘아붙였다.


"시끄러워요! 바바 언니 말처럼 레이크웰 소협은 쫑알쫑알 말이 많네요. 얼른 와서 베네딕트 영지의 경비대 정리하는 거 거들어요."


남궁연호가 간만에 당화련의 말에 동의하여 먼저 달려갔다.


"서역의 소년 검객. 실력은 좋지만 그대는 쓸모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


메이븐이 그간 쌓아온 과학적 사고를 부정당하자 고개를 숙이고 에스토크를 쥔 손을 부들부들 덜었다. 천근추로 빠르게 떨어져내린다는 소리만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 그래도 이 유사과학을!'


베카가 성문 너머에서 고함질렀다.


"남궁 머시기인지 궁시렁 머시기인지 서커먼 남자새끼가 말 붙여 준 게 뭐가 좋다고 거기서 어쩔 줄을 몰라하냐! 레이크웰, 당장 이리 안 튀어와! 너 죽는다."


"에휴... 바바, 이 스승님이 말을 곱게 쓰랬지."


남궁시렁 못지 않은 두통의 원인이 소리지르자 메이븐이 마지못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자를 화살받이로 쓰는 스승이 어디있어. 저번에 오우거 앞에 몸빵 세울 때부터 너의 싹수가 보였어."


"너 안 보는 사이에 또 활 맞았냐? 속상하게 왜 자꾸 맞고 다니냐."


메이븐이 투덜거렸다.


"아직 안 맞았거든. 네가 얼른 안오면 진짜 맞을 것 같으니까 튀어와. 아, 그래도 골라 준 쉴드달린 투핸디드소드 덕에 화살을 막긴 했네."


"그거 봐라 이 스승님의 말을 들어서 손해볼 거 없다니까."


"아아악! 스승이 제자를 버렸다! 스승이 지금 제자를 고기방패로 쓰려 한다!"


"아니, 야!"


메이븐이 뺵 소리지를 때, 어느새 본대를 이끌고 다가온 파르찬 루이스가 격려하려는 듯 다가와 레이크웰의 오른쪽 어깨를 툭 치며 등을 떠밀었다.


"허허, 레이크웰 대위 뭘 그렇게 고민하는가? 그런 거라면 애초에 질량은 에너지를 광속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지 않은가? 천근추라는 수법으로 허공에서 질량을 늘렸다면 방급 핵폭탄 급 에너지가 질량으로 전환되고 다시 에너지로 돌아간거네. 우리 세계에서 열역학 제2법칙이나 질량-에너지 등가원칙은 중요한 게 아니야."


메이븐이 눈두덩이를 한 번 문지르며 베카의 고함이 들려왔던 방향으로 전력질주했다


'아무튼... 그래도 지구는 돈다!'



(주: 에너지 E = 질량 m x 광속의 제곱 c^2 이므로, 남궁연호의 몸무게가 80kg이고 천근추의 수법으로 허공에서 몸무게를 2배 늘렸다면 아래와 같은 계산이 나온다. E = mc^2 -> E = 80 kg x 9 x 10^16 m/s -> E = 72 x 10^17 -> 72 x 10^17 J 은 단위 환산 시 약 1680Mt.

역사상 가장 큰 폭발력을 지녔던 수소폭탄인 차르 봄바 Tsar Bomba 가 약 58Mt 이었으니 그 29배에 달한다. 천근추는 무서운 기술이다.)



메이븐이 달려가며 파르찬 루이스의 몽상가적으로 반짝이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35살에 무슨 고생을 했는지 폭살 늙어 초로의 외관을 갖게 된 혁명몽상가는 자신과 두살 터울로 한 때 메이븐이 은퇴를 선언하면, 그의 뒤를 이어 제국의 두뇌로 기용되리라 거론되던 책사형 무장 세계의 희망이었다.

그래도 그가 이 틈에서 유일하게 메이븐의 답답함을 이해했다. 그런 파르찬이 말했다.


"그러니 고민하지 말고 받아들이게!"


"시발!"


메이븐이 성문을 통과하자 무섭게 녹색빛 오러를 두르 른커다란 투핸디드소드를 휘두르며 문 앞의 적을 정리하고 있는 베카가 보였다. 소드익스퍼트 중급 검사의 선명한 오러와 반짝이는 아름다운 머릿결이 하나로 어우러져 빛을 냈다.


그녀의 곁에는 검은 무복을 입은 동양인 아가씨인 당화련이 만만치 않은 기세로 손바닥만한 원반 모양 암기를 날려 베네딕트 영지 경비병들의 목, 경동맥을 끊어놓고 있었다. 조용해 보이지만 베카가 둘을 정리할 때 당화련은 셋을 처리하고 네번째 적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남궁연호도 다른쪽에서 한 자리에 우직하게 나무처럼 버티고 선 채 그에게 달려오는 적들을 베고 화살을 쳐내고 있었다.


그들은 흡사 순한양 떼 사이에 뛰어든 세 마리 야생곰이었다.


달리던 발걸음을 애매하게 멈춘 메이븐은 베카의 외침처럼 도움이 필요했던 건지 의문만 생겼다. 화살도 어두워서인지 정확하게 노리고 날아오지 않았다.

물론 이 모든 평화는 메이븐 본인만 쏙 저 난장판의 중심에서 비켜나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어, 니들 상황을 차분히 보니까 별로 안 위험해 보이..."


"웬 놈년들이냐! 감히 베네딕트 가문의 안마당에 겁도 없이 뛰어든 하룻강아지들이?"


그 순간 벽력같은 외침이 내성에서 울려퍼졌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전신판금갑옷을 입은, 갑옷 없이도 2m는 되어보이는 큰 키의 기사와 그를 보조하는 듯 보이는 세 명의 기사, 총 넷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가는 길은 탁 트이고 넓어서 잘 닦여있어. 일견 발을 내딛어도 돌아올 수 있을 것처럼 보여. 하나 일단 떠나간 이는 돌아온 일이 없지."


나름 무게 잡고 경고를 날린 베네딕트 가문의 기사에게 메이븐이 기운이 빠지는 답변을 했다.


"아니거든!"


"이익, 애송아! 네 나이 대에는 마치 자기 몸이 영원히 팔팔하고 불사일 것처럼 여겨지지. 그러나 내 나이가 되어보면 너도...!"


"아니라니까!"


저승사자를 만나보고 온 메이븐이 그러며 베네딕트 성의 네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묵시록에 나오는 네 기수들처럼 갑옷을 입은 기사 네 명이 메이븐에게 뛰어들었다.


"베카! 너는 제일 우측의 레이피어를 든 녀석을 맡아. 이번에는 이 스승이 실력을 보일 테니까."


"그래놓고 알고보면 레이피어가 제일 쎈 거 아냐?"


"스승을 믿어라!"


믿을 수 없는 이유를 한 순간에 십여가지나 떠올린 베카가 그제나 저제나 메이븐이 가장 키 큰 바스타드 소드를 든 기사에게 뛰어드는 사이, 우측의 레이피어를 든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기사를 향해 달려 들었다.

남궁연호와 당화련이 남은 둘을 향해 뛰어갔다.

메이븐과 대장 기사는 서서히 서로를 향해 거리를 좁혀가고, 어느새 성벽 위아래의 궁병들에 접근하는데 성공한 파르찬 루이스 게릴라 대원들이 활잡이를 제거하자 화살비도 그쳤다.

메이븐과 우두머리로 보이는 거구의 기사가 열걸음 정도 간격을 두고 단둘이 마주했다.


"나는 어거스트 베네딕트. 베네딕트 가문의 서자이다. 네가 비겁한 습격자들의 두목인가?"


메이븐이 무력은 자신이 없는 책사형 무인이라 활을 맞을까 멀찌감치 물러나 전장을 주시하는 은발의 파르찬 루이스를 곁눈질하고 답했다.


"아니. 대장은 쟤야."


어거스트 베네딕트는 첨단부가 찌르기에 적합하게, 롱소드보다 길고 뾰족하게 개조된 검인 바스타드 소드를 메이븐에게 겨누었다.


"그럼 부두목인가?"


메이븐이 인상을 찌푸리고 미친듯이 레이피어를 든 초보기사를 생쥐처럼 몰아붙이며 웃고있는 녹색머리 미녀를 돌아보았다.


"아니, 부두목도 아닌 것 같아. 부두목은 쟤 일 걸?"


"그럼 넌 뭐냐?"


"아, 나는 18세 평민 레이크웰이다."


메이븐이 미친녀석이라고 판단한 어거스트가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바스타드 소드를 오른손 한손으로 쥐고 기습적인 한 손 찌르기를 시도했다. 육중한 전신판금갑옷을 걸친 데다가 2m는 되어보이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식간에 날아온 찌르기였다.


메이븐이 식겁하여 사군자를 위로 올려치며 납작하게 몸을 낮췄다. 노란색의 선명한 소드오러가 머금어진 검이 미스릴 합금검인 사군자와 부딪혔지만 궤도가 크게 틀어지지 않은 채 메이븐의 머리 바로 위 공기를 서슬퍼렇게 꿰둟었다.


최소한 소드익스퍼트 중급의 상대였다.


'잘못 골랐나... 그냥 당화련 아가씨한테 넘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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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0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7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6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1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8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7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29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09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7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1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1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0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7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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