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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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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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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9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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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스팅스 영지로 (1)

DUMMY

율리시스가 미처 잊어버린 게 있다는 듯 헤이거와 대화 도중 급하게 되돌아와 마차 곁에 서있는 메이븐과 베카에게 달려왔다.


"마차 근처에는 가지 말아주십시오. 물품이 귀한 것들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신 사례로 1만 골드 어음을 두 분께 각각 드리겠습니다."


"후계자라더니, 통이 크시네. 흠, 돈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도와드린 은인이 거절하면 마음이 편치 않으시겠지요?"


베카가 율리시스의 말에 헛기침을 하며 메이븐을 밀치고 앞으로 나섰다. 베카의 괴력에 밀린 메이븐이 그만 마치 뒷문에 쿵하고 가볍게 등을 부딪히고 말았다. 나무문짝이 뻐걱대며 그는 그 때 잠깐 문 틈새로 생물처의 숨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율리시스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제 목숨값이니 2만 골드면 오히려 적습니다. 유리아 상단의 체면 때문에라도, 우리가 도움을 준 분들을 외면했다는 소리가 돌면 안 되니까요. 하하."


율리시스는 자리를 뜨기 전 선뜻 어음 두 장을 베카에게 건냈다. 베카는 여행자금난을 일거에 해결하는 데다가, 울며겨자먹기로 끌어 쓴 메이븐의 사채를 취소한다는 생각에 희희낙락하여 어음을 품에 챙겨넣었다.


"한데 두분은 어째서 이런 인적드문 숲속을 지나셨던 것입니까? 혹시 사람의 눈을 피해야하는 수배자들은 아니시지요?"


율리시스가 장난처럼 물었다.


뜨끔. 메이븐이 잠시 움찔했지만 태연하게 베카의 헤어벤드를 당겼다. 헤어벤드가 베카의 목으로 흘러내리며 우스꽝스럽게 그녀의 긴 생머리를 목에 대고 목보호대처럼 고정했다.


"야, 숙녀한테 이러면 살인죄야."


"율리시스! 봐봐. 얘가 엘프라서 우리는 숲으로 이동하는 게 더 편해. 나도 하프엘프야. 외모를 봐."


시큰둥하게 베카의 주먹질을 피하고, 메이븐은 베카의 귀를 가리키며 율리시스와 10인의 용병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엘프 일행이라 숲으로 이동하는데, 숲은 엘프들에게 집처럼 편안한 곳이라는 전설을 사실처럼 떠들었다.

진짜 그랬다면 메이븐과 베카가 거지꼴일리 없다.


"으음... 그런건가?"


소드마스터이자 군인으로 제국 전역에서 구른 메이븐도 베카를 보기 전에는 은둔종족 엘프를 만난 적 없다. 율리시스 우드라는 후덕한 인상의 사내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그런건가는 무슨 그런건가야. 등신, 그렇게 쉽게 속아서 상단은 물려받겠냐?'


메이븐은 웃는 낯을 유지한 채 베카에게 상냥하게 물었다.


"그럼! 우리 엘프들은 거짓말도 못한다고. 베카, 우리는 수배자가 아니지?"


눈치를 챈 베카가 헤어밴드를 고쳐쓰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녀가 헤어밴드를 벗고 물결치는 녹색 생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넘기며 공중에 한 번 흔들자, 숲의 햇살이 부딪혀 산란했다. 눈부신 미모에 율리시스와 용병의 눈이 멍해졌다.


"네, 그렇사옵니다."


다소곳이 두 손을 배꼽위에 모은 베카가 배우력을 발휘해 고결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습을 보며 심지어 파이크 창을 쥔 어떤 용병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아... 엘프님!"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불손한 의심을."


"정말 엘프님이셨어."


무릎꿇고 절이라도 올릴 듯한 사람들 앞에 베카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해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 인간 여행자 여러분, 기억하세요. 자애로운 숲 어디를 가나 엘프들의 가호가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떠받들어주자 기분이 좋아져 한창 열연을 펼치는 베카를 버려두고 메이븐은 마차를 살펴보고 있었다.마차에 기대었을 때 그가 잘못 느꼈던 게 아닌지 과연 마차 뒤편에서, 문 틈새로 어두운 마차 내부로부터 습한 공기와 따듯함이 흘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10만 골드의 재화가 습하고 따듯할 리 없다.


'살아있는 것이 실려있다.'


느낌이 쌔해진 메이븐이 율리시즈와 헤이거가 검을 들고 마차문에 다가가는 그를 말리러 멀리서 달러오는 사이, 마치의 자물쇠를 미스릴 에스토크로 찍어 끊어버렸다.


"맙소사."


그곳에는 다섯 명의 손발이 족쇄에 묶이고 숨막히게 밀폐된 짐마차 내부 공간에 정신이 나간 듯 눈이 풀린 남녀들이 있었다. 가장 안쪽에 있는 하얀 수염을 길게 기른 검버섯이 난 매부리코 노인이 특히 눈에 들어왔는데 그 이유는 그의 발에 채워진 특별히 두툼해 보이는 족쇄가 메이븐이 처형당하는 날까지 발에 찼던 이즈리얼 학파의 마나봉죄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메이븐의 탄식에 어음을 손에 넣고 기뻐하던 베카도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메이븐의 곁으로 와서 짐마차 내부를 보았다.


"인신매매 마차잖아?"


에스피온 제국에서 노예는 불법이다. 평등사회를 꿈꾸었던 메이븐 티리얼 백작이 제국 건국전쟁을 일으키면서 황제와 약조한 것이다. 귀족들의 특권을 해제할 때 환호를 보내던 평민들은, 노예제도를 폐지할 때는 침묵했다. 자신의 지지기반을 잃어가면서도 메이븐이 추구했던 꿈이기에, 황도에서 일주일 거리인 이곳에서 인신매매범을 보자 머리에 피가 쏠렸다.


창! 차창!


베카와 메이븐의 한탄과 마차 뒷문이 열린 광경을 보고 율리시스와 헤이거를 비롯한 용병들이 무기를 뽑아들었다. 메이븐도 허리춤에서 에스토크와 소드브레이커를 꺼내든 뒤 마차 뒤편에서 몇 걸음 걸어나와 물었다.

당장 달려들고 싶지만, 방패가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은 상대방의 크로스보우 사용자와 활잡이 때문에 위험했다.


"제국법에 노예 거래는 금지시켰을텐데? 율리시즈라 그랬나? 설명해 보시지."


"...곧입니다. 곧 노예거래 규제가 풀릴겁니다.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노예들을 평민으로 만들자 에스피온 제국의 평민들이 불만을 표출한 걸 아실겁니다. 메이븐 티리얼 백작의 지지층이 이탈한 결정적 계기였지요. 이제 티리얼 백작이 역적답게 죽었으니 그가 추구한 이상도, 정책들도 폐기될 것입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어쨌건 현재 제국 내에서 인신매매는 중범죄일텐데?"


"결정적인 첩보가 들어왔기에, 한 발 앞서 움직이는 겁니다. 우리는 에스페란사 사막에서 값싸게 사들인 노예들을 에스피온 제국의 귀족과 평민들에게 팝니다. 신고하더라도 무죄로 풀러나고, 수사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뒷배가 되어주시는 분 입김이 세거든요."


"뭐 황태자라도 되나봐? 수도기사단장들이 뒷돈에 넘어갈리는 없고."


율리시스가 메이븐의 유도심문에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추가비용을 드리겠으니 두 분께서는 못 본 채 해주셨으면 합니다."


메이븐이 자신이 꿈꿔온 정책이 허공에서 아지랑이로 변해 흝어진다는 말에 속으로 꾹꾹 화를 눌러담을 때, 베카가 약에 취한 노예들을 보고 얼굴을 찌푸리더니 품에서 도로 두 장의 어음을 꺼내 들었다.


"그건 이야기가 다르지. 인신매매로 벌어들인 더러운 돈이라면 받을 생각이 없어."


북-! 북-!


어음이 두 조각으로, 다시 네 조각으로 찢어져 나가자 갑자기 크로스보우를 든 여자 용병이 그 조각을 노려보며 찢어지듯 소리질렀다.


"이익! 네가 뭘 알아. 아버지가 아프시단 말야. 그런데 내게는 약값이 없어. 너 따위가 뭘 아냐는 말이야. 우리도 나름 절박한 사정이 있어서 여기 끼어든 거라고."


"네 절박함은 알면서, 이 노예들의 절박함은 왜 귀기울이지 않지? 이들도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잖아."


"빌어처먹을 용병 짓을 해도, 찢어지게 가난한 데 어쩌라고. 아악!"


용병이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지르더니 베카를 향해 크로스보우를 발사했다. 베카는 빠르게 마차 뒤로 숨었다. 크로스보우의 화살이 마차의 나무판을 꿰뚫고 뾰족한 끝을 마차 벽 내부에서 드러냈고, 그 시퍼런 쇠의 예기와 흔들리는 마차의 벽에 노예들이 정신을 차린 듯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정직해서 일해서 벌든, 부잣집에서 빌리 든 해야지. 나도 돈이 아쉬운 입장이지만, 이런 건 하지 않아."


베카가 소리지르며 투핸디드소드를 쥐고 용병들을 노려보았다.

용병들은 그들이 고전한 백년 묵은 오우거 하나를 메이븐과 베카 둘이 요리하는 것을 보았다. 용병들은 섣부르게 달려들지 않았다. 대신 활과 크로스보우가 메이븐과 베카를 견제하는 사이 말에 올라 기동력을 확보했다.

메이븐이 헤이거의 지휘하에 말을 타고 둘이 도망치지 못하게 포위망을 구축하는 용병들을 보며 베카에게 말했다.


"우리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은데. 빠졌다가 돌아올까? 베카 네 생각은?"


"메이븐, 설마 이 다섯 사람을 버려두고 갈 생각을 한 거야?"


심성자체가 글러먹은 건 아닌 베카가 메이븐을 흘겨보았다.

메이븐은 그저 이성적으로 냉철하게 봤을 때 베카와 함께 말이 들어오지 못하는 울창한 수풀로 몸을 피하고 용병들이 방심할 때 돌아와 마차를 탈취하는 계획을 떠올렸을 뿐이지만, 무식한 베카에게 지금 이 계획을 이해시킬 방법은 없었다.


"휴. 그래, 그냥 싸우자."


"야, 너 뭔가 되게 한심하다는 듯 한숨 쉬었어. 그거 모욕적이고 무례한 거야."


베카가 투덜대면서 투핸디드소드에 소드오러를 두르더니 마차에 올라타서 다섯 남녀의 족쇄를 끊어주었다. 맨 안쪽의 마법사로 보이는 매부리코 흰수염 노인을 제외하고 한 명의 중년 여인과 주근깨 투성이의 통통한 젊은 여자, 그리고 건장한 체격은 두 남자가 있었다. 약에 취한 가운데 그나마 베카가 뺨을 두어 번 때리자 노인의 눈동자가 서서히 초점을 되찾기 시작했다.


'마법사거나 소드오러 사용자인가? 할아버지도 싸울 때 도와주려나?'


베카가 근심스럽게 노예들을 풀어주고 알아듣나 모르지만 위험하면 알아서 도주하라고 경고하는 사이, 마차 밖에서 헤이거가 메이븐에게 소리질렀다.


"목숨의 은인들인데 미안하군."


"지금이라도 무기를 내려놓는 건 어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건 살다보면 있는 일이지."


헤이거의 답변에 메이븐이 베카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손짓한 뒤 에스토크와 소드브레이커를 도로 납검하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휘적휘적 두 손을 머리 위로 든 채 헤이거에게 걸어갔다.


"뭐, 말마따나 내가 공무원도 아니고 에스피온 제국에 딱히 애착심도 없는 평민인데 너희와 칼을 맞댈 건 아니지..."


"이 배신자야! 너 양심에 털 많이나서 겨울에 따숩겠다."


베카가 마차에서 성난 목소리로 고함질렀다. 그러던가 말든가, 메이븐은 흑마에 올라탄 헤이거와 열걸음 거리까지 다가가자 에스토크와 소드브레이커를 바닥에 던졌다. 여전히 여자용병의 크로스보우가 여차하면 발사될 듯 메이븐에게 겨누어져 있었다.


"저기 여자용병분의 말처럼, 막다른 길목에 몰려 인신매매를 한다면 그런 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오히려 저 여성분이 난 마음에 드는 걸."


메이븐이 따스하게 미소짓자 여자용병이 긴장이 풀린 듯 얼굴이 붉어지며 크로스보우 끝이 조금 흔들렸다.

헤이거가 고개를 끄덕이며 메이븐이 내려놓은 에스토크와 단검을 주워들기 위해 등자에 발을 대고 말에서 내렸다.


'그런데 내가 인신매매 금지법안을 만든 사람이라 말이지.'


메이븐이 상대방이 반응하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용병들은 메이븐의 품 속에 있는 줄 몰랐단 쓰로잉나이프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말에서 내리는 자세라 대비하지 못했던 헤이거의 목에 투척용 단검이 틀어박혔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여용병이 크로스보우 시위를 놓았다. 급하게 재조준하느라 빗나가 힘없이 땅에 박혔다.


"헤이거 대장! 젠장, 달려들어. 속임수다."


헤이거가 목을 부여잡고 피끓는 소리는 내며 허물어지자 아버지의 약값을 번다던 여자용병이 나머지 용병 중 선임이었던 듯 소리질렀고, 말을 탄 용병들이 일제히 메이븐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베카는 성격상, 노예들을 지킬 것이다. 여기서 살아나가려면 한 명이 시선을 끄는 사이 다른 한 명이 활과 크로스보우를 제거해야 해. 그런데 베카에게는 그런 전략을 이해할 능력이 없어.'


메이븐은 우선 헤이거가 등에 매고 있던 카이트쉴드를 벗겨내 활과 화살을 막기 위해 손에 들었다. 그리고 헤이거의 목에서 뽑아낸 쓰로잉나이프를 재차 말을 몰고 달려오는 아밍소드를 든 용병들에게 던지고, 헤이거의 흑마에 올라탔다.

빠르게 행동하느라 미처 본인의 에스토크를 집어들지는 못했다.


'앗차!'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그 대신 카이트 쉴드만 쥔 채 말을 몰아 크로스보우를 든 여용병에게 달려들었다. 그 여자용병의 뒤에 바스타드소드를 들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후덕한 인상의 율리시스 우드가 숨어있었다.


메이븐이 일부러 살짝 가슴께에서 카이트쉴드를 치웠다. 기회를 노리던 크로스보우가 메이븐의 속임수를 깨닫지 못하고 그 순간 발사되었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메이븐이 허리를 숙이며 내리그은 카이트쉴드에 크로스보우의 화살을 허무하게 말 옆으로 흘려보내졌다.

다시 장전하는데 시간이 드는 석궁의 약점을 이용해, 메이븐이 카이트쉴드를 등뒤에 매고 두 손으로 고삐를 쥔 채 전력질주했다.

팅! 통! 하고 등 뒤의 용병들이 쏜 화살이 등의 카이트쉴드에 부딪혔다.


"말을 죽여! 놈이 달려들지 못하게 해라!"


율리시스가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러자 메이븐의 앞으로 뾰족하고 긴 군더더기 없는 창인 파이크를 든 용병 셋이 메이븐이 아니라 그가 탄 헤이거의 흑마를 노리고 낮게 찔러들어왔다.


"제기랄, 베카! 뒤에 있는 활잡이 둘을 견제해 줘. 나는 이대로 율리시스를 잡는다."


베카가 상황파악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부탁한 메이븐은 헤이거의 흑마에게 뛰어오르도록 지시했다. 과연 용병대장의 말답게 좋은 말이었는지 말의 목과 가슴을 노린 창들이 말의 다리에 쓸려 튕겨나갔다.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 포상금을 주겠다."


사태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율리시스가 소리쳤다. 그 때 다시 한 번 공중에 뜬 메이븐을 향해 크로스보우가 날아갔다. 크로스보우는 카이트쉴드를 앞세운 메이븐 대신 그가 타고 있는 말의 턱에 박혔다.


말이 비명을 지르듯 투레질하더니 앞발부터 허물어졌다.


메이븐이 말에서 뛰어내려 허공에서 균형을 잡고, 방패를 여전히 앞으로 한 채 멋들어지게 착지해 두 발로 달려나갔다. 율리시스도 생각이 있었는지, 말을 탄 용병들이 다시 따라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 여자용병과 함께 뒤돌아 달렸다. 여자용병은 크로스보우를 버리고 허리에서 레이피어를 꺼내들어 율리시스를 엄호했다.


휘익!


뒤에서 날아온 화살이 메이븐의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파공성이 메이븐의 왼쪽 위를 얼얼하게 했다.


"막아달라고!"


"야, 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베카가 소리지르며 답했다. 메이븐이 카이트쉴드를 등뒤로 옮기며 슬쩍 뒤돌아보니 베카가 왼쪽 팔뚝에 화살이 꼳힌 채 분전하고 있었다.


"맞았냐? 거기 마차 문짝이라도 뜯어서 돌진했어야지."


"수라도 줄이고 가던가, 이게 뭐야! 나한테 다 달려들잖아."


메이븐에게 한 마디도 지지않고 쏘아붙이는 베카였다. 차마 무식한 괴력을 가진 베카에게 근접전을 걸지는 못하는지 포위해서 위협만 하지만 베카 쪽에 활잡이 포함 다섯 명이 달라붙어 있었다. 딱 절반이다. 울컥 치미는 설움을 다시 목구멍으로 삼키고 메이븐이 그래도 부상자인 베카에게 퇴각하라고 명령했다.


"베카, 이러다 다 죽겠다. 다쳤으면 마차로 다시 후퇴해. 여차하면 마차를 몰아서 빠져나가. 여긴 나 혼자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헤이스팅스 영지에서 다시 합류하자."


"얌마, 내가 의리 없어 보이냐?"


"잡혀온 사람 다섯은 살려야지."


베카와 투닥거리는 사이 메이븐의 등 뒤로 다시 화살 두어발이 꼳혔다. 그리고 말을 탄 용병이 다가와 파이크를 내리꼳았다.


펑!


등의 카이트쉴드에 정통으로 박힌 파이크가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약해져 있었던 창대 부분이 부러졌다. 그 덕에 충격이 줄어들어 메이븐은 땅을 두어바퀴 구르고 입에서 흙을 뱉어내며 일어섰다.


"풰풰!"


'흙맛이군. 단두대에서 구른 뒤로 이렇게 급격히 땅과 상봉하긴 오랜만이야.'


메이븐은 일단 중간이 부러진 채 카이트 쉴드 옆에 내던져진 파이크의 창대를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젖먹던 힘을 다해 크로스보우 대신 얇은 레이피어를 든 여자용병에게 던지고 그도 돌진해나갔다.


레이피어를 든 여자용병은 검술에는 자신이 없는지 당황하며 날아온 단창을 베는 대신 몸을 옆으로 굴려 피했다.


"너 잘 만났다!"


눈을 희번뜩이며 메이븐이 땅을 구르고 일어선 여자용병에게 카이트 쉴드를 내리찍었다.


"꺆! 여자의 마음을 흔들고, 폭력까지! 비겁한 쓰레기."


"인신매매를 감추려고 열 명이 두 명을 족치는 네놈들은 안 비겁하냐."


메이븐이 일침하고 두 손으로 쥔 카이트쉴드로 여용병의 머리통을 시원하게 날렸다. 두개골이 파열되는 듯한 안좋은 소리와 함께 깔끔하게 들어간 일격에 뇌가 진탕된 듯 여용병이 허물어졌다.

도로 날아오는 화살에 대비해 등에 카이드쉴드를 맨 메이븐은 여자용병이 놓친 레이피어를 집어들었다. 두툼한 삼각형 단면을 가진 에스토크와 다르게, 낭창낭창 휘어지기도 하는 베기에 접합한 얇은 보통 검이었다. 당장 쓰기에 아쉬운데로 괜찮았다.


"특히, 너를 족칠 때는 말야."


"제발 저 놈을 막아!"


메이븐이 율리시스에게 접근하자, 혹시나 율리시스가 다칠까 함부로 화상을 쏘지 못했다. 이제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메이븐은 투포환선수처럼 크게 반시계반향으로 몸을 회전하며 카이트쉴드를 던졌다. 쇳덩이인 카이트쉴드가 파이크를 들고 달려들던 용병이 얻어맞고 낙마했다. 중상으로 보였다.


"어딜 도망가느냐! 형이 아프지 않게 해줄께."


맛이 간 눈빛의 메이븐이 이윽고 용병들의 결사적인 항전을 뚫고 팔다리의 살덩이를 출렁이는 율리시스를 따라잡았다. 율리시스가 메이븐에게 바스타드 소드를 집어 던졌지만 힘이 실려있지 않아서 메이븐은 간단하게 레이피어로 쳐냈다.

결국 율리시스를 따라잡은 메이븐이 그의 살찐 오금을 밟아버렸다. 유리아 상단의 후계자가 땅에 나동그라졌다. 메이븐이 그대로 율리시스의 멱살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 방패처럼 앞에 위치시켰다. 살이 접힌 율리시스의 목에는 어느새 레이피어의 끝의 가느다란 끝이 파고들고 있었다.


"율리시스가 붙잡혔다. 무기를 버려라. 베카, 아직 무사한가?"


용병들의 동작이 멎었다. 마차 속에서 신음과 함께 베카의 욕설이 들려왔다.


"끙, 혼자 돌발행동하는 어느 빌어처먹을 새끼 덕분에 무사하다, 썅."


'멀쩡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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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9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2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9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30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8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3 1 17쪽
»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5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15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7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6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7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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