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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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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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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2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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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DUMMY

메이븐이 투항하면서 베카를 죽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곧 달려온 핼버드를 질질 끄는 기사, 토마스가 일리오네 경의 명령이라며 베카의 목을 치려고 했다.

다행히 시기적절하게 메이븐이 뒤에서 토마스에게 몸통 박치기를 하고, 베카의 헤어밴드를 벗겨냈다.


"엘, 엘프잖아?"


"맙소사. 생전 처음 보는데."


"그래, 그녀는 그리미어 숲의 엘프라고! 잘못하다간 종족간 외교문제로 번진다니깐. 함부로 죽이면 안돼. 일단 일리오네 경에게 데려가서 무슨 죄가 있는지 가리고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어."


당황한 대장 중년 기사, 후스가 메이븐의 화려한 언변에 당황해 뒷걸음쳤다.


"그, 그런가?"



*



두 명의 선남선녀가 앞뒤로 나란히 걷고 있다, 발에는 무거운 쇠고랑을 차고 이따금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릉거리면서.

헤이스팅스 성에서 나온 다섯 명의 기사와 스무 명의 경비대가 빙 둘러싸고 호송하고 있는 두 중범죄자는 미소년 메이븐과 엘프 베카였다.


'이게 무슨 처량한 꼴이람...'


손은 수갑에, 발은 족쇄에 묶인채 붙잡힌 탈주노예 마냥 헤이스팅스 영지에서 황도로 향하는 길을 걷고 있었다. 철그럭 거리는 족쇄소리에 단두대에 오르던 날의 트라우마가 도진 메이븐이 조용한 호송행렬 가운데서 느닷없이 발악했다.


"아악, 이게 뭐야! 세계제일의 방탕아는 고사하고 누구 덕분에 남은 8년의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생겼어."


"레이크웰. 야, 말 조심해. 그 누구 덕에 동정은 뗏잖아!"


다행히 어디 팔다리가 부러지지 않아 통뼈임이 증명된 베카가 예쁜 입술로 뒤에서 쏘아붙였다.


"바바. 그래서 더 기분나빠!"


"뭐?"


베카가 쪼르르 달려가더니 메이븐의 엉덩이를 뒤에서 뻥 걷어찼다. 족쇄를 찬 채 앞에서 걷다가 불의의 기습을 당한 메이븐이 발이 엉키며 앞으로 굴렀다. 메이븐이 흙을 먹어 어푸거리는 사이 베카가 쉴틈 없이 불평했다.


"다 너 때문이야. 너하고 마주하고부터 풀리는 게 하나도 없어. 황도의 협곡에서 관객들의 환호를 받으며 꽃다발과 절절한 고백 편지에도 절벽에 핀 한떨기 꽃처럼 냉소하고 있어야 하는데."


메이븐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야! 누가 할 소리를. 너만 없었으면 난 유유자적 황도 으슥한 뒷골목에서 고급 브랜디를 기울이며 밤의 열락과 도박장의 황금 속에 빠져 있었을 거야. 누구 때문에 수배되고 도주하고 열불이 나고 천불이 난다."


"눼눼, 잘나셨습니다."


"둘 다 조용히 해라."


참다 못한 후스가 귀를 후벼파다 인내심이 바닥났는지 메이븐의 뒤통수를 건틀릿을 벗은 손으로 후려갈기며 경고했다. 여기사의 호위를 받는 베카는 건드리지 않았다. 메이븐은 한층 기가죽은 태도로, 그러나 그의 뒤에 걷고 있는 베카에게는 확실히 들릴만큼 크게 중얼거렸다.


"아까도 너만 아니었으면 나 혼자 몸을 뺄 수 있었..."


기분이 상한 베카가 이번에는 작정한 듯 힘껏 두 발을 모아 뛰어올라 메이븐의 허리를 양 무릎으로 찍었다.


"아고고! 내 허리. 척추 나간다. 이게 무슨 짓이야."


메이븐을 반신불수로 만들 뻔한 플라잉니킥의 후련한 여운에 흡족한 베카가 만면에 미소를 띄웠다.


"그냥 때리고 싶어."


"내가 샌드백이냐? 족쇄랑 수갑만 없어봐, 확 그냥."


베카가 얼른 과묵한 여기사 올리비아의 뒤로 몸을 피하며 몸을 비비꼬았다.


"눼눼, 그러찌게쬬. 당신의 상상 속에서."


"바바, 우리 자리 바꾸자. 내가 뒤로 갈 께."


메이븐에게 기마술을 지적당해서 한참 노기가 탱천해 있던 어린 기사 프레디가 갑옷을 철그럭거리며 말을 몰고 다가와 검집으로 메이븐의 주둥이를 내리쳤다.


"악!"


"야, 니들 조용히 안해? 제국법이 지엄하거늘 양민을 괴롭힌 도적년놈들이 뭐 잘한 게 있다고 여기서 목소리를 높여. 일리오네 경만 아니었얻도 확 지금 목을 따버릴텐데."


반면 다섯 명의 헤이스팅스 기사 중 유일하게 여자인, 베카를 담당한 여기사는 베카가 메이븐에게 무슨 폭력을 가하든 코를 후비적 거리며 관람하고 있었다. 그녀는 같은 여성의 편이었다.


"여자에게 이년 저년 하는 거 아니다. 말 곱게 쓰자, 프레디."


"예, 올리비아 선배님. 죄송합니다."


기사들 사이에 위계관계가 잘 잡혀있는지 프레디가 군말없이 다시 등자를 밟고 자신의 말을 몰았다. 메이븐이 굴욕감에 치를 떨며 프레디를 노려보자, 한눈이 팔린 그 틈에 베카가 다시 달라가서 메이븐의 오금을 걷어차고 도망갔다.


"레이크웰, 내가 죽는 거 다 너 때문이잖아!"


"아야... 그게 왜 나 때문이야."


"시끄러."


메이븐은 억울했다. 그는 일리오네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베카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요청해 볼 계획이었다. 그렇지만 베카의 뻔뻔한 폭력에 질려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모두 정지. 여기서 휴식하고 점심을 해결한 뒤 다시 이동한다."


한스가 손을 올려 신호했다. 그러자 서른명 가량의 인원이 일제히 멈춰서고, 짐을 나르는 짐꾼과 잡일을 돕는 사역인들이 분주해졌다.



*



취사를 담당한 뻐드렁니의 시골 여인이 귀끝이 뾰족하고 입술이 도톰하고 앵두 같은 초록생머리의 미녀, 베카를 보며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야채로 만들어진 샐러드를 별도로 특별제작했다.


'엘프시니까 채식을 하시겠지?'


별도의 요리를 준비하는 게 번거로웠지만 조리하고 남은 야채부스러기와 여분, 과일잼을 사용하니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나왔다. 죄수들의 식사를 여기사 올리비아가 와서 받아다 메이븐과 베카 앞에 던져주었다.


메이븐에게 주어진 닭고기스프와 자신의 풀떼기 접시를 몇 번이고 번갈아 확인해 본 베카가 이럴 순 없다는 듯 맛있게 스프를 먹고 있는 메이븐의 발목을 걷어찼다. 입안에 머금었던 스프를 부채꼴로 뿜어낸 메이븐이 그녀를 노려보자 베카가 말했다.


"이 쓰레기야. 나는 부상자인데 이런 풀떼기만 먹으라고?"


"그걸 왜 나한테 따져. 고맙게 먹을 줄도 모르냐? 나름 신경써 준 것 같은데. 가서 바꿔달라고 하던가."


메이븐이 무심하게 다시 스푼을 들자 베카가 방금 전 찼던 부위를 또 발끝으로 찔렀다.


"엘프 체면이 있지 어떻게 고기를 달라 그러냐! 니가 가서 바꿔 와야지."


"주는 데로 먹어라."


이제 익숙해져서 베카의 발길질을 가볍게 피하며 메이븐이 투덜거렸다. 더 이상 폭력이 듣지 않자 베카는 거짓과 날조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아이고! 동네 사람들, 이 놈이 10년간 뒷바라지 해준 조강지처를 버린다."


"쓰레기 새끼네 아주."


"저 얼굴 좀 봐. 전설 속에나 나오는 엘프님 같잖아. 얼마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착하고 상냥하게 대했겠어."


기사들은 추격전부터 호송과정까지 곁에서 베카의 인성을 관찰했기에 가당치도 않다는 듯 넘겼지만, 예쁜 얼굴에 홀라당 넘어간 헤이스팅스 경비대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메이븐을 헐뜯었다.

메이븐은 부활한 이후 자주 이런 상황에 처하며 내성이 생긴 상태다.


"니가 언제! 10년을? 허, 그런다고 내가 양보할까봐?"


베카가 눈물 한방울 나지 않는 눈을 문지르며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말했다.


"내가 언제라니, 어째서? 흑흑, 아무사이도 아니라고? 흑, 아이고 또 부러졌던 팔다리가."


"폭력까지! 이야, 이건 넘어갈 수 없는데. 지독한 인간 말종 새끼네. 재활용은 커녕 소각이나 매립도 힘들겠어."


"반반한 얼굴에 어린 소년이라고 좋게 봤는데, 안되겠네."


"엘프님! 제가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저런 나쁜 놈은 잊어버리세요."


메이븐은 욕정에 저렴하게 팔아넘겨진 남성들의 양심을 보며 못볼 꼴을 봤다는 듯 고개를 돌려 맑고 푸른 하늘이나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미친놈들아, 겉보기 나이가 10대 소년인데 어떻게 10년간 조강지처를 괴롭혀. 니들은 7살에 결혼하냐? 그건 범죄야.'


"으헝헝! 레이크웰, 네가 어떻게 내게 이럴 수 있어? 역시 그냥 엔조이하는 관계였던 거야? 일단 자빠뜨려보고, 새살림은 더 젊고 순종적인 여자하고 꾸릴려고?"


"어휴! 말세로구만 말세야."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인간남자 망신은 저 놈이 다 시키는군."


이미 이성적 사고를 포기한 경비대원 남정네들이 우르르 베카 뒤로 몰려가 메이븐을 향해 삿대질하며 야유했다.


"10년간 조강지처라면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엔조이로 넘어가. 양심도 없는 놈들아. 이상하지도 않냐?"


"전혀."


"기분탓이겠지."


귀를 후비면서 모르는 척하던 경비대원들 중 젊은 남자하나가 베카의 얼굴을 보고 헤벌레 해졌다가 외쳤다.


"들어라 쓰레기 남편. 쓰레기들의 특징이 논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거다."


"변호는 원래 논리적이어야해!"


드디어 참을만큼 참았던 메이븐이 악에 받쳐 소리지르자, 베카가 깜짝 놀란 여인을 연기하며 서럽게 울었다.


"으헝헝."


다섯명의 기사는 조용히 한숨을 쉬고 그 중 여기사 올리비아만 흥미롭다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이인조 강도의 콩트를 관람했다.

메이븐은 간신히 폭발하려는 화를 억누르고, 황도를 떠나오던 날 올려다 보았던 새벽 하늘을 기억해냈다. 그 날의 서러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번에도 비겁하게 이성과 논리에 호소한 것이 잘못이었다. 베카처럼 정정당당하게 감성과 기만에 호소했어야 했다.


'...다섯 가지를 천하에 행할 수 있으면 어질다 하였다. 이는 공손함, 너그러움, 믿음, 민첩함, 은혜로움이니.'


그는 발기부전 저주를 받았을 때 깨달았던 지혜를 되새김질하며 뚜벅뚜벅 베카에게 걸어갔다.


베카가 고집을 부리며 거부하던 식사를 보니, 야채샐러드는 메이븐이 맡기에도 군침이 도는 달콤한 냄새의 드레싱에, 먹기 아까울만큼 정성스럽게 색색이 장식되어있었다.


득의양양한 베카를 뒤로 한 채 메이븐이, 조용히 베카의 샐러드를 들고 조리를 담당했던 젊은 여성에게 갔다.


"저 사실... 우리 엘프님은 고기만 먹습니다."


"네?"


뻐드렁니가 튀지만 전체적으로 예쁜 인상의 순박한 시골여인이 깜짝 놀라더니 실례했다며 닭고기 스프를 떠서 넘겨주었다. 볼이 새빨개진 채 건더기도 신경써서 챙겨주는 게 엘프라기에 채식을 할 걸로 지레짐작한 일이 부끄러운 듯 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소피아에요. 엘프가 채식만 하는 게 아니군요?"


"그냥 바바가 엘프 중 별종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엘프 족의 수치라고 할까요. 그나저나 소피아 양은 정말 친절하시군요. 누구와는 다르게..."


울먹이면서 시큰거리는 코를 한차례 훑은 메이븐이 소피아로부터 베카의 새로운 식사를 받아다가 서빙해 내려놓았다. 한창 재미가 든 베카가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턱을 치켜올려 메이븐을 지긋이 아랫사람 보듯 내려보더니, 근엄히 말했다.


"그래, 가져왔느냐. 이제 수청을 들라."


"뭐, 시발?"


군자의 도를 잊은 메이븐이 잠깐 흥분했다.


"어허, 말귀를 못알아 먹느냐. 어서 수청을 들라하지 않았느냐."


"...무능하면서 성실하지 않은 자는 공자님도 구원하지 못하니."


엘프에게 야채샐러드를 주었던 게 미안했던지 닭고기수프는 잘 먹나 궁금해 따라왔던 소피아가 메이븐의 뒤에서 그 희비극을 보고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쿡쿡."


"왜 웃어요?"



*



헤이스팅스 영지를 떠나 평화로운 가도를 따라 다시 이틀을 더 이동했을 무렵이었다. 말 여섯마리는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넓은 길 반대편에서 새하얀 말을 타고 번쩍이는 은백색 갑옷을 입은 십수명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이스팅스 죄수 호송대의 대장 후스 경이 정지신호를 보냈다.


"저들은 누구지?"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는 은백색의 화려한 갑옷을 입은 이들이 다가오자 점차 그들의 갑옷 위에 그려진 다섯개의 별문양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안녕하시오. 혹시 그대들은 헤이스팅스 영지에서 나온 후스 경 지휘하의 1소대가 맞습니까? 그리고 저 뒤에 수갑과 족쇄를 찬 이들은 레이크웰과 베카이고?"


"맞소만, 그대들은 누구요?"


메이븐은 그 무리에서 유일하게 갑옷을 입지 않고 대신 사제복을 입은, 기사들만큼이나 건장한 체격의 여사제가 멀리서도 메이븐 자신을 콕 찝어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다른 기사들에게 무어라 중얼거리는 장면에 불안감을 느꼈다.


"반갑습니다. 저희는 황도에 있는 성신님의 대신전에서 흉악한 데쓰나이트 메이븐 티리얼을 추격하는 명령을 받은 제4성기사단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제4성기사단이면 헤이스팅스 영지의 시골기사나 경비대보다 훨씬 윗줄이었다. 후스 경이 말에서 내려 예의를 차리며 인사올렸다.


메이븐의 뒤에 선 귀가 밝은 베카가 메이븐에게 여사제와 성기사단의 단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나누는 대화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저 소년이 악마 메이븐 티리얼의 데쓰나이트라고? 맞나?'


'글쎄요. 단장님, 그러나 언데드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베카가 전달해 준 이야기에 메이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렇지. 나는 애초에 데쓰나이트가 아니니까 지나가라고."


메이븐이 안도하는 순간 성기사단의 십수명의 인원이 동시에 칼을 뽑아들면서 우렁차게 기합을 내질렀다.


"[으앙 쥬금]!"


칼에서 뿜어져 나온 눈부신 빛이 번쩍이면서 모여들더니 허공에 십여미터 길이의 거대한 빛의 화살표를 만들었다. 그 화살표는 나침반처럼 사방으로 흔들리다가 이윽고 검은 머리의 선이 가느다란 미소년, 메이븐을 정확히 콕 찝어서 지목했다.


"잠시 확인해야 하는 게 있는데, 그 쪽의 소년을 이리 넘기시오."


메이븐이 식겁해서 옆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 화살표가 메이븐의 움직임을 쫓아 살짝 따라움직였다.


메이븐이 마른 침을 삼켰다.


'아니라고 하기엔 이미 늦었지?'


후스 경은 수도기사단장의 명령으로 호송 중인 죄인이라 갈등에 빠졌다. 성기사단은 수도기사단에 버금가는 높은 자리의 인물들이지만, 직속 상관은 일리오네 핼버디아 경이고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후스 경이 떠안게 된다.


"무슨 소리요? 이 소년이 악의 기사이자 역적 메이븐 티리얼의 데쓰나이트라도 된다는 말이오? 소드마스터나 데쓰나이트라기엔 형편없이 약하오. 소드오러도 못쓰던데..."


"그건 우리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니 이리 넘기시오."


"우리도 황도에 계신 귀한 분의 요청으로 황도로 압송하는 중범죄자입니다. 온전히 상처하나 내지 말고 생포해오라고 명하셨는데, 제가 임의로 넘기는 것은 곤란합니다."


메이븐은 성기사단장과 후스 경의 협상이 잘 이루어지지 않자 눈을 빛냈다.


'저 두 놈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혼란이 생기면 그 틈에 베카와 탈출하자!'


"후스 경, 살려주십시오! 저들은 황도로 압송되기 전에 저를 빼돌려 재판없이 살해할 계획입니다. 데쓰나이트를 살려두는 성기사 본 적 있으십니까?"


메이븐의 외침에 흠칫하여 성기사단원들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메이븐은 그가 심심할 때 읽어보았던 통속소설에서 보통 주인공이 함정에 빠지면 주인공을 쫓아 온 어리석은 악당들이 서로 신뢰하지 못하고 싸우다 양패구상하고 주인공은 그 틈에 무사히 몸을 빼낸다는 클리쉐를 떠올렸다.


기마술 지적으로 아직도 심통이 나있는, 뒤끝이 긴 신참기사 프레디의 주먹이 메이븐의 뒤통수에 작렬했다.


"야! 너 우리가 바보로 보이냐?"


성기사단장이 건틀릿과 투구를 벗고 말에서 내려 후스 경에게 악수를 청했다.


"좋소. 그러면 당신들이 압송하는 걸로 하고 우리는 앞에서 미리 장애물이나 도적이 없나 확인하며 길을 터주지. 우리까지 호송을 도우면 더 안전할거야. 재판을 받고 나면 성신의 신전에도 넘겨주는 것이오. 알겠지? 성녀님께서 저 자가 정말 메이븐 티리얼의 데쓰나이트인지 확인해보면 되니. 잠깐만 부탁하오."


"물론이오. 재판이 매일 열리는 것도 아니고 잠깐 몇 시간 짬을 내어 성신의 대신전에 들리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지요. 이인조 좀도둑을 잡은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거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리오네 헬버디아님은 여기까지 내다본 것일까? 그분의 선견지명은 끝이 없습니다."


'...시발.'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소설 속의 일일 뿐임을 깨달은 메이븐이 절망할 때 베카가 메이븐의 등을 어깨로 툭 쳤다.


"뭐야, 우리 저승길도 같이 가겠네. 무슨 악연이니 이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야. 바바, 정신차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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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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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8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1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9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30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8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2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6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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