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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님의 서재입니다.

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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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께스
작품등록일 :
2018.07.02 16:14
최근연재일 :
2018.08.10 22:24
연재수 :
3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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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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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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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죄수의 딜레마 (3)

DUMMY

타박타박


샤사샥.


타박


샥.


동문을 나서자 메이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은 동대륙에서 왔다는 퇴마사도, 성신의 신전에서 나온 사제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뒤를 몇 백미터 간격으로 졸졸 따르는 원수였다.

메이븐이 참다 못해 길을 되돌아갔다.


"베카!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뭐하는 거야. 왜 따라오는 건데?"


"길이 하나 뿐이야. 그리고 따라가는 거 아니야."


"주위를 둘러보렴, 멍청아."


메이븐이 망토 속에 있던 손을 빼내 오른편 하늘을 향했다. 높고 울창한 삼나무 숲이었다. 평화로운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 바스라지는 낙엽소리, 어딘가 멀리 흐르는 개울의 소리가 들려왔다. 숲의 평화였다.


"숲이네?"


"이 아가씨야. 난 도망치는 중이란 말야. 누구 덕분에 인적드문 산속으로 가는데 무슨 길타령이야."


"나한테는 숲이 마차가 다니는 길보다 편하다고!"


"입에 침이나 바르고 지껄여라. 숲이 가도만큼 편하면 왜 도망자가 숲으로 들어가냐. 드래곤 풀 뜯어 먹는 소리 하네."


메이븐이 아침에 베카가 그를 보고 그랬듯 약올리듯 혀를 내밀었다. 베카는 녹색 머리를 흰색 헤어밴드로 묶고, 등에는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키만한 투핸디드소드를 짊어진 뒤, 커다란 여행용 배낭을 그 옆에 메고 있었다.


"나는 잡히면 죽는 입장이라 절박하게 도망가는 거라고. 네가 따라와서 흔적이 크게 나면 어떡해."


"어머, 나처럼 깃털보다 가볍고 구름보다 부드러운 여인이 무슨 흔적을 남겨. 나뭇잎 하나 안부서지고 잔가지 하나 안 꺾였어."


'주둥이만 다물어도 참 고마울 것을...'


메이븐이 베카를 저주하며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하고 숲을 헤치고 걸어나갔다.


"너는 잡히면 죽지만, 나도 빈민가를 부순 돈을 갚아야해서 황도로 돌아갈 수 없어. 가면 노역장에 끌려갈거야."


"죄와 벌도 모르냐. 노역장이 싫으면 일단 돈을 빌려서라도 갚아야지! 도망치면 어쩌자는 거야. 그 빈민들은 겨울을 어떻게 나라고. 비가 오면 어쩔건데? 빗물이 고여서 곰팡이가 피고 폐병에 걸리면 치료비도 없는 사람들이야."


"네가 빌려줄거야? 빌려줄 것처럼 말한다."


베카는 생각했다. 아직 봄이니까 여름사이에 어떻게 되지 않을까. 메이븐은 열불이 났다.


"아아아악!"


메이븐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헤집으며 자리를 뒹굴며 발광했다. 베카는 땅바닥을 이리저리 구르는 미소년을 보고 식겁했는지 멀찌감치 멈춰서서 휘파람을 불며 딴청피웠다.


"같이 가자. 어차피 숲에선 나랑 가는 게 안전해. 언니 믿지?"


"됐어. 필요 없어. 너를 믿을 바에 슬라임과 파티를 맺고 드래곤을 사냥하겠다. 네 폭력으로 추운 겨울 눈과 서리를 맞으며 얼어죽어갈 불쌍한 황도의 빈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져. 그리고 내가 오빠다."


"아, 그럼 오빠아앙. 오빠 돈 많다며. 빌려줄거냐고. 갚는 다니까!"


메이븐이 뒹굴기를 멈추고 일어나 몸을 털었다.


"누구세요?"


베카는 울 것처럼 서러운 얼굴로 뭐라고 중얼중얼 거리며 메이븐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아, 또 저러면 마치 내가 나쁜 놈 같잖아... 그건 아닌데...'


"니 돈이 내돈이고 내 돈이 내돈이지. 설마 너 나 사랑한다고 황도의 중심에서 외쳐놓고 이제 나몰라라 하는 거야?"


"아, 인생 시발. 난 헤이스팅스 영지로 간다. 몬스터도 나오는 숲속으로 이동하니까 원망하지마."


부창부수니 헛소리를 지껄이며 베카가 뒤에서 따라오며 기운차게 노래불렀다. 괜히 극장의 여배우는 아닌 지 노래부르는 데 익숙한 듯 넓게 퍼지면서도 아름다운 음색이었다.



누가 기사로부터 검을 분리하겠는가!

기사와 검은 서로가 없다면 둘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산 중턱에서 시야가 탁 트인 바위지대가 나왔다. 메이븐이 바위 위에 올라가 육포를 뜯으며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았다. 황도의 모습이 숲 너머로 까마득했다. 어느새 꽤 멀리 온 것이다. 뒤에 추격자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조금 안심한 메이븐이 인적하나 없는 나무숲을 헤치고 나온 뒤로 이상하게 씩씩하게 변해가는 베카를 돌아봤다.


"진짜 배우였잖아. 어디서 온 노래야?"


푹 한숨을 내쉬고 메이븐이 육포를 던졌다. 잽싸게 받아든 베카가 육포를 질겅이며 신난 목소리로 답했다.


"베르미온이라는 신작의 라이트모티브야. 기사단에서 날 추적만 안했으면 다음 번에 황도의 협곡 무대에 올랐을 명작이지."


"베르미온? 그 왕국은 내가 처절하게 몰락시키긴 했지. 동맹 맺고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 거기 공주 하나가 그레이트 에스페란사 사막까지 졸졸 쫓아다녔는데. 이름이 뭐더라."


"헬렌 베르미온. 기억 좀 해라 이 나쁜 남자야."


"이야, 아무튼. 역적으로 처형당한 뒤에도 내 활약상이 극화된다니. 내가 어쩔 수 없는 불세출의 영웅이긴 영웅이구나."


아직 본인을 헐뜯는 작품이 시중에 넘치도록 풀린 걸 모르는 메이븐이 착각에 빠져 제 얼굴에 금칠을 하자 베카가 꺄르르 웃어젖혔다.


"푸하, 뭐래."


작고 귀여운 다람쥐들이 얻어먹을 게 있나 베카에게 다가갔다가 그녀의 웃음소리에 놀라 도로 나무 위로 도망가 버렸다. 슬금슬금 다가가 쓰로잉나이프를 던져 한마리 잡아 구워먹으려던 메이븐은 입맛을 다셨다. 도움이 되는 거 하나 없는 동행이다.


"메이븐, 나 목말라. 물 좀 떠 와줘."


"야, 넌 그런 거 미리 준비도 안했냐?"


"갑자기 떠나왔단 말이야. 눈에 보이는 데로 싸들고 왔어. 숙녀가 이정도 부탁할 수는 있지. 개울은 저기 왼쪽 산능선 넘으면 하나 있단 말야."


"싫어. 니가 가."


"다음 번에는 내가 가면 되잖아."


베카가 고집부리는 그녀의 수통을 넘기자 메이븐이 표정이 썩은 채 더러운 쓰레기를 집어들 듯 베카의 가죽수통을 집어들고 베카가 가리킨 방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베카가 숲에서 방향을 잘 잡는다던 게 빈말은 아닌지 개울소리가 들렸다.


'돼지 오줌통으로 만든 수통이네. 오줌 맛이나 나버려라.'


메이븐이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떠나자 베카가 품에서 물방울 모양의 짝이 없는 귀걸이를 꺼내더니 입가에 대고 속삭였다.


"피에라, 피에라, 여기는 투핸드. 목표는 황도로부터 동쪽 야산을 올라 숲을 가로질러 이동 중, 마을에 들리는 것을 최소화하고 티리얼 영지로 가기 전 헤이스팅스 영지에 한 번만 들릴 것으로 예상. 이상."


잠시후 물방울 모양 귀걸이가 검게 물들더니 치직 거리며 답신이 걸려왔다. 베카가 재빨리 메이븐이 사라진 방향을 살피며 귀에 가져다 대었다.


'투핸드, 투핸드, 여기는 피에라. 좋은 거래다. 빚은 약속대로 위치 보고 시 100골드 씩 탕감. 이상.'


"별 말씀을. 이상."


'귀걸이에는 영상촬영 기능도 있다. 옷 갈아입는 장면 200골드, 목욕하는 장면 300골드다. 이상.'


"알겠다. 소변보는 장면은? 이상."


'...안 산다. 이상.'


피에라라는 암호명의 정체불명의 여인으로 부터 답신을 받은 베카가 멀리서 입이 삐죽 나온 채 두 개의 수통을 들고 풀숲과 자갈을 밟으며 걸어오는 메이븐을 보았다. 비탈길이지만 괜히 전직 소드마스터가 아니라고, 평지처럼 터벅터벅 걸어온다.

베카는 아침에 반강제로 서명한 '어둠의 자매' 대표명의 비밀계약서를 떠올려 보았다. 마법계약서였고, 매일 한 번 위치보고 시마다, 그녀가 이미 압류 당한 6만 골드의 재산을 제한 8만 골드의 부채에서 100골드 씩 탕감해 주기로 했다. 한달에 3천 골드, 1년에 3만 6천 골드. 도촬 보너스까지 더하면 그 두 배로 벌어들일 자신이 있었다.


'메이븐, 너는 이 시대의 진정한 노다지다.'


예쁜 얼굴로 그녀에게 있는 힘껏 강속구로 수통을 내던지는 메이븐을 보며 베카가 천연덕스럽게 씩 웃었다.


"애미야, 물이 달다."


"아, 시발. 칭찬인듯 칭찬 아닌 헛소리 하지마."


"그러지 말고 내 돈줄. 아니, 메이븐! 덥지 않니. 개울에 가서 간단하게 목욕하지 않으련?"


"소름 돋으니까, 접근하지도 마."


메이븐이 정색하더니 에스토크를 뽑아들고 중단세로 베카에게 겨눴다. 베카가 능구렁이같이 실없게 웃으며 두 손을 들고 싸울 의사가 없다고 표현한 뒤 말없이 메이븐이 떠다준 물을 행낭 옆에 끈으로 메었다.

메이븐은 에스토크를 검집에 밀어넣고 지도를 꺼내 헤이스팅스 영지로 향하는 방향을 잡았다.


독도법을 배우고 전쟁터에서 구르며 지겹게 봐온 지도는 이제 눈에 익어 금세 방향을 잡았다. 메이븐은 이제 이 언덕을 넘으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애증의 황도를 마지막으로 뒤돌아 애타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해보는 메이븐 이었다.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



"취익... 언제 오시는 걸까. 하아..."


장신의 하프오크 여인이 새하얀 대리석으로 쌓아올려진 신전 중앙 기도실에 무릎꿇고 앉아 한숨 쉬었다. 윤기가 흐르는 고운 머릿결은 정성스럽게 땋아올려져 있었고, 화려한 사파이어와 금자수가 들어간 드레스는 한 눈에도 성녀가 가진 옷 중 가장 고급스런 의전용 예복이었다.

부끄러워하는 얼굴로 그녀의 목에 거는 사람 손바닥만한 대형 브로치에 담긴 메이븐 티리얼의 초상화를 보던 하프오크의 얼굴이 굳어졌다.


'분명 어제 왔던 그 엘프 같은 년에게 홀랑 넘어간 게 분명해. 그년은 성격이 얼마나 불길한지 내 순수한 신성력이 그년에게 거부감을 느낄 정도였어. 메이븐 티리얼 백작님이 위험해.'


성신의 성녀로 단순히 힘으로 선택된 게 아닌 듯, 놀라운 직관력을 갖추고 있었다. 초록색 이파리가 돋은 은행나무가 대신전의 예배당 바깥을 두르고 있었다. 스텔라는 빠르게 예배당을 빠져나와 성신의 조각상 앞에 다가섰다. 은행나무를 쓰다듬는 바람이 시원하게 스텔라의 성스러운 드레스가 나부끼게 했다.

흑단같은 머릿결이 고와서, 지나가던 사제들과 신도들이 저도 모르게 성신과 성녀의 이름을 부르며 고개숙였다.


'그 불여우로부터 메이븐 티리얼 백작님을 보호하기 위한 거야. 절대 그분이 나를 보고가지 않았다고 열받은 게 아니야. 그런 일로 앙심을 품는 건 성녀가 아니지.'


이내 중대한 결심을 한 성녀가 성신의 조각상 앞에서 눈을 감고 그녀의 신을 불렀다.


"취이익! 신이시여."


[나의 아이야. 무슨 일이냐?]


자애로운, 남성의 목소리가 스텔라에게만 들리게 하늘 저편으로부터 울려퍼졌다.


"취엑! 메이븐 티리얼 백작이 악마 서큐버스의 유혹 앞에 놓여있나이다. 유혹으로부터 그를 구원해 주소서. 고귀한 기사 메이븐 티리얼 경이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게 그를 고자로 만들어 주소서."


[...잠깐]


고개를 끄덕이며 스텔라의 기도 앞부분을 듣던 성신은 문뜩 아주 위험한 단어를 듣고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인지 의심했다.


"취엑, 처음 저를 성녀로 지목하실 때 무슨 소원이든, 취이익, 살아가며 3번의 기적을 행할 수 있게 해주겠다 말씀하셨나이다. 췩!"


[...그건 그렇지만 잠깐]


성신은 이런데 허비하라 준 권능이 아닌데 고집을 부리기 시작한 그의 딸 앞에 난감해 했다.


"취익! 이게 저의 두번째 소원입니다.췩! 메이븐 티리얼에게 설혹 서큐버스 퀸이 유혹해도 굴하지 않을 부동심을, 취에엑. [대현자의 은총]을 내려 주소서."


[...발기부전 정도로 어떠니?]


축복이라고 또는 은총이라고 부르기보다 저주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거라는 생각이 잠시 성신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끝끝내 서큐버스의 유혹에 고통받는 신자를 구원하는 순수한 의도라는 스텔라의 설득에 넘어갔다. 그렇다. 성신은 그의 양녀 앞에서 팔불출에 팔랑귀라는 약점이 있다.


"취익, 그것을 바로 부탁드리나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품하겠사오니 양해바라겠사옵니다."


성신은 자괴감에 빠진 채 스텔라의 요청에 따라 메이븐 티리얼을 대상으로 한 은총을 내리기 시작했다.

마왕을 토벌하기 위해 떠나는 용사가 중간보스 격인 서큐버스 퀸에게 열에 아홉이 당하자, 신들 사이에 비밀리에 전해지는 저주인 '대현자의 은총'이 개발되었다.


[메이븐아, 용사가 아닌데 이 은총을 받는 건 네가 처음이로구나.]


이성적 사고를 포기한 성신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야산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메이븐 티리얼을 떠올렸다.



*



'...제멋대로인 언니를 잘 부탁드려요. 언니는 어릴 적부터 세상을 돌아보는 게 꿈이었거든요. 레이크웰님(하트표시) - 베니'


"힉! 베카 이거 뭐야! 하트야. 하트가 그러져있어."


베카가 길을 떠난다기에 베카의 짐을 싸주며 그 안에 슬쩍 편지를 끼워넣은 베니는, 메이븐에게도 편지 한 장을 남겼다.

메이븐이 그 정성스럽고 귀여운 손글씨로 쓰여진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니 베카와는 딴판인 성격이 나타났다. 동생인 베니는 요조숙녀인 것 같았다. 말그대로 메이븐의 이상형인 듯 싶었다.


"여자들은 아무 생각없이 붙이기도 해. 오해하지 마, 메이븐. 누가 동정 아니랄까봐. 티내는 거야?"


떠밀려오는 수치심에 편지를 내려놓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던 메이븐이 이상함을 느끼고 베카를 신문했다.


"어?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건 내 최측근들 몇 밖에 모르는 기밀인데... 누굴 만났어?"


"그, 글쎄. 유도심문이었는데? 정말 동정이라니. 으웩, 37살 동정이래."


"후우."


베카의 유도심문에 걸린 것은 일생일대의 치욕이 되리라. 메이븐이 참을 인 자를 마음 속에 새기며 짐을 챙겼다. 이상하게 화가 들끓어 오르지는 않았다. 마치 보살이라도 된 느낌이었다.


'왜 화가나지 않지?


"오직 덕이 있는 자만이 남을 미워할 자격도, 사랑할 자격도 있는 법이니. 이는 모두 내가 부덕한 탓이니라."


"네?"


베카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메이븐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메이븐은 온화한 미소로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베카가 곧 다시 신난 듯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며 메이븐의 곁에 달라붙었다.


"선생님, 선생님! 바다와 같이 마음이 넓어지셨군요."


"어허, 분노도 미움도 마음에 달려있음을 깨달았을 뿐이니라."


"그럼 바다와 같은 이해심으로 제게도 돈을 빌려..."


"싫어."


메이븐이 정색하고 베카를 노려봤다. 전 재산을 압류당한 터라, 싸들고 온 짐 말고 여행경비도 없는 베카는 우뚝 걸음을 멈추고 그저 자기 손가락이나 쪽쪽 빨았다. 메이븐이 앞으로 걸어나가며 싸늘한 눈으로 덧붙였다.


"사채로, 법정최고이율보다 높게 부를테니까, 돈 빌릴 꿈도 꾸지마."


"그렇게 높게 하면 빌려주긴 하는 거야?"


메이븐이 씩씩 거리며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베카의 앞에 두 발을 벌리고 서서 양 허리에 손을 짚었다. 베카가 움찔하고 마침 근처에 있는 나무 뒤로 숨었다. 투핸디드소드 손잡이가 비죽 삐져나와 부들부들 떨렸다.


"환영합니다. 고객님! 얼마를 원하시나요?"


메이븐이 상냥한 목소리로 물으며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했다.


"..."


메이븐이 장난치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에 나무 뒤에서 헤어벤드로 묶은 머리를 빼꼼 빼낸 베카카 눈만 말똥말똥히 내놓은 채 물었다.


"음, 그러면 일단 빌려써보고 아니다 싶으면 한달 뒤에 반품할께요."


"네,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리구요?"


"티리얼 영지로 간다고 했죠? 저는 그럼 헤이스팅스 영지 지나면 가는 길에 그리미어 숲에 들러요. 거기 제 집이 있는데 들리면 빌린 돈 집을 팔고 갚을께요."


"네, 고갱님, 그러셔도 괜찮습니다. 그리미어 숲까지 3개월 정도 걸리겠네요. 월이자 10% 복리 어떠신가요? 지금 당장 드릴 수 있는 금액은 1000골드입니다. 하지만 티리얼 영지를 지나면 그 뒤로 3만 골드까지 융통 가능하시구요. 연이율은 특별할인으로 70% 어떠세요?"


"일단 1000골드만 써보고, 마음에 들면 3만 골드도 고민해 볼께요."


너는 미끼를 물어분거여. 메이븐이 영업용 미소를 지은채 선뜻 천골드 값어치의 골드와 실버, 어음을 넘겨주었다. 일단 여행자금이 급한 베카가 메이븐의 돈을 얼른 챙겼다.

하지만 메이븐이 옷을 갈아입거나 목욕할 때 나체사진 촬영을 한 번만 성공하면 3개월치 이자는 껌값이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메이븐은 희희낙락하여 웃고, 베카도 마주 웃어주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깊은 숲속에서 선남선녀가 밀회하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보일 것이다.

둘은 저녁 나절 내내 걸었다. 하루 종일 걸어서 황도로 부터는 꽤 먼곳으로 왔다. 메이븐은 지형지물과 나침반을 이용해 지도와 대조하며 헤이스팅스로 향하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나아갔다. 해가 떨어지기 전 야영할 장소를 찾는 메이븐에게 베카가 다가와서 물었다.


"메이븐, 헤이스팅스 영지 지나면 그리미어 숲으로 가는 거야. 알았지?"


"아휴! 그리미어 숲 경치 좋지요. 엘프도 산다는 전설이 있고. 고갱님, 그곳은 왜요?"


이제는 장난스럽게 존댓말을 섞어쓸 만큼 친해진 메이븐이 베카에게 물었다. 베카는 모닥불을 피우기 위한 마른 장작을 모아 품에 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답했다.


"거기가 내 고향이거든."


"아, 어째 성깔이 야생동물스럽더니. 야생의 피를 이으셨군요."


"내가 거기서 잘 나가는 엘프였어."


"잠깐만 베카, 너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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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부활해서 방탕아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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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중세 검의 종류와 검술 참고자료 목록 +1 18.07.19 121 0 -
37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2) 18.08.10 58 0 18쪽
36 [외전] M. T.의 기사 임용 면접 후기 18.08.09 59 0 15쪽
35 폭풍같은 내전 - 평야의 결전 (1) 18.08.06 77 0 17쪽
34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3) 18.08.05 75 0 18쪽
33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2) 18.08.04 69 0 18쪽
32 폭풍같은 내전 - 베네딕트 남작령 침공 (1) 18.08.03 102 0 19쪽
31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3) 18.08.02 102 0 18쪽
30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2) 18.08.01 122 1 18쪽
29 폭풍같은 내전 - 파르찬 루이스 유격대 (1) 18.07.31 118 1 17쪽
28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8) 18.07.30 109 0 18쪽
27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7) 18.07.29 102 0 19쪽
26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6) 18.07.28 102 1 18쪽
25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5) 18.07.27 108 0 19쪽
24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4) 18.07.26 91 0 17쪽
23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3) 18.07.25 130 0 17쪽
22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2) 18.07.24 110 0 17쪽
21 부러지는 피에라브라스 (1) 18.07.23 128 1 19쪽
20 헤이스팅스 영지로 (4) 18.07.22 126 1 18쪽
19 헤이스팅스 영지로 (3) 18.07.21 152 1 19쪽
18 헤이스팅스 영지로 (2) 18.07.20 163 1 17쪽
17 헤이스팅스 영지로 (1) 18.07.19 154 0 19쪽
16 죄수의 딜레마 (4) 18.07.17 162 0 19쪽
» 죄수의 딜레마 (3) 18.07.16 147 0 18쪽
14 죄수의 딜레마 (2) 18.07.15 175 0 18쪽
13 죄수의 딜레마 (1) 18.07.14 194 0 20쪽
12 황도의 비밀결사 (4) 18.07.13 176 1 19쪽
11 황도의 비밀결사 (3) 18.07.12 201 1 19쪽
10 황도의 비밀결사 (2) 18.07.11 254 1 19쪽
9 황도의 비밀결사 (1) 18.07.10 308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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